[WIKI 인사이드] 미국의 수도 ‘워싱턴DC’ 州 독립 꿈을 위한 기나긴 투쟁의 파노라마
[WIKI 인사이드] 미국의 수도 ‘워싱턴DC’ 州 독립 꿈을 위한 기나긴 투쟁의 파노라마
  • 유진 기자
  • 기사승인 2020-07-08 07:02:22
  • 최종수정 2020.07.08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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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독립' 안건으로 하원을 통과, 상원 표결을 목전에 두고 있는 워싱턴DC. [히스토리]
'주 독립' 안건으로 하원을 통과, 상원 표결을 목전에 두고 있는 워싱턴DC. [히스토리]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D.C.(District of Columbia)는 51번째 주(州)로 독립할 수 있을 것인가.

23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에 걸쳐 ‘주 독립’의 꿈을 향해 달려온 워싱턴DC가 큰 진전을 이뤘다. 워싱턴DC를 주로 승격하는 법안이 지난달 26일 사상 최초로 연방 하원의회에서 찬성 232, 반대 180로 가결된 것이다.

이제 공은 상원으로 넘어갔다. 51번째 주로 승격되기 위해서 상원의원 중 60표 이상의 지지를 확보해야 가능해진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포함한 공화당은 워싱턴DC에 주 지위를 부여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결국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하는 상원에서 이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희박한 상황이다.

‘전세계 정치 1번지’로 알려진 워싱턴DC는 당연히 미국의 중심 주(州)일 것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하지만 워싱턴DC는 '주'가 아니다.

워싱턴DC에 대한 주지위 부여 문제가 상원에 상정된 가운데, 역사 전문 미디어인 <히스토리>가 ‘워싱턴DC가 주가 아닌 이유’, 그리고 기나간 투쟁의 역사를 기획으로 보도해 관심을 끌고 있다. 

워싱턴DC의 1852년 모습. [히스토리]
워싱턴DC의 1852년 모습. [히스토리]

대영제국에 대한 미대륙 식민지들의 주된 불만 중 하나는 영국의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대표 없이 과세 있다) 정책이었다. 이는 워싱턴DC가 비공식 모토로 채택한 슬로건이었고, 영국의 정책은 독립전쟁을 촉발하는 원인이 됐다.

2000년 들어 워싱턴DC는 주 독립정신 고취에 나섰다. 시의 모든 표준 번호판에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대표 없이 세금 부과)를 인쇄하기 시작한 워싱턴DC는 2016년에는 이를 ‘End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대표 없이 과세는 끝이다)로 업데이트했다.

번호판은 DC거주자들이 미국 의회에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고 연방 세금을 낸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특히 이 번호판 캠페인은 50개 주와 동일한 투표권과 자치권을 위해 DC가 투쟁해 온 오랜 역사의 일부분임을 시사하고 있다.  

▶재건 후, 의회는 DC정부를 폐지하다

워싱턴DC는 아나코스탄으로도 알려진 나코치탄크인 조상들의 고향이다. 영국 식민지 개척자들이 그들을 난폭하게 몰아낸 후, 그 땅은 메릴랜드와 버지니아의 일부가 되었다.

1790년, 이 두 주는 미국의 수도 ‘콜롬비아 구’를 설립하기 위해 그 영토를 양도했다.

당시 워싱턴에는 주가 되기엔 너무 적은 약 3000명의 인구가 살고 있었고, 워싱턴DC에 많은 재산과 부동산을 소유한 백인 남성들은 이전과 같이 메릴랜드나 버지니아에서 투표를 계속했다.

1800년대 초부터 의회는 유권자들이 이전에 대통령 선거권이나 하원의원 선거권을 박탈하면서 일부 지역 지도자들을 선출할 수 있도록 하는 일련의 다른 정부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 후 1870년대에 의회는 DC 지방 대표직을 박탈했다. 백인 국회의원들은 선거권을 갖게 된 흑인들에 의해 미국의 수도가 운영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재건 기간 동안 흑인들은 워싱턴 인구의 약 3분의 1을 차지했다.

1867년 흑인 남성들이 지방 DC선거에서 투표권을 얻게 되자 그들은 곧바로 지방 정부를 세웠다. 하지만 의회는 1871년과 1874년 DC주민들이 대통령 투표권이 없었을 당시 대통령에게 DC의 대표리더를 뽑게 함으로써 의회 투표자들을 선출할 수 없었다.

대통령, 국회의원, 그리고 많은 연방 공무원들은 그들의 원래 주에서 투표하도록 등록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에 대해 영향을 받지 않았다.

DC의 투표와 자치 제한은 정규직 거주자에게만 사용되었다. 그리고 남부 주들이 재건 이후 흑인 남성들의 투표를 막기 위해 사용했던 인종차별적 투표 제한처럼, 이러한 제한들은 흑인 정치력을 억압하기 위한 것이었다.

1877년 미국 상원에 입성한 남부연합군 출신 존 타일러 모건은 의회가 “쥐들을 없애기 위해 헛간을 불태워야 했다. 쥐들은 흑인이고 헛간은 콜롬비아 특별구의 정부”라며 노골적으로 인종차별적 발언을 쏟아냈다.

