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더디플로맷 '21세기의 뉴 디아스포라... 멕시코와 유라시아의 코리안 디아스포라' 조명
[WIKI 프리즘] 더디플로맷 '21세기의 뉴 디아스포라... 멕시코와 유라시아의 코리안 디아스포라' 조명
  • 최석진 기자
  • 기사승인 2021-06-28 06:38:25
  • 최종수정 2021.06.2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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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와 유라시아의 한국인 디아스포라(해외 이주민) 공동체를 연결하는 데 외교정책과 소프트파워 정치, 그리고 한류 외교를 묶어서 활용하고 있는 한국
1905년 멕시코 프로그레소항에 첫발을 내딛은 한국인들의 모습 [사진=ATI]
1905년 멕시코 프로그레소항에 첫발을 내딛은 한국인들의 모습 [사진=ATI]

미국의 미디어 <더 디플로맷>은 27일(현지 시각) 해외 한국인 디아스포라들(Diasporas)의 아픈 역사를 돌아보고, 미들 파워(middle power)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한 한국이 이제는 멕시코와 중앙아시아 등지에 흩어져있는 한민족 디아스포라들을 껴안고, 이들과 연계해 에너지 확보 및 무역 확대를 추진하면서 범한민족의 공존공영을 꾀하고 있다는 특집 기사를 내보냈다. 다음은 이 기사의 전문이다.

2021년 5월 4일은 한민족이 라틴아메리카에 도착한지 116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1905년 4월, 1천명의 한국인 이주노동자 제1진이 제물포항(오늘날 인천항)에서 영국 화물선에 올랐다.

이들 이주노동자들은 점차 격동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한반도를 피해, 안정적인 일거리와 임금을 약속받은 이역만리 멕시코로 떠나는 이민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한 달 뒤인 5월 4일 이 화물선은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메리다 시 인근 프로그레소항에 당도했다.

그런가 하면, 1903년 1월에는 한국인들을 실은 첫 번째 화물선이 하와이에 도착했다. 당시 하와이는 막 미국 영토로 병합된 상태였다. 이들 한국인들은 파인애플과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을 하기 위해 하와이 행을 선택한 이주노동자들이었다.

1905년까지 7000명 이상의 한국인 이주노동자들이 하와이에서의 일자리를 찾아 제물포항을 떠났다.

미주 대륙의 한국인 이민자들의 역사는 땀과 착취로 얼룩지기 시작했다. 영국인들은 4~5년의 근로계약으로 한국인들을 꾀어냈지만, 한국인 노동자들은 현지에 당도하자마자 자신들이 유카탄 반도의 용설란(에니깽/henequen) 농장에 노예로 팔린 사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는 멕시코 토착 야키족과 다른 원주민들도 노예 상태로 노동을 하고 있었다.

1910년 일본이 한국을 강제로 병합하자, 결과적으로 멕시코의 한국인들은 국적을 상실하게 되었다.

일부 한국인들은 멕시코의 끔찍한 환경을 벗어나고자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하와이로의 탈출을 감행했지만, 허사였다. 

1921년 즈음해서 용설란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자 288명의 한국인 노동자들이 멕시코 캄파체항에서 쿠바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오늘날 쿠바에 거주하는 천명 남짓의 한국인 디아스포라의 뿌리는 바로 이들 약 300명의 이주노동자들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멕시코에 잔류한 한국인들은 어떻게든 살아나가면서 결국은 스스로를 멕시코 지역사회에 융화시킬 수 있었다. 멕시코의 복잡한 역사에 스며든 한국인 디아스포라와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은 바로 이들이 남긴 궤적이다.

멕시코를 향한 한국인 이민의 2차 파고는 부분적으로 1970년대와 1980년대 남미의 경제위기 때문에 촉발되었다. 아르헨티나와 파라과이의 한국인들뿐만 아니라 한국 본토 국민들까지 더 나은 기회를 찾아 멕시코 행을 선택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투르크메니스탄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이 2019년 4월 18일 오전 키얀리 가스화학플랜트 중앙제어센터에서 현장 브리핑을 받은 뒤 박수치고 있다. 한국기업들이 주도적으로 건설한 투르크멘바시 키얀리 가스화학 플랜트는 잠실종합운동장의 3배 규모로 중앙아시아 최대이자 투르크메니스탄 최초의 가스화학 플랜트이다.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투르크메니스탄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이 2019년 4월 키얀리 가스화학플랜트 중앙제어센터에서 현장 브리핑을 받은 뒤 박수치고 있다. 한국기업들이 주도적으로 건설한 투르크멘바시 키얀리 가스화학 플랜트는 잠실종합운동장의 3배 규모로 중앙아시아 최대이자 투르크메니스탄 최초의 가스화학 플랜트이다. [사진=연합뉴스]

