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인사이드] "은수미 당선무효 파기" 大法, '상상적 경합' 검토 누락
[WIKI 인사이드] "은수미 당선무효 파기" 大法, '상상적 경합' 검토 누락
  • 윤여진 기자
  • 승인 2020.07.29 14:13
  • 수정 2020.07.29 15: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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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정치자금 '유죄' 법인자금 '무죄'
항소심 '유죄' 양형 90만 → 300만원 
대법 "유죄 부분 항소이유 無" 파기
실제 검사는 "무죄가 유죄양형 영향"
혐의는 둘인데, 죄는 하나면 항소는
따로 아닌 묶어서.. 항소이유도 동일

 

지난 9일 당선무효형인 원심을 파기하는 대법원 형사2부 선고 직후 은수미 성남시장이 경기도 성남시청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9일 당선무효형인 원심을 파기하는 대법원 형사2부 선고 직후 은수미 성남시장이 경기도 성남시청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양형에 관하여 검사의 적법한 항소이유 주장이 없었음에도 원심이 1심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한 것은 위법하다"

지난 9일 대법원 형사2부(대법관 박상옥 안철상 노정희 김상환)가 은수미 성남시장에 당선무효형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면서 내놓은 이유다. 1심은 정치자금법 사건 당선무효형인 벌금 100만원 바로 아래인 90만원을 선고했는데, 항소심은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며 검사의 항소이유를 받아들인 터였다. 항소심 재판부인 수원고법 1형사부(판사 노경필 심연수 임일혁)는 지난 2월 6일 선고기일에서 검사 구형에 두 배인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앞서 2018년 12월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지난 2016년 6월 15일부터 2017년 5월 25일까지 약 1년 동안 95차례에 걸쳐 운전기사가 딸린 렌트 차량을 법인으로부터 제공받은 혐의로 은 시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1심 재판부인 수원지법 성남지원 7형사부(판사 이수열 이경호 범선윤)는 증명이 부족한 차량 이용 2회를 빼고는 은 시장이 법이 정하지 않은 방법으로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정치자금법 제45조 제1항)를 유죄로 봤다. 다만 해당 법인에서 기사에게 급여를 지급하고 렌트 비용을 부담하는 사실을 알았다고 단정할 수 없어 법인자금수수 혐의(제 45조 제2항)는 무죄로 판단했다.

◇ "몰래 도와준 것" 믿은 1심 재판부

1심 재판부는 기사를 순수한 자원봉사자로 인식했다는 은 시장 주장을 기각해 정지차금수수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기사는 검경 조사와 법정에서 일관되게 "자원봉사를 힘들면서까지 하지는 않는다"며 "은 시장 일정에 맞추어 운전하는 것을 조건으로 법인에서 급여를 받은 것"이라고 진술했는데 재판부는 이점을 받아들였다. 

법인자금수수 혐의에선 정반대 판단이 나왔다. 기사를 소개해준 법인 대표이사와 재무이사를 알고 지냈지만 그들이 법인 임원인 건 몰랐다는 은 시장 주장을 받아들인 결과다. 기사는 은 시장에게 법인에서 급여를 받는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했다. 법인 대표는 "은 시장을 몰래 도와주기 위해 기사를 자원봉사자로 소개한 것"이라 했는데 이 주장을 크게 의심하지 않은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은 시장에게 편의를 제공한 사람들이 법인 소속임을 알 수 있는 정황은 법인자금수수 혐의를 뒷받침하지 못한다고 선을 그었다. 해당 법인 직원 10여 명은 은 시장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주차 업무를 도왔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는 선거대책위원회 '전동휠 홍보팀'에서 일하기도 했다. 은 시장 사무실엔 이 법인에서 직접 수입하는 공기청정기 2대가 설치됐다. 법인 재무이사 동생의 친구인 기사는 매달 법인으로부터 200만원을 월급으로 받았다.

