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2月 10명→8月 12명→10月 13명... 삼세번 끝 '배임罪 판례변경' 전원일치 
[WIKI 프리즘] 2月 10명→8月 12명→10月 13명... 삼세번 끝 '배임罪 판례변경' 전원일치 
  • 윤여진 기자
  • 승인 2020.11.03 18:25
  • 수정 2020.11.0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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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월 만에 또 배임죄 전원합의체 판결
소수의견 김재형 대법관 비판 의식한 듯
8월 사건서 반례로 제시한 판례 콕 집어
지난 2018년 7월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 참석한 당시 대법관들. 왼쪽부터 박정화 대법관, 김재형 대법관, 조희대 전 대법관, 김명수 대법원장, 이기택 대법관, 조재연 대법관 겸 법원행정처장, 안철상 대법관, 김선수 대법관,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장 겸 대법관. [사진=연합뉴스]
지난 2018년 7월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 참석한 당시 대법관들. 왼쪽부터 박정화 대법관, 김재형 대법관, 조희대 전 대법관, 김명수 대법원장, 이기택 대법관, 조재연 대법관 겸 법원행정처장, 안철상 대법관, 김선수 대법관,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장 겸 대법관.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관 13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배임죄 판례를 변경했다. 쟁점은 자동차금융회사에 저당잡힌 지입버스를 제삼자에게 처분한 행위가 배임인지였다. 1심과 2심은 피고인 관광버스 지입회사 대표 이모씨가 저당권설정계약에 따른 '담보물 보관 의무'를 저버렸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이같은 원심을 깨고 사건을 무죄 취지로 광주고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판결 직후 보도자료에서 "배임죄의 성립 여부에 있어 임무위배행위가 있었는지 여부에 앞서 배임죄의 구성요건인 '타인의 사무'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먼저 가려야 함"이라고 판결의 의의를 밝혔다. 배임죄 성립요건에도 순서가 있다는 뜻이다. 배임죄는 ①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②임무를 위배하는 행위로 ③본인이나 제삼자가 재산상 이익을 취득해 ④타인에게 손해를 가할 때 인정된다. 

대법원 판결은 하급심 판단대로 이씨가 담보물을 제대로 보관하지 않은 건 맞지만 그 임무는 '자신의 사무'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저당권자는 메리츠캐피탈이지만 저당권설정자는 이씨인 까닭이다. 결국 이씨는 채권자가 위임한 사무가 아닌 채무자 자신의 사무를 포기한 것이 된다. 타인에게 피해를 줄 때만 국가가 개입할 수 있다는 선언이다. 대법원은 담보목적물에 저당권을 설정하고도 제삼자에게 처분한 채무자를 배임죄로 처벌한 그간 판례를 모두 변경하기로 했다. 

◇ 판례변경이라는데 새롭지 않다?
대법원이 배임죄에서 판례를 변경한다며 내놓은 법리는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 이미 지난 2월과 8월 두 판결에 걸쳐 전원합의체는 동산인 공장기계를 채무담보로 양도하기로 약정하거나 등기하고도 제삼자에게 처분한 사건에서 배임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때도 대법원은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 내에서 (배임죄로 본 과거 판결을) 모두 변경하기로 한다"고 판결문에 적었다. 자동차 역시 '부동산 이외의 물건'을 말하는 동산이다. 같은 선언을 반복한 셈이다. 

대법원이 특정 죄(罪)를 골라내 8개월 만에 세 번이나 전원합의체에서 선고하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그만큼 한 번의 판결로 충분한 권위를 세우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지난 2월 사건에서 혼자서 배임을 긍정한 민유숙 대법관은 "향후 담보권을 설정한 동산 이외의 재산(주식, 채권, 면허권 등)의 처분에 배임죄의 성립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들의 유지 여부가 거론될 때마다 다수의견의 판례부정합성이 계속 문제될 우려"를 표했다. 김선수 대법관과 김재형 대법관이 '같은 결론 다른 이유'인 별개의견을 내면서 의견분포는 10 대 2 대 1을 보였다. 8월 사건 유일 반대자로 나선 김재형 대법관은 "판례는 공장저당권이나 저당권이 설정된 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한 경우 배임죄로 처벌해 왔다"고 적었다. 이때는 12 대 1이었다. 