1990년대 말에는 거의 2만 명의 한국인들이 멕시코에 살았다. 가장 최근인 2021년 3월 중순 ‘멕시코 한인 후손 협회’는 약 3만 명의 한민족들이 멕시코에 살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한국인들이 멕시코에 발자취를 남긴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한국계 멕시코 디아스포라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이나 되어서였다. 이는 유라시아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의 다양한 한국인 디아스포라에 손을 내밀면서 강력한 한류 외교와 문화적 소프트 파워(군사력이나 경제력 등 물리적으로 표현되는 힘인 하드 파워가 아닌, 정보과학이나 문화·예술 등을 통한 부드러운 영향력)를 활용한 한국 정부의 실용 외교정책에 힘입은 바가 크다.

지난 20년간 한국 정부는 ‘고려인’으로 불리는 구소련 지역 한국인 디아스포라뿐만 아니라 멕시코에 흩어져있는 수만 명의 한국인 디아스포라를 포함하는 한민족 공동체를 다시 연결하는 일에 착수해왔다. 약 50만 명에 달하는 고려인들은 구소련 영토 여기저기에 흩어져서 살고 있다.

이들 각지의 디아스포라들을 연결하는 일은 한국과 해외 한국인 공동체에 여러 이점을 주고 있다. 한 측면에서는 이들 디아스포라들이 현재 번영을 누리고 있는 조국을 통해 자신들의 문화적 뿌리와 언어적 원천과 연결되기를 원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고, 다른 측면에서는 한국이 에너지 자원을 찾아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특히 중동을 넘어 다른 나라에서 에너지 파트너십을 다양화하는 데 여념이 없는 한국에게 이들 디아스포라들은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구소련 해체 이후의 과도기적 경제 상황과 라틴아메리카라는 신흥 경제 시장은 이상적인 경제 동반자이다. 진정한 미들파워(middle power)로 자리매김한 한국은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로 강대국들 사이에 끼인 다른 미들파워 지역들에서 자유무역과 여행 자유화를 추진하는 등 관계 수립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한국이 추구하는 정치·경제·문화에서의 쌍무적 상호작용 모델은 유라시아와 라틴아메리카의 주요 무역 파트너들과 비슷한 점이 많다.

양자(兩者) 무역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멕시코와 유라시아(이 경우에는 중아아시아와 러시아를 포함)는 해당 지역들에서 한국의 가장 큰 무역 파트너들이다. 한국과 멕시코의 총 무역 거래액은 지난 10동안 증가하면서 2019년 210억 달러에 달했으며, 러시아와는 지난 30년 동안 2배 성장해서 220억 달러, 그리고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과의 거래는 두 국가를 합해서 2021년 150억 달러를 기록했다.

같은 지역에 대한 한국의 해외직접투자(FDI) 증가는 협력 관계가 증대하고 있다는 중요한 지표이다. 2019년 중앙아시아의 상위 두 개 경제권에 대한 한국의 직접투자는 70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러시아에 대한 직접투자도 2020년 40억 달러를 돌파했다. 그런가 하면 멕시코에 대한 직접투자도 2021년에 거의 70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상의 나라들은 수출과 수입 면에서 한국과 고도로 상보적(相補的) 관계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막대한 숫자의 한국인 이민자들을 보유하고 있다.(유라시아와 라틴아메리카에는 수십만 명의 한민족들이 산재해있다.)

한국이 해당 나라들에서 소프트 파워와 디아스포라 껴안기를 추진하면서 외교정책과 한류 외교를 독특하게 융합해나가는 것을 지켜보면 매우 흥미롭다.

결과적으로 한민족 디아스포라들은 단순히 한국의 문화적 힘을 신장하는 데 지원군 역할을 할 뿐 아니라 해당 미들 파워들이 시장 접근과 영향력 확대를 꾀하는 데 있어 정치·경제의 주요 플레이어 역할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dtpchoi@wikileaks-kr.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