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105) 노태우, 이승만 대통령 이후 첫 국빈 방문... 한-미 경제적 이익 앞엔 팽팽한 신경전

2021-11-01     최석진 기자
한-미

노태우 대통령과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한-미의 역대 어느 대통령들보다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들의 노태우 민정당 대표, 부시 부통령 시절이던 87년부터 인연을 맺은 후 각각 대통령에 오른 뒤(노태우 88년 2월, 부시 89년 1월)부터 더욱 각별한 사이가 됐다.

부시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1989년 2월 방한했다. 미국 대통령이 취임 직후 외국을 찾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부시는 1991년 7월 노태우 대통령을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초청 일자 확정 및 실무 협의는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던 브렌트 스코크로프트와 현홍주 대사였다.

실무 미팅에서 “이번 방미는 국빈 방문(State visit)이 될 것”이라는 스코크로프트의 말에 현 대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1953년 이승만 대통령 이후 첫 국빈 방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지만, 정통성 논란 때문에 격은 실무방문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던 것이다.

백악관은 민주적인 방법으로 선출된 한국의 대통령을 정중하게 맞이하고 한미간 굳건한 동맹 관계를 지원하기 위해 국빈방문으로 격을 높이는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물론 두 정상의 개인적인 친분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스코크로프트 보좌관은 현 대사에게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서 고적대를 갖춘 의장대 사열 등 공식 환영 행사, 대통령 단독 정상회담, 고위급 각료들이 함께 하는 회의, 백악관 연회실에서 열리는 여흥 프로그램과 무도회가 포함된 공식 만찬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방문 날짜가 정해진 후 구체적인 회담 준비가 진행됐다.

1991년

노태우 대통령은 이미 2년 전인 1989년 10월 미 상하양원 합동회의에서 연설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또다시 연설할 필요는 없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정상회담에서 다룰 주제로는 안보, 경제 및 통상에 관련된 내용들이 선정됐다. 방미는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노태우 대통령은 임기 5년동안 부시 대통령과 일곱 차례의 회담을 가졌다.

장소는 대부분 워싱턴과 서울이었고, 유엔 정기총회가 열릴 때는 뉴욕이 되기도 했다.

부시 대통령과 노 대통령의 만남은 대체적으로 순조롭게 진행됐고, 대체적으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두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서로를 좋게 생각했고 주요 사건과 목표를 다루는데 서로 솔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이유는 당시엔 주한미군 주둔비 인상, 전시작전권 환수와 같은 첨예한 이슈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당시 한미 관계가 순항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한국의 대미 수출이 늘어나면서 한국 수출품이 엄격한 감시를 받다 보니 무역 마찰이 빈번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반도체 반덤핑 관세부과 문제였다. 한국 제조업체, 무역협회, 관련 소비단체들이 연합해 노력한 덕택에 본래 부과했던 덤핑 마진보다 훨씬 낮은 관세를 부과해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을 수 있었다.

[특별취재팀= 최석진, 최정미, 강혜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