흑인이 다수를 이뤘던 워싱턴DC 시민들은 이 도시에 정착한지 160여년만인 1964년 들어서야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히스토리]
흑인이 다수를 이뤘던 워싱턴DC 시민들은 이 도시에 정착한지 160여년만인 1964년 들어서야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히스토리]

▶변화를 초래한 민권법 시대

1870년대 워싱턴 시민들 뿐만 아니라 그 정부를 총괄했던 의회 의원들과 대통령까지, 자신들의 지방정부에 대한 올바른 투표를 거부했던 제도는 거의 1세기 동안 제자리걸음을 했다.

그 기간 동안, DC의 흑인 인구는 점점 더 증가했다. 1957년 DC는 미국 최초의 흑인 도시가 되었다. 1970년 흑인인구는 도시 인구의 71%인 53만 7000명으로 최고에 도달했다.

그 때까지는 많은 백인 주민들이 메릴랜드와 버지니아 교외로 이주해 완전한 투표권을 누릴 수 있었다.

흑인 DC주민들은 시민권 운동 기간 동안 도시의 불평등한 지위나 신분을 바꾸기 위해 싸웠고, 몇가지 중요한 승리를 거두었다.

첫번째는 1961년 비준된 헌법 23조를 통해 대통령과 부통령을 선출할 수 있는 권리였다.

시는 1964년 첫 대통령 선거를 실시해 흑인민권운동으로 알려진 민권법을 주장함으로써 흑인들은 린든 비 존슨에게 압도적으로 표를 던졌다. 존슨은 그해 초 민권법에 반대표를 던진 애리조나 출신의 공화당 상원의원 배리 골드워터를 제치고 당선됐다.

이 같은 승리는 문제점도 안고 있었다. 워싱턴 DC의 인구 조사 결과 76만명이 넘으며 11개 주 보다 인구가 많았지만, 인구가 가장 적은 주인 알래스카(22만 6천명)보다 많은 선거인단을 받을 수가 없었다. 1964년 이후, DC는 인구 규모와 상관없이 가능한 낮은 수인 ‘세 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하는데 그쳤다. 

‘자치권’은 또 다른 전투였다. 재건한 지 1세기가 지난 지금도 의회의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흑인 인구를 가진 도시에 자치권을 주는 정책에 부정적인 상황이다. 

1972년 AP통신은 루이지애나 주 하원의원인 존 래릭이 “지역구에 자치권을 주는 어떠한 것도 흑인 무슬림 교도의 장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이런 반발에도 불구하고 1973년 의회가 통과시킨 ‘자치법’을 통해 DC주민들은 자체 시장과 시의원 선거권을 따냈고, 민주당 출신 월터를 최초의 워싱턴 자치 시장으로 선출했다.

그래도 새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의회는 DC시장과 의회가 통과시킨 모든 법률을 거부할 권리가 있었으며, 많은 법률들을 폐지했다.

1971년에는 미 하원에 투표하지 않은 대표가 이긴 경우도 있었다. 이 대표는 위원회에서 활동할 수 있고 원내에서 발언할 수 있지만, 어떤 법안의 최종안에 대해서도 투표할 수 없었다.

1978년 의회는 워싱턴 DC에 두명의 투표용 상원의원과 하원의원을 배출할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 당시 의원들에게는 중대한 압력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38개의 주에서 비준을 받지 못한 채 사라져버렸다.

미국의 상징 중 하나인 워싱턴DC 국회의사당 [연합뉴스]
미국의 상징 중 하나인 워싱턴DC 국회의사당 [연합뉴스]

▶워싱턴 DC는 51번째 주가 될 수 있을까?

1980년부터 DC는 주정부 지위 확보를 통해 의원의 배출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많은 운동가들과 정치인들은 푸에르토 리코, 괌, 버진 아일랜드, 북 마리아나 제도 및 사모아의 미국 영토에서 DC와 비슷한 투쟁을 해왔다.

1960년의 DC 거주자와 마찬가지로, 이 지역에 거주하는 미국 시민은 연방 세금을 지불하지만 의회에 의원은 없고 투표도 할 수 없다.

주정부 옹호자들은 와이오밍과 버몬트 보다 인구가 많은 68제곱마일의 도시인 DC가 주가 될 수 없다는 것은 헌법상의 이유가 없다고 지적해왔다.

버락 오바마 전 국가 안보 보좌관 인 수잔 라이스는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워싱턴 주 정부의 반대론자들은 헌법이 지역에 대한 연방 정부의 완전한 권한을 요구하고 따라서 정부의 지위를 금지한다고 주장하면서 그럴 듯한 법적 주장을 한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헌법은 단지 연방 영토가 10제곱마일을 초과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며 “연방 정부의 통제 하에 있는 정부 건물에 대해 제한된 구역을 깎는 동시에 지구의 나머지 구역을 주로 만드는 것은 금지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의회는 DC를 51번째 주로 만드는 것과 관련된 여러 법안을 다뤄왔다. 

특히 지난달 하원을 통과한 DC에 주 지위를 부여한 법안은 현재의 정치적 상황상 기적이 펼쳐지지 않는 한 상원에서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워싱턴DC는 이에 굴하지 않고, 주 독립을 위한 또 다른 대장정에 나설 것이다.

[위키리크스한국= 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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