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무죄' 안태근 영장 친 조희진 "말이 안 되는 얘기" "이상한 재판"
[단독] '무죄' 안태근 영장 친 조희진 "말이 안 되는 얘기" "이상한 재판"
  • 윤여진 기자
  • 승인 2020.09.29 17:07
  • 수정 2020.09.29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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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파기환송심 안태근에 무죄선고
재판부 '인사담당검사에 재량권 있다'
법적 의무 있어야만 직권남용 인정돼
"서 검사 모른다" 안태근 진술 주효해
檢성추행조사단 조희진 "황당한 얘기"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4-2부(반정우 차은경 김양섭)가 유죄를 선고한 환송 전 항소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한 뒤 변호인 유해용 변호사를 끌어안으며 고마움을 표시하는 안태근 전 검사장(법무부 검찰국장). 안 전 검사장 오른쪽은 유해용법률사무소 소속 다른 변호인인 김민지 변호사가 안 전 검사장이 탑승할 택시를 잡고 있다. [사진=윤여진 기자]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4-2부(반정우 차은경 김양섭)가 유죄를 선고한 환송 전 항소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하자 법원을 벗어나 변호인 유해용 변호사를 끌어안으며 고마움을 표시하는 안태근(가우데) 전 검사장. 안 전 검사장 오른쪽은 유해용법률사무소 소속 다른 변호인인 김민지 변호사로 안 전 검사장이 탑승할 택시를 잡고 있다. 유 변호사는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출신으로 공교롭게도 안 전 검사장에게 적용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사진=윤여진 기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태근 전 검사장이 29일 네 번째 재판에서야 무죄를 선고받았다. 앞서 대법원은 성추행 피해자인 서지현 검사에게 안 전 검사장이 사직을 유도했다는 원심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무부 검찰국장이던 안 전 검사장이 부하직원인 인사담당검사로 하여금 인사보복을 지시했다는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직권남용죄는 상대방이 의무 없는 일을 할 때 성립하는데, 평검사 인사는 인사담당검사 재량권에 속한다는 안 전 검사장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다. 이날 파기환송심 재판부 판결은 지난 1월 무죄 취지로 사건을 돌려보낸 대법원 결론을 충실히 따른 것에 불과하다. 검찰이 재상고해도 대법원이 다른 결론을 낼 가능성은 거의 없다. 2018년 1월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 지시로 발족한 '검찰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 단장으로 이 사건 수사를 책임진 조희진 전 검사장이 수사 종결 1년 5개월 만에 입을 연 이유다. 수사 초기 이 사건 제보자 격인 임은정 부장검사로부터 단장직 사퇴 요구까지 받았던 조 전 검사장은 문 전 총장과 각을 세우면서까지 안 전 검사장을 상대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바 있다. 

이 사건 수사를 끝으로 옷을 벗은 조 전 검사장은 이날 오전 재판이 끝난 직후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인용한 블랙리스트 대법원 판례를 두고 "이상한 판결"이라고 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2월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들에게 '좌파 문화예술인' 명단(블랙리스트)을 관리하게 했다는 혐의 일부를 인정하지 않았다. 김 전 실장이 직무권한을 남용한 건 맞지만 그 결과 문체부 공무원들이 법적으로 의무 없는 일을 하지는 않았다는 취지다. 문화예술기금을 배분하는데 특정 인사를 배제하지 말라고 따로 법으로 정하지 않은 이상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다. 안 전 검사장 상고심 선고는 블랙리스트 상고심 선고보다 20일 전에 있었지만 같은 법리가 적용됐다. 인사담당검사에게 검찰 내부 인사원칙을 따르라는 법적 의무는 없다는 같은 취지다. 서 검사는 부장검사가 검찰청 장인 부치지청 경력검사를 지내고도 재차 이곳 경력검사로 발령난 유일한 검사였다. 

조 전 검사장은 "(부치지청인) 통영(지청)이 꼭 나쁘다는 게 아니다"라며 "법은 아니지만 평검사들 자신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범위가 있는데 (안 전 검사장은) 완전히 예외적인 인사를 했다"고 지적했다. 조 전 검사장이 말한 기준은 실제 검사인사원칙집에 실려있다. 대법원은 이를 두고 따를 의무가 없는 "고려사항"으로 봤다. 인사원칙을 심의하는 검찰인사위원회가 2005년 부치지청 제도를 도입할 때 "우선 배려"라는 표현을 썼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조 전 검사장은 "(공무원이)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인사를 합리적 이유 없이 당했다고 (행정)소송을 내면 이긴다"고 간단히 반박했다. 2015년 8월 하반기 검사인사를 앞두고 법무부 검찰국으로부터 본인을 부치지청인 여주지청에서 재차 부치지청인 통영지청으로 발령내겠다는 결정을 들은 서 검사는 곧바로 사의를 표한 바 있다. 

이날 파기환송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4-2부(반정우 차은경 김양섭)는 검사가 국가공무원법상 상관의 명령에 따를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스스로 생각건대 통상의 인사가 아니라도 법무부 검찰국이 이미 정했다면 따라야 한다는 취지다. 서 검사는 의무 없는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결론이 이어졌다. 서 검사가 직권남용 피해자인지는 이제껏 세 번의 재판에선 쟁점이 아니었다. 앞선 재판에서 직권남용 상대방은 인사담당검사였던 까닭이다. 재판부는 지난 기일에서 검사 신청을 받아들여 공소사실을 '직권남용 상대방은 인사담당검사(주위적 공소사실)이자 서 검사(예비적 공소사실)'로 변경했던 터다.

