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노동주의자 김선수, 이상주의자 민유숙
[WIKI 프리즘] 노동주의자 김선수, 이상주의자 민유숙
  • 윤여진 기자
  • 승인 2020.08.28 18:03
  • 수정 2020.08.28 1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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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기아차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은 유효
다수의견, 특별채용은 유족을 보호·배려하는 것
소수의견 "오히려 가부장제 산물 아닌가" 반론
非혼 근로자는 산재로 사망해도 혜택보지 못해
법원이 자치영역 간섭한다는 논리는 다소 빈틈
지난 6월 1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공개변론 당시 김선수 대법관. [사진=대법관 생중계 화면 갈무리]
지난 6월 1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공개변론 당시 김선수 대법관. [사진=대법원 생중계 화면 갈무리]

"청년구직자가 피고에 대해서 공장에 채용될 것이라는 기대 내지 희망, 이것이 이렇게 구제받을 수 있는 법적 권리 수준으로까지 격상된 것으로 볼 수 있나요?"

산업재해로 사망한 근로자 자녀를 기업이 특별채용하는 노사협약 조항이 사회질서에 어긋나 무효인지 대법원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이 열린 지난 6월 17일 대법정. 30년 노동 변호사 출신 김선수 대법관 말이 빨라졌다. 

이날 공개변론 핵심 쟁점은 피고 기아(현대)자동차 주장대로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이 정의관념에 반하는 '일자리 대물림'으로 볼 수 있는지였다. 민법 제103조는 법률행위가 사회질서에 위반하면 무효라고 선언하는 까닭에, 대법원이 최종 대물림이라 보면 '채용을 승낙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한 원고 산재 유족은 패소한다. 김 대법관은 청년 구직희망자가 기대하는 '공정하게 채용될 기회'가 법적 권리여야만, 이 권리를 침해하는 특별채용이 정의롭지 않다는 논리를 폈다. 

"만약에 피고 회사에 취업하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특별채용조항 때문에 공정하게 채용될 기회가 침해되었다는 이유로 근로자지위 확인을 (법원에) 구하거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요구하면 피고가 응하겠습니까?"(김선수)

기아차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태평양 소속 이욱래 변호사는 김 대법관 논리를 수긍하면서도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 산재 사건과 법적 관련이 없는 청년 구직희망자가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할 순 없지만, 공정에 민감한 이들의 가치를 기업이 무시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저희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노사가 마음대로 이렇게 쪼개서 가지게 해서는 안 된다, 그 외부에 있는 다른 분들의 사회적 가치를 충분히 고려해야 된다는 것입니다"(이욱래)

김 대법관은 이 변호사가 언급한 '외부의 사회적 가치'를 "막연한 취업대상자의 기대나 희망"이라고 평가절하하며 피고를 상대로 한 질의를 끝냈다. 

◇ 反가부장주의자 민유숙, 김선수에 반대하다
공개변론일로부터 두달 여가 지난 27일 오후 2시, 이 사건 대법원 선고는 온라인으로 생중계됐다. 결론은 10대2 의견으로 기아차 손을 들어준 원심을 파기하고 산재 유족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내는 내용이다. 다수의견은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은 사망하는 근로자 희생에 상응하게 보상하고 유족을 보호하고 배려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며 "구직희망자들의 채용 기회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보기 어렵다"고 그 이유를 들었다. 근로자 보상이 제삼자 구직희망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김 대법관 의견이 받아들여진 결과다. 

공개변론 당시 민유숙 대법관. [사진=대법원 생중계 화면 갈무리]
공개변론 당시 민유숙 대법관. [사진=대법원 생중계 화면 갈무리]

공개변론 당시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이 가진다는 보호와 보상 개념에 의문을 제기한 민유숙 대법관은 반대(소수)의견에 섰다. 그는 공개변론 때 원고 측 참고인으로 출석해 김 대법관 질문에 호응하는 답변을 내놓은 진보주의자 권오성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를 궁지로 몰았다.

"교수님께서는 가부장제도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산재 유족 특별채용은) 무엇을 근거로 할 수 있느냐, 현재의 가족제도 하에서 어떤 가치를 보호한다고 말씀하실 수 있는지 한 마디로 표현해주실 수 있으십니까?"(민유숙)

"너무 어려운 말씀이신 것 같은데, 부양이라고 생각합니다"(권오성)

민 대법관은 25년 넘게 노사협약에 존재한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은 '가부장제의 산물'로, 비혼이나 무자녀 가구가 적지 않은 오늘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봤다. 만일 비혼인 근로자가 사망했다면 특별채용될 수 있는 자녀가 없다. 같은 조합원인데 자녀가 있고 없고에 따라 차별이 발생하니 이 또한 정의롭다고 할 수 없다. 다수의견이 애써 시선을 두지 않은 지점이다.

