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이재명 파기환송'에서 읽는 '조희연 선고유예'
[WIKI 프리즘] '이재명 파기환송'에서 읽는 '조희연 선고유예'
  • 윤여진 기자
  • 승인 2020.07.21 16:37
  • 수정 2020.07.21 16: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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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견 '이재명 무죄' 김상환 대법관, '조희연 선고유예' 판결해
의혹 내용은 가짜여도 '의혹이 있다' 사실은 진짜라는 法理 창시
이재명 판결서 김영환 질문은 '불법 의혹 묻는 것'이라 유사 추론
과거 大法 김상환 법리 不수용, 이젠 김상환이 그때 그 大法 무시

'A 후보는 바람둥이래~' 

간통죄가 폐지되지 않은 나라에서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선거는 끝났고 소문은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A 후보가 바람둥이라는 소문이 있다'는 사실 자체는 허위인가. 반대로 이 소문 내용이 진실이라고 가정해보자. 선거운동 기간 소문을 접한 B 후보는 생각했다. '이거 간통죄 아닌가' B 후보는 토론회에서 간통죄를 먼저 언급하지 않고 묻는다. "바람 피우셨죠?" 간통죄 증거가 부족하다고 본 A 후보 입에서 엉겁결 나온 말 "그런 사실 없습니다"는 허위인가. 

A 후보 주변에 머문 '소문'과 이 소문을 수상히 여긴 B 후보 '속내'를 모두 뜻하는 말이 있다. 국립국어원 표준대사전에서 '의혹'을 찾으면 '의심하여 수상히 여김. 또는 그런 마음'이라 나온다. 의혹이 밖에 머물면 소문이고 안에 남으면 속내다. 

B 후보 속내를 눈치채고 거짓을 말한 A 후보는 처벌받지 않는다. 반면 소문이 있다고 떠든 A 후보는 처벌받는다. 모두 의혹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인데 처벌 여부가 다르다면 모순이다. 실제 간통죄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만 빼면 모두 대한민국 대법원이 내놓은 판단이다. 

지난 2018년 5월 29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2018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후보 토론회'에 참석한 후보들이 토론회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자유한국당 남경필, 바른미래당 김영환, 정의당 이홍우 후보.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제공=연합뉴스]
지난 2018년 5월 29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2018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후보 토론회'에 참석한 후보들이 토론회에 앞서 서로 손을 맞잡은 채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자유한국당 남경필, 바른미래당 김영환, 정의당 이홍우 후보.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제공=연합뉴스]

◇ '피고인 이재명'의 속뜻을 읽겠습니다
지난 1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7대5 의견으로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가 인정된다고 한 원심을 깨고 수원고법으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이 지사는 성남시장에 재직하던 지난 2012년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에 필요한 진단 절차를 분당보건소장에게 지시했으면서도 해당 사실을 지난 2018년 경기도지사선거 토론회 때 부인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터였다. 

지난 2018년 5월 29일 'KBS 초청 경기도지사 후보자 토론회'에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나선 이 지사는 "형님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하였지요? 보건소장 통해서 입원시키려 하셨죠?"라는 김영환 바른미래당 후보 질문에 "그런 일 없습니다"라는 거짓을 말했다. 그런데 왜 허위사실 공표는 아닌 걸까. 

다수의견은 이 지사의 입장에서 "그런 일 없습니다"의 속뜻을 헤아렸다고 했다. 겉으로 드러난 문언 그대로가 아닌 감춰진 '무엇'을 탐색했다는 얘기다. 근거는 '형벌법규 원칙'이다. 피고인에 불리한 방향으로 지나친 확장해석과 유추해석은 하지 말란 얘기다. 

이같은 논리를 따르면 이 지사가 강제입원을 시도했다는 사실은 지나친 확장해석의 결과란 말이 된다. 허위인 사실을 허위사실이라 부르지 말라니 모순이다. 다수의견은 이같은 지적을 피하기 위해선지 김 후보의 질문을 바꿔버린다. 

"김영환 후보가 이 사건 토론회를 비롯한 선거 과정에서 의혹을 제기하고 검증하고자 하였던 것은 '피고인이 직권을 남용해 불법으로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키려고 하였는지 여부'였다고 볼 수 있다"(이재명 사건 대법원 판결문 다수의견)

다수의견이 이해한 김 후보의 질문은 '불법인 강제입원을 시도했느냐'다. 불법성을 전제한 질문이기에 이 지사로선 부인할 수밖에 없었다는 추론이다. 김 후보 질문을 사실관계가 아닌 의혹 제기로 판단한 결과다. 다수의견은 "의혹을 제기하는 취지가 포함되어 있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했다. 

불법성에 의혹 제기가 있는 질문에선 부인하는 답변을 해도 허위사실을 공표한 게 아니라는 다수의견이 정당하려면 그간 허위사실공표 사건에서 대법원이 '의혹 제기'를 어찌 규정했는지 살펴야 했다. 놀랍게도 그 과정은 철저하게 생략됐다.

지난 2014년 6월 26일 서울시교육청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 참석한 조희연(왼쪽부터) 당시 서울시교육감 당선인과 문용린 당시 교육감, 고승덕 후보.
지난 2014년 6월 26일 서울시교육청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 참석한 조희연(왼쪽부터) 당시 서울시교육감 당선인과 문용린 당시 교육감, 고승덕 후보.

