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김진욱의 '선별 입건' 인권 보장일까, 침해일까
[WIKI 프리즘] 김진욱의 '선별 입건' 인권 보장일까, 침해일까
  • 윤여진 기자
  • 승인 2021.06.21 16:40
  • 수정 2021.06.2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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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에서는 고소·고발장이 접수되면 바로 입겁되지 않나. 바로 사건번호 붙고, 바로 피의자가 된다. 그러나 저희(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그런 문제 때문에 사건의 조사분석을 거쳐 바로 입건되지 않도록.... (공수처) 시스템 자체는 형사고소되면 자동입건, 피의자 되는 거 피하기 위해 만든 시스템이다"

지난 17일 오후 경기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첫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처장. [출처=연합뉴스]
지난 17일 오후 경기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첫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처장. [출처=연합뉴스]

지난 17일 첫 기자회견을 가진 김진욱(사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처장은 공수처가 직접수사하는 '공제○호'를 붙인 사건을 "아무래도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의혹이 있는 사건"으로 달리 부르며 이같이 말했다. 차기 유력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피의자로 입건한 '옵티머스펀드 사기 사건 부실 수사'(공제7호)와 '한명숙 전 국무총리 정치자금법 사건 수사팀 수사 방해'(공제8호)를 두고 '사실상 입건만으로 수사 당사자(윤 전 총장)에겐 타격이 있다'는 물음을 반박하는 차원이었다. 김 처장은 본인 주장을 뒷받침하고자 지난달 4일에 제정한 '공수처 사건사무규칙'을 인용하며 "조사분석 거쳐서 바로 입건되지 않도록 만든 게 현재 (공수처) 설립준비단부터 내려온 시스템"이라 했다. 해당 규칙 제13조는 '수리사건을 인수한 (공수처) 분석담당검사는 고소인·고발인 조사를 통해 수사 필요성을 분석한다'고 정한다. 공수처는 사건을 접수해도 '공수처 검사'가 바로 입건하지 않고 혐의 여부를 먼저 따진다.  

이날 김 처장 발언은 공수처가 윤 전 총장을 사실상 내사했더니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가 있다고 말한 것과 다름 없다. 공수처 사건사무규칙은 분석담당검사가 불입건하는 이유는 '혐의없음·죄가안됨·공소권없음'이라고 밝히고 있는 까닭이다. 때문에 김 처장은 "정치일정을 본다든지 그런 상황에서 수사하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차기 대통령) 선거에 영향이 없도록 처리하겠다"고 덧붙였다. 대선을 앞두고 입건했지만 대선에 영향을 주지는 않겠다는, 말 그대로만 보면 이해하기는 어려운 발언이다. 한편으론 올해부터 바뀐 수사기관의 입건 절차를 숙지하지 못한 언론과 기자의 무지를 우회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그는 "공수처 사건사무 규칙상 사건이 어떤 절차(를 거쳐 접수되는지) 대략적으로 진행되는지 알아야"라고 뼈 있는 말을 남겼다.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된 검찰청법에 따라 '검찰청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는 6개뿐이다. 시민사회단체가 언론 보도를 근거로 고발장을 제출해도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 범죄나 대형참사가 아니면 수사개시는 불가능하다. 대신 같은 날 시행된 형사소송법에 따라 사법경찰관은 검사의 지휘를 받지 않고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 수사한다. 때문에 '검찰청이 사건을 수리하거나 기록을 접수하는 사무'를 구체적으로 정한 '검찰사건사무규칙'에는 '수사사건'이 사라지고 '조사사건'이 등장한다. 법무부는 "검사의 수사지휘 제도가 폐지되고, 피혐의자의 수사기관 출석조사가 있는 경우 등의 경우 수사를 개시한 것으로 보아 입건하도록 함"이라며 "수사사건을 조사사건으로 개편하여, 수사의 개시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사건만을 조사사건으로 처리하도록 함"이라고 개정이유를 소개한다. 직접수사 범위 6개 범죄가 아닌 사건이나 고위공직자범죄 사건을 접수한 검찰청 검사는 일단 '조사사건'으로 수리한 후 경찰에 이송하거나 공수처에 이첩해, 이쪽에서 피의자를 출석조사하면 그제야 입건으로 해석할 수 있는 '수사사건'으로 본다는 얘기다. 

