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95) 거센 민주화 쓰나미… ‘직선제’ 6·29 선언으로 漁父之利 노리다
청와대-백악관 X파일(95) 거센 민주화 쓰나미… ‘직선제’ 6·29 선언으로 漁父之利 노리다
  • 특별취재팀
  • 기사승인 2021-06-02 11:14:19
  • 최종수정 2021.06.0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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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백악관 x파일
청와대 백악관 x파일

1987년 6월 29일 민정당 본부. 의례적인 출입기자 모임에서 사진 촬영이 끝나고 헤어지려는 기자들을 노태우 대통령 후보가 ‘잠시 더 남아달라’고 붙잡았다.

그 방에 있던 기자들과 생중계된 TV를 시청하던 시민들은 노 후보의 극적인 개혁안 발표에 소스라치게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저는 지금 우리나라 장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6·29 선언에서 노태우는 대통령 직선제를 비롯해 김대중을 포함한 모든 정치범 석방 등 야당의 주장을 모두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국민들은 대환영했고, 외교관들은 “전두환 정부에서 처음 본 깜짝 놀랄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날 노 후보가 발표한 가장 중요한 내용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통한 1988년 2월 평화적 정권이양 선언이었다.

그는 여기에 대통령선거법 개정을 통한 공정한 경쟁 보장, 김대중의 사면복권과 시국관련 사범들의 석방, 인간존엄성 존중 및 기본인권 신장, 자유언론의 창달, 지방자치 및 교육자치 실시, 정당의 건전한 활동 보장, 과감한 사회정화 조치의 단행 등을 발표했다.

6·29 선언은 2년여의 민주화 대장정이 낳은 결실이었다.

야당과 재야세력은 2년여 전인 1985년 2·12총선 이후 간선제로 선출된 제5공화국 대통령 전두환의 도덕성과 정통성의 결여와 비민주성을 비판하면서 줄기차게 직선제 개헌을 주장해왔다.

이에 전두환 정권은 1987년 4월 13일 일체의 개헌논의를 금지하는 호헌조치를 발표했고, 이러한 상황에서 서울대생 박종철이 그해 1월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국은 급속히 냉각되기 시작했다. 

6월 10일 전국 18개 도시에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주최하는 대규모 가두집회가 열리고, 이 집회를 기폭제로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한 때 군 투입까지 검토했던 전두환 정권은 결국 국민들의 ‘직선제’ 요구를 수용하기에 이른 것이다.

6·29 선언을 발표하는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 [연합뉴스]
6·29 선언을 발표하는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 [연합뉴스]

전두환 정권이 직선제 요구를 받아들인 이유는 세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박종철-이한열이라는 두 명의 젊은이 희생을 토대로 민주화 요구가 대학에서 주부, 넥타이 부대로 확대됐다는 점이다. 시위는 6월말 하루 100만명으로 확산됐다.

둘째,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친서까지 전달하면서 ‘군 동원 불가’를 천명했다는 것이다. 1980년 5월과 달리 미국이 철저하게 군사이동을 제어했다는 것은 전두환 정권으로서는 엄청난 압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은 한국의 폭력사태를 개탄하고 군사행동을 경고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셋째, 전두환 정권이 다음해인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있었다는 점도 직선제 수용의 중요한 원인이 됐다. 세계적인 대축제를 앞두고 유혈사태는 도저히 선택할 수 없는 카드였던 것이다. 

소련관영 타스통신은 6·29 선언에 대해 "한국의 여당이, 미국의 군사전략 계획에 손상을 입힐 수도 있는, 국내 정치상황 악화에 대한 미국의 심각한 우려에 따라 이번 조치를 취했다"고 일본 전문가의 말을 빌려 논평했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의 직선제 요구 수용은 나름 철저한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것이었다.

노태우에 비해 머리회전이 빨랐던 전씨가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자는 의견을 냈을 때, 노태우는 처음엔 반대했다.

전두환은 연금 중인 김대중씨가 해금되어 대선에 출마할 경우 야당이 2개나 3개로 쪼개진 상태로 대결하게 하면 필승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설명해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부지리(漁父之利) 전략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전두환은 김대중을 정치적으로 해금시킨 후 안기부를 통해 어마어마한 정치자금을 비밀리에 지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노태우는 전두환의 각본에 찬성해, 고심 어린 표정을 지으면서 대결단을 내린 연기(?)를 했던 셈이다.

[위키리크스한국=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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