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분석] 푸틴 "비우호국에 원자재 수출금지"…산업계 "올 게 왔다"

"제재 대상 외국 기업·개인과의 통상·금융 거래 금지" 비우호국 지정된 韓, 루블화 폭락에 수입품 제재까지 자동차·전자 업계, 수출 급감에 원자재 리스크도 겹쳐

2022-05-06     최종원 기자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비우호국에 러 제품·원자재 수출금지를 명령하면서 국내 산업계에 다시 비상이 걸렸다. 러시아는 지난 3월 우리나라를 비우호국가로 지정하면서 외교적 제한을 포함한 각종 제재를 가할 것을 시사했다. 나프타를 비롯해 원유와 유·무연탄과 철강, 반도체 소재 등을 수입하고 있어 제재가 단행되면 산업계가 피해를 입는 형국이다.

4일(현지 시간) 로이터 통신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일부 외국과 국제기구의 비우호적인 행동'에 대응해 보복 제재 성격의 특별 경제조치 적용에 관한 대통령령에 서명했다고 크렘린궁이 밝혔다.

러시아는 이번 법령에 따라 제재 목록에 오른 외국 기업과 개인 등에 러시아산 제품 및 원자재 수출을 금지할 예정이다. 또 법령은 제재 대상인 외국인과 외국 기업 등과의 금융 거래를 금지하고, 기존에 러시아 측이 체결한 거래에 관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도 담았다.

이날 법률 정보 공시 사이트에 게재된 대통령령은 "(러시아) 연방국가기관과 지방정부 기관, 러시아의 법적 관할하에 있는 기구와 개인은 특별경제 조치의 대상(제재 대상)이 되는 (외국) 법인 및 개인 또 그들의 통제하에 있는 기구들과 통상 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비롯한 (모든) 거래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대통령령은 이어 별도 항목을 통해 "제재 대상을 위해 공급될 수 있는 러시아제 생산품과 채굴 원료의 국외 반출도 금지한다"고 밝혔다. 제재 대상에 대한 상품 및 원자재 수출을 중단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대통령은 그러면서 향후 10일 내로 구체적 제재 대상 명단을 확정하라고 정부에 지시했다.

구체적인 제재 대상과 목록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도 포함할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는 지난 2월 침공 대상국인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미국·영국과 유럽연합(EU) 회원국, 그리고 캐나다·호주·뉴질랜드·일본·노르웨이·싱가포르·대만 등을 비우호 국가에 포함시켰다. 지난 3월에는 자국과 자국 기업, 러시아인 등에 비우호적 행동을 했다고 판단한 국가들과 지역 목록을 담은 정부령을 발표하면서 한국을 포함했다.

8일

작년 기준 전체 교역에서 러시아는 2.2% 수준이지만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8%에 달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따르면 러시아 의존도가 20% 이상인 수입품목은 118개에 이른다. 에너지와 금속류, 수산물이 주를 이뤘는데 러시아산 수입 비중이 50% 이상인 품목도 62개에 달했다.

118개 품목 중 수입액이 가장 많은 품목은 나프타(43억8000만달러)로, 러시아산이 해당 품목 전체 수입액(187억달러)의 23.4%를 차지했다. 나프타는 석유류의 일종으로 휘발유나 석유화학 등의 원료로 쓰인다. 석유와 역청유에서 특정 비중 제품(28억8000만달러)은 러시아산 비중이 92.6%, 반도체 생산에 쓰이는 팔라듐(5억달러)은 러시아산 비중이 33.2%였다.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희귀가스인 크립톤과 네온의 의존도는 각각 30.71% 23.0%다. 

단기적으로 직접적인 영향은 크지 않아도 지난 2월 말부터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된 만큼 불확실성은 커질 전망이다. 이미 업계에선 대(對)러 제재가 장기화될 시 교역에 악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이미 수출통제 장기화만으로 경제성장률이 최대 0.06%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원자재 수입 통제까지 받을 경우 지표가 더욱 악화할 수 있다. 러시아는 세계 원유 수출의 12%, 천연가스 수출의 7%를 차지하고 있다. EU는 이미 높은 대러 에너지 의존도(원유 26%, 석탄 46%, 천연가스 41%)를 줄이기 위해 석탄 수입 금지를 발의하고 천연가스 의존도를 3분의 1 수준으로 줄이기로 했다.

반면 국내는 아직까지 러시아 제재와 관련해 정부 차원의 구체적인 결의안은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산업계에선 이미 비우호국 지정 당시 산업통상자원부에 "적용받게 되는 조치에 대해 우려가 크고, 특히 루블화 결제에 따른 환차손 피해 등이 예상되므로 정부차원의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산업부는 동 문제에 대해 관계부처와 긴밀히 협의할 것이라고 답변했을 뿐 대응 방안은 발표하지 않았다.

특히 지난 3월 26일부로 57개 비전략물자의 대러시아 수출을 상황허가 품목에 포함해 다양한 전기전자 장비를 통제 대상에 편입함으로써 수출 통제를 강화하면서도, 러시아가 우리나라에 제재할 품목에 대해선 숙고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러시아의

이미 대러 제재 강화로 우리 기업의 교역에 부정적 영향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수출의 40%를 차지하는 자동차산업 타격이 크다. 현대차는 지난달 러시아에서 자동차 8000대를 팔아 전년 동월 대비 58% 급감했으며, 기아 역시 7000대를 판매해 67% 줄었다. 현대차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은 아직까지 재가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비슷한 상황이다. 두 기업 모두 현재 글로벌 해상 물류 차질로 인해 러시아로 향하는 수출 물품 출하는 잠정 중단한 상태다. 다만 러시아에 있는 현지 공장의 경우 아직 가동 중단 등 조치는 검토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LG는 스마트폰, 가전제품, TV, 반도체 칩 등 점유율이 높아, 철수를 감행하면 다른 외국 기업에 자리를 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러시아 원자재 수입 제재에 대비해 이미 대체 교역처를 확보했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이 우려돼 수익성이 악화될 수 밖에 없다"며 "올해 장비 수급의 어려움으로 장비 조달도 불확실해진 상황에서 경영 환경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위키리크스한국=최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