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018년 4·27 판문점 선언 합의에 따라 철거했던 대남확성기 방송 시설을 다시 설치하고 있는 것으로 군 당국은 확인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전단살포를 저지하기 위해 관련 법을 입법하고, 판문점선언을 당론으로 추진할 의사를 밝혔음에도 선언이 무효화될 조짐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22일 군 소식통에 따르면 군 당국은 북한이 최전방 지역의 대남 확성기 방송 시설 재설치 작업을 하는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무장지대(DMZ) 일대 여러 곳에서 재설치가 이뤄지고 있다.
이는 최근 북한군 총참모부가 군사행동을 예고한 이후 대남 전단을 대량 인쇄하는 등 대남 심리전 차원의 후속 조처로 풀이된다.
종전 선언이 포함된 평화체제 구축을 골자로 한 남북간 '판문점 선언'에 따라 북한은 2018년 5월 1일 최전방 지역 40여 곳에 설치한 대남 확성기를 철거했다.
판문점 선언은 지난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판문점에서 공동으로 연내 6.25 전쟁의 종전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 확인을 핵심으로 한 선언문이다. 다만 종전 선언은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아 '반쪽짜리 선언문'이라는 지적도 제기된 바 있다.
민주당은 지난 10일 북한이 남북간 통신연락 채널을 차단한 데 일제히 유감을 표시하면서 문제의 근원인 대북전단 살포를 저지하기 위해 관련 법을 입법하겠다고 밝혔다. 또 판문점선언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의도가 무엇이든 어렵게 복원한 통신 연락 채널을 단절한 것은 매우 유감"이라며 "코로나19 위기가 확산하는 지금이야말로 북한이 남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대화와 교류에 적극적으로 나설 때"라고 지적했다.
박주민 최고위원은 "북한은 더는 대남압박을 멈추고 문제 해결을 위해 대화에 나서야 한다"면서 "전단살포 저지 입법을 두고 보수 세력이 북한에 대한 굴종이다, 하명법을 만들려 한다고 비판한 것은 온당치 않다"고 말했다.
김해영 최고위원은 "남북 통신은 평화적 교류를 위한 필수 요소이며 우발적 상황에 의한 군사 충돌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판"이라며 "한반도 긴장을 높인 행위를 즉각 중단하고 평화를 위한 대화의 길로 나서라"고 했다.
통일부도 지난 19일 한 탈북민단체에서 대북전단과 쌀 페트병 살포를 강행하겠다고 밝히자 경찰·지방자치단체와 긴밀히 협력해 현장대응 등 단속을 강화하고 엄정하게 살포 행위를 차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법무부도 검찰에 "경찰 등 유관기관과 협력해 대북전단 등 무단살포 행위를 엄정히 대응하라"고 주문했다.
경기도와 포천시는 최근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북풍선단 이민복 대표의 집이 무허가 시설임을 확인하고 해당 주택의 철거를 지시했다. 아울러 경기도는 군부대를 제외한 연천군·파주시·김포시·고양시 등 접경지 5개 시·군을 오는 11월30일까지 위험구역으로 설정하는 내용을 담은 '위험구역 설정 및 행위 금지 행정명령'을 내리며 대북전단 살포 제재에 총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북한은 보복을 멈추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간 대북전단으로 고통을 받아왔으니 고스란히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0일 보도를 통해 "여태껏 해놓은 짓이 있으니 응당 되돌려 받아야 한다"며 "한 번 당해봐야 기분이 얼마나 더러운지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이라며 날 선 반응을 보였다.
군 당국도 북한군이 확성기 시설을 설치하면 철거했던 시설을 복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북한이 이미 남북관계를 '유화적' 기조에서 '적대적' 기조로 전환했다고 보고 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지난 10일 '2020년 전반기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북한이 탈북자 대북 전단 살포에 반발하며 '대남사업'을 '대적사업'으로 전환하고 단계적으로 추진한다고 언급했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정 장관은 "북한이 9·19 남북 군사합의 파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 남북 간 통신선 차단 등을 거론하며 우리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며 "9·19 군사합의 이행 요구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위키리크스한국=최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