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시대] 아바타의 성범죄 처벌

2022-02-23     정숭호 칼럼
호라이즌월드의

“신기술은 예전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동시에 새로운 문제를 일으킨다. (Emerging technologies have a way of solving old problems whilst creating new ones.)”

메타버스를 소재로 한 외국 칼럼을 읽다가 이 ‘격언’에 눈길이 멈췄다.

틀린 말이 아니다. 자동차는 이동 시간을 단축하는 등 인류의 삶을 편리하게 해줬으나 매연으로 대기를 오염시키고 도로 건설로 자연을 파괴하는 부작용을 불러왔다. 휴대전화-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사람들 간의 소통은 쉬워졌고 늘어났지만 예전처럼 한가롭고 조용하며 독립적인 삶을 살기는 어려워졌다. 성찰과 관조의 시간은 사라지고 관음과 노출의 시간이 늘어났다.

최첨단 신기술인 메타버스도 예외는 아니다. 메타버스는 가상세계라는 새로운 공간 안에서 사교와 일, 쇼핑과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해 우리로 하여금 전에 없던 즐거움과 편의를 누리도록 하고 있지만 그만큼 어두운 그림자도 드리우고 있다.

성범죄가 가장 심각한 문제다.

함께 게임을 하던 남성 아바타가 갑자기 옆에 있던 여성 아바타의 민감한 부위를 더듬거나 3~4명의 남성 아바타가 여성 아바타를 강간하는 ‘범죄’도 발생했다. 그러나 메타버스에서 일어나는 성범죄를 처벌하기는 쉽지 않다. 대다수의 국가는 현실 세계에서 진짜 육체를 대상으로 저질러진 성폭행(sexual assault)이나 성희롱(sexual harassment)만 성범죄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메타버스 성범죄와 관련해 법무부 차원의 권고와 방송통신위원회에서 메타버스 내 규범 제정을 위한 사회적 협의체가 발족되기는 했으나 성범죄가 일어났을 때 가해자를 처벌토록 명시한 규정은 없다.

성폭력범죄 처벌법, 스토킹범죄 처벌법,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법, 아동·청소년 보호법 등의 법률에 의거해 처벌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아바타에 대한 아바타의 성범죄 처벌은 피해자와 가해자 간에 ‘신체적 접촉’이 없었다는 이유로 생각만큼 쉽지 않다.
 
메타버스 내 성범죄자 처벌이 법률 미비로 우물쭈물 미뤄지는 사이 메타버스 운영업체들은 스스로 성범죄 발생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는 있다.

메타버스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메타(페이스북)’는 자회사인 호라이즌의 메타버스 플랫폼 호라이즌월드에 들어온 아바타가 성범죄 위협에 처하면 ‘보호막(Protective Bubble)’에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보호막 안에 들어가면 다른 아바타가 건드릴 수 없으며 말도 건넬 수가 없게 된다. 

손가락으로 가볍게 치기만 하면 성범죄자가 멀리 튕겨 나가는 장치를 마련한 게임업체도 있다. 여러 명의 게이머가 편을 나눠 좀비를 활로 쏘아 죽이는 게임인 퀴브르(Quivr)가 그것인데 이 게임 운영업체는 2016년 한 여성 게이머가 바로 옆에 있던 남성 게이머에게서 갑자기 가슴을 더듬는 성추행을 당했다는 신고를 받고 이 장치를 추가했다.

네이버의 계열사가 개발, 운영하는 메타버스인 제페토는 AI를 이용해 금칙어(성적 수치심을 일으킬 수 있는 언어나 욕설)를 걸러내고 메타버스 안에서의 윤리 의식을 고취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상대방의 외모 평가는 자제해 주세요’와 같은 메시지를 보내는 한편 음란성 발언, 불건전 행위 등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으면 채팅을 제재하는 방식이다. 사용자의 경험과 메타버스 상 행동 양식을 주의 깊게 지켜보며 플랫폼에 적합한 해결 방식을 찾으려는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퀴브르 게임을 하다 성추행을 당한 여성은 “과거에 실제로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는데, 그 때 받은 것과 전혀 다르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메타버스 안에서 성범죄의 대상이 된 여성들이 느낀 수치심과 공포는 현실 세계에서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당할 때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아바타에게 가해진 성범죄 처벌을 메타버스 운영 기업에게만 맡겨서는 안 되는 이유는 이것 하나로 충분하다.

/메타버스인문경영연구원 이사장, 전 한국일보 경제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