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인사이드] 아직도 생생한 존 레논의 암살... 그리고 그가 남긴 유산
[WIKI 인사이드] 아직도 생생한 존 레논의 암살... 그리고 그가 남긴 유산
  • 최석진 기자
  • 기사승인 2020-12-05 06:54:22
  • 최종수정 2020.12.05 06: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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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2월 8일 뉴욕에서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이라는 사네가 존 레논에게 사인을 요청했다. 몇 시간 뒤 존 레논은 그의 총을 맞고 즉사하게 된다.
존 레논과 오노 요코(wikimedia.org)
존 레논과 오노 요코(wikimedia.org)

존 레논의 죽음은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1980년 12월 8일 비틀스의 전 멤버였던 존 레논은 맨해튼에 있는 그의 아파트 다코타 앞에서 치명적인 저격을 당했다. 몇 분 뒤 세계 락음악의 우상이었던 존 레논은 영원히 생을 달리했다.

레논의 강인한 성품과 서정적인 천재성에 매료됐던 팬들은 그의 사망 소식을 듣고 그의 아파트 건물 앞에 모여 위대한 팝스타를 잃어버린 사실을 슬퍼했다. 그를 저격했던, 비틀즈의 광팬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은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고, 현재도 복역 중이다.

도대체 너무나 가슴 아픈 12월 저녁의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존 레논은 어떻게 사망에 이르게 되었는가? 그리고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이 한때는 우상으로 숭배하던 사람에게 총부리를 겨눈 이유는 무엇인가?

존 레논이 살았던 아파트 다코타 전경. 그는 이 아파트 앞에서 저격당했다.(Wikimedia Commons)
존 레논이 살았던 아파트 다코타 전경. 그는 이 아파트 앞에서 저격당했다.(Wikimedia Commons)

존 레논이 저격당하기 몇 시간 전

1980년 12월 8일, 존 레논은 록스타로서 평소대로의 일정을 시작했다. 한동안 음악 활동을 쉬고 있던 존 레논과 그의 아내 오노 요코는 ‘더블 판타지(Double Fantasy)’라는 새로운 앨범을 막 출시한 상태였다. 레논은 그날 아침 이 새로운 앨범의 홍보를 위해 시간을 보냈다.

먼저, 레논과 아내 요코는 사진작가 애니 리버비츠와 약속이 있었다. 이 저명한 사진작가는 잡지 『롤링 스톤』에 실을 사진을 찍기 위해 레논의 집을 방문했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눈 후 레논은 자신은 누드로, 아내는 옷을 입은 채 사진을 찍기로 했다. 그 결과 리버비츠는 불후의 명 사진을 찍게 된다. 레논과 아내 모두 이 사진 촬영에 들떠있는 상태였다.

“바로 이거야!”

리버비츠가 폴라로이드 사진을 보여주자 레논은 탄성을 내질렀다.

“바로 우리 부부의 모습입니다.”

얼마 있다가 RKO 라디오 직원들이 인터뷰를 따기 위해 다코타에 도착했다. 이 인터뷰는 레논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가 된다. 인터뷰 도중 한 순간 레논은 나이 듦에 대해 생각에 잠겨 말하기도 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30살이면 죽는 줄 알았지요, 그렇지 않나요?”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제 40살이 됐습니다. 지금 느낌이 어떠냐면......전에 보다는 느낌이 좋습니다.”

인터뷰에서 레논은 자신의 음악 작업에 대해서도 포괄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음악은 죽을 때까지 계속할 생각입니다. 기나긴 여정이 되겠지요.”

안타깝게도 레논은 이 인터뷰를 한 바로 그날 사망하게 된다.

존 레논과 오노 요코
존 레논과 오노 요코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과의 운명적 조우

몇 시간 뒤 레논과 요코는 다코타를 나서면서 그날 늦게 레논을 죽음에 이르게 할 사네와 마주쳤다. 아파트 빌딩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은 신작 음반 ‘더블 판타지’를 들고 있었다.

그날 레논, 요코와 함께 있었던 제작자 론 험멜은 당시 순간을 기억한다. 그는 채프먼이 말없이 음반을 내밀자 레논이 사인을 해준 것으로 기억한다.

“채프먼은 말이 없었습니다.”

험멜은 이렇게 말했다.

“존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이거면 되나요?’ 그래도 채프먼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채프먼도 이 순간을 잘 기억하고 있다.

