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인사이드] 쓰라린 실패의 연속 끝에 탄생한 전염병 백신
[WIKI 인사이드] 쓰라린 실패의 연속 끝에 탄생한 전염병 백신
  • 유진 기자
  • 승인 2020.09.23 07:49
  • 수정 2020.09.23 0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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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백신 주사. [연합뉴스]
전염병 백신 주사. [연합뉴스]

전세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100만 명에 근접하는 등 확산세가 날로 거세지는 가운데 백신 개발을 둘러싼 논란도 가열되고 있다.

백신은 이제 미국, 중국, 러시아, 유럽 국가들에서 각국의 국내 정치적 헤게모니는 물론 글로벌 패권의 상징으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각국이 사활을 걸고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매달리고 있지만, 최고 수준의 시설을 갖춘 실험실에서는 실패가 거듭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염병 관련 백신은 과거에도 거듭된 실패 속에서 탄생했다.

역사 매체 ‘히스토리’에서 65년 전 소아마비 백신 개발 과정 중 겪은 스토리를 소개하고 있다.

세가지 앰플로 구성된 솔크 백신 패키지.  [히스토리]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 요나스 솔크 박사. [히스토리]

1955년 4월 12일, 모든 미국 신문과 TV는 조나스 솔크의 소아마비 백신이 성공적이었다고 보도했다.

불과 3년 전 미국 역사상 최악의 소아마비 발병 당시 5만7,000명이 감염되고 2만1,000명이 마비됐으며, 3145명이 숨졌다.

그 중 대부분 희생자는 어린이였다. 수영장과 영화관은 문을 닫았고, 불안한 부모들은 아이들을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했다.

전국적으로 솔크 백신 소식이 전해지면서 사람들은 기쁨과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심지어 냉정한 성격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로즈 가든 기념식에서 소크에게 감사를 표할 때 “누군가의 아버지로써 할아버지로써 너무 감사하다는 말 밖에 할 수가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솔크 백신 개발 후 치명적인 오염 위기와 소아마비 경쟁 회사들에게 많은 질타와 의심을 받으며 1955년 4월에 느꼈던 기쁨은 잠시 곧 좌절로 돌아왔다.

• 미국은 백신 공급 부족…하지만 캐나다는 넘쳐났다

1950년대 초 미국 정부는 공중 보건에서 많은 도움을 주지 않았다. 소아마비 치료 캠페인은 대부분 미국 국립소아마비 재단에 기부한 자선기금으로 백신 연구자들에게 후한 보조금으로 지급되었다.

미국 국민들은 소아마비 백신 치료제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고, 각계각층의 30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1954년 소크 백신 시험의 완료를 도왔다.

전국 200여개 시험장에서 자원봉사자들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200만명에 가까운 어린이들에게 실제 백신을 접종하고 일부는 플라시보 효과로 위약을 투여했다.

국립 소아마비 재단의 운동 의료 및 보건 담당자인 라훌 굽타 박사는 “당시 백신을 찾기 위해 온 국민이 합심했다”고 말했다.

실험이 성공적이라고 여겨졌을 때, 대중들은 정부가 미국의 모든 유아, 아동, 청소년들에게 예방접종을 할 수 있는 충분한 백신을 비축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신스키는 아이젠하워 행정부와 보건교육복지부 장관이 백신 생산과 유통을 민간 제약사에 책임을 넘겼고 그로 인해 솔크 백신이 승인 되었을 때 미국은 단 한번도 주사를 사용할 수 없었다.

그와 반대로 캐나다 보건부는 캐나다인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소아마비 백신 생산과 유통을 즉각 인수해 솔크 백신을 풍부하게 보급하고 모든 청소년들을 위해 접종 캠페인을 벌였다.

