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94) 전국적으로 거세지는 시위… 흔들리는 노태우, 미 대사관에 피신 고민하기도
청와대-백악관 X파일(94) 전국적으로 거세지는 시위… 흔들리는 노태우, 미 대사관에 피신 고민하기도
  • 특별취재팀
  • 기사승인 2021-05-20 07:20:42
  • 최종수정 2021.05.20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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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백악관 x파일
위키리크스 '청와대 백악관 X파일' [위키리크스한국DB]

1987년 6월 24일은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중대한 변곡점을 기록한 날이었다.

이날 전두환 대통령은 오전 야당 지도자였던 김영삼 총재와 회동한데 이어 오후 개스턴 시거 미 국무부 아.태담당 차관보와 면담했다. 시거 차관보는 이날 전두환 대통령을 만나기에 앞서 노태우 민정당 대표와 회동했다.

제임스 릴리 주한 미국대사가 배석한 이 자리에서 시거는 “미국은 한국 상황에 개입할 의사가 없다”면서도 “권력 이양은 반드시 평화적이어야 하며 한국정부는 보다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태우는 이 자리에서 야당에 대한 불신, 미국에 대한 반감을 면전에서 드러냈다.

“민정당은 야당이 과격 세력과 단절한다면 언제라도 대화할 용의가 있습니다. 야당 지도자들을 만나면 민정당의 이 같은 굳은 결의를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매우 자주 바둑에서 훈수를 자청한 사람들이 큰 위기에 부닥치곤 합니다. 미국이 조언 이상의 일을 준비하고 있으며 한국정부에 압력을 가할 것이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노태우)

노태우는 “한국 국민들은 미국이 정치적 변화를 달성할 유일한 세력이라는 과도한 기대를 가질 수도 있으며 이는 역효과를 낼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거는 이에 대해 “노 대표가 바둑을 잘 둔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하는 일에 행운이 따르기를 기원한다”면서 말싸움을 피했다. 릴리 대사는 노 대표가 시거와의 회동에서 평상시 자신을 절제하는 스타일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었다고 피력했다.

릴리 대사는 “집권당 지도자로서 노태우는 전두환 보다 정치사고의 변화에 더 민감한 것 같았다”며 “노태우는 전두환이 지명한 후계자로서, 그의 정치적 입지가 현 대통령의 신세를 지고 있는 형편이었다”고 덧붙였다.

전두환과 노태우의 사고방식 차이는 노태우를 무척 애타게 했다.

릴리 대사는 25일 밤 한 사석에서 노태우는 “내가 지금 우리나라에서 어려운 시기에 아주 어려운 자리에 있음을 한다”고 말했다. 그의 한 측근은 대사에게 “6월 들어 불확실한 나날이 거듭되면서 노 대표가 너무 걱정이 많고 두려워 대사관에 피신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었다”고 귀띔했다.

1987년 상반기 전국적으로 직선제 요구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전두환 대통령과 후계자인 노태우는 대외적으로는 ‘호헌’을 주장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직선제 수용문제를 심도 있게 고민해왔다.

"6월 중순, 노 대표와 저녁을 함께 할 때 내(전두환)가 직선제를 검토해 보라고 했더니 노대표가 펄쩍 뛰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필사즉생, 필생즉사'라고 했어요. 그리고 인간사회의 모든 원리가 백보 전진을 위한 일보후퇴에 있다, 지는 사람이 이기는 거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전두환 육성증언)
       
또 당시 고명승 보안사령관은 “그 해 4월 보안사 핵심부에서 대통령 직선제와 1년 뒤 중간평가 아이디어가 나왔다. 또 정치인을 사면 복권할 경우 특정인을 배제시킬 필요가 없다는 판단도 있었다"고 훗날 피력했다.

1987년 6월 서울 명동성당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연합뉴스]

민주화 요구 시위가 날로 거세진 중심에는 박종철 사건이 있었다.

1987년 1월 사망한 서울대 박종철 군 사망사건에 대해 5월 18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박종철 사건이 조작됐다고 발표했던 것이다.

"야훼 하느님께서 동생 아벨을 죽인 카인에게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물으시니 카인은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잡아떼며 모른다고 대답합니다. 창세기의 이 물음이 오늘 우리에게 던져지고 있습니다. 지금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희 아들, 너희 제자, 너의 젊은이, 너희 국민의 한 사람인 박종철은 어디 있느냐?' '그것은 고문 경찰관 두 사람이 한 일이니 우리는 모르는 일입니다.' 바로 카인의 대답입니다." (김수환 추기경, 박종철 추모미사에서)

박종철 진상조사 문제에 더해 연세대 이한열 군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뇌사상태에 빠지면서 시위는 날로 거세져 6월 26일의 경우 37개 도시에서 100만명이 시위를 벌이기에 이르렀다.

[위키리크스한국=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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