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재판부 "심리 중에도 총수로서 해야할 일 당당하게 해 달라"

재판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이례적으로 직접적 당부 "삼성그룹 내 자체적 준법 감시제도 만들어야" "이건희 회장, 신경영 선포로 위기를 혁신으로 극복"

2019-10-25     정예린 기자
25일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첫 재판이 25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렸다. 이례적으로 심리가 끝날 무렵 재판부는 이 부회장에게 '삼성 신경영 선포'를 언급하며 경제인으로서의 역할도 충실해 달라는 당부의 말을 전했다. 

서울고법 형사1부 심리로 이날 오전 열린 재판에서 정준영 부장판사는 “공판을 마치기 전 몇 가지 사항을 덧붙이겠다"면서도" 다만 파기환송심 재판이 시작된 지금 이 시점에서 재판 진행이나 결과와는 무관함을 분명히 해 둔다"고 말하며 3가지 사항을 당부했다.

정준영 부장판사는 “이 사건의 수사와 재판을 위해 많은 국가적 자원이 투입됐고, 위법행위가 다시는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국민적 열망도 크다"며 “그러나 몇 가지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삼성그룹이 다시 이 사건과 같은 문제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먼저 삼성그룹 내부의 불법 감시제도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정준영 부장판사는 “삼성그룹 내부에서 총수도 무서워할 정도의 실효적이 준법 감시제도가 작동되고 있었다면 이 법정에 앉아있는 피고들 뿐 아니라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최서원 씨도 이 사건과 같은 범죄를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기업 내부의 실효적 준법 감시제도는 하급 기관의 비리만 방지하는 것이 아니라 고위직 임원과 기업 총수의 비리 행위도 방지할 수 있는 철저한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미국 연방법원의 양형기준인 제 8장과 이에 따라 미국 대기업들이 시행하고 있는 준법 감시제도를 참고해 달라고 덧붙였다.

이어 우리나라 재벌 체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재벌 체재는 과거 모방형 경제 모델로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해 왔으나 과도한 경제 집중 현상, 일감 몰아주기, 단가 후려치기 등으로 공정 경쟁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정 부장판사는 “이 사건은 대기업 집단, 즉 재벌 총수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저지른 범죄"라며 “재벌 체재로 인해 우리 국가 경제가 혁신형 경제 모델로 도약하는데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경고음이 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외 각종 도전에 직면해 있는 이 엄중한 시기에 대한민국 대표 기업의 총수는 재벌 체재로 인한 폐해를 시정하고 혁신적 경제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정준영 부장판사는 이건희 부회장을 언급하며 이재용 부회장에게 직접적으로 당부하는 말을 전했다. 특히 국내외 경제 불확실성에 당면한 국가 경제를 위해 대표 기업 총수로서의 역할을 이어가 달라고 당부했다.

정준영 부장판사는 “우리나라 대표 기업 총수로서 어떤 재판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통감하고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로 본 심리에 임해달라"면서도 “심리 기간 중에도 당당하게 총수로서 해야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 부장판사는 1993년 독일 프랑크프루트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선포한 ‘삼성 신경영 선포'를 언급하며 “당시 만 51세의 이건희 삼성그룹 총수는 낡고 썩은 관행을 모두 버리고 사업의 질을 높이자는 이른바 삼성 시경영을 선포하고 위기를 과감한 혁신으로 극복했다"며 “2019년 똑같이 만 51세가 된 이재용 삼성그룹 총수의 선언은 무엇이고 또 무엇이어야 합니까?”라고 말하며 심리를 마무리 했다.

[위키리크스한국=정예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