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이재용이 박근혜·최순실에게 준 뇌물은 86억"

최순실 딸 정유라에게 넘긴 말 3마리 모두 뇌물 인정 다수의견 "소유권 아닌 처분권 넘어가도 뇌물로 봐야" 동계재단 지원금도 3자 뇌물 인정, "부정한 청탁 존재" 횡령 50억원...징역 3년 이하에 적용하는 '집유'는 불가

2019-08-29     윤여진 기자
29일

대통령 탄핵과 정권교체를 불러온 국정농단의 핵심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 공동정범인 이들에게 뇌물을 제공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모두 유죄가 인정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29일 나왔다. 박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로부터 파면당한 지 902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에게서 구속기소당한 지 864일 만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오후 2시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 선고공판에서 박 전 대통령과 최씨, 이 부회장의 뇌물죄와 제3자 뇌물죄가 모두 인정된다는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은 우선 삼성그룹이 최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제공한 말 3마리의 구입대금은 뇌물이라고 판단했다. 전원합의체 다수의견은 "뇌물수수에서 말하는 수수란 뇌물을 취득하는 것을 말한다"며 "법률상 소유자로부터 반환을 요구받지 않는다면 처분 권한을 가진다"고 판시했다. 삼성 측이 정씨에게 '살시도' '비타나' '라우싱' 말 3마리에 대한 처분권을 넘긴 이상 소유권을 여전히 가지고 있더라도 뇌물죄가 인정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이어 삼성 측이 최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운영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재단에 지급한 지원금 16억원 역시 '제3자 뇌물죄에 따른 뇌물'이라고 봤다. 제3자 뇌물은 부정한 청탁을 받은 공무원이 비공무원에게 뇌물을 공여하게 할 경우 적용된다. 

대법원 다수의견은 "부정한 청탁은 명시적인 의사표시가 없다고 하더라도 청탁의 대상이 되는 직무집행 내용과 제3자에게 제공되는 금품이 직무집행에 대한 대가라는 점에 대해 당사자 사이에 공통 인식이나 양해가 있으면 묵시적 의사표시로도 가능하다"며 "부정한 청탁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특정할 필요 없고, 공무원 직무와 제3자에게 제공되는 이익 사이에 대가관계를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특정되면 충분하다"고 했다. "승계 작업을 도와 달라"는 이 부회장의 요청이 겉으로 없었다 해도, 이같은 부정한 청탁이 기업활동에 절대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박 전 대통령에게 '이심전심'으로 전달됐다면 제3자 뇌물죄가 성립된다는 해석이다. 그 과정에서 제3자인 최씨 측에 금품이 전달됐기 때문이다.

부정한 청탁이 존재하려면 논리적으로 현안이 있어야 하는데 대법원은 이 부회장에게 '경영권 승계 작업'이라는 포괄적 현안이 있다고 결론 냈다. 다수의견은 "이미 발생한 현안 뿐만 아니라 장래에 발생될 것으로 예상되는 현안도 부정한 청탁의 내용이 될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 "최소비용으로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들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에 대한 이 부회장의 지배권 강화라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미래전략실 중심으로 삼성그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승계작업을 진행했다"고 했다. 구체적 현안의 필요성에 대해선 "승계작업 자체로 대가관계 인정할 수 있으므로 승계작업 성격으로 이뤄지면 구체적인 각각의 현안과 대가관계를 특정하여 증명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삼성 측이 '컨트롤타워'인 미전실을 통해 이 부회장의 지분 강화를 계속해서 기획한 가운데 금품이 오간 만큼 '포괄적인 현안을 구성하는 구체적인 현안'을 따로 증명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회삿돈을 가로챈 이 부회장의 뇌물액은 86억여원에 이를 전망이다. 원심에서 인정된 삼성 측이 최씨가 설립한 코어스포츠에 송금한 용역대금 36억 3484만원에 정씨에게 사준 말 구입비 34억 1797만원을 더하면 직접 뇌물액수는 70억 5281만원이다. 여기에 최씨 측이 운영한 영재센터가 삼성 측으로부터 받은 제3자 뇌물액 16억 2800만원을 더하면 뇌물액은 모두 86억 8081만원이다. 삼성 돈을 빼내 뇌물로 준 만큼 횡령액도 금액이 같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 따르면 횡령액이 50억원 이상일 경우 뇌물공여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진다. 징역 3년 이하일 때만 내려질 수 있는 집행유예는 원칙적으로 선고될 수 없다.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