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인사이드] 범죄사실 不존재를 증명하라... 不기소는 인정 않겠다는 大法
[WIKI 인사이드] 범죄사실 不존재를 증명하라... 不기소는 인정 않겠다는 大法
  • 윤여진 기자
  • 승인 2020.08.21 15:59
  • 수정 2020.08.21 15: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택시협동조합 조합원, 이사장 횡령 의혹제기
檢, 허위사실 명예훼손 기소... 1·2심은 '유죄'
이사장은 검찰 조사서 '혐의없음' 처분 받아
대법, '혐의없음이 범죄없음 증명하지 않아'
이사장 "판사님이 증빙해봐라" 억울함 호소
우리택시전주협동조합 차고지 택시. [사진='더불어 사는 세상 사람 중심의 경제'을 내세운 전주시 사회적경제 플랫폼 '전주점빵' 홈페이지]
우리택시전주협동조합 차고지에 정차된 택시. [사진='더불어 사는 세상, 사람 중심의 경제'를 내세운 전주시 사회적경제 플랫폼 '전주점빵' 홈페이지]

"검사의 혐의없음 처분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위 혐의의 '부존재'가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는데,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에서 이를 인정할 추가적인 사정을 찾을 수 없다"

지난 13일 대법원 형사2부(안철상 박상옥 노정희 김상환 대법관)는 명예훼손죄로 기소된 우리택시전주협동조합(사진) 조합원 송모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전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송씨는 과거 검찰에서 '혐의없음' 처분을 받은 협동조합 이사장의 횡령 의혹을 다른 조합원 앞에서 제기해 허위사실 적시에 따른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과 2심은 검사의 혐의없음 처분을 횡령사실이 없다는 '부(不)존재'의 증거로 봐 송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혐의없음 처분에 이은 추가 증거를 검사가 내놓지 못했다며 무죄 취지로 원심을 파기했다. 

이 사건 상고심 주심 김상환 대법관은 판결문에서 송씨가 어떻게 해서 재판에 넘겨졌는지 9개 문단에 걸쳐 자세하게 적었다. 사실관계를 심리하는 사실심이 아닌, 사실심에서 적용한 법리에 문제가 없는지 따지는 법률심으론 이례적이다. 때문에 대법원은 "명예훼손죄의 증명책임 및 유죄의 인정에 필요한 증명의 정도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함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덧붙였다. 파기이유는 '법리오해'가 아닌 '법리오해로 인한 심리미진'이다. 이제껏 볼 수 없던 대법원의 파기이유로 사실상 대법원이 형사사건 사실심 역할을 하겠다는 선언이다. 

과거 심리미진을 이유로 대법원이 원심을 파기한 사례는 양형부당을 상고이유로 주장할 수 있는 사건 정도였다. 형사소송법이 허용하는 일반적인 상고이유는 법리오해이지만 양형부당을 주장할 수 있는 예외가 있다. 사형, 무기,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가 선고된 경우다. 이때 구체적인 상고이유로 양형사유에 사실오인이 있다거나 심리미진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 밖에 외형은 법리오해인데 실질은 심리미진인 경우가 채증법칙 위반이다. 증거가 될 수 없는데 증거로 채택했다면 범죄사실 자체가 달라진다. 대법관 전원이 심리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종종 국민적 관심사에서 채증법칙 위반을 이유로 사실관계를 달리 판단해왔다.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이 대표적이다. 1심과 다르게 항소심은 원세훈 전 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봤다. 심리전단 직원 이메일 계정에서 압수한 텍스트 파일 '425지논' '시큐리티'에서 원 전 원장의 업무지시가 드러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해당 파일을 업무용으로 볼 수 없다며 무죄 취지로 원심을 파기한 바 있다. 

이번에 대법원이 새롭게 꺼내든 '증명의 정도'는 앞서 두 경우를 뛰어넘는다. 단지 검사가 증명을 다 하지 못했다고만 하면 유죄를 인정한 하급심을 파기할 수 있는 까닭이다.

◇ 대법원이 판단한 사실은 옳은가
그렇다면 대법원은 원심과 검사보다 사실관계를 잘 판단했을까. 공소사실에 따르면 우리택시전주협동조합 조합원인 송씨는 지난 2017년 9월 5일 전주시에 위치한 한 식당 출입구에서 "이거 보아라, A가 사장이랑 같이 회삿돈을 다 해 먹었다"고 말하며 판결문 하나를 손에 쥐고 흔들었다. 당시 식당에선 조합원 6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임시총회가 열리고 있었다. 