“그는 저에게 매우 친절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역설적이게도 저에게 너무 친절하고, 참을성 있게 대했습니다. 리무진이 기다리고 있었지요. …… 그런데도 저에게 시간을 할애해서 앨범에 사인을 해줬지요. 그리고 그는 더 필요한 게 없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니, 됐습니다. 선생님.’이라고 대답했어요. 그러자 그는 떠났지요. 정말 상냥하고 고상한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레논의 친절도 채프먼의 의도를 바꾸지는 못했다. 채프먼은 결심을 굳혔다. 당사 하와이에 거주 중이던 25살의 남성은 존 레논을 살해할 목적으로 뉴욕까지 날아갔던 것이다.

채프먼이 존 래논의 동료였던 폴 매카트니 등 다른 유명인을 살해할 계획이긴 했지만 그는 레논을 향한 증오가 특히 심했다. 채프먼의 증오는 레논이 비틀즈가 ‘예수보다 더 인기 있다’고 상서롭지 못한 말을 할 때부터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채프먼은 점점 더 레논이 ‘잘난 척한다’고 느끼게 되었다.

채프먼은 하와이에서 경비 일을 했는데, 근무 마지막 날 평소대로 근무일지를 적었지만 성명 난에는 ‘존 레논’이라고 대신 적었다. 그러고 나서 뉴욕 행 비행기를 탔던 것이다.

채프먼은 레논을 저격하기 전에 분명히 음반에 사인을 먼저 원했다. 레논이 이에 응했는데도 그는 아프트 한 구석에 숨어 그를 기다렸다. 그는 레논과 요코가 리무진을 타고 떠나는 장면을 지켜본 후 그들을 기다렸다.

뉴욕 존 레논 추모 열기센트럴 파크 스트로베리 필즈의 이매진 모자이크에 꽃을 헌화하는 존 레논 추모객(AP=연합뉴스)
뉴욕 존 레논 추모 열기센트럴 파크 스트로베리 필즈의 이매진 모자이크에 꽃을 헌화하는 존 레논 추모객(AP=연합뉴스)

존 레논이 사망하던 날 밤

1980년 12월 8일 밤 10시 50분, 존 레논과 오노 요코는 다코타로 돌아왔다. 채프먼은 나중에 이 순간에 대해 “존이 나와서 저를 쳐다봤는데, 저는 그가 저를 알아봤다고 생각했습니다. …… 아침에 사인을 해준 사람인데, 라고 생각하면 저를 지나쳤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레논이 집으로 들어가려할 때 채프먼이 무기를 꺼내들었다. 그는 다섯 발을 발사했고, 그 중 네 발이 레논의 등 뒤를 맞췄다.

레논은 건물 안으로 비틀거리며 들어가면서 ‘총을 맞았다’고 소리를 질렀다. 채프먼의 증언에 따르면 총소리를 듣고 놀란 오노 요코는 처음에는 몸을 수그렸다가 레논이 총에 맞은 사실을 알고서는 남편에게 달려들어 그를 부축했다고 한다.

“저는 오른 손에 권총을 내리고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채프먼은 이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현관 경비가 달려와서 소리를 지르고, 내 손을 붙잡고 흔들더니 총을 손에서 빼앗았습니다. 무기를 소지한 사람을 상대로 대단히 용감한 행동을 한 거지요. 그런 다음 그는 발로 총을 멀리 차버렸습니다.”

채프먼은 우두커니 서서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으면서 경찰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 책은 그를 사로잡았던 소설이었다. 그에게는 종신형이 언도되었다.

보도에 따르면 존 레논은 저격 후 거의 즉시 사망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는 출혈 과다와 상처가 너무 심해 앰블런스를 기다리지 못하고 경찰차에 태워져 루스벨트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그렇지만 소용이 없었다.

레논은 도착 즉시 사망이 선고되었으며, 그의 사망 소식은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담당의였던 스티븐 리는 기자들 앞에서 존 레논이 사망했음을 공식 선언했다.

“포괄적인 소생 노력을 기울였지만 헌혈과 여러 조치에도 불구하고 그는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의사들은 존 레논의 사망 시간을 1980년 12월 8일 오후 11시 7분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담당의 린의 발표대로 레논의 사망원인은 총상으로 인한 심각한 부상으로 추정되었다.

