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인사이드] 기상이변 시대에 보는 ‘역사 속 최악의 자연재해 10’
[WIKI 인사이드] 기상이변 시대에 보는 ‘역사 속 최악의 자연재해 10’
  • 유진 기자
  • 기사승인 2020-08-06 09:07:14
  • 최종수정 2020.08.06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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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수십만명의 희생자를 낸 자연재해들이 많았다. 사진은 쓰나미가 해안 마을을 강타하는 모습. [라이브사이언스]

‘인간의 오만에 대한 신의 경고인가’

올 여름 기상이변으로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적인 재해 피해가 천문학적 규모에 이르고 있다. 수천명의 이재민에다 사망자수도 속출하고 있다.

연일 이어지는 폭우 등 최근의 기상이변은 지구 온난화에 따른 ‘자연의 보복’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자연 재해는 인간의 삶이 시작된 이후 기록되기 시작했다. 원인조차 알 수 없던 재해들은 인류에게 무시무시한 공포일 수 밖에 없었다.

지구의 역사 속에서 인간들을 하염없이 작은 존재로 만든 치명적 자연재해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과학전문미디어 ‘라이브사이언스’ 는 기록상 정확한 사망자 수가 존재하는 자연재해 피해 사례들을 탐사했다.

역사상 수십만명의 참사를 낳은 재해 중 절반 가량이 중국에서 발생했고, 특히 톱1~3위를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도 주목된다.

다음은 라이브사이언스가 소개한 ‘지구상 가장 치명적이었던 자연재해' 톱10이다.

1138년 알레포 지진 추정 스케치. [라이브사이언스]
1138년 알레포 지진 추정 스케치. [라이브사이언스]

▶ 1138년 알레포 지진... 사망자 23만명 추산 [공동 10위]

1138년 10월 11일 시리아 도시에 대지진이 발생했다. 이 도시는 아라비아과 아프리카가 합쳐진 곳에 자리잡고 있어 지진에 무척 취약한 편이었다.

당대의 사건의 기록자는 “지진의 규모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소하였지만 도시의 성채가 무너지고 알레포 전체지역의 집들이 모두 붕괴됐다”고 서술했다.

지구 물리학 연보에 있는 2004년 논문에 따르면, 이 지진의 사망자 수는 약 23만명으로 추산된다. 이 추정치는 15세기에서 나온 것으로, 역사학계 일각에서는 알레포 지진을 조지아에서 발생한 또 다른 지진과 혼동하고 있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2010년 아이티를 덮친 지진. [라이브사이언스]
2010년 아이티를 덮친 지진. [라이브사이언스]

▶ 2010년 아이티 지진... 사망 23만~31만명 추정 [공동 10위]

2010년 대규모 지진이 아이티를 강타했다.

아이티 정부는 지진 발생 이듬해 규모 7.0의 지진과 그 여파로 23만 명이 사망했다고 추정했고, 2011년 1월 당국은 이 수치를 31만명6000명으로 수정했다.

하지만 2010년 ‘의학, 갈등, 생존’이라는 의학잡지에 따르면 사망자는 약 16만명으로 기록됐다. 2011년 미국 국제개발청(USAID)는 4만6000명~8만 5000명으로 더 낮다고 주장했다. 아이티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의 수치는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망자 숫자로 '역사 속의 자연재해 톱10'을 꼽는다면 <1138년 알레포 지진>과 <2010년 아이티 지진>이 10위에 랭크될 것이며, 두 재해가 10위 자리를 놓고 우열을 가리기 힘들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2004년 인도양 일대 국가들을 삼킨 쓰나미. [라이브사이언스]
2004년 인도양 일대 국가들을 삼킨 쓰나미. [라이브사이언스]

▶ 2004년 인도양 지진과 쓰나미... 동남아 14개국 23만~28만명 휩쓸려 [9위]

 2004년 12월 26일 수마트라 서부 해안에서 진도 9.3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에 따른 쓰나미로 14개국에서 수십만명의 사망자 수 가 나왔다. 전체 사망자는 23만~28만 명으로 추산된다.

특히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인도네시아 일부 지역에서는 쓰나미 파고가 높이가 30m에 달했다.

인도네시아에선 약13만명이 사망하고 10만명이 실종되는 등 사상자 수가 가장 많았다. 스리랑카에서는 총 3만 6,000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1920년 중국 중부 하이위안 일대에 지진이 마을들을 초토화시켰다. [라이브사이언스]
중국 중부 하이위안 산맥. 1920년 이 일대에 발생한 지진이 마을들을 초토화시켰다. [라이브사이언스]

▶ 1920년 하이위안 지진... 30만명 사망자 피해 [8위]

 1920년 12월 16일, 중국 중부의 하이위안에 진도 7.8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으로 약 30만명 가까이 사망했다. 이들은 지반 흔들림에 의한 산사태로 인해 매몰됐다.

국립해양대기청(NOAA) 기록에 따르면 이 지진으로 4개의 도시가 파괴되고 여러 마을이 흔적도 없이 땅 속에 사라지고 말았다.

1976년 발생한 중국 탕산 지진. [라이브사이언스]
1976년 발생한 중국 탕샨 지진. [라이브사이언스]

▶ 1976년 탕샨 지진... 100만명 도시 1/4 사망 [7위]

1976년 7월 28일 오전 3시경, 중국 탕산시 일대를 규모 7.8의 지진이 강타했다. 공업도시였던 탕산은 인구가 약 100만명이었는데, 공식 사망자는 무려 25만 5,000명에 달했다.