◇ 하나이자 둘, 둘이자 하나

검사는 1심 판단에 불복했다. 법인 대표는 지난 2016년 6월 2일 은 시장과 식사했는데 이 자리에서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다"고 말한 점을 재판부가 인정했기 때문이다. 당시는 은 시장이 제19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낙선한 직후여서 별도 차량과 기사가 없었다. 이때 동석했던 재무이사는 닷새 후 은 시장 사무실을 찾아 "이 친구입니다"라며 기사를 소개했다. 기사와 법인 임원의 관계를 은 시장이 모를 수는 없다는 항변이다. 검사는 무죄 부분에 '사실오인'을 이유로 항소했다. 이어 '양형부당'도 항소이유로 주장했다. 

항소심은 1심이 내린 사실관계를 달리 판단하지 않았다. 대신 검사의 양형부당 주장을 받아들여 원심판결 전체를 파기했다. 유죄 부분만 파기하지 않은 건 두 가지 혐의가 법적으로는 '하나의 죄' 일죄(一罪)인 까닭이다. 법인이 사용료를 지불한 렌트차량을 제공받았다는 공소사실은 불법 정치자금수수와 법인자금수수 모두에 해당한다. 이때 법관은 가장 무거운 죄를 택해 처벌하는데 이 법리를 '상상적 경합'이라 부른다. 적법하지 않은 검사의 항소를 받아들인 항소심을 파기한다는 대법원 판결에선 해당 법리가 충분히 검토되지 못했다.

은수미 성남시장에게 당선무효형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한 사건에서 주심을 맡은 안철상 대법관. [사진=연합뉴스]
은수미 성남시장에게 당선무효형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한 사건에서 주심을 맡은 안철상 대법관. [사진=연합뉴스]

◇ 유죄 부분 항소이유가 없다는데...

대법원은 검사는 마치 무죄 부분만 양형부당을 주장했다고 하는데 미래통합당 곽상도‧조수진 의원실을 통해 법원행정처로부터 받은 이 사건 1‧2‧3심 판결문을 같이 보면 이같은 해석을 수긍하기 어렵다. 대법원 2부는 '검사가 주장한 항소이유'를 "1심이 (정자법 제45조) 제2항 위반의 점을 무죄로 판단한 것은 사실오인에 해당하고, 제2항 위반의 점에 대하여 유죄가 인정된다면, 1심이 선고한 형(벌금 90만원)은 지나치게 가볍다는 것"으로 정리했다. 

항소이유가 없다는 대법원 판단은 다층적이다. ①검사는 무죄 부분이 유죄가 되면 양형도 자연스럽게 늘어난다고 주장하는데, 무죄 부분은 계속해서 무죄이니 결과적으로 양형은 부당하지 않고 ②무죄 부분 항소이유가 조건부인 만큼 조건이 사라지면 항소이유도 사라지는데 ③유죄 부분 양형부당 주장엔 구체적 이유가 없으니 ④유‧무죄 전부 양형은 부당하지 않은 셈이다. 대법원은 "항소이유서에는 항소이유가 구체적으로 간결하게 명시하여야 한다"는 형사소송규칙 제155조가 지켜지지 않은 사례라 봤다.

하지만 대법원 해석과 달리 검사는 양형부당 범위를 무죄 부분으로 한정하지 않았다. 항소심 판결문 중 '검사의 항소이유 주장에 대한 판단'을 보면 '사실오인 주장에 관하여'라는 항목엔 '이유 무죄 중 법인으로부터 정치자금을 기부받은 정치자금법위반의 점'이 부제로 붙는다. 이와 달리 '양형부당 주장에 관하여' 항목엔 아무런 꾸밈이 없다. 유죄와 무죄를 가리지 않고 검사가 양형부당을 주장했다는 얘기다. 검사는 항소이유서에서 "원심은 사실오인으로 인하여 무죄를 선고하였고, 이러한 위법은 원심의 양형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적었다. 검사 말은 단순히 무죄 부분이 유죄면 양형은 중해진다는 게 아니다. 공소사실 무죄 부분과 유죄 부분이 긴밀히 연결돼 무죄 판단이 유죄 양형에 영향을 줬다는 취지다. 

