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한·미·일 정책기획협의회, 한반도 문제
1차 한·미·일 정책기획협의회, 한반도 문제
  • 위키리크스한국
  • 기사승인
  • 최종수정 2017.01.09 19: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서번호 생성일 배포일 분류 출처 태그
07SEOUL220 2007-01-23 08:30 2011-08-30 01:44 기밀 주한미국대사관



  • 기 밀 SEOUL 000220

  • 국방부망 배포1)

  • 국방부망 배포

  • 행정명령 12958: 비밀해제: 01/16/2017

  • 태그: PREL2), PGOV3), PHUM4), KS5)

  • 제 목: 1차 한·미·일 정책기획협의회: 한반도 문제

  • 분류자: 대리 공관차석 조셉 윤6) 근거 1.4 (b/d)

  • 번역자: PoirotKr (트위터 사용자명) — Micheal H. Rhee 2012/09/27 22:21



요점




1. (기밀) 1월 11일 1차 한미일 정책기획협의회 일정에서, 한국의 박인국 외교정책실장과 마사하루 코노 일본 외무성 종합외교정책국 국장, 그리고 스티븐 크래스너 국무부 정책기획실장이 각국의 외교정책 우선순위와 대북 전략, 그리고 동아시아 기관과 체계에 대한 상대방의 견해 등을 제시하였다.


  • 한국 : 한국의 대북 정책은 다음과 같은 신조로 이루어졌다고 강조하였다: 북한의 핵 사업에 대한 무관용 원칙; 평화적인 비핵화; 그리고 6자 회담에서 한국의 적극적인 역할. 한국은 북한의 미래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은 없지만, 지역 전문가들은 북한이 외부 세력인 특히 미합중국과 중국의 태도와 경제적인 포용의 조합으로 변화될 수 있다고 평가하였다. 한국정부는 그러한 변화는 한국의 통일을 이끌 거라고도 예상하였다.




  • 일본: 코노는 일본정부가 북한이 변하길 무한정 기다릴 여유가 없는 이유는 일본의 안보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했고, 북한과 중국은 6자 회담에서 진전이 있도록 더 힘써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 미국: 스티븐 크래스너 국무부 정책기획실장은 미국정부는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 6자 회담에 성공하려는 의지가 있으며, 2005년 공동선언 이행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북한이 비핵화에 진전된 모습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한국정부가 계속 식량과 비료의 수송을 중단한 점은 흐뭇한 일이다. 중국과 한국은 북한에 호혜주의와 변화를 독려하기 위한 대북 경제 교류를 조직해야만 한다고 크래스너는 말하였다.


3국 대표단은 아시아의 제도와 체재를 개선하기 위해 한층 이해관계에 근거한 구조가 필요하다는 견해 또한 교환하였다. 요점 끝.


북한과 6자 회담에 대한 한국의 견해




2. (기밀) 박인국 외교정책실장은7) 한국정부의 평화와 번영 정책의 두 기둥을 설명하였다. 한국정부는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을 모색했고, 신뢰구축 조치와 한반도 비핵화, 그리고 정전 협정의 영구적인 평화체제로의 변환을 통한 안보 문제 해결을 원한다. 한국정부는 아래와 같은 3가지 신조에 따라 비핵화를 추구하게 된다: 북한의 핵 사업에 대한 무관용 원칙; 평화적인 비핵화; 그리고 한국정부의 적극적인 역할 등이다. 이웃국가들의 확약이 뒷받침된 남북한 간의 평화 조약이 한국정부에 중요할 뿐만 아니라 역내에도 중요하다. 한국정부는 호의적인 여건이 조성되면 미국정부가 북한과의 평화체제를 기꺼이 논의할 거란 뜻을 내비친 11월 부시의 하노이 발언을 환영하였다. 더 많은 안보 협력이 있다면 남북한과 동북아 지역의 평화를 증대한다는 한국정부의 두 번째 목표를 발전시킬 거다.