 ‘탕산 대지진: 재앙의 해부학’에 따르면, 사망자 외에 70만 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많은 건물들이 완전히 파괴되어 6년 동안 15만 명의 사람들이 새로운 거주지를 찾아야 했다.

서기 526년 지중해 인근 안티오키아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폐허가 된 도시 이미지. [라이브사이언스]
서기 526년 지중해 인근 안티오키아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폐허가 된 도시 이미지. [라이브사이언스]

▶ 526년 안티오키아 지진... 말라리스 "신의 분노, 25만명 사망" [6위]

역사에 기록된 대규모 지진들과 마찬가지로 서기 526년의 안티오크 지진에 대한 정확한 사망자 수는 구하기는 쉽지 않다.

당시 역사 기록자 존 말랄라스는 ‘5월에 지진이 비잔틴의 도시를 강타했을 때 약 25만명의 사람들이 죽었다’며 그 재앙을 신의 노여움 탓으로 돌렸다.

중세 역사저널의 2007년 논문에 따르면, 이 도시는 예수 승천일을 기념하는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어 다른 시기보다 사망자수가 더 많았던 것으로 분석됐다.

1800년대에 동남아에서 발생한 강력한 태풍 피해 이미지. [라이브사이언스]
1800년대에 동남아에서 발생한 강력한 태풍 피해 이미지. [라이브사이언스]

▶ 1839년 인도 사이클론/ 1881년 하이퐁 태풍... 각각 30만명 피해 [5위]

NOAA(국립해양기후연구원)에 따르면 1839년 코링가 사이클론이 11월 25일 항구도시 코링가를 강타, 12m의 폭풍을 몰고 왔다. 이 폭풍은 약2만 척의 선박이 파괴했고, 사망자는 30만명에 달했다.

1881년 10월 8일 베트남 하이퐁을 강타한 태풍도 사망자수 5위를 다투고 있다. 이 폭풍은 약 3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1970년 발생한 볼라 사이클론. [라이브사이언스]
1970년 발생한 볼라 사이클론으로 방글라데시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라이브사이언스]

▶ 1970년 볼라 사이클론 '20피트 폭풍우' 30만명 이상 희생 [4위]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또 다른 폭풍은 1970년 11월 12일 볼라 사이클론이었다. 이 폭풍은 방글라데시(당시 동파키스탄)를 강타, 20피트 높이의 폭풍우를 밀어 올려 낮은 지형을 덮쳐 엄청난 홍수를 일으켰다.

파키스탄 기상부의 보고서에 따르면 쌀 수확을 위해 그 지역에 있었던 계절 노동자들 때문에 사망자 수를 정확하게 추정하는데 한계가 있지만, 이 사이클론으로 30만~50만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명나라 때인 1556년 샨시 대지진 추정 이미지. [라이브사이언스]
명나라 때인 1556년 샨시 대지진 추정 이미지. [라이브사이언스]

▶ 83만명 희생된 1556년 명나라 샨시 대지진 [3위]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지진이 1556년 1월 23일 중국 샨시 지방을 강타했다.

중국과학박물관에 따르면 1,000평방 킬로미터에 이르던 명나라는 이 대지진으로 초토화 돼 버렸다.

지진 발생 후 집이 무너지고 불길도 거세지면서 약 83만명이 숨졌다. 이 지진의 진도는 8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1887년 황하 대홍수 [라이브사이언스]
1887년 황하 홍수. [라이브사이언스]

▶ 1887년 황하 홍수... 90만명 사망자 낳다 [2위]

중국의 황하는 대륙 중부의 농경지를 흐르면서 강을 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련의 둑들 덕분에 주변 대부분의 땅보다 훨씬 위에 위치하게 됐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둑들은 점차적으로 강을 들어올리면서 진흙으로 뒤덮이게 됐다. 

1887년 9월 폭우로 강물이 심하게 불어나자 주변 저지대 땅으로 모두 흘러들어와 1만 2949평방km가 침수됐다.

이 홍수로 인해 90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31년 중국 양쯔강 대홍수. [라이브사이언스]
1931년 중국 양쯔강 대홍수. [라이브사이언스]

▶ 1931년 중국 양쯔강 대홍수... 남한 두배 면적 초토화, 200만명 이상 희생 [1위]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자연 재해는 1931년 중국 중부 홍수일 가능성이 높다.

그 해 7월 8월 양쯔강은 봄의 녹음이 폭우와 어우러지면서 둑을 넘겼고, 황하를 비롯한 큰 수로들도 한계치를 넘어섰다.

캠브리지대학이 출판한 ‘중국 재난의 본질: 1931년 양쯔강 홍수’에서는 이 홍수로 남한 면적(10만 평방킬로미터)보다 훨씬 넓은 18만 평방킬로미터의 대륙이 침수되어 평지를 거대한 호수나 바다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전체 사망자의 추정치는 다양하다. 중국 정부 통계는 사망자 수를 약 200만 명으로 집계했지만, NOAA를 포함한 다른 정부 통계는 사망자 수가 370만 명에 달했을 수도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역사 속에서는 이들 외에도 끔찍한 자연재해들이 많았다.

미노마 문명이 찬란히 빛나던 지중해 섬 스트로글리의 경우 기원전 1500년경 화산 폭발과 쓰나미로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위키리크스한국= 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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