시민단체의 고소·고발장 제출과 동시에 피의자로 입건하는 절차는 딱 지난해까지 유효했다. 이같은 입건 방식에 사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대표적 인물이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다. 지난해 1월 그는 조국 전 법무장관 아들 조권씨에게 허위 인턴증명 서류를 발급해준 혐의(업무방해)로 재판에 넘겨졌는데 애초 본인은 피의자로 입건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소 자체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1월 28일 최 대표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9단독 정종건 판사는 이같은 최 대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현행법상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최 대표는 검찰의 공소권 남용을 주장하며 "검사가 검찰청법, 검찰사건사무규칙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재판 내내 "단 한 번도 피의자로서 출석요구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피의자로 전환된 시점이 검사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수제번호 부여시점인 2019년 12월 9일이라면, 당시 형제번호를 부여하지 않고 수제번호를 부여한 것은 검찰사건사무규칙 제143조의4 제1항 제1호를 위반한 것"이란 논지를 폈다. 공수처에 '공제○호'가 있다면 검찰엔 '형제○호'가 있다. 또 공수처에서 내사 단계를 가리키는 '내사○호'에 대응하는 게 검찰의 '수제○호'다. 최 대표 주장은 검경수사권 조정 후속 조치로 없어진 옛 검찰사건사무규칙 조항에 따르면 '입건은 수사사건부에 형제번호를 기재한다' 돼 있는데, 본인이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요구를 받았을 때 서류엔 형제번호가 아닌 수제번호가 적혀있단 것이다. 피의자로 출석요구를 받으면 검찰에 출석하는 게 맞지만 피내사자 신분에선 그럴 필요가 없단 논리다. 피의자가 아닌 상태에서 검사가 입건해 수사했으니 수사 자체가 위법하단 주장이 이어진 이유다.

1심 재판부는 "수제번호는 (검찰청) 검사가 내사사건 등을 '수사사건'으로 수리한 경우에 부여되는 번호로서 '수사사건'은 수사를 개시할 필요가 있는 사건을 그 대상으로 하므로, 대상자인 피의자에 대하여 출석을 요구하여 진술을 듣는 등 피의자 소환조사가 진행될 수 있음은 당연하다"면서 "수사사건에서도 혐의를 받는 대상자는 '피의자'로 지칭된다"고 설시했다. 여기서 '수사사건'이란 '입건 전이라도 수사를 개시할 필요가 있는 사건'을 말한다. 피내사자 역시 피의자이며, 피내사자 신분에서 사실상 입건을 할 수 있다는 판시다.  

결국 김 처장 발언은 최 대표가 본인 기소가 부당하다며 근거로 내놓은 '피의자 입건'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문제는 이같은 방식은 오히려 '선택적 수사' 의심의 빌미를 준다는 데 있다. 사건을 접수하면 형식적으로 피의자를 입건한 뒤 실질적으로 혐의 유무를 수사하는 과거 방식은 고소·고발 남용을 방조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런데 이 방법이 다른 의미에선 유명무실해졌다는 평가를 받는 '검사의 객관의무'를 보증하기도 한다. 입건 사건 중에 실체 판단을 통해 '혐의없음' 처분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통계청이 운영하는 'e-나라지표'에 등재된 지난해 '(검찰청) 전체 사건 접수 및 처리현황'에 따르면 사건 총접수는 239만 7832건으로 기소는 29.9%인 66만 2277건에 불과하다. 검경수사권 조정과 김 처장 의지에 따라 공수처가 취한 입건 방식은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혐의의 있고 없음을 가린다. 민간인을 조사 없이 '형식적인 피의자'로 만드는 게 인권침해인지, 간략한 조사로 '실질적인 피의자'로 만드는 게 인권침해인지는 공수처의 윤 전 총장 수사 결과로 알 수 있게 됐다.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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