3. (기밀) 외교통상부 한충희 북미1과장은 (북핵외교기획부단장 내정자) 12월 6자 회담에서 모두가 진전이 없는 점에 좌절감을 표출했지만, 곧 재개될 6자 회담에서는 희망이 있다고 말하였다. 긍정적인 측면은 미국 대표단이 중요한 제안을 제공한 점이다. 미국 대표단과 북한 대표단이 방코델타아시아 관련한 금융 문제에 대해 10시간의 대화를 열었다. 김계관 북한 수석 협상대표는 미국의 준비성이 인상적이었다며 추가적인 진전의 바탕이 될 거라고 한국정부 상대역에게 말하였다. 부정적인 측면은 북한이 방코델타아시아를 전제조건으로 계속 이용한다는 점이라고 한 과장은 말을 이었다. 김계관은 공식 프리젠테이션에서 북한의 핵무기와 핵 사업을 따로 구분하였다. 김계관은 북한이 자체 핵 사업의 동결 논의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지만, 미국의 “적대” 정책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하길 원한다고 주장하였다. 김계관이 베이징에서 (한국말로 “비핵화”란 단어를 사용해가며) “방코델타아시아 또는 비핵화” 방안을 제시하면서 방코델타아시아 문제의 중요성을 요약한 바 있다고 한충희는 말하였다. 이는 미국정부가 비핵화에 진전을 이루려면 방코델타아시아 문제가 해결되도록 허락해야만 할 거라고 시사한 것이다.

4. (기밀)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은 미국정부와 한국정부는 대북 공동 전선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1월에 라이스 국무장관과 견해를 같이 하였다. 국방부망 배포 만일 북한이 건설적인 응답을 한다면, 6자 회담이 더 이른 시일 내에 재개될 거라고 한충희는 말하였다. 북한에 대한 긴밀한 한미일 공조에 더해서, 중국을 포함해 협의가 확대된다면 가치가 있을 거라고 말하였다. 송민순은 아세안+3 회담에서 중국의 상대역과 회동할 것이며, 1월 말에 베이징을 방문할 듯하다. 마지막으로 한충희는 북한의 추가적인 핵 실험은 북한정권의 추가적인 고립만을 가져올 거라고 말하였다.


북한의 미래에 대한 한국의 견해




6. (기밀) 북한의 미래로 화제를 돌려서, 박인국은 가장 큰 변수는 남북관계와 북한의 내부 상황, 그리고 국제적 환경, 특히 미합중국과 중국의 태도라고 말하였다. 박인국은 100개 비정부 전문가들의 북한에 관한 연구에서 대다수의 전문가는 북한의 정치 제도가 내부로부터의 변화가 아닌 다른 국가의 정책이나 국가간 관계의 조합으로 혁신이 일어날 거라고 예견했다고 박인국은 언급하였다. 다른 전문가들을 살펴보면 15퍼센트는(예로 예맨) 평화적 통합을 예상하고, 30퍼센트는(예로 독일) 흡수 통일을 예상했고, 3퍼센트는(예로 베트남) 전쟁에 의한 통일을 내다보았고, 30퍼센트는 평화적 통합과 흡수통일이 섞인 형태를 선택하였다. 이 연구가 박인국에게 시사한 바는 남한의 포용정책이 북한 정권을 탈바꿈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7. (기밀) 박인국은 경제가 북한의 생각을 추동하는 요인이 될 것임을 지적한다고 설명하였다. 이런 점이 박인국에게는 개성공업지구가 북한의 시장경제 원칙의 본보기가 돼야 하는 이유이다. 만일 북한이 중국의 경제특구 경험에서의 혜택을 얻을 수 있다면, 북한은 개성공업지구에서 체험을 습득할 필요가 있다. 2002년 7월 북한의 명백한 경제 개혁 이후에, 발전이 멈춘 점이 전문가들에게 시사하는 바는 북한이 자생적으로 개혁을 수행할 수 없다는 점이다. 나진·선봉과 신의주 경제특구를 만들려는 시도는 실패했지만, 개성공업지구는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적인 문제에도 불구, 전문가들은 북한의 갑작스러운 불안정이나 집권당의 권력 약화는 희박하며, 폭동이나 쿠데타는 더 희박하다고 내다본다. 같은 연구에서 전문가들은 통일이 앞으로 20년간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8. (기밀) 북한은 힘든 외부 환경을 맞이할 거라고 박인국은 말을 이었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전까지는 아마도 평지풍파를 피하겠지만, 같은 연구에서 중국의 대북관계에서의 궁극적인 변화를 예상하고 있다. “4세대” 중국 지도자는 북한을 짐과 같이 여기게 되면서 “피로 맺은 형제”에서 “보통의” 혹은 “평범한” 관계로 아마도 격하할 거다. 마지막으로 같은 연구에서 90퍼센트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개혁하려면 남한과의 협력과 미합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더욱 필요할 거라고 보았다.

