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대법원2부의 예고된 결론 '이재명 무죄'
[WIKI 프리즘] 대법원2부의 예고된 결론 '이재명 무죄'
  • 윤여진 기자
  • 승인 2020.07.17 09:12
  • 수정 2020.07.17 09: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직후보자 토론회서 '허위사실 답변'은 공표인가
다수의견 "토론회 의혹 공방은 즉흥적... 공표 아냐"
소수의견 "이 지사는 준비한 자료 읽어... 공표 인정"
1차 토론은 단순 답변, 2차 토론은 '질문 없는 발언'
지난 2월 22일 강원 춘천시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발생 관련 조치를 발표하는 이재수 춘천시장. [사진=연합뉴스]
지난 2월 22일 강원 춘천시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발생 관련 조치를 발표하는 이재수 춘천시장. [사진=연합뉴스]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지난 1월 9일 대법원 형사2부(대법관 박상옥 안철상 노정희 김상환)가 이재수(사진) 춘천시장에 선고한 주문이다. 이 시장은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일 직전인 2018년 6월 4일 '춘천시장선거 후보자토론회'에서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허위사실 공표 혐의를 무죄로 본 항소심에 불복한 검사가 상고한 터였다. 노정희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2부는 상고를 기각, 당선무효형(벌금 100만원 이상) 바로 아래인 벌금 9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 시장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토론회를 80일 정도 앞둔 시점인 그해 3월 13일, 춘천시장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이던 이 시장은 춘천시청과 관내 주민센터를 방문했다. 때마침 그날은 주민자치위원회가 열리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청와대 농어업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 일한 이 시장은 자치위원들에게 "잘 키워주셔서 청와대까지 다녀왔습니다"며 "이번에 시장 출마를 하게 되었으니 열심히 일하겠습니다"고 연신 허리를 굽혔다. 

이 출마인사는 민주당 후보로 확정된 이 시장 발목을 잡았다. 토론회 닷새 전 춘천경찰서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몇 달 전 자치위원들을 만난 일이 불법 선거운동인 '호별방문'이니 선거가 끝나면 경찰서에 출석하란 얘기였다. 공직선거법 제106조 제1항은 '누구든지 선거운동을 위하여 호별로 방문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호별방문이란 선거운동 목적으로 '공개되지 않은 장소'를 찾는 걸 말한다. 금품을 몰래 주고받을지 모르기 때문에 생겨난 조항이다. 당선이 유력한 이 시장이 출석통보를 받았다는 사실은 금세 상대편에 퍼졌다. KBS 춘천방송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바른미래당 변지량 후보는 기습 질문했다. 

"경찰에선 지금 수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지요?"(변지량)

"전혀 사실이 아닌 사실을 지금 말씀을 하고 계신데, 수사라고 하는 표현이 적당하지도 않을뿐더러, 경찰에서 그걸 내사하고 있거나 그런 조짐들 없구요"(이재수)

선거가 끝난 뒤 춘천서는 이 시장이 선거운동 기간 호별방문한 혐의(공선법 제106조 위반)와 해당 사실을 후보자토론회에서 부인해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공선법 제250조 위반)가 있다며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경찰 의견을 그대로 공소사실로 작성해 기소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선 호별방문 14개 중 2개만 무죄가 선고됐고 나머지와 허위사실 공표는 유죄로 인정됐다. 2심은 호별방문 1개를 추가 무죄 판단하면서 '허위사실 공표는 무죄'라고 선고했다. 공선법 제250조에서 금지하는 허위사실 공표 방식 중 검사가 문제 삼은 건 '경력 등'인데 '경찰에서 수사 중인 사실'은 경력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대법원도 이 판단을 수긍했다.

17일 오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무죄취지로 사건을 깨고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내자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입장을 발표하기 앞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는 이재명 경기도지사. [사진=연합뉴스]
16일 오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무죄 취지로 사건을 깨고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내자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입장을 발표하기 앞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는 이재명 경기도지사. [사진=연합뉴스]

◇ 주심은 공교롭게도 노정희 대법관인데
2부 소속으로 노 대법관 판단에 동의했던 박상옥 대법관은 이때 판단이 여당 유력 대권 주자의 '정치생명'을 연장하는 이유가 된다는 걸 알았을까. 5개월 지난 6월 15일 김명수 대법원장은 2부 사건 하나를 전원합의체로 넘겼다. 피고인은 이재명 경기도지사. 쟁점은 이 시장 때와 같았다. 공직후보자 토론회에서 범죄사실을 묻는 질문에 부인하는 답변은 허위사실 공표인가. 공교롭게도 주심은 또 노 대법관이다. 

