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흥구 대법관 후보자, 사법농단 판결에 "중요한 판단기준 제시"
[단독] 이흥구 대법관 후보자, 사법농단 판결에 "중요한 판단기준 제시"
  • 윤여진 기자
  • 승인 2020.08.24 16:10
  • 수정 2020.08.24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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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통상임금 대법판결 판례평석' 발표
이 후보자 "관련 소송 중요 판단 기준 제시"
직전해 대법, 통상임금 사건에 신의칙 적용
양승태 대법원 문건 "국정운영 뒷받침 노력"
사법농단판결 논란 "대법원판결 존중" 해명
이흥구 대법관 후보자. [사진=연합뉴스]
이흥구 대법관 후보자. [사진=연합뉴스]

노동권을 좁게 해석하는 박근혜 정부 국정운영에 양승태 대법원이 협력한 대표사례로 드러난 2013년 통상임금 판결을 두고 이흥구(57·사진) 대법관 후보자가 본인 논문에서 "중요한 판단기준을 제시했다"고 평가한 것으로 24일 확인됐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밝힌 "근로자 등 소수자의 권리 보호에 앞장서 왔음"이라는 제청이유와 다른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앞서 지난해 4월 이미선 당시 헌법재판관 후보자도 같은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이 후보자는 지난 2014년 4월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해당 여부와 신의칙 - 대상판결 : 대법원 2013. 12. 18. 선고 2012다89399 판결 -'이란 제목의 연구논문(판례평석)을 부산판례연구회에서 발표했다. 그는 이 논문 결론 부분에서 "추가법정수당 청구가 신의칙에 위반될 수 있는 요건을 처음으로 밝힘으로써 현재 계속 중인 160여 건의 소송과 이후 제기될 통상임금 관련 소송의 중요한 판단기준을 제시하였고 이로써 기존에 논란이 된 쟁점들을 상당 부분 해소하였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 논문은 이듬해 이 연구회에서 발간한 정기 판례연구집에 그대로 실렸다. 지난 10일 김 대법원장이 권순일 대법관 후임으로 이 후보자를 임명제청하면서 "법원 내 노동법 커뮤니티 등에서 활동하면서 여러 편의 판례평석을 통해서 근로자 등 소수자의 권리 보호에 앞장서 왔음"이라고 평할 때 꼽은 논문이기도 하다. 국회는 지난 21일 이같은 의견을 그대로 담은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임명동의 요청사유서를 접수했다. 

이흥구 대법관 후보자가 지난 2014년 4월
이흥구 대법관 후보자가 지난 2014년 4월 발표해 이듬해 부산판례연구회 판례연구집에 실린 연구논문(판례평석)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해당 여부와 신의칙 - 대상판결 : 대법원 2013. 12. 18. 선고 2012다89399 판결 -' 결론 부분인 '맺는 말' 39쪽 중 일부.

이 후보자가 논문에서 다룬 판결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인 지난 2013년 12월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통상임금 사건에 처음으로 신의성실원칙을 적용한 사건이다. 당시 대법원은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 기존 판례를 인용하면서도 근로자가 이 원칙에 따른 추가 법정수당을 청구하면 신의칙 위반이라고 결정했다. 신의칙은 '계약 당사자는 상대방 신뢰를 지켜야 한다'는 민법 원칙이다. 당시 양 대법원장 등 다수의견 9명은 노사합의에 정기상여금을 제외한다는 내용이 있었다면 이같은 원칙이 노동 사건에도 적용된다고 했다. 대법원 선고 이전에 사측과 해당 합의를 한 근로자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반영한 법정수당 청구를 할 수 없게 된 이유다. 

하지만 이 판결을 두고 대법원이 노동법 대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근로조건은 법률로 정한다는 헌법 32조에 따라 정해진 근로기준법 강행규정인 제15조 제1항은 "이 법에서 정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근로조건을 정한 근로계약은 그 부분에 한정하며 무효로 한다"고 선언한다. 노동사건에선 어떤 법률계약보다 근로기준법이 우선이라는 헌법 원칙을 대법원이 부정한 셈이다. 때문에 당시 소수의견(이인복 이상훈 김신 대법관)은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성을 인정하면서도 신의칙으로 그 강행규정성을 배척하는 다수의견의 논리는 너무 낯선 것이어서 당혹감마저 든다"는 감정적 표현을 판결문에 남긴 바 있다. 

더욱이 해당 판결은 지난 2018년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당시 법원행정처장) 자체 조사 결과 '국정운영 협력사례'로 드러났다. 2015년 7월 행정처 산하 기획조정실 명의로 생산된 '현안관련 말씀 자료' 문건엔 "사법부는 그동안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최대한 노력해왔음"이란 표현이 등장한다. 기조실은 통상임금 판결을 두고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단순히 포함시킬 경우 우리 경제 전체가 안게 될 부담(약 38조원으로 추산됨)을 최대한 고려"했다고 적었다. 법리와 원칙이 아닌 정책적 효과가 판결 이유였다는 뒤늦은 고백이다. 실제 박근혜 정부 고용노동부는 판결 한 달 만인 이듬해 1월 23월 발표한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에서 "고정적인 정기 상여금의 소급분에 대해서는 신의칙을 적용해 추가임금 청구를 불허함"이라며 "소송으로 제기된 개별적 사건에 대해서 법원은 위의 구체적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게 될 것"이라 밝혔다. 이때 '소송으로 제기된 개별적 사건'이란 이 후보자가 언급한 '160여 건의 소송'으로 행정처가 경제비용을 추산할 당시 법원에 계류 중인 사건들을 뜻한다. 그가 논문에서 "대상판결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킬 경우 기업에 심각한 타격이 가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신의칙의 법리를 원용하여 노사합의 무효 주장에 따른 법정가산수당의 추가적 청구를 차단하겠다는 정책적 판단을 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도 분석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다만 이 후보자는 통상임금 사건에서 신의칙 적용은 예외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 후보자는 논문에서 "대상판결이 신의칙을 적용하리라는 예상은 대상판결 이전에는 거의 없었다"며 "신의칙을 이유로 강행규정에서 인정되는 권리·의무의 내용을 변경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을 해치고 강행규정의 취지를 몰각할 수 있으므로, (근로기준법)법률을 그대로 적용하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부당한 결과가 야기되는 예외적인 경우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후보자는 해당 논문을 같은 연구회 소속 동료 법관에게 발표한 뒤 '신의칙 적용' 찬반을 묻는 말이 나오자 "신의칙 적용에 반대하는 의견에 찬성"이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근로자의 추가법정수당 청구를 인정하는 대법원 반대의견에 동의한다는 취지다. 이같은 발언은 '다수의견이 재판 중인 통상임금 사건에 중요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앞서 논문에서 밝힌 입장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오는 31일 국회에서 열리는 인사청문회에서 해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이 후보자는 해당 논문 작성 경위를 묻는 말에 "전원합의체 판결은 대법관들이 진지하게 토론하여, 그 다수의견이 근로자 측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가 신의칙에 위반될 수 있는 요건을 처음으로 밝혔다"며 "위 결론이 대법관들의 치열한 토론 결과 도출되었다는 점에서 위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다만 '통상임금 사건에서 소신이 무엇인가' 물음엔 "개인적인 의견에 관하여는, 현재 위 판결에 따른 신의칙 주장이 인정될 것인지를 둘러싸고 대법원에 여러 사건이 계속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대법원에서 대법관으로 일하게 될 가능성이 있는 후보자가, 대법원에서 심리 중인 사건에 관하여 입장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음"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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