“흉부 혈관에 심각한 상처가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과다 출혈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첫 발이 그의 몸을 타격하는 순간 사망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비틀즈[연합뉴스 자료사진]
비틀즈[연합뉴스 자료사진]

비틀즈 전 멤버들의 반응

수백만 명이 존 레논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러나 그의 부인 오노를 제외한다면 비틀즈 전 멤버들만큼 레논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폴 매카트니, 링고 스타, 그리고 조지 해리슨. 이들은 존 레논의 죽음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매카트니는 스튜디오 한 모퉁이에서 레논의 죽음에 대해 ‘너무 지겹다’는 이상한 소리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첫 반응에 대한 비난이 빗발치자 매카트니는 나중에 자신의 발언의 속뜻을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기자가 있었고, 운전 중이었습니다. 그 기자가 창 밖에서 마이크를 들이대고, ‘존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라고 소리를 질렀지요. 저는 하루 종일 충격에 휩싸여있던 상태에서 ‘너무 지겹다’고 답을 했던 거지요. ‘지겹다’는 표현의 가장 우울한 의미였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뒤 매카트니는 한 인터뷰에서 “너무 끔찍한 일이 벌어져서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저는 그가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을 몇 일 동안이나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바하마 제도에 있던 링고 스타는 레논의 사망 소식을 듣고 뉴욕으로 날아와서 곧바로 다코타로 가서 요코에게 도울 일이 없는지를 물었다. 그녀는 링고에게 레논과 사이에서 낳은 아들 숀 레논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게 다였습니다.”

링고 스타는 이렇게 말했다.

2019년 링코 스타는 존 레논이 어떻게 죽어갔는지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런 미친 개자식 손에 죽어갔다는 분노가 지금도 치밀어 오릅니다.”

조지 해리슨의 경우에는 언론에 다음과 같은 성명서를 내놓았다.

“결국 우리 모두의 아픔입니다. 저는 지금도 레논을 존경합니다. 충격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생명을 앗아가는 행위는 가장 큰 도적질입니다. 총을 사용하면 타인의 공간을 영원히 침해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자신의 생에 대해서조차 이러저러지 못하는 사람들이 타인의 생명을 앗아가는 행위는 광기입니다.”

그러나 해리슨은 사적으로는 친지들에게 “나는 그냥 밴드가 하고 싶다. 우리는 20년이 흘렀다. 어떤 미친놈이 내 친구를 쐈다. 나는 그냥 밴드에서 기타가 치고 싶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존 레논의 저격범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의 2010년경 머그샷(Public Domain)
존 레논의 저격범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의 2010년경 머그샷(Public Domain)

존 레논의 유산

존 레논의 죽음에 이어지는 얼마 동안 세계는 그의 아내와 동료들과 함께 애도했다. 애도객들은 레논이 저격된 다코타 앞에 모였다. 라디오에서는 비틀즈의 히트곡들이 흘러나왔으며, 전 세계적으로 밤샘 촛불 추모가 이어졌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일부 팬들은 슬픔이 과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레논의 아내 오노 요코는 뉴욕시 관리들의 도움을 받아 남편을 추모하는 일에 나섰다. 몇 달 뒤 뉴욕시는 센트럴 파크의 일부 공간을, 비틀즈의 대표곡 중 하나의 제목을 따서 ‘스트로베리 필즈(Strawberry Fields)’라고 지었다.

그루부터 수년이 흘러 공원의 이 공간은 존 레논의 추모 장소가 되었다. 흑백 대리석 모자이크로 둥글게 장식된 2.5에이커의 스트로베리 필즈 중앙에는 존 레논의 최고 히트곡 ‘이메진(Imagine)’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비틀즈와의 그룹 활동과 솔로 작업을 통해 존의 음악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희망과 영감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오노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그가 펼친 평화의 호소는 여기 스트로베리 필즈에 형상화되어서 영원히 살아있습니다.”

존 레논은 다방면에서 스트로베리 필즈보다 영속하고 있다. 그의 음악은 계속 빛을 발하고 세대를 거슬러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그리고 평화로운 세계를 염원하는, 레논을 대표하는 ‘이메진’은 일부 사람들에게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노래로 칭송받고 있다.

존 레논의 저격범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은 오늘날까지 감옥에 있다. 그의 가석방은 11번이나 거부되었다. 그의 청문회 때마다 오노 요코는 가석방위원회에 편지를 보내 가석방 반대 의사를 밝혔다.

채프먼은 레논의 나쁜 평판 때문에 그를 살해했다고 주장한 바가 있다. 2010년 그는 “저는 존 레논을 죽이면 제가 뛰어난 인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대신에 저는 살인자가 됐으며, 살인자는 뛰어난 인물이 아니지요.”라고 말했다. 2014년에는 그는 “영웅이 되겠다는 잘못된 판단으로 그런 멍청한 짓을 한 행위를 뉘우칩니다. 그리고 주님은 저를 용서해주셨습니다”고 말하기도 했다.

채프먼은 그 이후 자신의 행위를 ‘미리 계획된 이기적이며 사악한’ 행동이었다고 묘사했다. 

 

dtpchoi@wikileaks-kr.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