1심과 달리 2심이 허위사실 공표를 인정하자 이 지사는 상고했다. 유무죄 입장이 다른 1심과 2심 모두 검사가 문제 삼은 2018년 두 번의 토론회에서 허위사실은 있었다고 인정했다. 지난 2010년 성남시장이던 이 지사가 시장직을 이용해 분당보건소장에게 친형의 정신병원 강제입원 진단 절차를 지시한 건 사실이다. 이 토대에서 대법원 재판이 진행됐다. 

전합 회부 전 2부는 2대2로 갈렸다. 박 대법관과 안철상 대법관은 '허위사실 공표가 넉넉히 인정된다'며 유죄 취지를, 노 대법관과 김상환 대법관은 '허위사실은 맞지만 공선법에서 금지하는 공표는 아니다'라며 무죄 취지를 각각 주장했다. 대법원 소부는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되는데 모두가 의견이 일치해야만 결론을 낸다. 주심 노 대법관은 전합 심리를 요청했다. 

16일 생중계로 열린 전합 선고는 원심을 7대5 다수의견으로 깨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과거 다른 사건에서 이 시장을 변호한 김선수 대법관이 '회피 결정'으로 심리에서 빠져 12명이 판단한 결과다. 가장 최근 임명장을 받은 노태악 대법관부터 차례로 의견을 밝힌 평의가 5대5로 팽팽해지자 선임 대법관인 권순일 대법관이 '파기'(무죄 취지)를 택했다. 6대5. 김 대법원장은 관례에 따라 다수의견을 따랐다. 2부에서 무죄 취지를 주장했으나 만장일치를 끌어내지 못한 노 대법관은 법정의견인 다수의견을 쓰게 됐고, 반대로 이의를 제기했던 박 대법관은 소수의견을 썼다. 박 대법관의 소수의견은 노 대법관의 다수의견을 "자의적 판단"이라고 칭했다. 

"다수의견이 말하는 '적극적 일방적 표명'의 의미도 명확하지 않고 모호하다. 다수의견과 같이 공표의 의미를 해석할 경우 오히려 허위사실 공표죄 성립 여부가 수사기관이나 사법기관의 자의적 해석에 맡겨지게 될 우려가 커지고..."(소수의견)

박 대법관의 소수의견은 노 대법관의 다수의견을 모순이라고 봤다. 다수의견은 "주장과 반론에 의한 공방이 제한된 시간 내에서 즉흥적, 계속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므로 그 표현의 명확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허위사실 공표를 두 가지로 나눴다. '적극적이고 일방적인 표명'이거나 그렇지 않은 표명이거나. 

소수의견은 묻는다. 명확하지 않다는 '토론회 답변'을 어떻게 또 둘로 나눈단 말인가. 공선법에선 공표는 공표이지 구태여 구분하지 않는데 다수의견이 "문언의 가능한 의미를 벗어나 새로운 구성요건을 창조"했다는 것이다. 국회의 입법 영역을 법원이 감히 침범했다는 얘기다. 법관이 판결문에 기록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비난'이다. 실제 대법원은 '공표'의 의미를 "수단이나 방법의 여하를 불문하고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허위사실을 알리는 것"으로 1998년부터 일관되게 해석해왔다. 때문인지 다수의견은 해당 판례에서 무엇이 달라진 것인지 판결문에 적지 못했다. 

◇ MBC 토론회에선 '강제입원 질문'이 없었다
쟁점은 허위사실 유무가 아니다. 부인할 수 없는 그 허위사실이 공표되었나다. 소수의견은 지상파를 통해 실시간 중계되는 토론회 발언은 당연히 공표되는 것이라고 했다. 허위사실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다수의견은 동의하지 않았다. 이 지사가 답변 과정에서 허위사실을 숨겼으니 공표되지 않았다는 법리를 댔다.

"법적으로 공개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사항에 관하여 일부 사실을 묵비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전체 진술을 곧바로 허위로 평가하는 데에는 신중하여야..."(다수의견)

다수의견 시선은 2018년 5월 29일 'KBS 초청 경기도지사후보자 토론회'로 향한다. 이번에도 의혹 제기 역할은 바른미래당에 주어졌다. 김영환 후보가 다 안다는 듯 묻는다. 

"형님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하였지요? 보건소장 통해서 입원시키려 하셨죠?"(김영환)

"그런 일 없습니다"(이재명)

소수의견은 바로 반박한다. 이 지사는 '묵비'하지 않고 적극 해명한다. 

