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피해자 특정 없이 '손준성 영장' 쳤다

직권남용 피해자 '대검 검사'라고만 적어 공수처 "하나의 여지를 두고 기록한 것" 윗선 규명 못하면 가해·피해자 모두 없어 손준성 신분 피해자로 바꾸면 모순 발생 직권남용 적용된 '블랙리스트' 사건 당시, 주심 대법관 "검사의 자의적 선택" 현실화

2021-09-14     윤여진 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 시절 대검찰청의 고발 사주 의혹을 수사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피해자를 특정하지 못한 범죄사실 구성으로 압수수색 영장을 법원에 신청하고 집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선 국면에서 유력 야권 주자에게 제기된 의혹을 파헤치기 위해 피해자가 있는지 확인 없이 일단 존재한다고 상정했다면 설령 사후적으로 피해자가 특정돼도 "형식적인 범죄구성"이라는 지적은 피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

지난 9일 공수처가 법원에 신청한 손준성(사진) 검사 자택과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범죄사실에는 형법 제123조 '직권남용권리행사'가 적혔다. 해당 죄목은 공무원인 상급자가 본인의 직무권한을 남용해 하급자에게 '의무 없는 일'을 시켰을 때 적용이 가능하다. 지난 4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으로 있던 손 검사에게 적용된 핵심 혐의는 제3자에게 '의무 없는 일'인 고발장 작성을 하게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피해자 위치에 있는 제3자 신분을 '대검 소속 검사'라면서도 누구인지 특정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공수처는 이 부분이 알려지자 "누구를 특정해서 우리가 영장에 (직권남용 상대방으로) 기재한 것은 아니다"라며 "하나의 여지를 두고 영장에 기록한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만일 손 검사가 직접 고발장을 작성해 미래통합당(옛 국민의힘)에 넘긴 것이라면 '윗선' 확인 없이는 직권남용죄를 적용할 수 없다. '고발 사주' 자체가 아닌 '고발장 작성'을 범죄사실로 재구성한 공수처 시각에 따르면 손 검사는 '유일한 실행자'로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기 때문이다. 윤 전 총장이나 그의 최측근이 고발장 작성을 지시했다는 단서가 나온다면 법리상 손 검사를 '의무 없는 일'을 한 피해자로 규정해야 직권남용죄 처벌이 가능하다. 하지만 손 검사는 차장검사급 대검 중간 간부로 단순히 지시를 이행할 위치에 있지 않아 '가해자가 피해자로 전도됐다'는 일종의 모순이 발생한다. 결국 손 검사를 윗선의 직권남용 공범으로 본다 해도 별도의 피해자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지난해 1월 문화예술인 배제(블랙리스트) 사건 상고심 선고 때 주심 안철상 대법관은 노정희 대법관과 함께 쓴 보충의견에서 "과정의 행위를 한 사람은 최종행위에 대해서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공범이 될 수 있고, 과정의 행위와 관련해서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상대방이 될 수 있다"면서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는 그 상대방에 따라 각각의 죄가 성립하는 것"이라고 해 피해자가 특정돼야 함을 강조했다. 나아가 지금은 퇴직한 검찰 출신 박상옥 대법관은 별개의견에서 직권남용 피해자는 '좌파 문화예술인'인데도 검사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법인 사무직원으로 쉽게 구성한 점을 문제 삼았다. 세 대법관들의 의견을 법리적 근거로, 공수처가 윗선 규명 실패를 대비해 제3의 검사를 피해자로 그렸다거나, 윗선을 잡기 위해 일단 손 검사로 시작하는 직권남용 범죄부터 만든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 짙은 해석은 무리가 아니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 출신 법무법인 이공 양홍석 변호사는 14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직권남용죄를 (공수처가) 형식적으로 적용한 것 아니냐라고 한다면, 거기에 동의한다"며 "(가해자) 윤석열과 (피해자) 손준성의 관계, (가해자) 손준성과 (피해자) 제3의 검사 관계 내지는 (공범)윤석열·손준성과 (피해자)제3의 검사 관계에 직권남용죄를 적용하는 게 형식적으로는 가능하다. 하지만 이 범죄 본질성 적절한지는 의문이다"라며 그 이유로 "검사들의 공동 범죄가 문제되는 것"이라며 "검사가 검찰총장이 지시한다고 해서 그 위법성을 모르고 따라야 하는 (피해자) 지위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공수처의 '형식적 입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김학의 전 법무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 일부를 넘겨받은 공수처는 검찰이 이미 피해자로 본 검찰간부를 가해자로 재차 구성한 바 있다. 수원지검 안양지청은 2019년 6월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에 '검사가 아닌 조사단원'으로 파견된 이규원 검사가 김 전 차관을 상대로 위법하게 긴급출금을 신청한 사실을 포착했다. 하지만 당시 대검 반부패부장이던 이성윤 서울고검장은 '없던 일로 하라'는 지침을 안양지청에 하달했고 끝내 이 검사는 입건되지 않았다. 이 사건을 재수사한 수원지검은 지난 5월 이 고검장을 '수사 무마' 혐의(직권남용)로 재판에 넘기면서 이현철 당시 안양지청장을 피해자로 상정했다. 검사의 비위사실을 검찰총장에게 보고해야 하는 이 지청장의 직무집행을 방해했다는 취지다. 그런데 공수처는 '안양지청 내부의 직권남용'을 별도로 직권남용으로 구성했다. 안양지청 형사3부는 결국 수사 종결을 대검 반부패부에 보고했는데 이 과정에서 이 지청장이 소속 검사들로 하여금 "긴급출금 부분은 수사계획이 없음" 보고서를 작성하게 한 건 '의무 없는 일'이라는 얘기다. 양 변호사 주장에 따르면 검찰이 간부인 안 지청장을 피해자로 삼은 것도 문제지만, 이미 피해자 지위에 있는 사람을 가해자로 전복하는 건 '자의적인 법 집행'이 될 수 있다. 안 대법관이 블랙리스트 사건 판결문에서 표현한 "큰 우산 아래서 행하여진 모든 지시 행위는 단계, 정도, 내용 등을 가리지 않고 (검사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 현실화된 것이다. 안 대법관은 "검사의 자의적인 선택을 허용하는 것"이라고 비판했었다.

공교롭게도 두 사건에서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를 검토한 건 공수처 수사3부(부장검사 최석규)다. 수사3부 검사들은 현재 압수수색 집행의 적법성을 두고 법원의 심리를 받게 됐다. 지난 10일 공수처는 손 검사로부터 고발장 초안을 넘겨받은 것으로 지목된 김웅 국민의힘 의원을 피의자가 아닌 사건관계인 신분으로 의원실을 압수수색했다. 영장 집행 당시 사무실에 없던 김 의원은 본인 입회 없이 압수수색이 시작된 점을 문제 삼아 영장 취소를 구하는 준항고장을 법원에 제출했다. 13일 별도 영장 발부 없이 2차 압수수색을 한 공수처는 "법원이 발부한 영장에 따른 합법적이고 정당한 압수수색"이라며 이같은 문제 제기에 반박했다. 2차 압수수색에서 공수처가 특별히 확보한 물증은 없었다.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