민 대법관은 '동산이 아닌 재산'에서 배임죄를 인정한 판례를, 김재형 대법관은 동산인데도 배임죄를 부정하지 않은 판례를 다수의견의 반례로 제시했다. 물건 종류에 따라 배임 여부가 바뀐다면 다수의견이 의도한 국가형벌권의 최소화는 "추상적인 이유"(김재형 대법관 반대의견)를 넘어서는 법리가 될 수 없다는 반론이다. 실제 대법원은 형법 제정 이래 '부동산 이중매매'를 배임으로 보는 판례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2016년 9월 5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여한 김재형 대법관. [사진=연합뉴스]
지난 2016년 9월 5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여한 김재형 대법관. [사진=연합뉴스]

◇ 김재형을 위한 전원합의체
김선수 대법관이 주심 자격으로 집필한 이 사건 판결문은 지극히 김재형 대법관을 의식했다. 대법원은 판례 변경 범위를 "채무 담보를 위하여 채권자에게 동산에 관하여 저당권 또는 공장저당권을 설정한 채무자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함을 전제로 채무자가 담보목적물을 처분한 경우"로 특정하며 두 과거 판결을 콕 집었다. 공교롭게도 지난 8월 사건에서 김재형 대법관이 다수의견이 모순을 짚으면서 언급한 사건들이다.

남는 의문은 김재형 대법관이 이번 사건에서 별도 의견을 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미 8월 사건에서 다수의견에 합류한 민 대법관과 달리 김 대법관은 배임죄에서만큼은 양보 없는 행보를 보여왔다. 그는 지난 2월 사건에선 김선수 대법관과 함께 "횡령죄가 성립하기 때문에 배임죄를 논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아니기 때문에 배임죄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수의견 법리를 따르지 않았다. 당시 다수의견 법리는 이번 전원일치 법리와 다른 부분이 전혀 없다. 8월 사건에선 "담보권설정자는 배임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했다. 두 의견 모두 판결문에서 다수의견 비중을 넘어서는 분량이었다. 그런데도 김 대법관이 이번 판결문에 아무런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소부 판결과 달리 전원합의체 판결은 기존 대법원 판결에 구속받지 않고 대법관 개인의 소신을 펼치는 자리다. 

10월 판결이 8월 판결의 자신의 문제제기를 염두에 둔 것이란 점에서 김재형 대법관이 역으로 다른 12명의 대법관을 배려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가능하다. 애초 소부에서 기존 판례를 따르면 족한 사건인데 김명수 대법원장이 김 대법관 면을 세워주려고 전원합의체를 소집했다는 얘기다. 8월 사건에서도 김 대법관은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배치되어 보인다"(민유숙 노태악 대법관 다수의견 보충의견)는 지적을 받았는데도 의견 개진 기회를 얻은 바 있다. 당시 김 대법관은 2월 사건에 없는 동산담보등기가 8월 사건에 있어 두 사건은 쟁점 자체가 다르다고 했지만 다른 대법관들의 동의를 받아내지 못했다. (본지 2020년 9월 1일 자 보도 '[WIKI 프리즘] '같은 것은 다르게 다른 것은 같게' 김재형의 변주는 무죄' 김사 참조)

◇ "배임죄 판례 모두 정리"
대법원 내부 속사정 탓인지 이번 판결엔 모순이 있다. 이미 8월 사건에서 다수의견에 섰던 민 대법관과 노태악 대법관은 김 대법관이 반례로 제시한 두 판결을 두고 "향후 유지 여부를 고려하여야 할 판례일 뿐, 위 각 판례를 들어 동산담보권 설정자의 담보물 보관·유지 의무 등이 타인의 사무가 되어야 한다는 근거로 삼기는 곤란하다"고 재반박했던 터였다. 2개월 전 다수의견을 반박하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언급한 판례를 굳이 새로 전원합의체를 열어 변경할 필요는 없는 노릇이다. 어쨌든 대법관들은 이번 사건을 심리하며 내부적으로 "배임죄 판례는 다 정리됐다"는 의견일치를 봤다는 후문이다.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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