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건강 책] 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
[의사의 건강 책] 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
  • 위키리크스한국
  • 기사승인 2021-08-31 09:31:58
  • 최종수정 2021.08.31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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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건강책방 일일호일]
[출처=건강책방 일일호일]

의사만큼 죽음의 다양한 얼굴을 마주하는 직업이 또 있을까. 그중에서도 혈액종양내과는 4기 진행 암 환자의 비율이 높은 만큼 환자의 죽음이 일상이 되는 진료과이다.

그래서일까.

30년 이상 암 환자들을 만나온 허대석 교수의 ‘우리의 죽음이 삶이 되게 하려면’부터 올해 많은 사랑을 받은 김범석 교수의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까지 최근 몇 년간 죽음에 대한 혈액종양 내과의사의 진중한 시선이 돋보이는 책들이 많이 소개되고 독자들의 사랑도 받고 있다.
 
‘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의 저자 역시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김선영 교수이다. 많은 혈액종양내과 의사의 책 중에서도 이 책이 의미가 있는 것은 죽음의 관찰자의 시선만이 아닌 죽음의 과정을 경험하고 함께하는 환자, 가족, 의사의 시선이 함께 녹여져 있다는데 있다.
 
책의 모티브가 된 것은 저자가 중학교 2학년 때 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간호한 어머니가 함께 쓴 병상 일기이다.

20여년 전에는 차마 들여다보지 못한 부모님의 일기는 의사가 된 그에게 죽음을 앞둔 사람과 가족이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고통이 어떻게 일상이 되어가는지, 그리고 그 일상을 좀 더 평온하게 유지하거나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성찰을 하게 했다.

저자는 그 생각들을 정리하고 자신과 같은 힘든 과정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고자 이 책을 썼다.

병원에서 슬픔을 마주하고 배울 기회는 언제나 있지만, ‘그것을 일상에서 건져 올리기’는 쉽지 않다. 처음 저자는 많은 그 죽음의 과정을 지켜본 데다 아버지의 죽음까지 일찌감치 겪은 터라 그 어떤 죽음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책을 쓰는 과정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복기하고 애도의 과정을 거치며 그 어떤 죽어가는 이의 고통도, 그를 알고 사랑해온 사람들의 슬픔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다짐한다. ‘이것부터 시작하자. 죽음을 안다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 타인의 슬픔의 깊이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저리 너머 저 심연에 있음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만나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좋은 진실들이 삶에 충만하길’ 그리고 ‘슬픔을 마주하는 위대한 용기가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길’ 기원한다.
 
의사의 입장에서 아버지의 투병 일기를 살펴보며, 지금의 병원 내부의 풍경과 항암치료, 대체요법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도 흥미롭다. 아버지가 투병을 하던 20년전과 지금은 진단과 치료법에 있어서는 눈부신 발전을 했지만, 치료 환경에 있어서는 크게 달라진 바가 없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누군가의 몸과 마음을 갈아 넣어야만 간신히 움직이는 낡은 열차와 같은 만성적 의료 인력부족의 문제, 환자를 위해 진심을 다하고 싶은 의료인의 진심을 가로막는 장벽과 같은 시스템,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이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보는 것’이 되어버리는 의료에 대한 과도한 의존과 호스피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문제를 면밀히 짚어본다.

그리고 연명의료법, 사전돌봄계획, 완화적 진정 등 지금 의료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이슈들에 대해 사려 깊은 의견을 내놓는다.

죽음에 대한 담론을 시작으로 인간다운 죽음. 잃었지만 잊지 않는 죽음을 위해 내가 준비할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실질적 대비책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책 뒤편에 참고문헌이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본문 내 인용된 책들이 모두 읽어 볼만한 의미 있는 책이라는 점도 이 책을 권하는 하나의 이유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생이 끝나갈 때 준비해야할 것들’, ‘슬픔의 위안’, ‘아픈 몸을 살다’ 등 소개된 책들을 함께 읽으며 죽음의 다양한 얼굴과 슬픔을 마주하다 보면, 상실과 부재가 아닌, 채우고 나누는 죽음, 잃었지만 잊지 않는 죽음의 가능성을 믿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건강책방 일일호일 책방지기 김민정 씀>

laputa813@wikileaks-kr.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