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안태근 직관검사, 노정희에 반응하다
[WIKI 프리즘] 안태근 직관검사, 노정희에 반응하다
  • 윤여진 기자
  • 승인 2020.08.14 18:22
  • 수정 2020.08.14 1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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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기환송심서 검사, 공소장변경신청
피해자, 인사담당검사→서지현 검사
이론적 근거는 블랙리스트 보충의견
노정희 대법관 "최종행위 기소하라"
지난 1월 9일 대법원이 직권석방한 안태근 전 검사장. [사진=연합뉴스]
지난 1월 9일 대법원이 직권석방한 안태근 전 검사장. [사진=연합뉴스]

지난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4-2부(반정모 차은경 김양섭)에는 공소장변경허가신청서가 제출됐다. 기존 공소사실을 그대로 둔 '주위적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지 않더라도 '예비적 공소사실'을 별도로 판단해달란 취지였다. 파기환송심에서 검사가 공소장 변경을 신청하는 건 이례적으로 애초 간단했던 쟁점은 복잡해지게 됐다. 이 사건 피고인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로 기소돼 1심에서 법정구속되고 2심에서 유죄가 계속 인정됐지만 3심에서 무죄 취지로 직권 석방된 안태근 전 검사장이다. 

재판부는 이날 열린 첫 변론에서 안 전 검사장 측이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자 검사의 공소장 변경을 허가하고 다음 달 29일 선고기일을 열기로 했다.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동헌은 다음날인 14일 예비적 공소사실을 반박하는 최종변론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애초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사건을 돌려보낸 만큼 굳이 공소장 변경에 반대하지 않더라도 승산이 있다는 계산이다. 

안성희 수원지검 부부장검사.
안성희 수원지검 부부장검사.

신청서에서 안성희(사진) 수원지검 부부장검사는 '안태근 검찰국장이 검찰과 소속 검찰과장과 인사담당검사를 통해, 강제추행 피해자인 서지현 검사의 인사상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권리행사를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기존 공소사실은 '안태근 검찰국장이 검찰과 인사담당검사에게, 서지현 검사에 인사상 불이익을 가하도록 의무없는 일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두 공소사실은 차이가 없지만 피해자가 인사담당검사에서 서 검사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안 전 검사장 측은 일선 검사는 인사명령에 따를 의무가 있을 뿐 어떤 인사가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할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2019년 7월 18일 자 본지 기사 '[WIKI 프리즘] '유죄'를 직감한 안태근의 '날숨'' 참조)

안 부부장은 지난 2018년 2월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 지시로 서울동부지검에 꾸려진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에 파견됐던 검사다. 안 부부장은 이 사건 내부 고발자격인 핵심 참고인 임은정 울산지검 부장검사를 직접조사하기도 했다. 그와 함께 공판을 맡은 윤인식 서울북부지검 검사도 조사단에 있었다. 이들 모두 중요 사건에서 수사검사가 공판검사를 겸하는 직관검사다. 직관에 나선 만큼 이들보다 사건을 내밀하게 아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이들이 왜 1심부터 3심까지 앞선 세 번의 재판에서 주장하지 않은 쟁점을 4심에서야 꺼내 든 걸까. 이들에겐 지난 1월 9일 대법원 선고 때까진 존재하지 않던 '비장의 무기'가 있다. 바로 79쪽 분량의 '블랙리스트 판결문'이다. 

◇ "진짜 피해자를 찾아라"
지난 1월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유죄 부분을 파기하고 서울고법으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직권남용 혐의를 유죄로 본 원심 판결 대부분은 정당하지만 일부 공소사실에서 직권남용 상대방이 '의무없는일'을 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취지였다. 

이 사건 공소사실은 김 전 실장이 문화체육관광부 피감독기관 업무를 방해해 '좌파 예술인'에 문화예술기금을 주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때 김 전 실장과 조윤선 전 정무수석은 직무권한을 남용한 가해자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영화진흥위원회·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직원들은 피해자로 그려졌다. 다수의견은 김 전 실장과 조 전 수석이 직권을 남용한 건 외형상 맞지만 이들 직원이 의무에 없는 일까지 한 것인지는 추가로 심리해야 한다고 했다. 이전까지 재판 실무에서 직권남용죄는 원인인 직권남용만 인정되면 결과인 ①의무없는일 또는 ②권리행사방해는 별도 입증이 필요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다수의견은 의무없는일이 별개의 범죄구성요건이라면서, 해당 의무가 법령에 규정돼 있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이 판결을 두고 법조계 일반적 시각은 대법원 다수의견이 직권남용범죄를 엄격하게 해석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공직사회에서 하급자가 상급자 지시에 따라 '영혼 없는 결정'으로 불법을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비판을 미리 의식했는지 '다수의견 보충의견'은 일종의 반론을 제시했다. 