송씨가 조합원들에게 읽기를 권유한 판결문은 총회가 열리기 2주 전 항소기한이 끝나면서 확정됐다. 여기에는 조합 발기인이자 금융자문역이던 A가 2016년 7월 7일부터 그해 11월 30일까지 35회에 걸쳐 조합 대출금 총 11억 4908만원을 모두 본인이 횡령했다는 사실이 적혀있었다. A는 이중 5억원을 본인이 대표로 있는 택시회사가 설립하는 다른 택시협동조합 대출 상환금으로 썼다. 

본지 취재 결과 A는 검찰조사 단계에서 횡령한 돈을 조합에 돌려놔 구속을 피했다. 전주지법에서 열린 1심 재판부는 피해자인 조합이 A 처벌을 원하지 않는 데다 피해가 상당 회복됐다는 이유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16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했다. 

A가 구속을 면할 수 있던 배경 중 하나로 역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은 조합 이사장 임모씨는 본인의 심경변화를 꼽는다. 대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임씨는 초반 검찰에 'A가 조합 설립을 도와줘 고마운 마음에 대출금 사용을 허락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A 또한 '택시회사를 추가로 인수하기 위한 자금이 필요해 조합 이사장에게 대출금을 사용한 후 나중에 변제하겠다고 말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하지만 이 둘은 이내 '조합 이사장은 A의 횡령 범행을 알지 못했다'고 진술을 바꿨다. 임씨는 진술을 바꾼 이유를 묻는 기자 질문에 "A가 돈을 갚아야 택시 면허를 넘긴 회사가 망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A가 구속되면 돈을 갚을 수 없었다"고 답했다. 

우리택시협동조합은 대부업체에서 연 20% 이자로 빌린 20억원을 택시면허 양수 명목으로 법인택시 회사 태조교통(주)에 넘겼다. 태조교통에서 택시기사로 일하던 조합 이사장 임씨가 연대보증을 섰다. 협동조합 설립에 자문하며 조합 계좌를 관리하던 A는 이중 5억원을 본인이 대표로 있는 택시회사가 세우려던 택시협동조합이 출자금으로 빌린 대출금을 갚는 데 썼다. 당시 태조교통은 대표가 직원들 돈을 빌려 빚을 갚을 정도로 회사 운영이 어려웠는데 들어오기로 한 회삿돈마저 증발한 것이다. 

태조교통 대표로부터 횡령죄로 고소하겠다는 말을 들은 조합 이사장 임씨는 어떻게든 A를 설득해 돈을 받아내야 했다. 실제 태조교통 대표는 '이씨가 회사를 빼앗아갔다'고 검찰에 고소했다가 오히려 무고 혐의로 구속됐다. 문제는 임씨가 이미 A 부탁을 받아 '횡령은 없었고 단지 돈을 빌려준 것'이란 취지로 검찰에 진술했다는 점이다. 그런 임씨가 속내를 털어놓은 배경엔 수사관의 설득이 있었다. 

임씨는 "나를 조사한 ○○○ 수사관은 처음에 기소의견으로 수사보고를 올렸다. 내가 거짓말을 했으니까. 그런데 내가 잘못되게 생겼다는 걸 안 거다. 그래서 진실을 얘기했다. 증거자료를 다 제출했다. 내가 수사관 이름을 기억하는 이유는 '이런 식으로 하면 당신 죽어. 거짓말 하지마'라고 얘기를 해줬기 때문이다. 왜 거짓말하냐고 묻길래 '저 이해해주십시오. 돈 받아야 합니다' 말했더니 수사관은 '당신이 주범이 되는 거야'라고 말했다"

임씨는 수사관 조언을 받고 변호사 상담을 거쳐 본인은 횡령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자료를 검찰에 제출했다고 했다. "변호사에 있는 그대로 얘기했다. '제가 돈을 받으려고 거짓말을 했는데 (검찰 수사) 분위기가 이상합니다'" 전주지검은 우리택시전주협동조합 횡령 사건은 A 단독범행으로 수사를 마무리했다. 가로챈 돈을 별도 택시협동조합 인수자금으로 써버린 A는 다시 돈을 돌려줘야 하는 처지가 돼 일종의 '돌려막기'가 더는 불가능해졌다. 결국 A는 설립하고자 했던 택시협동조합 이사장으로 오기로 한 사람으로부터 고소당했다. 이때도 고소인은 'A와 임씨가 짜고친 것'이라고 의심했지만 검찰은 아무런 혐의를 발견하지 못했다. 