9. (기밀) 박인국은 자신이 판단하는 핵심 현안을 강조하면서 마무리 지었다. 단기적으론, 6자 회담이 비핵화를 향한 신속한 진전을 위한 “조기 성과”에 집중해야만 한다. 궁극적으로 비핵화는 정전 협정을 평화 체제로 대체될 것이고, 아마도 헬싱키 협약을 본떠서 다자간의 안보 대화 모델이 될 수 있다. 단기적으로, 북한이 6자 회담에서 진전된 모습을 보이도록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독려할 필요가 있지만, 장기적으론 북·중 관계가 약화하길 박인국은 희망하였다. 박인국은 북한 내 진보주의 요소가 장려되어야만 한다고 말하였다. 박인국은 1994년과 2006년 사이 북한의 최정상 50명의 인사의 구성을 비교한 지역언론 보도에서 정부 당국자에서 북한군이나 노동당으로의 권력 이동을 지적했다고 언급하였다.


북한에 대한 일본의 견해




10. (기밀) 코노 일본 외무성 종합외교정책국장은 일본이 북한의 미래와 같은 장기적인 현안을 고려할만한 사치를 부렸으면 좋겠지만, 북한의 7월 미사일 발사와 10월 핵 실험은 더 즉각적인 집중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그 이유는 “빌어먹을, 국가 안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6자 회담 마지막 협상에 대한 일본의 견해는 “좌절감과 분노, 그리고 실망감”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일본은 “조기 성과”와 일부 진전을 이루기 위한 논의를 희망하였지만, 이번 사태는8) 다르다. 코노는 2008년과 올림픽과 2010년 아시안 게임 이전에 안정을 원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중국 지도자들은 북한이 아무 행동이 없는 점은 북한이 중국에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음을 보여준다는 점을 인식해야만 한다고 했다.

11. (기밀) 코노는 북한이 더 많은 경제 협력을 원한다면, 남한의 역할이 있다고 말했고, 만일 북한인 체제 보장을 원한다면, 미국의 역할이 있다. 그러나 단순히 유엔안보리 결의안 1718 이외에 일본의 역할은 어떤 게 있는가? 라고 물었다. 일본은 제한적인 지렛대를 갖고 있다고 그는 말하였다. 게다가 일본은 제기할 필요가 있는 다른 중요한 현안이 있지만, 6자 회담의 중심 현안과는 관련이 없다. 예로 납북자 문제는 시간이 감에 따라 일가 친족이 나이가 들면서 더 악화할 뿐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사업은 평화를 좀먹고, 또한 북한 붕괴 가능성은 동북아 지역의 번영을 위협하며, 남한의 평화와 번영 정책과도 직접적으로 상충한다.

12. (기밀) 코노는 일본은 북한정부와의 관계 정상화를 희망하며, 한반도 평화 통일에서 한 역할을 하길 원한다고 말하면서 마무리했다. 7,000만 인구의 국가는9) 아시아와 세계 경제에서 큰 역할이 있을 것이다. 일본은 미합중국과 남한과 협력하길 모색하며, 특히 6자 회담 안에서, 더 향상된 조율과 협력을 모색한다. 코노는 개성공업지구는 북한의 “연착륙”을 위한 장애물을 치우는 전략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도 언급하였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견해




13. (기밀) 국무부 스티븐 디 크래스너 정책기획실장은10) 미국정부가 성공적인 6자 회담과 북한의 비핵화를 목표로 계속 충실히 임할 거라고 강조하였다. 2005년 9.19 공동선언은 작업해야 할 근본적인 원칙들을 제공한다. 미국정부는 6자 회담의 맥락 안에서 북한 상대역과의 다수의 양자 대화를 하였다. “조기 성과”는 일정부분 진전된 상황을 모여주기 위해 중요하다. 방코델타아시아 문제는 법적 문제이지만, 미국은 미국 법의 제약 내에서 융통성 있게 다룰 준비가 되어 있다. 미국정부는 평화 체제가 정전 협정을 대체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지금 중요한 일은 6자 회담에서 진전을 이룰 수 있느냐이다.

