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90) 명동성당 농성학생 강제해산, 미 대사 “전세계 들끓을 것” 반대하다
청와대-백악관 X파일(90) 명동성당 농성학생 강제해산, 미 대사 “전세계 들끓을 것” 반대하다
  • 특별취재팀
  • 승인 2021.03.29 06:53
  • 수정 2021.03.29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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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백악관 x파일
청와대 백악관 x파일

제임스 릴리 대사는 정무과의 의견을 무시하고 87년 6월 10일 민정당 전당대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사가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던 언론들은 깜짝 놀랐다.

미 대사관이 ‘불참’을 선언한 이후 서울 외교가에는 전당대회 불참 신드롬이 번졌고, 실제 이날 행사에 서울에 주재한 대사가 60여명이나 참석하지 않았다.

전당대회는 철저하게 연출된 행사였다. 릴리 대사는 훗날 “전당대회는 미식축구시합의 응원석을 연상케 했다. 치어리더들이 선창하면 팬들이 군중 환호로 화답하는 식이었다”고 기술했다.

전당대회가 끝나자 노태우 후보는 릴리 대사에게 다가와 “어려운 걸음 해주신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사의를 표했다.

노태우가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공식 지명된 이날, 서울에서는 전례 없는 대규모 군중시위기 일어났다. 간선제 방식으로 대통령을 뽑겠다는 전두환의 계획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시위였다. 서울 도심은 시위대로 뒤덮였다.

시위 군중은 학생들만이 아니었다. 가정주부, 직장인, 상인, 학교 교사들까지 시위에 가담했다. 한국의 중산층 대부분이 궐기하거나 동조하면서 한국의 시위는 세계의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당시 화제가 됐던 이란-콘트라 스캔들 보도를 능가했다.

이날 밤 격렬한 시위를 이어가다 쫓긴 소수의 학생들이 서울 명동성당으로 들어가 농성을 벌였다. 시민들은 학생들에게 옷과 음식과 돈을 갖다주며 응원했다.

명동에서 농성하는 학생들. 릴리 대사는 최광수 외무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명동성당을 강제 해산하려 할 경우 전세계가 들끓게 될 것”이라며 경찰력 투입에 반대했다. [출처=카톨릭평화신문]
명동에서 농성하는 학생들. 릴리 대사는 최광수 외무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명동성당을 강제 해산하려 할 경우 전세계가 들끓게 될 것”이라며 경찰력 투입에 반대했다. [출처=카톨릭평화신문]

정부 내에서는 학생들을 강제로 몰아내자는 강경론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저돌적인 특수부대원과 이에 반항하는 학생들의 충돌은 성당을 피로 물들일 것이 뻔했고, 그 처참한 광경이 TV화면을 통해 전세계로 퍼질 경우 한국 군사정권의 신뢰도는 추락할 수 밖에 없었다.

6월 13일 릴리 대사는 최광수 외무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명동성당을 강제 해산하려 할 경우 전세계가 들끓게 될 것”이라며 경찰력 투입에 반대했다.

최광수 장관은 대사의 의견을 청와대에 전달했고, 정부는 명동성당 사태를 사제들의 중재로 평화롭게 해결하는 유화책을 택했다. 

명동성당 농성 학생들은 해산했지만, 위기는 더욱 고조되어갔다.

반정부 데모는 전국적으로 끊임없이 이어졌다. 미국은 타협할 줄 모르는 전두환이 광주사태를 되풀이 할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군에게 데모를 막으라고 명령해도 모든 군인이 다 따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돌았다.

광주진압 특전부대 사령관이었던 정호용 장군의 경우 민간 소요에 군을 투입하는데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최악의 경우 한국군끼리 내전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시위 중 최루탄에 뒷머리를 맞은 이한열. 로이터 통신 기자가 전세계에 타전한 이 사진 한장이 대한민국의 6월을 흔들어놓았다. [이한열 기념관]
시위 중 최루탄에 뒷머리를 맞은 이한열. 로이터 통신 기자가 전세계에 타전한 이 사진 한장이 대한민국의 6월을 흔들어놓았다. [이한열 기념관]

◇ 6월 항쟁을 고조시킨 이한열 열사 사건

6월 항쟁의 가장 큰 동력 중 하나는 이한열 열사 사건이었다. 이한열은 '고문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를 앞두고 6월 9일 연세대에서 열린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 후 시위 도중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뒷머리를 맞았다.

일부 전경이 시위진압 도중 시위대를 겨냥해서 최루탄 SY44를 총처럼 수평으로 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것이 머리에 맞은 것이다.

당시 이한열이 머리에 최루탄을 맞고, 같은 대학 학생(도서관학과) 이종창에 의해 부축당한 채 피를 흘리는 사진을 당시 로이터 사진기자였던 정태원이 촬영해 전세계에 타전하면서 전두환 독재정권의 폭압적인 무력진압의 잔인성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

이한열은 한 달 동안 사경을 헤매다가 7월 5일 만 20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대낮에 길거리에서 한 청년이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는 점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함께 전두환 정권의 잔인성에 대해 전 국민적인 분노를 이끌어 냈고 6월 항쟁이 걷잡을 수 없이 격해지는 계기가 됐던 것이다.

[위키리크스한국=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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