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미국의 정치사를 새로 쓴 5명의 부통령 후보들
[WIKI 프리즘] 미국의 정치사를 새로 쓴 5명의 부통령 후보들
  • 유진 기자
  • 승인 2020.08.14 08:48
  • 수정 2020.08.14 0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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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2020 대선에서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마이크 펜스 현 부통령(왼쪽, 공화당)과 카말라 해리스 상원의원(민주당). [AP=연합뉴스]
미국의 2020 대선에서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마이크 펜스 현 부통령(왼쪽, 공화당)과 카말라 해리스 상원의원(민주당). [AP=연합뉴스]

‘세계의 빅 이벤트’로 불리는 미국 대통령 선거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일찌감치 마이크 펜스 현 부통령을 러닝메이트로 지명한데 이어 민주당 대선주자인 조 바이든 후보가 최근 흑인인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 카말라 해리스를 러닝메이트로 선정, '남-녀 대결'이자 '흑-백 대결'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미국 선거 투표에서 대통령 후보가 선거에 가장 큰 중점을 두고 있지만,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부통령이다.

인기가 없거나 공격적인 부통령 후보가 선거를 오히려 망칠 수도 있고, 반대로 국민들에 많은 사랑과 지지를 받는 부통령이 표를 살리는 데 도움을 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역사전문 미디어 ‘히스토리’가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선거의 승패에 영향을 끼쳤던 5명의 부통령 후보들을 조명해 눈길을 끌고 있다.

1. 탄핵된 최초의 대통령, 앤드류 존슨

남북전쟁 중이던 1864년 미국의 제16대 공화당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평화의 상징으로 민주당 앤드류 존슨을 러닝메이트로 지명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앤드류 존슨은 타협을 싫어하는 사람이었고, 링컨이 암살된 후 존슨이 그 자리를 이어 대통령이 되었다.

버지니아 대학의 역사 교수인 엘리자베스 배런은 “대부분 역사학자들은 앤드류 존슨을 남북 전쟁 말기에 대통령으로 일했던 최악의 인물’로 뽑았다”며 “그는 타협하거나 자신의 생각과 대립하는 정치적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경직되고 독재적인 인종차별주의자였다”고 말했다.

결국 존슨은 탄핵된 최초의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남은 임기 동안 링컨을 위해 재임했지만 다음 선거에 출마할 기회를 얻지 못한채 정치 무대에서 사라졌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과 앤드류 존슨 부통령. 존슨은 링컨 타계 후 대통령에 올랐으나 탄핵되고 말았다. [히스토리]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과 앤드류 존슨 부통령. 존슨은 링컨 타계 후 대통령에 올랐으나 탄핵되고 말았다. [히스토리]

2. 대중이 선택한 최초의 흑인 부통령 후보, 제임스 포드

미국에서 민주당-공화당 양당체제가 확고해진 1900년대 중반까지는 미국 대선에서 군소정당 후보들도 대거 출마했었다.

제임스 포드는 1932년, 1936년, 1940년 세차례 공산당의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

포드가 부통령 후보로 도전한 이유는 반드시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인종과 노동자 계급 문제에 국민적 관심을 끄기 위한 것이었다.

1932~1940년 미국의 공산당 부통령후보로 나섰던 제임스 포드.
1932~1940년 미국의 공산당 부통령후보로 나섰던 제임스 포드.

포드는 부통령 선거운동을 하고 국민의 표를 받은 최초의 흑인일 것이다.

포드 이전에는, 1872년 양성평등당(Equal Rights Party) 빅토리아 우드헐 대선후보가 러닝메이트로 프레데릭 더글러스를 지명했지만, 더글러스가 수락하지 않았다.

1928년 인종독립당(Interracial Independent Party)의 시몬 드류(목사)가 부통령 후보로 나섰으나, 워낙 인지도가 낮아 이 정당이 실제 득표전에 참여해 표를 얻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3. 사임한 최초의 대통령 리처드 닉슨

리처드 닉슨은 대통령이 되기 전 1953년부터 1961년까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정권의 부통령을 두 차례 역임했다.

