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 우크라이나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러시아 탱크들' 이유 보니...

걸프전에서 드러난 ‘깜짝 장난감 상자(jack-in-the-box)’ 효과를 개선한 서방 장갑차들과 그렇지 못한 러시아 장갑차들의 차이

2022-04-29     최석진 기자
파괴된

CNN방송은 28일(현지 시각) ‘깜짝 장난감 상자(jack-in-the-box)’ 효과를 개선하지 못한 러시아 탱크들이 이라크 전쟁에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다시 한번 치명적 결함을 드러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포탑 부분이 날아가버린 채 나뒹굴고 있는 러시아 탱크들의 모습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한 징표로 볼 수 있다.

침공을 개시한 이후 수백 대의 러시아 탱크가 파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관련 벤 월러스 영국 국방장관은 지난 25일 러시아가 약 580대의 탱크를 잃었을 것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고민은 파괴된 탱크의 숫자가 어마어마하다는 데에 국한하지 않는다. 전장(戰場)의 사진들을 분석한 전문가들은, 러시아 탱크들이 서방 군대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알고 있는 결함들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결함이란 ‘깜짝 장난감 상자(jack-in-the-box)’ 효과라고도 불린다. 그들은 모스크바 당국이 이런 문제가 발생하리란 사실을 사전에 깨달았어야 했다고 입을 모은다.

문제는 탱크 탄약의 저장 방식과 관련되어있다. 현대화한 서방의 탱크들과는 달리 러시아 탱크들은 다량의 포탄을 포탑 내에 싣고 있다. 그 결과 러시아 탱크들은 간접적인 공격을 받고서도 연쇄반응을 일으켜 최대 40개 포탄이 적재된 포탑 내의 탄약 저장소가 폭발할 수밖에 없는 매우 취약한 구조적 결함을 지니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SNS 동영상들에서 보는 것처럼, 이 탄약 저장소가 폭발하게 되면 포탑이 최대 2층 높이까지 솟아오르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러시아 탱크들에서 목도하는 것은 설계적 결함입니다.”

미국 신안보센터(Center for the New American Security)의 러시아 연구 프로그램 고문인 샘 벤뎃은 이렇게 분석했다.

“러시아 탱크에 유효탄이 명중되면 저장된 폭약들로 재빠르게 불이 번져, 대규모 폭발이 일어나면서 포탑이 문자 그대로 날아가 버리는 겁니다.”

이러한 결함 때문에 러시아 탱크의 탱크 병사 3명(한 명은 운전병, 두 명은 포탑병)은 손쉬운 목표물로 전락하게 된 것이라고, 지상전 분석 전문가이자 전직 영국 육군 장교 출신인 니콜라스 드러먼드는 말했다.

“피격 1초 이내에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통닭구이 신세를 면치 못할 겁니다.”

‘깜짝 장난감 상자(jack-in-the-box)’ 효과

드러먼드는 탄약 폭발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사용하고 있는 거의 모든 장갑차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최대 3명의 승무원이 탑승하고 5명의 병사를 추가로 태울 수 있는 러시아산 BMD-4 공수장갑차의 예를 들었다. 그는 BMD-4는 로켓에 명중될 경우 ‘순식간에 사멸하는 이동식 관’으로 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러 문제들 중에서도 자국 탱크의 설계 결함 문제는 실제 사례들을 보고 받고 있는 모스크바 당국에게는 특히 쓰라린 개전 상황 중 하나이다.

탱크의 이러한 구조적 결함에 대해 서방측은 이라크를 상대로 한 1991년과 2003년의 걸프전쟁 때부터 알게 되었다. 이라크군이 사용하던 수많은 러시아제 T-72 탱크들이 대전차 미사일 공격에 포탑 부분이 탱크 몸체에서 분리돼 날아가는 처참한 운명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드러먼드는 러시아가 이라크전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결과 러시아 탱크들이 우크라이나에서도 그들의 자동 장전 미사일 시스템과 함께 설계 결함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1992년 T-72의 후속 제품인 T-90 시리즈가 실전 배치되었을 때 장갑(armor)은 향상되었지만 미사일 자동 장전 시스템의 취약점은 개선되지 않았다고 드러먼드는 지적했다.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비슷한 계열의 러시아 탱크 T-80도 비슷한 미사일 장착 시스템을 지니고 있다.

러시아 탱크 시스템에는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 연구 프로그램의 샘 벤뎃 고문은, 러시아는 공간 확보와 안정적 자세 확보 때문에 이런 시스템을 채택하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서방측은 이라크전에서 러시아제 T-72의 고전을 보고 교훈을 얻었다.

우크라이나군

“서방 군대는 걸프전에서 러시아산 탱크들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교훈을 얻어 탄약 저장소를 분리하게 되었습니다.”

드러먼드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1차 걸프전 이후 개발된 미국의 ‘스트라이커 보병 장갑차(Stryker infantry fighting vehicles)’를 사례로 들었다.

“이 장갑차는 상층부에 포탑은 있지만 그 포탑이 탱크병들이 있는 공간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냥 위에 얹혀있을 뿐이고, 모든 포탄은 그 안에 저장됩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포탑 부분이 날아간다고 해도 아래의 병사들은 안전할 수 있는 겁니다. 아주 뛰어난 발상이지요.”

미군과 일부 동맹군이 사용하는 ‘M1 에이브럼스(M1 Abrams)’ 같은 서방측의 탱크는 크기가 더 크고, 회전 포탑 부분이 아예 없다. ‘M1 에이브럼스’의 4번째 탱크병은 분리된 공간에서 포탄을 꺼내 발사실로 옮길 수 있다.

격실에는 탱크가 포탄을 맞을 경우 탱크병이 열고 닫을 수 있는 문이 있다. 즉, 탱크가 명중되면 포탑에 있는 하나의 포탄만이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된다.

“아주 정확히 명중된다면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겠지만, 항상 탱크병들이 몰살당하지는 않지요.”

벤뎃은 이렇게 분석했다.

그리고 그는 서방 군대가 사용하는 포탄들은 미사일 공격을 받았을 경우 고열로 인해 불에 탈 수는 있어도 폭발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탱크병은 교체 불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현재까지 정확히 몇 대의 러시아 탱크들이 파괴되었는지 파악할 길을 없다. 오픈 소스 정보 모니터링 웹사이트 Oryx는 28일 최소 300대의 러시아 탱크가 파괴되었으며, 또 다른 279대가 손상되거나 버려지거나 노획되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사이트는 눈으로 확인 가능한 사례들만 계산한 것으로 실제 손실은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이런 손실들은 장비에만 그치지 않아서 더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 국방장관 벤 월러스는 하원 보고를 통해 약 580대의 탱크가 파괴되었을 것으로 추산하면서 1만5000명 이상의 러시아 병사들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사자들 중 몇 명이 탱크병들인지는 알기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탱크병들은 교체가 쉽지 않은 전문 병사들이라는 점이다.

핀란드 방위군의 전 탱크 병사였던 인레스키 로이닐라는 탱크병을 훈련시키는 데는 최소 1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그 정도면 빠른 겁니다.”

게다가 현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에 수백 명의 탱크병을 또 투입한다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 수 밖에 없다. 자국 탱크가 구조적 결함을 안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한 현 시점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