이같은 반대의견 논리 구성은 새로운 게 아니다. 지난 1999년 헌법재판소가 공무원채용 시험에 응시한 제대군인에게 가산점을 주는 법률에 위헌을 결정할 때 채택한 논리다. 당시 헌재는 자칫 여성 대 남성 구도로 흐를 수 있는 점을 우려해서인지 같은 남성끼리의 차별 문제도 살폈다. 신체결함으로 군대에 가지 못한 남성도 가산점을 받지 못하는데 이 경우 선천적인 이유로 차별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 대법관이 포함된 반대의견은 이같은 헌법상 기본권인 평등권 원칙 적용을 제삼자인 구직희망자에게도 확장했다. 일단 구직희망자에게 법적 권리가 없다는 김 대법관 주장을 받고 논리를 펼쳤다.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으로 인해 채용되지 못한 사람'이 특정되지 않아 피고들을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또는 손해배상 등을 청구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반대의견)

다만 민 대법관과 이기택 대법관은 구직희망자들에게 법적 권리가 없다는 것과 이들을 차별적으로 대하는 건 별개라고 선을 그었다.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은 구직희망자들의 구체적인 채용청구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이유 없이 그들을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것이다"(반대의견) 

◇ 그래서 법원이 개입할 근거는
차별적 대우와 법적 차별은 다르다는 반대의견 논리에는 빈틈이 있다. 국가가 특정 국민을 차별 대우하면 그 자체로 헌법 위반이다. 헌법 제1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같은 잣대로 민간영역인 사기업의 채용 문제에 간섭하기는 어렵다. 기본권 침해 여부를 따지는 헌재에서도 심판대상은 법과 국가제도 같은 공권력에 한정된다. 기아차나 현대차가 국영기업이 아닌 한 사법부가 채용 원칙에 간섭하기는 쉽지 않다. 때문에 다수의견은 산재 자녀 특별채용 조항을 둔 노사협약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협약자치권의 영역이라고 못 박았다. 헌법 제33조 제1항은 근로조건을 정하는 권한을 노사에 부여한다. 

반대의견은 이같은 논리적 결함을 메우기 위해 다수의견이 말한 '자치의 한계'를 지적했다. 

"오히려 차별대우를 받는 구직희망자들이 재판상 권리를 행사하기 어렵기 때문에 단체협약의 당사자 일방이 단체협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이러한 사건에서 사법부가 개입할 필요성이 더욱 크다"(반대의견)

차별적 대우를 받으나 법적 권리가 없는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법원이 관여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같은 논리를 위해선 우선 기아차나 현대차 같은 대기업이 이들을 스스로 산재 근로자를 구제하지 못했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 그 전에 이들이 그럴 만한 책임이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개별 기업이나 노동조합이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직접적인 책임을 부담하는 것은 아니지만 피고들은 적어도 공정한 방식으로 채용절차를 수행할 책임이 있는 사회적 주체라고 할 수 있다"(반대의견) 

반대의견은 이같은 책임을 저버리는 노사의 행동을 두고 "노사가 임의로 처분할 수 없는 구직희망자들의 지위를 거래의 대상으로 삼은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비난 섞인 말을 판결문에 담았다. 

반대의견은 대기업 노사가 제삼자인인 구직희망자가 채용절차를 밟는데 있어 스스로 공정해야 할 책임이 있지만 오히려 그러한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했다. 다수의견에서 인용한 협약자치권을 그대로 받은 것이다.

"노사가 자치적으로 단체협약을 개정하여 이 사건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을 삭제하고, 노사합의로 다른 방식의 보상책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피고들과 노동조합이 장기간 거급 단체협약을 체결하면서도 특별채용 조항을 폐지하려는 자치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이상 공정한 법질서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기 위하여 법원이 규범적으로 이 사건 조항의 효력을 부정하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반대의견)

◇ 사법적극주의? 민유숙의 본심
반대의견은 '적극적 사법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사실상 법원이 헌재가 맡은 기본권 심사 역할까지 하겠다는 것인데다 그 심판대상을 민간영역으로 확장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그렇다면 반대의견은 왜 그렇게까지 해서 다수의견과 대립했을까. 사실 반대의견에 선 두 대법관이 평소 다른 사건에서도 사법적극주의자였다고 보기 어렵다. 이 개념은 '법문언 대신 법창조'를 기치로 텍스트에 함몰되지 말고 사회정의를 쫓는 법철학에서 연유한다. 