실제 1심 재판부는 무죄 부분 혐의 입증에 필요한 사실관계를 유죄 부분 판단에 사용했다. 정치자금수수 혐의에선 누구에게서 정치자금을 받은 것인지는 굳이 증명이 필요 없다. 반면 법인자금수수 혐의는 누가 정치자금을 줬는지 밝혀야 한다. 재판부 인정사실 '법인이 기사에게 임금을 줬다' 대목은 법인자금수수 혐의를 뒷받침하는데 재판부는 정치자금수수 혐의 부분에서 인용했다. 재판부 판단대로 두 혐의가 서로 떨어질 수 없다면 양형부당 이유를 무죄 부분과 유죄 부분으로 나눠 기술하기 어렵다. 1심 판결문에 없던 '운전 노무를 제공받게 된 경위'가 항소심 판결문 유죄 부분 양형이유에 적힌 배경이다. 해당 부분은 법인 임원으로부터 차량 제공이 있음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문구다. 법인자금수수 혐의는 여전히 인정되지 않으나 정치자금수수 혐의에서 법인 관련을 고려해 양형을 추가 산정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결국 유죄 부분에서도 검사는 구체적 이유를 들어 양형부당을 주장했는데 대법원은 검사가 무죄 부분만 항소했다고 사실과 다른 판단을 내놓은 셈이다. 대법원에서 이같은 자의적 판단이 나온 건 검사가 유‧무죄를 굳이 나누지 않고 양형부당을 주장한 배경을 치밀하게 검토하지 못한 탓이다. 

검사는 비록 1심 주문이 유죄와 무죄로 엇갈렸다 해도 법리상으로는 하나의 죄인 만큼 구분하지 않고 포괄적인 양형부당을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원심에서 유죄와 무죄로 갈릴 때 일부만 항소하거나 상고하는 걸 '일부상소'라 한다. 그런데 형사소송규칙 제342조 제2항에 따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선 일부상소가 불가능하다. 검사가 무죄 부분만 항소해도 항소심은 유‧무죄 전부를 심판대상에 올려야 한다. 유죄 부분과 무죄 부분이 상상적 경합 관계라면 양형부당을 이유로 한 항소 범위는 유‧무죄 전부라는 결론이 나오는 이유다. 

은수미 성남시장 사건 상고심 재판부인 대법원 2부가 인용한 2008년 대법원 판결 주심 대법관은 문재인 정부에서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된 김영란 전 대법관이다. [사진=연합뉴스]
은수미 성남시장 사건 상고심 재판부인 대법원 2부가 인용한 2008년 대법원 판결 주심 대법관은 문재인 정부에서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된 김영란 전 대법관이다. [사진=연합뉴스]

◇ 大法 법리, 인용판례와 쟁점 달라
실제 대법원 2부가 따른 '양형부당의 구체적 이유를 적지 않으면 적법한 항소이유가 아니다' 법리를 적시한 2008년 당시 대법원 3부(이홍훈 김영란 김황식 안대희) 판결에선 상상적 경합이 아닌 '실체적 경합'이 등장한다. 실체적 경합은 두 개 이상의 행위가 각각 범죄로 성립하는 경우를 말한다. 당시에도 1심 주문은 일부 유죄와 일부 무죄로 엇갈렸는데 검사가 전부를 항소하면서도 유죄 부분 항소이유를 주장하지 않은 게 문제가 됐다. 당시 3부는 검사가 '여러 죄'에 항소했기에 항소이유는 각기 주장해야 하는데도 그러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반면 은 시장 사건에서 검사는 '하나의 죄'에 항소한 경우다. 하나의 죄와 여러 죄는 어떻게 다른가, 다음달 27일 첫 공판이 열리는 파기환송심에서 대법원에 물어야 하는 질문이다.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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