◇ 거짓 의혹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거짓이 아니다?
2016년 12월 22일, 대법관 형사1부(대법관 김소영 김신 이기택) 대법관들이 모였다. 이날은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기소된 조희연 서울교육감에게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선고를 유예한 원심이 타당한지 재판부가 논의하는 날이었다. 조 교육감은 서울시교육감선거를 앞둔 지난 2014년 5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승덕 후보가 영주권을 보유했다'는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터였다. 

약 1년 전 주심으로 지정된 김신 대법관은 김소영 대법관과 이기택 대법관에게 이제껏 정리한 쟁점을 설명했다. 선거운동 기간 의혹 제기가 있었다. 그렇다면 허위란 무엇인가. 의혹 자체인가, 아니면 의혹의 내용인가. 

두 대법관은 난해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제6형사부(재판장 김상환, 김성우 김상우)는 조 교육감이 기자회견에서 공표한 건 '고 후보가 영주권을 보유했다'가 아닌 '고 후보가 영주권을 보유한 의혹이 있다'라고 1심과 판단을 달리했다. 그런 뒤 의혹이 있다는 사실 자체는 허위가 아니라 했다. 항소심 판단을 받아들이면 '내용이 거짓인 의혹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거짓이 아니다'라는 새로운 허위사실공표죄 판단 지침이 생겨난다. 결국 어떤 의혹도 허위사실이 되지 않는다는 모순이다. 대법원은 3개월 뒤 1심이 아닌 항소심이 허위사실공표죄 법리를 오해했다고 결론 냈다. 선고유예라는 결론만 유지했을 뿐이다. 

"허위사실공표죄를 적용할 때 소문 기타 다른 사람의 말을 전달하는 형식이나 의혹을 제기하는 형식을 빌려서 '어떤 사실'을 공표한 경우에는 그러한 소문이나 의혹 등이 있었다는 것이 허위인지 여부가 아니라 그 소문이나 의혹 등의 내용인 '어떤 사실'이 허위인지 여부에 의하여 판단하여야 한다"(조희연 사건 대법원 판결문)

◇ 사라진 '조희연 대법 판결문'
이 지사 사건 대법원 다수의견에서 조 교육감 대법원 판결 흔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조 교육감 사건은 대법원이 허위사실공표죄 사건에서 '의혹 제기'가 허위사실 공표 대상이 되는지 처음 판단한 사건이다. 그전에도 '소문'이 공표 대상인지 쟁점이 된 사례가 두 번 있었지만 포괄적인 개념인 '의혹'은 그러지 못했다. 지난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한나라당(현 미래통합당) 후보로 출마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상대로 한 정봉주 당시 대통합민주신당(현 민주당) 의원의 'BBK 실소유' 의혹제기를 허위사실 공표로 본 사건에서도 공표 대상은 "의혹을 받을 사실"로 의혹 자체가 사실이 될 수 있는지는 쟁점 자체가 못됐다. 조 교육감이 의혹(소문)을 제기한 사례라면, 이 지사는 상대방이 품은 의혹(속내)를 읽고 부정한 사례다. 

이 지사 사건에서 다수의견이 조 교육감 대법원 판결을 따랐다면 김 후보 질문은 '불법인 강제입원을 시도했느냐'가 아닌 '강제입원을 시도했느냐'가 된다. 의혹 제기가 허위사실인지 쟁점이 되는 사건에선 의혹 자체가 아닌 의혹의 내용으로 허위성을 판단하라는 판례인 까닭이다. 조 교육감 기자회견 발언이 '고 후보자가 영주권을 보유했다는 의혹이 있다'가 아닌 '고 후보자가 영주권을 보유했다'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지사는 강제입원에 필요한 진단 절차를 지시했으면서도 해당 사실을 부인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지난 2018년 12월 28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에서 대법관에 취임하는 김상환 대법관. [사진=연합뉴스]
지난 2018년 12월 28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에서 대법관에 취임하는 김상환 대법관. [사진=연합뉴스]

◇ 김상환 대법관의 수상한 변심
2015년 조 교육감 항소심에서 결코 대법원이 수용할 수 없는 법리를 제시했던 김상환 부장판사는 2020년 이 지사 사건에서 다수의견을 제시한 대법관이 됐다. 이 지사 사건 주심인 노정희 대법관과 같은 형사2부 소속으로 같은 의견을 내놓은 김 대법관이 쟁점 형성에 상당한 관여를 한 게 아닐까 의심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 지사 사건에서 다수의견은 조 교육감 대법원 판결문을 참조하지 않았는데, 그 판결과 반대의견이던 김 대법관은 다수의견의 일원이다. 과거 자신의 판결을 수용하지 않은 대법원 판결문을 대법관이 돼 사실상 파기한 셈이다. 문제는 일관성이다. 그는 조 교육감 항소심 판결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공표사실을 특정하는 단계에서 피고인의 내심의 의사를 추론하여 피고인이 사용한 '단어'나 '표현'을 통하여 객관적으로 표현된 것과 다른 사실을 '암시하여 공표하였다'고 인정 내지 평가하는 것에는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조희연 사건 항소심 판결문)

김 대법관은 과거 의혹 제기가 허위사실인지 쟁점이 되면 발언자의 '속내'를 예단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신분이 부장판사에서 대법관으로 바뀌어 이 소신도 바뀐 걸까. 다수의견은 김 후보 속내를 '불법성을 묻는 것'으로 쉽게 판단했다.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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