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인사이드] 秋 "수명자, 법전에 있다"... 실제론 군법에만
[WIKI 인사이드] 秋 "수명자, 법전에 있다"... 실제론 군법에만
  • 윤여진 기자
  • 기사승인 2020-07-23 10:47:13
  • 최종수정 2020.07.23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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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국회 출석한 추미애 법무장관, 김태흠 의원과 설전
윤석열 건의 거부 법무부 '미공개 초안'에 들어간 '수명자'
군법에만 있어... 법률용어 '수명법관'과 사용 맥락도 달라
국회법률정보시스템에서 '수명자'를 검색하면 나오는 결과. [사진=국회법률정보시스템 갈무리]

"법상 지휘를 받드는 수명자는 따를 의무가 있고 이를 따르는 것이 지휘권자를 존중하는 것임"

지난 8일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가 최민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에서 긁어왔다는 '법무부 풀(pool)' 초안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정진웅)가 수사 중인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사건에서 본인을 손을 뗄 테니 '독립적 수사본부'를 꾸리자는 윤석열 검찰총장 건의를 거부하겠다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 뜻이 다소 거칠게 담겼다. 이 초안은 법무부 대변인을 통해 공식 발표되지 않았는데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출신 장관정책보좌관이 정무 차원에서 최 전 의원 등 여권 인사들에게만 공유한 것으로 법무부는 뒤늦게 파악했다. 

문제는 법무부 공식 발표안과 초안이 단어 쓰임새에서 다르다는 점이다. 법무부가 이날 기자들에게 '풀'로 보낸 문안은 "총장의 건의사항은 사실상 수사팀의 교체, 변경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문언대로 장관의 지시를 이행하는 것이라 볼 수 없다"는 문장이다. 여기엔 '명령을 받드는 사람'이란 뜻으로 군사법원이 보통 사용하는 표현인 '수명자(受命者)'는 있지 않다. 때문에 추 장관이 입장문을 작성하는데 군법무관 출신인 최 대표가 관여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실제 최 대표가 게재한 문안과 최 전 의원이 페이스북에 공개한 문안이 완벽하게 같지 않다. 최 대표가 미공개 입장문을 단순 인용한 게 아니라 거꾸로 처음부터 작성에 관여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끊이지 않는 배경이다. 공교롭게도 최 대표는 추 장관이 지난 2일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검언유착' 의혹 사건을 제삼자로서 바라볼 수 있는 입장이 못 된다. 최 대표는 이 사건 핵심 피의자인 이동재 전 <채널A> 기자가 신라젠 대주주였던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 대리인인 지모씨를 만나서 한 발언엔 "이 대표님, 사실이 아니라도 좋다. 당신이 살려면 유시민에게 돈을 줬다고 해라. 그러면 그것으로 끝이다"라는 협박성 발언이 있다고 지난 4월 주장했다. 여기서 '협박'은 중앙지검 수사팀이 이 전 기자에게 적용하는 강요미수 혐의를 구성하는데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해당 발언이 있었다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최 대표는 허위사실을 유포해 이 전 기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고발됐다. 다만 최 대표는 법무부 입장문 작성에 본인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전면 부인한다. 추 장관 역시 최 대표 도움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22일 정치 분야 대정부질문이 있던 국회 본회의장에서도 의혹 제기는 이어졌다. 질문자로 나선 김태흠 미래통합당 의원이 국무위원석에 앉아 있는 추 장관을 호명했다. 김 의원은 추 장관이 평소 '수명자'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데 법무부 입장문 초안에 이같은 단어가 포함된 연유를 물었다.

22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설전을 벌이는 김태흠 미래통합당 의원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22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설전을 벌이는 추미애(왼쪽) 법무부 장관과 김태흠 미래통합당 의원. [사진=연합뉴스]

"장관님 장관님, 평소 수명자라는 표현 잘 쓰십니까?"(김태흠)

"저는 법관 출신으로 수명법관이란 건 낯설지 않은 법률용어이구요. 법률용어사전에 있는 단어이구요. 법전에 있는 말입니다"(추미애)

"장관님 발언 자료를 다 뒤져봐도 수명자라는 말을 쓴 적이 없더라고요. 그런데..."(김태흠)

"법전에 있다니까요"(추미애)