◇ 존재하지 않는 사실이 특정된다?
조합 이사장 임씨가 진술을 바꾼 이유가 소명됐다고 본 검사와 다르게 대법원은 임씨를 의심했다. 

대법원은 "A와 임씨가 업무상횡령 혐의로 수사를 받으면서 '조합원 이사장도 A가 이 사건 대출금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다는 사실에 대해 알고 있었다' 취지로 한 진술이 허위라고 쉽사리 단정할 수 없다"며 "검사의 혐의없음 처분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위 혐의 사실의 '부존재'가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는데,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에서 이를 인정할 추가적인 사정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대법원은 이같은 판단을 뒷받침하려고 "그 사실의 부존재 증명이라도 특정 기간과 특정 장소에서의 특정행위의 부존재에 관한 것이라면 적극적 당사자인 검사가 이를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이 증명하여야 할 것"이란 2010년 대법원 판례를 인용했다. 해당 판례에서 이번에 대법원이 인용한 부분 바로 다음으로 이어지는 문장이다.  

"특정되지 아니한 기간과 공간에서의 구체화되지 아니한 사실의 부존재를 증명한다는 것은 사회통념상 불가능한 반면 그 사실이 존재한다고 주장·증명하는 것이 보다 용이하므로 이러한 사정은 검사가 그 증명책임을 다하였는지를 판단할 때에 고려되면 된다"(이인복 이홍훈 김능환 민일영 대법관)

2010년 대법원 판단은 범행의 시기와 장소를 특정할 수 있는 사건 증명책임은 검사에게 있고, 특정할 수 없는 사건은 의혹을 제기한 사람이 최소한 소명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이 마저 인용하지 않은 부분까지 함께 보면 네 가지 의문이 남는다. 

이미 단독범행으로 결정된 사건에서 제삼자에 의해 누군가 공범으로 의심받는 상황("같이 회삿돈을 다 해 먹었다")이라면, 단독범행이라는 '존재'를 구성하는 ①기간·장소와 공동범행은 없었다는 '부존재'를 구성하는 ②기간·장소가 같은가. ①②가 같다면 공범이 없다는 '부존재'는 단독범행이라는 '존재'로 입증되지 않나. ①②가 서로 다르다면, ②는 특정할 수 있는가. 특정할 수 없다면 증명책임은 여전히 검사에게 있나. 

임씨는 조합원 송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깬 대법원 판결을 두고 "내가 어떻게 공범인가. 그러면 판사님이 증빙을 해보라. 검찰에서 내가 그때 얼마나 피가 마른지 아나. 은행 통장, 거래내역 몇백장을 수도 없이 들고 (검찰청으로) 날랐다. USB(이동식 저장장치)에 담아 한 번에 제출하면 되는 거 가지고. 증빙자료가 없었으면 내가 지금 사회생활을 하겠나. 구속됐겠지. 검사님들이 일반 사람인가. 나같은 게 뭐라고 봐주나"라고 반문했다. 불가능을 입증하라는 대법원 주문은 가능한 일인지 임씨는 묻는다.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

aftershock@wikileaks-kr.org

기자가 쓴 기사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127, 1001호 (공덕동, 풍림빌딩)
  • 대표전화 : 02-702-2677
  • 팩스 : 02-702-16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소정원
  • 법인명 : 위키리크스한국 주식회사
  • 제호 : 위키리크스한국
  • 등록번호 : 서울 아 04701
  • 등록일 : 2013-07-18
  • 발행일 : 2013-07-18
  • 발행인 : 박정규
  • 편집인 : 박찬흥
  • 위키리크스한국은 자체 기사윤리 심의 전문위원제를 운영합니다.
  • 기사윤리 심의 : 박지훈 변호사
  • 위키리크스한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위키리크스한국. All rights reserved.
  • [위키리크스한국 보도원칙] 본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립니다.
    고충처리 : 02-702-2677 | 메일 : laputa813@wikileaks-kr.org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