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칼럼] 부엉이, 노무현, 북악산, 그리고 문재인

문 대통령, '흉지' 청와대 빨리 나와 광화문 사무실로 옮겨 공약 이행해야

2018-07-06     윤 광원 기자
문재인

 

'계파 줄세우기' 논란을 일으켰던 더불어민주당 '친문' 사조직 '부엉이 모임'이 결국 해산했다.

이 사조직은 결국 당대표 선거를 앞두고, 정작 자신들이 '옹위'하고자 했던 문재인 대통령에게 정치적 '타격'을 입혔음은 물론, '정치적 출발점'인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도 큰 '누'를 끼치는 결과가 됐다는 점에서, 대단히 바람직하지 못한 처사였다.

노 전 대통령은 경남 김해시 봉화산의 '부엉이바위'에서 투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재임시절 사랑했던 산은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이다.

그는 틈만 나면 참모들과, 혹은 기자들과 북악산을 올랐다.

심지어 '탄핵 사태'로 직무가 정지됐을 때는 북악산 구석구석을 다 누비고 다녔다.

그러다 찾아낸 것이 '비밀의 정원'이라는 백사실계곡이다.

도롱뇽이 사는 청정 계곡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백사실계곡은 이름과 그 곳에 있는 별서(별장)터 때문에 조선의 명재상 '백사' 이항복의 별서가 있던 곳이라고 알려졌는데, 사실은 추사 김정희의 별서터이고, 백사실이란 이름은 흰 모래가 많은 계곡이라 해서 생긴 것이다.

명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성균관대 석좌교수는 당시 문화재청장으로 재직중이었는데, 느닷없는 노 전 대통령의 호출을 받았다.

'탄핵된 대통령이 왜 찾을까' 의아해 하며 청와대에 들어 온 유 교수에게 노 전 대통령은 백사실계곡을 소개하면서, 국민들에게 널리 알릴 것을 부탁했다.

유 교수는 고민 끝에 백사실계곡을 '국가 명승'으로 지정, 문화재로 승격시켰다.

노 전 대통령은 또 '금단의 땅'이었던 북악산을 국민들에게 돌려줬다. 군시설을 빼고는 개방, 북악산 성곽길을 온전히 돌아볼 수 있게 한 것이다.

북악산 기슭 성북동에는 그 자그마한 기념비가 있다.

노 전 대통령의 '계승자'인 문재인 대통령도 북악산을 사랑한다. 문 대통령 역시 북악산을 자주 오른다.

하지만 그 북악산 바로 밑에 자리잡은 청와대는 문 대통령에게 좋은 곳이 아니다. 아니, 한시라도 빨리 떠나야 할 곳이다.

청와대 터는 조선시대 때 경복궁의 일부였다.

경복궁은 일찍부터 '터가 흉하다'는 평을 받았다. 조선 2대 정종은 흉하다면서 고려 때의 도읍지인 개경 '수창궁'으로 돌아가기 까지 했다.

경복궁이 완공된 지 오래지 않아 '왕자의 난'이 일어나, 궁 안에서 당시 태조 방석이 이복형(이방원)에게 참살당했다.

태종 이방원은 다시 한양으로 도읍을 옮겼지만, 경복궁은 기피했다. 신하들이 모두 반대했지만 고집스럽게 창덕궁 신축을 강행, 그 곳으로 입주했다.

지금 서울에는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 등 5대 궁궐이 있는데 한 도시에 궁이 2개 이상인 곳은 세계에서 서울 뿐이라고 한다.

정궁인 경복궁은 후대의 다른 왕들도 쓰지 않아 사실상 버려졌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도망치자, 분노한 백성들이 가장 먼저 불태워버려, 줄곳 폐허로 남아있었다.

그러다 경복궁을 중건한 흥선대원군은 공사가 끝난 지 얼마 안 돼 권좌에서 쫓겨났고, 그를 축출한 주역인 민비는 곧 '을미사변'에서 궁을 습격한 일본 낭인들에 의해 '난자'를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경복궁은 또 버려졌다.

이러니 '흉지'가 아니라고 우길래야 우길 수가 없다. 그 흉지에 입주한 대한민국 대통령들도 무사치 못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임기말, 혹은 퇴임 후에 큰 고초를 겪었거나, 지금도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

문 대통령도 그 전철을 밟을 것인가.

그러잖아도 문 대통령은 대선 때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에 사무실을 열겠다고 공약했었다.

자신을 위해서라도 하루 속히 그 공약을 이행하는 게 좋겠다.

[위키리크스한국=윤광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