"(원심판결은) 직권남용의 큰 우산 아래서 행하여진 모든 지시 행위는 단계, 정도, 내용 등을 가리지 않고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렇게 보는 경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처벌 대상이 무한정 늘어나게 되고, 현실적으로 기소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검사의 자의적인 선택을 허용하는 것이 되어 문제가 된다"(노정희·안철상 대법관)

보충의견 핵심은 직권남용이 가령 1~3 세 단계에 걸쳐 이뤄졌다면 검사가 ①1-2 ②2-3 ③1-2-3 중 입맛에 골라 선택적으로 기소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블랙리스트 판결에서 검사는 예술인들이 문예기금 지원에서 배제됐다는 별도 사실을 입증하지 않았다. 결국 ③이 아닌 ①로 공소사실을 구성한 것인데 이렇게 되면 2는 면죄부를 받는 것이라 판단했다. 2는 사실 1의 '직권남용 공범'인데 판결에서 '직권남용 상대방'인 피해자가 되면 곤란하단 뜻이다. 

"특히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는 그 상대방에 따라 각각의 죄가 성립하는 것이므로, 과정의 행위를 한 사람은 최종행위에 대해서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공범이 될 수 있고 과정의 행위와 관련해서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상대방이 될 수 있다"(노정희·안철상 대법관)

보충의견이 최종적으로 검사에게 주문한 건 '진짜 피해자'를 찾으란 것이다. 사실 직권남용죄는 강요죄에서 분화된 것으로, 직권이 있는 공무원을 처벌하기 위해 생겨난 형벌 조항이다. 때문에 강요죄처럼 피해자는 '일반 사람'이지 '하급 공무원'이 아니다. 그런데 재판에 넘겨지는 대부분 직권남용 사건에서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공무원이다. 이렇게 되면 공직자 불신사회를 극복하고자 만든 입법 의도가 사라진다. 

"최종행위가 기소되었다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가 성립할 수 있었음에도 과정의 행위만을 기소하여 그 행위가 구성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처벌할 수 없게 된 경우, 일반인의 입장에서 볼 때 그 직권남용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묻지 못함에 따른 사법불신을 가져올 수 있다"(노정희·안철상 대법관) 

◇ 성범죄 전문검사, 숨겨진 주문을 읽다
공교롭게도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최종행위가 기소되었다면"이라는 안타까움을 드러낸 노정희 대법관은 안 전 검사장 사건 상고심 주심이었다. 그렇다. 노 대법관이 차마 판결문에 적지 못한 속내는 '만약 서 검사가 피해자로 공소사실이 구성됐다면' 이었으리라. 안 전 검사장 상고심 선고기일을 블랙리스트 판결 직전에 잡은 건 검사에게 주는 메시지였던 것이다. (2020년 2월 1일 자 본지 기사 '[WIKI 프리즘] '안태근 무죄' 주심 노정희의 이유 있는 판결' 참조)

노 대법관 주문에 반응한 안 부부장은 4심에서 다시 유죄를 받아낼 수 있을까. 2009년 부산지검 근무 때 여성검사로는 두 번째로 인지부서인 외사부에서 배치됐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은 그다. 2012년 서울중앙지검으로 올라온 안 부부장은 줄곧 여성아동범죄조사부에서 일했고 중간중간 여성가족부에 법률자문관으로 파견돼 성범죄 사건 실무에서 적용하는 법리를 다듬었다. 2018년엔 '성추행 조사단' 단장인 조희진 당시 동부지검장이 직접 고른 검사이기도 하다. 그에겐 블랙리스트 판결 이후 6개월 하고도 보름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이 시간은 서 검사가 왜 피해자인지, 서 검사에게 있다는 '인사상 불이익을 받지 않을 권리'는 어떻게 도출되는지 입증하기 충분한 시간이다. 결론은 선고기일이 잡힌 다음 달 29일 나온다.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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