그들의 관계가 항상 우호적인 것은 아니었다.

아이젠하워는 1956년 닉슨을 밀어내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고, 1960년 기자회견에서 아이젠하워는 닉슨이 정부에 기여한 것에 대해 “나에게 일주일을 주면 하나 생각해볼 순 있다. 아무 것도 기억이 안난다”고 말했다.

리처드 닉슨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정권에서 부통령을 두 차례 역임한 후 대통령에 올랐다가 사임했다.
리처드 닉슨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정권에서 부통령을 두 차례 역임한 후 대통령에 올랐다가 사임했다.

1952년 공화당이 처음 부통령 후보로 닉슨을 지명했을 때, 그는 공산주의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부정적인 선거 전략을 기획해 ‘트리키 닉’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권모술수(權謀術數)에 능했던 닉슨은 결국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최초의 대통령으로 기록되고 있다.

4. 18일 만에 쫓겨난 부통령 후보 토마스 이글턴

1972년 7월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지 맥거번은 토마스 이글턴을 러닝메이트로 선택했다. 며칠 후 익명의 전화가 맥거번의 선거사무실로 걸려왔다. 이글턴이 이전에 우울증으로 입원했고 전기 충격 요법까지 받았다는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기자들이 이글턴에게 그의 병력에 대해 질문하였고, 그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맥거번은 당초 이글턴에 1,000%를 지지한다고 말했지만, 유권자들의 신뢰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판단 아래 부통령 후보 지명 18일 만에 물러나도록 강요했다.

부통령 후보 지명 18일만에 낙마한 토마스 이글턴.
부통령 후보 지명 18일만에 낙마한 토마스 이글턴.

이글턴의 정신건강 병력이 얼마나 표심에 영향을 미쳤을런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맥거번이 이글턴을 러닝메이트에서 잘라낸 사실은 악영향을 미쳤다.

워싱턴포스트가 닉슨의 백악관팀이 그해 여름 워터게이트 도청사건과 연루됐다는 것을 감지하는 등 초대형 악재에도 불구하고 그해 11월 치러진 대선에서 닉슨은 맥거번을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1972년 6월 닉슨의 공화당 재선 캠프가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가 있는 워터게이트 빌딩에 비밀요원들을 투입해 도청을 시도하다 발각된 사건이다.

1972년 10월 10일. 워싱턴포스트가 이 사건을 특종보도하면서 닉슨은 최대 위기에 몰렸지만 맥거번은 ‘자책골’로 닉슨에게 승리를 안겨줬다.

하지만 닉슨의 행운은 재선까지였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둘러싼 언론의 끈질긴 추적으로 닉슨은 2년 후인 1974년 의회 탄핵을 앞두고 권좌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워싱턴포스트가 1972년 10월 10일자로 터뜨린 '워터게이트 사건'
워싱턴포스트가 1972년 10월 10일자로 터뜨린 '워터게이트 사건'

5. 주요 정당으로부터 부통령 지명을 받은 최초의 여성 제럴딘 페라로

제럴딘 페라로는 1984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현직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맞선 민주당 월터 먼데일의 러닝메이트였다.

그녀는 주요 정당에서 처음으로 부통령 후보에 오른 여성이었다.

최초의 주요 정당 부통령 여성후보로 지명된 제런딘 페라로.
미국 정치사에서 최초로 주요 정당 부통령 여성후보로 지명된 제런딘 페라로.

페라로 이후 주요 정당의 부통령 후보가 된 여성은 2명 뿐이었다. 사라 페일린과 카말라 해리스이다.

페일린은 2008년 버락 오바마와 바이든을 상대로 존 매케인 후보과 함께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다.

카말라 해리슨은 올해 바이든과 함께 출마할 부통령 후보로 정당에 이름을 올린 최초의 유색인종 여성이다.

해리슨이 앞으로 어떤 역사를 써나갈 지,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위키리크스한국= 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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