"아니 장관님 발언 자료 말이야. 말씀하신 거"(김태흠)

"그래서 어쨌다는 겁니까?"(추미애)

법전과 법률용어사전에 '수명자'라는 단어가 있다는 추 장관 말은 진실일까. 공개된 모든 법령과 규정을 열람할 수 있는 '국회법률정보시스템' 사이트 검색창에서 '수명자'를 입력하면 법령은 1건, 대법원 판례는 2건 나온다. 이때 법령은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이다. 해당 조문은 "명령은 지휘계통에 따라 하달하여야 한다. 다만, 부득이한 경우에는 지휘계통에 따르지 아니하고 하달할 수 있고, 이 경우 명령자와 수명자는 이를 지체 없이 지휘계통의 중간지휘관에게 알려야 한다"라고 돼 있다. 상관이 명령하면 부하는 복종하는 군 특성을 다룬 것이다. 대법 판례는 '미합중국 법원의 지명을 받는 자'의 개념과 '군부대장에게 명령을 받는 자' 개념으로 각기 쓰였다. 법무부와 검찰의 지휘관계를 다룬 검찰청법이나 형사와 사법 절차를 다룬 형사소송법 관계 법령을 적용한 판례는 전혀 없다. 대법원이 운영하는 '종합법률정보' 사이트에서 검색해도 마찬가지다. 법전이 아닌 '군 법전'에만 수명자라는 표현이 있는 것이다. 

법률용어사전에서도 수명자라는 말을 찾기 어렵다. 법제처가 운영하는 '국가법령정보센터'사이트에서 수명자를 찾으면 "검색결과가 없습니다"라는 알람만 뜬다. 대신 '수명'을 입력하면 출판사 '현암사'가 출간한 법령용어사전에 '수명법관'이란 말이 있다고 뜬다. 추 장관이 스스로 언급했던 이 용어는 "법원합의부의 재판장으로부터 법률에 정해진 일정한 사항의 처리를 위임받은 그 합의부원인 법관"을 말한다. 여기에서 '수명'은 명령 관계가 아닌 위임 관계를 뜻한다. 민사소송법 제332조가 '수명법관은 위임된 사항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법원이나 재판장과 같은 권한이 부여된다'라고 규정하는 까닭이다. 

결국 법전에 수명자란 말이 있고, 판사 출신 법무 장관이 수명자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건 자연스럽다라는 추 장관 주장엔 허점이 있다. 해당 단어 쓰임은 군법에만 있고, 비슷한 단어인 '수명법관'은 '수명자'와 사용 맥락이 다르다. 대정부질문에서 추 장관은 '수명자'를 언급한 이유로 "저는 명령, 지휘 이런 말을 즐겨 쓴다. 장관 명을 받들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수명자' 표현을 쓴 것"이라고 김 의원에게 추가 설명했다. 하지만 헌법기관인 법관은 독립기관으로 수명법관으로 지정될 뿐, 대등 관계인 재판장 역할을 수행하는 동료 법관에게 군에서와 같은 명령은 받지 않는다. 단독 재판부가 아닌 합의 재판부에서 부장판사가 맡는 재판장과 사건의 쟁점을 형성하고 심리를 주도하는 주심이 각기 따로 존재하는 이유다. 

추 장관은 수사지휘권 규정을 명시한 검찰청법 제8조를 근거로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관계를 명령과 복종 관계로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해당 조항은 "법무부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고 정했다. 추 장관은 김 의원과 말 다툼 과정에서 "저는 쓰면 안 되나? 최고 감독자인데"라 따져 물었다. 하지만 지휘와 명령은 법률상 개념이 다르다는 점에서 이같은 해석은 근거가 부족하다는 의견이 있다. 국내 형소법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완규 변호사는 2016년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한국형사정책연구원·한국형사소송법학회가 공동 주최한 동계 학술회에 참석해 검찰사무 최고 감독자로서의 법무부 장관 지휘권을 범위를 검토했다. 이 변호사는 발표문 '한국검사의 지위와 한국검찰의 나아갈 방향'에서 "검찰총장만을 지휘한다는 것은 법무부장관의 지휘권행사에 대하여 그 지휘의 합법성이나 타당성 여부를 검찰총장이 스스로의 책임하에 검토하여야 할 의무와 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국가공무원법 제57조가 검찰총장에겐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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