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97) 대한항공 폭파사건… 동북아 정치구도를 뒤흔들다
청와대-백악관 X파일(97) 대한항공 폭파사건… 동북아 정치구도를 뒤흔들다
  • 특별취재팀
  • 기사승인 2021-07-13 12:58:05
  • 최종수정 2021.07.13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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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백악관 x파일
청와대 백악관 x파일

1987년 말에 접어들면서 서울은 대통령 선거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한국은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될 경우 1988년부터 임기를 시작하며 서울올림픽을 주최하는 등 군사독재국가에서 민주국가로 변신하며 경제적으로도 대도약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반면 북한은 경제적으로도 낙후일로를 걸으며 세계로부터 고립되어 갔다. 특히 한국은 실리외교를 추구하기 시작한 중국과 점차 가까워지면서 북한의 조바심은 표면화 하기에 이르렀다.

북한은 올림픽 행사의 일부를 요구했다. 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IOC)의 중재로 남한과 북한은 공동개최 협상을 벌였으나, 북한은 한국이 제의한 모든 방안을 다 거부하고 나왔다.

북한이 참가할 수 있도록 충분한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소련과 중국을 포함한 거의 모든 공산권 국가들이 서울올림픽에 참여하기로 동의했다.

북한은 한쪽에서는 협상을, 한쪽에서는 술수를 펴는 전형적인 공산당식 전략을 폈다.

그 전략은 가공할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다.

1987년 11월 29일. 아부다비를 떠나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제트여객기가 안다만 해상에 이르렀을 때 기체에서 강력한 폭탄이 터지면서 폭파됐다. 승객과 승무원 115명 전원이 사망했다.

비행기가 실종된 후 바레인 정보기관은 바그다드에서 아부다비까지 KAL 858기를 탑승한 것으로 등재된 승객 가운데, 아버지와 함께 여행 중인 25세의 일본 여성 하치야 마유미의 여권이 위조된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1987년 11월 29일. 대한항공 폭발 사건은 동북아 정치 지형을 뒤흔들어놓았다.사진 위는 압송되고 있는 폭파범 김현희. [연합뉴스]
1987년 11월 29일. 대한항공 폭발 사건은 동북아 정치 지형을 뒤흔들어놓았다.사진 위는 압송되고 있는 폭파범 김현희. [연합뉴스]

12월 1일, 바레인 공항에서 아부다비를 떠나 귀국길에 오른 두 사람은 로마행 비행기를 타려고 하다가 바레인 경찰에 붙잡혔다. 북한의 베테랑 비밀요원으로 밝혀진 남자(아버지 역할)는 청산가리를 묻힌 담배를 물어 씹고 그 자리에서 자살했다.

이안 헨더슨 바레인 경찰서장은 젊은 여자의 입술에서 같은 독이 든 담배를 잡아챘다. 여자가 머뭇거리는 동안 헨더슨이 잽싸게 담배를 입에서 빼내는 바람에 그 여자는 살 수 있었다.

그녀는 수사관들 앞에서 자신의 위장 신분으로 완강하게 버텼다. 자신이 일본에서 자란 중국인 고아로, 비행기 폭파와 아무런 관례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얘기가 거짓말이라는 것이 곧 행동으로 드러났다. 자신의 성적 경험에 대한 수사관의 집요한 질문에 화가 나 여성 통영자를 발길로 차서 쓰러뜨리고, 망치 같은 주먹으로 헨더슨을 한방 먹이면서 그의 권총을 움켜잡았다. 권총으로 자살을 기도하려던 그녀는 전기 충격기를 맞고서야 넘어졌다.

“한국인들이 알아서 하시오.”

질려버린 헨더슨은 이 여자를 서울로 보내버리고 싶었다.

박수길 외무차관은 본명 김현희인 이 여자를 서울로 이송했다.

박차관은 비행기 폭파 직후 안기부 직원 3명과 함께 현지로 가서 바레인 당국에 김현희가 북한 공작원임을 입증해보였다. 가장 중요한 증거로 청산가리 묻힌 담배가 한국에서 알고 있는 북한 공작원들이 사용하는 것과 똑같다는 분석자료를 제시했다.

바레인은 자유진영권에 비우호적인 시리아 같은 나라로부터 김현희를 중국으로 보내라는 압력을 받았다.

“김현희를 붙잡고 있으면 북한이 구출작전 등을 감행할 것이고, 바레인의 인명 피해가 우려된다”는 박차관의 설득에 바레인 당국은 범인을 인도했다.

서울로 이송된 김현희는 24시간 관찰을 받으며 일본어와 중국어로 진행된 심층심문 끝에 마침내 북한 공작원임을 자백했다.

심문 8일째 되던 날, 김현희는 여자 수사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한국말로 입을 열었다.

“용서하세요. 미안해요. 사실대로 다 말할게요.”

남방 중국어를 부정확하게 쓰면서 북부 중국에서 살았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진술을 집어내면서 화려한 서울 시내를 구경시켜주는 등 수사관들의 강온작전이 그의 입을 열게 했다.

김현희는 바그다드에서 아부다비로 가는동안 동료와 함께 대한항공 기내 수하물 선반에 액체 폭약으로 만든 시한폭탄을 장치한 뒤 아부다비 공항에서 내렸다고 진술했다.

김현희의 자백은 예기치 않은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위키리크스한국=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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