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프리즘] SK家 최태원-노소영 1조원대 재산분할 소송...재벌가 이혼소송 살펴보니

한국 법원, 재산형성 기여도 중시 미국 법원, 판사 재량 따라 비귀책 배우자 요구 상당 반영

2019-12-05     양철승 기자
노소영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2017년 7월 최태원 SK 회장이 제기한 이혼소송에 맞소송(반소)을 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세간이 떠들썩하다. 특히 노 관장이 최 회장을 상대로 1조원을 웃도는 재산분할을 청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앞으로 전개될 법정 공방에 초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노 관장은 지난 4일 서울가정법원에 최 회장을 상대로 이혼과 위자료, 재산분할을 청구하는 소장을 제출했다. 지난 2년여간 “가정을 지키고 싶다”는 이유로 이혼불가 입장을 표명해온 노 관장이 끝내 최 회장과의 결별을 선택한 것.

소장에서 노 관장은 3억원의 위자료와 함께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의 42.3%에 대한 재산분할을 청구했다. 최 회장은 현재 그룹 지주사인 SK의 주식 약 1,297만주(지분율 18.44%)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이중 42.3%(약 548만주)는 4일 종가 기준 1조4,000억원의 금전적 가치를 갖는다.

특히 재계는 노 관장의 재산분할 청구가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질 경우 노 관장이 최 회장의 뒤를 이어 SK의 지분 약 7.74%를 보유한 2대 주주로 등극한다는 점에서 지배구조 변동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법조계는 일단 어떤 상황에서도 최 회장의 SK그룹 경영권은 위협받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 회장의 지분율이 다소 낮아지겠지만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6.85%), 최재원 SK 수석 부회장(2.36%),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0.09%) 등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감안할 때 충분히 경영권 방어가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노 관장이 지주사의 대주주로서 그룹 경영에 관여하는 것까지는 막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또한 법원이 노 관장의 청구를 전액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우리나라 이혼소송에서 재산분할의 대상은 부부가 함께 협력해 이룩한 공동재산으로 국한돼 있기 때문이다. 부부 중 일방이 혼인 이전부터 보유하고 있던 재산과 상속·증여받은 재산, 혼인 중 자신의 명의로 취득한 재산은 민법상 ‘특유재산’으로 분류되며 원칙적으로 분할 대상이 아니다.

재벌가는 이런 특유재산의 비중이 매우 높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여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의 이혼소송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9월 서울고법 가사2부는 이 사장과 임 전 고문의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이 사장이 임 전 고문에게 지급해야할 재산분할액을 141억1,300만원으로 결정했다. 임 전 고문의 당초 재산분할 청구액 약 1조2,000억원의 1.175%에 불과한 금액이자 이 사장의 재산으로 알려진 1조5,000억원과 비교해도 1% 미만이다.

나라마다

재판부는 이 사장의 재산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신주인수권부사채(BW)가 부친인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증여 받은 자금으로 인수한 특유재산으로 봤다.

다만 특유재산이라도 다른 일방이 적극적으로 그 유지에 협력함으로써 재산의 감소를 방지했거나 증식에 기여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재산분할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게 2002년 8월 나온 대법원의 판례다.

이에 법조계는 노 관장 변호인단이 향후 법정에서 이 부분을 집중 공략할 것으로 예상한다. SK의 전신인 선경이 지금의 SK그룹으로 성장하는 도약대가 됐던 이동통신시장 진출에 노 관장의 부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후광이 적지 않았음을 부각하는 전략이 그중 하나다. 이를 입증해 낸다면 최 회장의 현 재산과 지분 형성에 노 관장이 일정부분 기여했다는 판결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서울 서초동의 한 이혼전문 변호사는 “이혼의 귀책사유가 최 회장에게 있다는 점은 노 관장이 받게 될 재산분할 비율을 높여줄 긍정적 요인”이라며, “반면 재산형성 기여도 입증 책임이 노 관장에게 있는 상황에서 부친의 정치적 영향력이라는 무형적 기여를 실제적으로 입증하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에서는 재벌의 이혼소송에서 귀책사유자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위자료와 재산분할액을 지급하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올해 4월 이혼한 제프 베조스 아마존 창업자겸 최고경영자(CEO)가 그 실례다.

베조스 CEO의 전 아내인 맥킨지 베조스는 당시 남편과 이혼에 합의하는 대가로 아마존 전체 주식의 4%를 넘겨받았다. 시가로 383억 달러, 한화로 환산해 무려 46조원에 해당하는 주식이었다. 맥킨지는 이로 인해 ‘블룸버그 억만장자지수’에서 세계 22위의 부호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베조스 CEO가 살고 있던 미국 워싱턴주는 ‘부부공동재산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이 제도는 남편과 아내가 결혼에 동등하게 기여했음을 전제로 결혼 중에 취득한 재산은 이혼 시 무조건 50:50으로 분할토록 하고 있다. 베조스 CEO가 법원 판결이 아닌 합의이혼을 했음에도 전처에게 이처럼 많은 재산을 양도한 이유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 한 변호사는 “우리나라 법원은 법조문을 토대로 재판이 진행돼 재산분할의 방향과 비율이 대동소이하게 판결되는 경향이 짙다”며, “이와 달리 미국은 법조문이 우리보다 상대적으로 치밀하게 구성돼 있지 않아 판사 재량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위키리크스한국=양철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