지난 2018년 4월 26일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검에서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장' 단장 조희진 검사장이 안태근 전 검사장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018년 4월 26일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검에서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장' 단장 조희진 당시 동부지검장이 안태근 전 검사장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비록 무죄를 끌어내지 못했지만 검찰이 뒤늦게 재판 전략을 수정한 이유는 뭘까. 조 전 검사장은 수사단계에서 서 검사를 직권남용 상대방으로 검토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사실은 서 검사를 상대로 한 직권남용이 아니냐, 그런 부분도 검토했었다"며 비화를 공개했다.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단에 출석한 안 전 검사장이 "평검사 인사는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인사담당 검사가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검찰과 인사담당검사였던 신동원 검사도 "이 인사는 내가 한 것"이란 주장을 폈다고 한다. 조 전 검사장은 두 진술을 "황당한 얘기" "말이 안 되는 말"이라고 했다. 조 전 검사장은 "안 전 검사장이 서 검사 관계에 있어서 성추행 가해자인 것은 맞기 때문에 관계를 부인하는 엉뚱한 답변을 했던 것"이라며 "서 검사를 안다고 해버리면 자기가 직권남용에 걸릴 위험 때문에 그렇게 부인을 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때문에 조사단으로선 직권남용 상대방으로 서 검사 대신 신 검사를 둘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문제는 신 검사가 "안 전 검사장에게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며 본인 판단으로 서 검사를 인사했다고 주장해 혐의 입증이 까다로워졌다는 점이다. 검찰은 신 검사가 인사담당검사로서 의무에 없는 일을 했는지 증명해야 했다. 

대법원 판결 전 하급심은 검사가 입증해야 할 의무는 '공정하게 인사해야 할 의무'로 봤다. 환송 전 항소심은 판결문에 "전례 없는 인사일 뿐만 아니라 인사대상자가 곧바로 사직서를 제출할 정도로 가혹한 인사상 불이익에 해당하여 검찰인사의 공정성을 훼손하고 검사인사의 원칙에 기준에 명백히 반대한다는 것"이라고 적시했다. 조 전 검사장은 "이제까지 의무라는 건 공정하게 해야 할 의무, 이런 것이었다"며 안 전 검사장과 같은 쟁점이던 블랙리스트 대법원 판결을 두고 "없던 판례다. 솔직히 직권남용죄와 관련해선 법원이 관여돼 있기 때문에 대법원이 (앞선 다른 판결로) 뭔가 얘기를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는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사실 대법원장 사건이 그런 것 아닌가. (법원행정처 심의관을 지낸) 판사들이 직권남용 (상대방)으로 많이 기소됐다. 그 경우에 판사에게 법적인 의무가 없는데, (상관) 입맛에 맞게 (재판부에 내려보낸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해서 의무 없는 일을 했다고 볼 수 있겠느냐, 이런 논리가 된다"고 지적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행정처 심의관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시켰다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심의관들은 박근혜 정부 국정운영에 중요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이는 일부 사건 쟁점을 정리해 해당 재판부로 내려보냈다. 안 전 검사장 상고심 주심을 맡은 노정희 대법관도 대법관 취임 전 항소심 재판부에서 행정처 문건을 넘겨받은 바 있다. 다만 조 전 검사장은 해당 사건이 안 전 검사장 사건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는 것"이라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이번 블랙리스트 판결로 (사법행정권 남용 재판에서) 대법원장은 몰라도 밑에 심의관은 조금 유리해진 것"이라고 평했다. 

조 전 검사장은 검찰 기소는 정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기소할 당시에만 해도 직권남용을 법원에서 인정하는 추세였다. 1·2심 전부 직권남용을 인정했고 1심에선 법정구속까지 했던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안 전 검사장은 지난해 1월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지만 지난 대법원 판결로 직권 석방됐다. 

조 전 검사장은 블랙리스트 대법원 판결에 정무적 판단이 깔렸다고 의심하며 "새로운 이론" "새로운 대법원"이란 미묘한 표현을 썼다. 이 사건 주심 노 대법관이나 블랙리스트 사건 주심 안철상 대법관 모두 이번 정부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제청한 대법관이다. 조 전 검사장은 "대법원에서 교통정리를 한 건데, 법조문 문제가 아니라 해석 문제로 처음 판단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공무원 직권남용 사건은 지휘 체계나 단계가 많다 보니 법리가 많이 형성되지 않았었는데, 대법원이 이제까지 없던 법리를 형성했다. 엄청나게 많은 사건이 공무원 관련해서 일어나니까 대법원이 궁여지책으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싶다"고 그 배경을 짐작했다. 그는 "대법원 입장에선 '이 정도로 형을 살게 할 수는 없지 않나' 이런 생각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면서 "(법률해석은) 대법원에 (최종) 권한이 있으니까 뭐라고 말하기 그렇다"고 말을 줄였다. 상급자의 부당한 지시를 하급자가 따랐다 해서 처벌할 수는 없다고 대법원이 판단했다는 분석이다.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에서 1961년 전쟁범죄자 재판에 회부된 홀로코스트(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 실무책임자 카를 아돌프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을 봤다고 고백했다. 이 개념은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평범하게 행하는 일이 악이 될 수 있다"는 문장에 녹아있다. 선한 사람으로 보였던 아이히만은 인종청소를 지시하는 나치를 영혼 없이 따랐다. 그런 자신은 죄가 없다고 아이히만은 법정에서 주장했다. 아렌트는 선과 악이 교차하는 모순을 짚은 것이다. 안 전 검사장 사건은 같은 물음을 던진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서 검사가 원하지 않는 곳에 전보됐다고 하더라도 직무를 이행할 의무가 있다며 공무원법 제56조를 인용했다. 규범력을 상실한 공무원법 제59조 '공무원은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를 만난 제56조 '공무원은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는 악의 평범성을 대변하지 않는가.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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