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의사가 어떻게... 취미삼아 환자들을 살해했던 의사 해럴드 시프먼
[WIKI 프리즘] 의사가 어떻게... 취미삼아 환자들을 살해했던 의사 해럴드 시프먼
  • 최석진 기자
  • 기사승인 2021-05-10 06:55:35
  • 최종수정 2021.05.10 0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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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럴드 시프먼은 2004년 교도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생을 마감했다. [출처=public domain]
해럴드 시프먼은 2004년 교도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생을 마감했다. [출처=public domain]

최근 독일의 동부 포츠담의 한 병원에서 직원이 환자 4명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져 전세계 의료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경찰은 용의자를 붙잡아 사건 경위를 수사하고 있다.

의료인은 환자가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낼 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직업이다.

그러나 의료인이 악마로 변하는 순간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곤 한다.

의사라는 직위를 이용,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수백명을 죽인 연쇄 살인마도 있다.

영국의 해럴드 시프먼 박사 1975년부터 1998년까지 주치의라는 지위를 이용해 약물을 주사하는 방법으로 250여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시프먼은 환자들의 신뢰를 이용해서 먼저 환자에게 있지도 않은 병을 진단한 후, 치사량의 헤로인(diamorphine)을 주입하곤 했다. 대략 250명의 환자들에게는 해럴드 시프먼의 진료실을 찾은 때가 생의 마지막 순간이 되었다.

평범한 생활 속에 감추어졌던 해럴드 시프먼

해럴드 시프먼은 1946년 잉글랜드 노팅엄에서 태어났다. 그는 학창 시절 뛰어난 학업 성취 능력을 보였으며, 럭비를 비롯한 스포츠에도 자질이 뛰어났다.

하지만 시프먼의 삶은 17살이 되면서부터 변화를 맞기 시작했다. 그해 시프먼이 특히 사랑했던 어머니가 폐암으로 사망했던 것이다. 그는 어머니의 병실을 지키면서 담당 의사가 환자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모르핀을 처방하는 장면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바로 이 순간부터 시프먼이 가학적 살인 광란을 위한 범죄 수법의 영감에 사로잡혔다고 추정한다.

시프먼은 어머니가 사망한 후 리즈 의과대학에 다니면서 프림로스 메이 옥스토비라는 여성과 결혼했다. 이 부부는 4명의 자녀를 낳았고, 시프먼의 삶은 밖에서 보기에는 지극히 평범했다.

시프먼은 1970년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수련의 생활을 빠르게 끝마치고, 웨스트요크셔의 메디컬센터에서 일반의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시프먼이 처음으로 법을 위반하기 시작한 곳도 이 메디컬센터에서였다. 젊은 의사였던 시프먼은 자신이 복용하기 위해 아편 유사제인 데메롤을 불법적으로 처방하다가 적발되었다. 데메롤은 극심한 통증을 동반하는 환자들에게 처방되는 마약성 진통제이다. 그는 이 약물에 중독되었던 것이다.

시프먼은 벌금형 처벌을 받고, 일자리에서도 쫓겨난 후, 요크의 재활 클리닉에서 재활 치료를 받아야했다.

하지만 해럴드 시프먼은 빠르게 정상을 되찾은 것처럼 보였으며, 1977년 하이드에 있는 도니브룩 메디컬센터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잡았다. 그는 1993년 개업하기 전까지 이 곳에서 15년 동안 직장생활을 더했다. 그는 환자들과 공동체 사이에서 훌륭한 의사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는 특히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좋은 평판을 얻었다.

그러나 이 훌륭한 의사가 한편으로는 환자들을 살해하는 살인마였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1961년 젊은 해럴드 시프먼의 모습 [출처=트위터]
1961년 젊은 해럴드 시프먼의 모습 [출처=트위터]

선한 의사의 소름끼치는 범죄행각

시프먼이 자신의 환자를 처음으로 살해한 것은 1975년 3월이었다. 70세의 에바 라이언스는 생일 전날 참변을 당했다.

이번에는 시프먼은 수백 명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헤로인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음 해가 될 때까지 그가 마약에 중독된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시프먼은 같은 해에도 처방을 위조한 혐의로 해고되었지만, 의사들의 규제 단체인 ‘일반의료위원회(General Medical Council)’는 그의 자격을 박탈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저 경고 서한을 받았을 뿐이다.

시프먼은 수십 년 동안 단속적(斷續的)으로 살인 광란을 지속했지만, 그의 살인 수법은 언제나 동일했다. 그는 노인으로는 93세의 앤 쿠퍼에서부터 최소 연령으로는 41세의 피터 루이스에 이르기까지, 심신이 미약한 환자들을 먹잇감으로 삼았다.

시프먼은 치사량의 헤로인을 처방한 후 환자가 자기 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거나, 귀가시켜 집에서 사망하도록 했다.

시프먼은 도니브룩 메디컬센터에서 일할 때 71명, 그리고 나머지는 개업의 생활을 할 때 살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희생자 중 171명은 여성, 44명이 남성이었다.

