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83) 워커 대사, 전두환 정권과 미 행정부 사이에서 ‘외줄타기’
청와대-백악관 X파일(83) 워커 대사, 전두환 정권과 미 행정부 사이에서 ‘외줄타기’
  • 특별취재팀
  • 기사승인 2020-11-18 10:09:59
  • 최종수정 2020.11.18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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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백악관 x파일
청와대 백악관 x파일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했던 주한 미국대사들은 전두환 정권 내내 하루하루 ‘외줄타기’를 거듭해야 했다.

한반도의 정치적, 군사적 안정과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전두환 정권을 지원하는 동시에, 미국의 국가적 가치인 민주화와 인권 신장을 위해 애를 썼지만 민주화 진영에서는 ‘미국이 민주화 열망은 무시하고 전두환 정권 지지에만 몰두해있다’고 비판하곤 했다.

이 같은 시각은 1985년 5월, 리처드 워커 대사가 모교인 미국 뉴저지주 드류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 행사에서 극명하게 표출됐다.

당시 이 대학에 다니던 한국 학생들은 미국의 인권단체들과 연대해 워커 대사의 학위 수여계획을 접하고, 이를 저지키로 했다.

학생들은 ‘워커 대사는 전두환 독재정권의 철저한 옹호자며, 마치 전두환 내각의 각료처럼 행동한다’고 비난했다. 학생들은 워커에게 명예 학위를 수여하려는 행위는 드류대학의 건학 정신에 위배된다며 학위 수여 반대성명을 발표하고 캠퍼스 곳곳에서 이를 배포했다. 

전두환 대통령을 예방하는 리처드 워커 주한미국대사.
전두환 대통령을 예방하는 리처드 워커 주한미국대사.

당시 폴 하딘 총장은 한국의 연세대에 재직 중이던 드와이트 스트론 부부에게 편지를 보내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리처드 워커 대사는 내가 기억하는 한 역대 주한미대사 중 가장 많은 업적을 쌓은 분입니다. 워커 대사는 우리와 관련된 사안들을 논의하기 위한 한미 양국의 대화 채널을 만들고 유지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를 오해하고 심지어 헐뜯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정말 불행한 일입니다. 나는 그들이 단지 그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거나 또는 그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오해가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드류대학이 워커 대사에게 명예 학위를 수여하는 것은 지극히 현명한 처사입니다.”

하딘 총장은 계획대로 학위 수여식을 강행키로 했다.

하지만 수여식은 징과 나팔을 동원해 극도의 소란스런 상황을 연출한 시위대의 반대 속에서 진행돼야 했다.

한국에 돌아온 워커 대사는 측근들에게 “이날 해프닝을 통해 주한미대사가 얼마나 힘든 자리인가를 절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미국 대사는 업무 성격상 한국의 집권 세력과 함께 일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무역, 지적재산권, 언론, 미 의원단 방한문제 등 수많은 사안을 놓고 협상을 벌여야 했다.

이 때문에 그는 한국의 정계 인사는 물론, 행정부 관리들과도 접촉해 그들과 신뢰 관계를 쌓아야 했다.

하지만 국권을 찬탈하며 권력을 움켜쥐었던 당시 한국 정권이 집권 과정에서 저지를 불법 행위와 광주의 비극은 주한 미대사들의 머리를 항상 무겁게 짓눌렀다.

워커 대사와 마찬가지로 후임자들도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표명하는 동시에, 미국의 국익을 대변해야 하는 업무상의 책임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대사들은 또 점점 다양하고 복잡해지는 한국 사회의 여러 압력단체들과도 협상을 벌여야 했다. 동시에 미국 내 인권단체 등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요구에도 귀를 기울여야 했다.

미국 대사는 무엇보다 한국의 내정에 말려들지 않도록 항상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그러면서도 미국 대사는 항상 외교 의례에 만전을 기해야 했다.

워커 대사는 훗날 회고록에서 당시의 복잡했던 상황을 담담하게 피력했다.

“대사 시절 곡예하듯 벌였던 외줄타기도 다른 밧줄타기와 별 다를게 없다는 교훈을 얻게 됐다. 그것은 사람에 따라 기막힌 균형을 유지할 수도 있고, 잘못하면 외줄이 올가미로 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의 경우 대사로서의 균형을 얼마나 잘 유지하느냐에 따라 외줄타기의 성공 여부가 갈렸다. 나는 다행히도 수십년간 친분을 맺었던 한국 친구들이 많았고 이들은 임기동안 내가 위태위태한 상황에서 균형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드류대학에서 일어났던 에피소드는 한국의 복잡다단했던 단면들이 어떻게 서로 뒤얽혀 있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위키리크스한국=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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