세가지 앰플로 구성된 솔크 백신 패키지. [히스토리]
세가지 앰플로 구성된 솔크 백신 패키지. [히스토리]

• 솔크 백신에 대한 믿음이 깨져 버린 커터사건

1955년 6개 제약사가 솔크백신을 생산하도록 허가받았다. 솔크 백신은 혈류에서 소아마비 항체를 생성하는 죽은 바이러스를 가진 일련의 주사이다.

아이다호주 포카텔로의 한 의사는 첫 번째 아이들이 백신을 접종한지 불과 몇 주 후인 1955년 4월 24일, 수전 피어스라는 7세 환자가 소크 백신을 맞은 왼쪽 팔에서 발열과 마비를 겪고 있다고 보고했고 3일 후 어린 수잔은 죽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33세의 아이다호 의사 어머니가 소아마비 백신을 맞은 어린 아이들로부터 병이 옮아 사망한 것이다.

아이들이 살아있는 소아마비 바이러스에 주사를 맞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그들의 활발한 바이러스들을 가족과 친구들에게 퍼뜨렸다.

전국적으로 수백 명의 어린이와 어른들이 소아마비로 마비되었고, 소크의 기적적인 백신에 대한 대중의 믿음을 저하시킨 ‘커터 사건’으로 11명이 사망했다.
 
• 소크 백신 대신 사빈이 개발한 치료제로 대체되다

커터 사건으로 인해 무너진 솔크 백신의 진실성을 짓밞은 솔크의 라이벌 신시내티 아동병원장 알버트 사빈이 소아마비 치료제로 다시 세상에 희망이 생겼다.

솔크가 죽인 바이러스와 달리 사빈의 백신은 살아있는 바이러스로 만들어졌다. 사빈 백신은 솔크 백신을 여러 번 주사하는 것과는 반대로 한 번에 구강으로 복용했다.

알버트 사빈 박사가 새 백신 앰플을 들고 있다. [히스토리]
알버트 사빈 박사가 새 백신 앰플을 들고 있다. [히스토리]

• 국가간 백신 전쟁은 계속되다

사빈 백신을 처음 실험한 것은 미국의 냉전 적국인 소련이었다. 사빈은 당시 소비에트 연방의 일부였던 폴란드에서 태어났으며, 1959년 1,000만명의 소련 어린이들에게 구강 백신을 대규모로 시험해 보라는 공산주의 국가의 초청을 받아들였다.

미국에서는 솔크 백신을 광범위하게 접종함으로써 1955년 3만 명 이상이었던 소아마비 감염이 1961년 1,000명으로 줄어들었다.

 ‘소크 백신은 그 놀라운 성공률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잃었다’고 오신스키는 전했다.
미국 정치인들은 소련 아이들이 왜 미국 과학자의 백신을 맞고 있는지, 미국이 적에게 밀리고 있는지, 백신 격차를 알고 싶어했다고 밝혔다.

미국 소아과 의사들은 미국 의학협회에 지도를 청원했고, 1961년 AMA는 솔크 백신을 사빈의 구강식으로 대체하라는 권고를 전달했다.

• 소아마비로 인한 글로벌 캠페인이 열리다

1960년대 초반부터 소아마비와의 세계적 싸움은 주로 소크의 백신이 아닌 사빈 백신에 의해 이루어졌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오신스키는 소아마비 예방접종이 호주, 중국, 일본, 대부분의 유럽 그리고 중남미의 많은 부분을 포함한 전세계적으로 큰 선진국에서 흔한 일이었다고 전했다.

스칸디나비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세계가 사빈 백신을 사용했고, 지난 20년 동안 약 500만 건의 마비성 폴리오밀염을 예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2000년, 빌 게이츠 재단은 세계에서 가장 필요한 어린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소아마비와 다른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대한 예방접종을 위해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던 세계백신및면역연합을 창설하기 위해 다른 비영리 단체들과 협력했다.

오늘 날 솔크와 사빈 덕분에 소아마비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은 2019년 176명의 새로운 감염을 보고한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두 나라를 제외한 전 세계에서 근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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