하지만 1998년 시프먼의 병원이 있던 하이드 공동체의 장의사들이 죽어나가는 그 병원 환자들에 대해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기 시작했다. 나아가 이웃 병원의 의사들은 시프먼 병원 환자들의 사망률이 자신들 병원보다 거의 10배가 높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염려를 지역 검시관에 통보하고, 그레이터맨체스터 경찰국에도 알렸다. 운이 따랐다면 시프먼의 살인극은 여기서 끝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러지 못했다.

경찰 수사관들은 시프먼의 전과 기록 등 가장 기초적인 내용들을 점검하는 데 실패했다. 만일 그때 경찰이 의료위원회에 시프먼의 기록을 조회했다면 그가 과거에 처방 위조 범죄를 저지른 사실에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교활한 시프먼은 희생자들의 기록에 허위로 병명을 기재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흔적을 지워나가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조사 과정에서는 관련자들의 염려를 뒷받침할만한 사실들이 드러나지 않았으며, 소름끼치는 이 의사는 살인행각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었다.

해럴드 시프먼이 대부분 심신이 미약했던 환자들을 살해했던 개인병원 모습 [출처=페이스북]
해럴드 시프먼이 대부분 심신이 미약했던 환자들을 살해했던 개인병원 모습 [출처=페이스북]

마침내 마각을 드러낸 끔찍한 살인행각

시프먼의 살인행각은 그가 81세의 캐틀린 그런디라는 희생자의 유언장을 위조하려는 시도를 하다가 마침내 세상에 마각을 드러내게 되었다. 캐틀린 그런디는 하이드 지역의 전임 시장이었다.

시프먼은 그런디에게 치사량의 헤로인을 처방한 후 증거를 감추기 위해 그녀가 화장(火葬)하기를 바랐다고 유언장을 위조하려했다. 그는 타자기를 이용해서 그런디가 가족을 배제한 채 모든 것을 자신에게 일임했다는 유언장을 작성했다.

그런디는 매장되었고, 그녀의 딸인 앤젤라 우드러프는 지역 변호사를 통해 유언장 내용을 통보받았다. 우드러프는 그 즉시 범죄의 기미를 감지하고 경찰서로 달려갔다.

우드러프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믿을만한 내용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의사한테 맡긴다는 어머니의 유언장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지요. 엉망진창으로 타이핑된 유언장에 어머니가 서명을 했다는 사실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뒤이어 1998년 8월 그런디의 시신이 다시 파내졌고, 그녀의 근육조직에서 헤로인 성분이 검출되었다. 시프먼은 같은 9월 7일 체포되었다.

그 뒤를 이은 두 달 동안 또 다른 11구의 희생자 시신들이 발굴되었다. 그리고 경찰 전문가는 시프먼의 진료 컴퓨터를 조사해서 그가 사망진단서를 허위로 발급하기 위해 거짓으로 자료들을 입력한 사실도 발견해냈다.

시프먼은 그런디가 헤로인이나 모르핀에 중독되었으며, 자신의 기록들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은 그가 희생자가 사망한 후에 기록들을 컴퓨터에 입력한 사실도 찾아냈다.

그런 다음 경찰은 시프먼이 치사량의 헤로인을 주입한 14건의 다른 경우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이 경우들에도 환자들의 사망진단을 허위로 내리고, 그들이 어차피 죽을 목숨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의료기록들을 조작했다.

해럴드 시프먼은 자신의 살인행각을 언제나 부인했으며, 경찰이나 범죄 심리관들에게 협조하지도 않았다. 경찰이 그에게 질문하거나 희생자들의 사진을 들이대면 그는 항상 눈을 감고, 하품을 하는 등 어떤 증거물품도 쳐다보려하지 않았다.

경찰은 시프먼이 저지른 15건의 살인만을 기소할 수 있었으나, 그가 죽인 사람들의 숫자는 250~450명이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해럴드 시프먼의 음울한 최후

시프먼은 2000년 가석방 불가를 조건으로 종신형을 언도받았다.

시프먼은 처음에 맨체스터 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웨스트요크셔에 있는 웨이크필드 교도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생을 마감했다. 그는 58번째 생일을 하루 앞둔 날인 2004년 1월 13일 감방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시프먼은 자살 전에 자신을 담당하는 보호감찰관에게 아내가 연금과 목돈을 받을 수 있도록 자살을 고려중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시프먼의 자살과 함께 살인행각의 동기가 다시 수면으로 떠올랐다. 그가 살인을 저지르도록 만든 요인을 두고 수많은 주장들이 난무했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가 자신의 어머니 죽음의 복수를 시도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시프먼이 노인층을 위해 안락사를 도와주었다는 다소 동정적인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한편, 시프먼이 ‘내가 남들보다 우월하고, 내 판단과 평가가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믿는 갓 콤플렉스(God Complex)의 소유자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는 타인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가져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는 말이다.

dtpchoi@wikileaks-kr.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