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트리플 위기 속 ‘시계제로’ 삼성… “집행유예 빛줄기 살아 있다”

한일 전쟁, 글로벌시장 침체에 오너 법적 이슈까지… 전문가들 “향후 치밀하게 대응하면 집유 끌어낼 수 있다”

2019-08-30     전제형 기자
대법원은

“불확실성이 커지는 경제상황 속에서 삼성이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 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대법원이 29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횡령 혐의에 대해 뇌물 액수를 늘려 다시 심리하라며 파기환송한 직후 삼성이 정부와 국민의 지원을 부탁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그동안 수많은 법적 이슈들이 있었지만 삼성이 입장문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삼성이 느끼는 위기 의식이 엄중하다는 얘기다.

그동안 반도체-스마트폰 등 주요 사업 부문의 글로벌 실적 악화에 이은 한일 경제전쟁으로 초유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이 부회장에게 파기환송심이라는 또다른 위기까지 더해진 상황이다. 이제 삼성과 이 부회장에게는 파기 환송심 재판 대응이 최우선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대법원은 상고심 사건을 파기하며 2심에서 뇌물이 아니라고 했던 부분까지 대거 뇌물로 판단했다. 말 3필 값 등 대법원이 뇌물이라고 추가로 판단한 부분까지 다 합치면 이 부회장이 건넸다는 뇌물액은 86억원에 이른다. 작년 초 2심이 인정한 뇌물액(36억원)보다 50억원 늘어난 것이다.

현행법상 횡령액이 50억원 이상이면 징역 5년 이상을 선고하게 돼 있어 법 조문으로만 보면 집행유예가 어렵지만, 판사가 재량으로 형을 감경할 경우 집행유예도 가능하다. 다만,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뇌물 액수가 70억원이었는데도 집행유예가 나온 바 있어, 이 부회장의 파기 환송심에서 집행유예를 기대할 수 있다는게 변호사들의 설명이다.

파기 환송심의 첫 재판은 빨라야 2개월쯤 후에 잡힐 것으로 보인다. 파기 환송심을 거쳐 대법원에 재상고된 뒤 최종 결론이 나기까지 1년 넘게 걸릴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대법원

한 법조인은 “상황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크게 불리해졌지만, 파기환송심에서 집행유예를 이끌어낼 수 있는 포인트들이 잠재해 있다”고 말했다.

우선 ‘묵시적 청탁’ 문제를 짚어볼 수 있다. 변호인단은 “법적 개념의 ‘묵시적 부정한 청탁’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며 부정한 청탁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특검의 상고를 대부분 그대로 받아들여 상반된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은 “부정한 청탁의 대상 또는 내용은 구체적일 필요가 없고, 공무원의 직무와 제3자에게 제공되는 이익 사이 대가관계를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특정되면 충분하다. 대가관계에 대한 인식은 미필적인 것으로 충분하고 확정적일 필요가 없다”며 박영수 특검과 같은 시각을 나타냈다. 그러면서도 대법원은, 위 ‘대가관계’를 인정한 근거 내지 이유에 대해선 구체적 판단을 내놓지 않았다.

이 때문에 파기환송심 심리 과정에서 치열한 법리다툼이 예고되고 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대법원 판시 이유에 따라 그 범위 안에서 사건을 재심리해야 한다. 다만 여기에는 예외가 있다. ‘파기환송판결 기속력의 제한’이 그것이다.

우리 대법원이 인정하는 기속력의 예외는, 환송 후 심리과정에서 새로운 증거가 제시돼 대법원의 기속적 판단의 기초가 된 증거관계에 변동이 생기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 한 경우, 파기심 심리과정에서 기존 사실관계를 배척할만한 새로운 진술 혹은 증거가 나온다면 상고심의 그것과 다른 판결을 선고할 수 있다.

이 사건 대법원과 1심, 박근혜 전 대통령 항소심의 판단이 사실상 같고, 이 사건 항소심과 롯데 신동빈 회장 사건 항소심, 박 전 대통령 1심의 판단이 유사하다는 점이 주목되고 있다. 재판부의 견해가 3대3이어서 파기환송심이 실제로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공판 과정에서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은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사정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이재용

전원합의체에 참여한 대법관 가운데 3명이 다수의견과 다른 반대 의견을 제시한 점, 대법원이 부청한 청탁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이 사건 ‘뇌물의 성격’에 관한 원심 판단을 부인하지 않은 점, 양형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은 점 등도 파기환송심 심리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변수로 꼽힌다.

조희대, 안철상, 이동원 대법관은 “피고인 박상진이 최서원의 면담 요구를 거절하면서 ‘요구사항을 알려주면 지원해 주겠다’는 의사를 표시했을 뿐, 살시도의 소유권 또는 실질적 처분권의 이전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최서원이 박원오를 통해 황성수에 보낸 요구사항을 보더라도 살시도의 소유권을 요구하는 내용은 없으며 막연한 사정들만으로 실시도의 소유권 또는 실질적 처분권을 이전하려는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견해였다.

이들 대법관들은 한 필당 10억원이 넘는 고가의 말을 뇌물로 제공한 것이 맞는다면, 그 뒤 삼성이 최씨 측에게서 돈을 받고 마필운송차량 3대를 매각한 사실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파기환송심은 그 기간을 예단하기 힘들어 빠르면 6개월, 늦어지면 1년 이상 길어질 수 있다”며 “이 부회장의 집행유예 가능성이 여전히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위기의 한복판에 빠져 있는 삼성과 이 부회장에게 경영적 불확실성이 지속된다는 것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위키리크스한국=전제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