"단순한 묵비나 부작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구체적 사실을 들어 해명한 것임이 명백하고..."(소수의견)

소수의견 시선은 일주일 뒤인 2018년 6월 5일 'MBC 경기도지사후보자 토론회'로 간 지 오래다. 결코 동의하지 않지만 다수의견이 제시한 '적극적인 공표'라는 기준을 그대로 돌려준다. 이 지사는 묻지 않았는데 말한다.  

"우리 김영환 후보께서는 저보고 '정신병원에 형님을 입원시키려 했다' 이런 주장을 하고 싶으신 것 같은데 사실이 아닙니다"(이재명)

다수의견은 이 지사 발언이 '즉흥적 답변'에 불과하다 했지만 소수의견은 '준비한 자료'라고 했다. MBC 토론회는 KBS 토론회와 다르다는 걸 다수의견은 굳이 애써 반박하지 않았다. 다만 질문 없는 이 지사의 강변을 "선제적인 답변"이라고 했다. 형용모순이다. 질문은 없는데 어찌 답변이란 말인가. 이같은 논리적 결함은 검찰 공소사실에서 비롯됐다. 검찰은 사실상 포괄일죄를 적용, 두 토론회를 하나의 범죄로 봤다. 먼저 열린 KBS 토론회에서 상대 후보의 의혹제기를 분명하게 반박하지 못한 점이 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판단한 이 지사가 MBC 토론회에선 관련 질문도 없는데 허위사실을 말했다는 것이다. 포괄일죄란 '여러 행위'가 '하나의 죄'가 된다는 법리를 뜻한다. 사실관계는 둘 인데 하나로 재판했다는 '사실오인'은 상고이유가 되지 않는 점을 이용 다수의견이 논리적 허점을 피해갔다고 읽히는 대목이다. 소수의견으로선 원심에서 해당 법리 적용을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았다는 점에서 '포괄일죄 법리 오해'를 주장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침묵을 지킨 건 다수의견만이 아니다. 소수의견을 작성한 박 대법관은 이 시장 사건에서 노 대법관 뜻에 선뜻 동의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입장이 달라진 박 대법관을 배려한 행동인지 다수의견은 이 시장 사건 판결문은 참조사례로 인용하지 않았다.

춘천시장후보자 토론회에선 호별방문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사실을 이 시장이 부정했고, 경기도지사후보자 토론회에선 강제입원 혐의가 있는데 이 지사가 부정했다. 모두 범죄 혐의가 불거진 시기 열린 공직후보자 토론회에서 관련 질문에 "그런 사실이 없다"고 답한 상황을 허위사실 공표로 볼 수 있느냐고 묻는다. 

혐의 구성도 같다. 'A혐의'와 'A를 부인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렇다면 'A혐의' 전부 또는 일부가 무죄라면 'A를 부인한 혐의'는 유죄인가. 이 지사 사건에서 다수의견은 구도를 비튼다. 'A를 부인한 혐의'는 'A혐의가 인정된다는 사실을 부인한 혐의'가 된다. 사실인정의 문제가 혐의인정의 문제로 전도된 것이다. 틀어진 구도를 소수의견은 용납할 수 없다. 

"다수의견은 상대후보자 질문 내용과 취지를 명백히 잘못 이해하여 이 질문에 직권남용이나 강제입원의 불법성을 확인하려는 취지가 포함되어 있다고 봤다"(소수의견)

호별 방문했지만 내가 보기에 불법 호별방문은 없었다. 그렇다면 호별방문으로 수사를 받는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강제입원 시도는 있었지만 불법 강제입원은 없었다. 그렇다면 강제입원이 있었냐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이때 "아니다"는 허위사실이지만 공표는 "아니다". 6개월 전 노 대법관 판결문에 서명한 박 대법관은 이렇게 "아니다"의 모순에 꼼짝없이 갇혀버렸다.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

aftershock@wikileaks-kr.org

기자가 쓴 기사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127, 1001호 (공덕동, 풍림빌딩)
  • 대표전화 : 02-702-2677
  • 팩스 : 02-702-16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소정원
  • 법인명 : 위키리크스한국 주식회사
  • 제호 : 위키리크스한국
  • 등록번호 : 서울 아 04701
  • 등록일 : 2013-07-18
  • 발행일 : 2013-07-18
  • 발행인 : 박정규
  • 편집인 : 박찬흥
  • 위키리크스한국은 자체 기사윤리 심의 전문위원제를 운영합니다.
  • 기사윤리 심의 : 박지훈 변호사
  • 위키리크스한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위키리크스한국. All rights reserved.
  • [위키리크스한국 보도원칙] 본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립니다.
    고충처리 : 02-702-2677 | 메일 : laputa813@wikileaks-kr.org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