반대의견 대법관들이 사법적극주의자라면 다수의견 대법관들은 노사 자치를 보장하는 헌법조항 문언에 함몰된 것이 된다. 하지만 다수의견에 합류한 이 사건 주심 김상환 대법관이나 노정희 대법관은 평소 다른 사건에서 오히려 사법적극주의자 면모를 보여줬다. 허위사실공표 사건에서 발화자의 '숨겨진 의도'를 봐야 한다며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깬 판결이 대표적이다. 
 
반대의견이 보기에 진정 다수의견이 함몰된 건 '선한 의지'다. 반대의견은 "선한 목적에 함몰되어 일자리 대물림으로 비판받을 수밖에 없는 조항까지 보호하는 결과에 이르렀다"고 다수의견을 비판했다. 다수의견이 노동권을 강화하는 판결에 선 모양새인데 정말 그렇냐는 물음이다. 

이같은 반대의견 본심을 보여주는 것이 판결문 작성 방식이다. 반대의견은 첫 문장을 자기변호에 썼다. 산재 유족을 보호하자는 시각을 반대의견도 가지고 있으니 괜한 오해를 말란 것이다. 

"반대의견이 이 사건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이 효력이 없다고 보는 이유는 업무상 재해로 인한 피해를 되도록 원상에 가깝도록 회복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거나, 재해를 입은 근로자와 그 가족 등에 대한 보호 필요성을 가벼이 여기기 때문이 아니다"(반대의견)

반대의견이 실상 말하고 싶은 건 현실이었다. 다수의견은 먼저 산재 관련 사건을 심리하기 전에 법원부터가 반성해야 한다고 자성한다. 

"우리나라의 업무상 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은 데 비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자에 대한 양형기준이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지적이나 산재보험법이 피재 근로자나 유족 보호를 위해 충분하지 못하다는 지적은 사법부를 비롯해 모든 국가기관이 겸허이 받아들여야 한다"(반대의견)

반대의견은 법원이 매년 발간하는 사법연감 통계를 인용했다. 2018년 기준 최근 10여 년간 제기된 산업재해 손해배상 소송은 소액사건을 빼고도 매년 1000건 안팎이다. 산재 피해자가 법원 문을 두드리는 건 그만큼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 있다는 게 반대의견 진단이다. 산재로 근로자가 사망할 경우 받는 보험급여가 정년퇴직 때까지 벌 수 있었던 금액에 미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 노사거래는 정의로운가 
반대의견이 보기에 진짜 문제는 산재 유족에게 특별채용 혜택을 준다면 오히려 산재는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지독한 현실이다. 실제 원고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새날 소속으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원인 김상은 변호사는 준비서면에서 '노사는 단체협약을 체결한 후 산재유족에게 채용기회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민사상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형사사건에서 유족의 처벌불원서 등 탄원서를 제출해서 형사책임 면제 또는 양형상의 이익을 향유하고자 했던 것'이라 적었다. 

반대의견은 이 서면을 인용하며 "유족을 채용하는 이익을 제공하는 것이 오히려 적절한 보상에 대한 논의나 업무상 재해의 책임과 원인 규명을 봉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했다. 원고는 특별채용이 특혜가 아닌 보상에 불과하다는 취지를 강조하려 했지만 반대의견은 그 너머 기업의 법적 잘못을 묵인하는 노동계의 모순을 짚었다. 

다만 이같은 반대의견 시야은 이상적이다. 산재 유족 특별채용 관행이 사라져야 기업이 산재를 예방하고 피해자에게 제대로 된 보상을 할 것이란 시각엔 반대의견 스스로 다수의견이 함몰됐다고 지적한 '선의'에 터잡고 있다. 그 선의의 주체는 산재를 방치하는 기업이다. 

"피고들 역시 대법원의 변론 과정에서 이 사건 산재 유족 특별채용 조항이 무효로 선언되면 그에 상응하는 적절한 보상 방안을 마련할 의사가 있다고 밝히는 등 다른 방식으로 보상 책임을 지는 것에 공감하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산재를 없애고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선의에 함몰된 건 김선수인가, 민유숙인가. 노동 변호사가 법복을 입으면서 서초동에도 낯설지만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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