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80) 미 문화원 기습사건 “광주민주화운동 개입 사과하라” 요구
청와대-백악관 X파일(80) 미 문화원 기습사건 “광주민주화운동 개입 사과하라” 요구
  • 특별취재팀
  • 승인 2020.10.03 07:03
  • 수정 2020.10.0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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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백악관 x파일
청와대 백악관 x파일

5.18광주민주화운동 5주년을 맞은 1985년 5월 미국 행정부를 곤혹스럽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5월 23일 낮 12시께. 대학생 73명이 을지로1가 미문화원(ACC) 도서관을 기습 점거했다. 이 도서관은 미 대사관에서 네블록 가량 떨어진 미 공보원 건물 2층에 자리했다.
말끔하게 차려 입은 학생들은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았다.
도서관을 점거한 학생들은 두가지 요구 조건을 내걸었다.
학생들은 첫째, 미국 정부가 전두환 정권에 대한 지지를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둘째로, 미국 정부가 1980년 5월 발생한 광주민주화운동에 개입한데 대해 공식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윌리엄 글라이스틴 대사가 재직했던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압’ 미국 개입 의혹은 후임자인 리처드 워커 대사를 가장 힘들게 한 이슈였다.

미 대사관은 학생들이 미문화원을 점거하는 사태가 발생함에 따라 매우 복잡하고도 민감한 상황에 빠지게 됐다.

워커 대사는 점거학생들의 소속대학인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등 5개대학교 총장들을 대사관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하며 사태 해결 방안을 숙의했다.

총장들은 학생들 스스로 자신들의 행동이 결코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지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사태가 길어질수록 정권에 불리하다고 판단한 전두환 정권은 전투경찰들을 동원, 공보원 건물을 겹겹이 에워싸고 공권력을 투입해 학생들을 강제 해산하려 했다.

이 같은 분위기를 감지한 미국 측은 ‘공권력 투입으로 인한 폭력 사태를 원치 않고 있으며, 우리 스스로 이 사태를 해결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이러한 내용을 전달받은 경찰은 공보원에서 꽤 떨어진 장소로 철수했다.

미문화원 점거 농성에 관한 뉴스가 전파를 타기 시작하자 반정부 데모가 각 대학으로 번져나갔다. 모든 언론 매체들이 이 사태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미문화원은 한국은 물론 전세계에서 관심을 초점으로 떠올랐다.

김영삼, 김대중 등 한국의 야당 지도자들은 일제히 학생들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반대로 청와대는 강경한 성명을 발표하는가 하면, 지속적으로 공권력 투입을 구상했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적십자 대표단이 제8차 남북적십자회담을 위해 27일 서울을 방문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한국정부로서는 이런 어수선한 상황을 조기에 종결하고 싶어했다.

1985년 미국문화원 점거사건. [MBC]
1985년 미국문화원 점거사건. [MBC]

미국과 학생들의 협상은 좀처럼 진전이 없었다.

협상 도중 몇몇 학생들은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단식 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맹세했다. 특히 두명의 학생은 경찰이 강제해산에 나설 경우 자살하겠다고 위협했다.

워커대사는 훗날 “당시 학생들은 그들의 투쟁이 전두환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고 술회했다.

점거사태는 출구를 찾지못한채 극단으로 치달았다.

농성 이틀째인 24일. 워커 대사는 학생들에게 서한을 보냈다.

“캠퍼스에서 35년을 보낸 전직 대학 교수로서 나는 학생들이 추구하는 이상과 관심사에 대해 항상 주의를 기울여왔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캠퍼스로 복귀한 뒤 적절한 시리에 여러분을 대표하는 사람들과 기꺼이 만나고 싶습니다. 그리고 대화를 이어갈 것입니다…”

학생들은 얼마 후 미대사에게 사과의 편지를 보내왔다.

그들은 이 방법만이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전두환 대통령의 역할을 극적으로 알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몇차례 미국과 학생들의 협상이 이어진 후 학생들은 미공보원에서 철수키로 동의했다.

5월 26일. 대형버스 두대가 미공보원 앞에 도착하면서 72시간의 학생 농성사건은 마침표를 찍었다.

3개월 후, 워커 대사는 한국의 10개 대학 학생 대표들과 청평 나이아가라호텔에서 만나 의견을 나눴다. 하지만 미국의 진압 개입 의혹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

미 문화원 점거농성은 1980년 5월 당시 ‘인권’을 표방하면서도, 전두환 정권의 불가피성을 인정해 군 이동을 저지하지 않았던 미국의 아킬레스를 찌른 대표적인 사건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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