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자존심 크라이슬러까지 넘보는 중국 [최석진의 경제전쟁]

2017-08-16     위키리크스한국
중국 자동차업체가 미국 제조업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자동차업체 인수에 전격 뛰어들었다.

대상은 미국 자동차 '빅3'로 불리는 피아트크라이슬러(FCA)다.

미국 자동차 전문매체인 오토모티브뉴스에 따르면 지난주 중국 자동차업체 대표단이 미시간주 크라이슬러 본사를 방문했고 최소 한 차례 인수 제안이 오갔다. 피아트크라이슬러 경영진도 중국을 방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인수 조건이 맞지 않아 합의에는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업계에서는 판단하고 있다.

양측 간 인수 타진 사실이 전해지자마자 피아트크라이슬러 주가는 뉴욕 증시에서 8.5%나 급등했다.

중국의 어느 업체가 인수전에 나섰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오토모티브뉴스는 중국 최대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제작사인 그레이트월(창청), 둥펑자동차, 광저우자동차그룹(GAC), 지리자동차 등을 꼽았다. 피아트크라이슬러 측은 사실 확인을 거부했다.

일단 이번 시도가 불발로 끝났지만 중국 자동차업체의 크라이슬러 공략은 계속될 공산이 크다. 피아트크라이슬러 대주주인 이탈리아 지주회사 엑소르가 매각 의사를 계속 피력해온 데다 중국 업체들은 크라이슬러의 간판 브랜드인 지프(Jeep)나 램(Ram)과 같은 SUV에 큰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시장은 지프의 최대 수요처 중 한 곳이기도 하다.

중국 정부는 자동차 부문을 전략산업으로 육성해 세계 최고 위치에 오르고자 하는 야심을 품고 있다. 컨설팅회사 오토모티브의 마이클 던 최고경영자(CEO)는 중국의 목표는 글로벌 자동차 분야 1위이며 시장 지배적 위치를 차지할 때까지 중국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을 펼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항저우에 본사를 둔 지리자동차가 2010년 스웨덴 업체 볼보를 포드자동차에서 15억달러에 인수한 일이나 중국 국영 화학업체 켐차이나가 2015년 이탈리아 타이어업체 피렐리를 78억6000만달러에 사들인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중국 정보기술업체 텐센트는 올 들어 미국 전기차업체 테슬라 지분 5%를 매입했다.

블룸버그는 중국 자동차업체들이 향후 10년간 해외 자동차 관련 업체를 인수하기 위해 1조5000억달러의 실탄을 투입할 계획을 세웠다고 전했다. 이는 중국이 지금까지 글로벌 자동차 시장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단행해온 규모와 비교해도 70%나 큰 수치다.

중국 자동차업체들은 지난 10년간 미국에서 열린 모터쇼에 빈번히 명함을 내미는 등 미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절치부심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크라이슬러를 수중에 넣을 수 있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피아트크라이슬러는 전 세계에 162개 제조 기지와 87개 연구개발(R&D)센터를 가동하고 있다. 특히 미국 내에 2600개에 달하는 딜러십을 보유하고 있다. 캐나다와 멕시코에도 탄탄한 영업망을 갖췄다. 중국 업체들이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일부 자동차 전문가는 중국의 크라이슬러 인수가 무모한 도전이 아니라고 분석하고 있다. 대주주인 엑소르나 세르조 마르키온네 피아트크라이슬러 CEO가 비싼 값을 쳐주는 인수 희망자에게 회사 경영권을 넘길 의지를 보이고 있는 점은 중국 업체의 인수 가능성에 긍정적인 대목이다. USA투데이는 "미국 납세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미국 자동차업체가 중국 자본에 넘어갈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크라이슬러는 2009년 혹독한 구조조정기에 들어갔고 미국 정부에서 공적자금을 지원받았다. 이후 미 연방대법원은 피아트사에 크라이슬러를 매각하는 안건을 승인했다.

반면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가 포드, GM과 함께 미국 자동차 '빅3' 중 하나인 크라이슬러를 중국에 넘겨주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본인의 지지 기반인 '러스트벨트'(미국의 쇠락한 공업지대)에 상당한 공을 들였고 취임 일성으로 '미국인을 고용하고, 미국산을 구입하라'고 외쳤다.

최근 미국 정치권은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그룹의 마윈 회장이 미국 송금회사 '머니그램'을 인수하려 하자 강력 반발하기도 했다. 머니그램이 중국 정부에 넘어가면 미국 금융시장 정보는 물론 미국 국민의 금융거래 정보에 대한 엄청난 접근경로를 열어줄 수 있다는 게 반대하는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