14. (기밀) 크래스너는 북한이 비핵화에 진전된 모습을 보여주기 전까지 한국정부가 계속 식량과 비료의 수송을 중단한 점은 흐뭇한 일이라고 말하였다. 북한에 호혜주의와 변화를 독려하기 위한 중국과 한국의 대북 경제 교류를 체계화하는 조처가 필수라고 크래스너는 말하였다. 예를 들면, 개성공업지구에서의 노동계약을 다른 식으로 다루거나, 식량 원조가 재개되면 정권이 아닌 필요한 대상에 원조하도록 더 많은 감시를 허락하도록 수정하는 게 될 수도 있다. 비록 미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이 얼마나 많이 북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지만, 우리는 장기적으로 평화와 번영에 이바지하는 방향으로 북한을 독려해야만 한다. 북한이 한국과의 상호 교류, 그리고 미국정부의 체재보장 조합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북한을 설득시키기에 말만 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15. (기밀) 앞으로 만일 북한이 2005년에 한 비핵화 약정을 존중하길 거부한다면 즉각적인 안보 위협이 남겠지만, 핵확산 위협도 역시 증가할 거라고 크래스너는 말을 이었다. 그는 핵확산에 대한 의문점은 미국의 안보에 직접적 위협으로 여겨질 것이며, 미국 지도자들은 대응해야만 할 거라고 강조하였다. 확산은 단지 미합중국에 국한된 위협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단기적으로 북한을 비핵화하기 위해 취해야만 할 조처이다.


응답




16. (기밀) 박인국은 코노가 규정한 일본의 좌절감에 대해 평하길, 일본은 핵심 역할을 해야만 한다고 말하였다. 6자 회담 이전인 1992~1994 북핵 위기 속에서 일부는 중국정부의 역할이 제한적이라고 생각했었다; 중국은 심지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현재 중국은 참여 중이며 행동할 준비가 돼 있다. 박인국은 납북자 문제 관련해 전적으로 동감하며, 일본 대표단은 그 문제를 제기해야 하지만, 아마도 6자 회담 한켠에서 법적인 문제로써 제기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만일 일본이 한가지 문제에 골몰한다고 보인다면 일본이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평가할 수도 있으며, 그렇게 되면 6자 회담에 손상을 입히게 될 수도 있다. 박인국은 한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 정부 간에 이견이 있다는 인상을 주지 말아야 하는데 견해를 같이 하였다. 코노는 총회가 아닌 6자 회담 한켠에서 납북자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길 희망하지만, 북한이 비협조적이라고 말참견을 했다.

17. (기밀) 크래스너는 솔직하게 말해서 3국 정부는 정확히 같은 선호 함수를 보유하지 않았다고 평했다. 중국정부와 한국정부는 북한의 붕괴 가능성에 대해 더욱 걱정하는 듯 보인다. 남북 경제 교류는 장기적으로 볼 때 이해할만하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식량 감시 및 개성공업지구 투명성 측면에서 호혜성의 결여는 투명한 시장 경제와 원조, 그리고 특정 대상 원조 프로그램을 통한 북한의 개혁의 잠재성을 독려하기에는 제약이 된다.

18. (기밀) 김정일 개인숭배가 북한 경제 개혁의 장애물인지 질문을 받자, 김정일 영향력의 의미는 자신이 원하면 개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도 있다고 맞불을 놓았다. 김정일이 생각을 바꾼다면, 그때는 개혁을 향한 상당한 진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 박인국은 호혜주의가 중요하다는 데 동의하면서, 호혜주의가 결여된 이유는 어떤 면에서 보면 왜 남한이 북한 접근방식을 변경하는 조치를 하느냐를 설명해 준다고 했다. 한국의 인도주의적 원조는 6월 미사일 발사 이후에 중단되었다. 한국정부는 유엔 연합 총회의 북한 인권 결의안을 역시 지지한다. 헬싱키 협약의 과정은 엄격하게 계산된 상호주의가 아닌 미묘한 접근 방식을 가능하게 해준다고 박인국은 보았다. 개성공단은 단지 시작 단계에 있으며, 남한은 개성공단의 임금으로 한 달에 미화 60만 달러 정도를 지급할 뿐이다. 그러나 향후 계획에는 맨해튼 섬보다 사업이 더 커야 한다는 요구를 담고 있다. 북한의 경수로 건설 사업과 비교해서 개성공업지구는 전략적인 곳에 자리하고 있고 북한의 개혁을 지원하는데 더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동아시아 기관과 체계




19. (기밀) 박인국은 세계화가 상호 의존성을 심화시켰고 규칙적인 대화를 가져왔다고 했다. 반면 아시아에 안보 대화는 이제까지는 느린 속도였지만, 종래와는 다르게 에이즈 바이러스나, 조류 인플루엔자, 의약품, 환경, 그리고 자연재해 등을 논의하는 등 그 범주가 커지고 있다. 아시아는 미국정부와의 양자 관계로 말미암아 미합중국과의 독특한 안보관계를 맺고 있다. 박인국은 지역 경제의 뼈다가 FTA 협상 덕분에 새로운 추동력을 확보했다고 덧붙였다.

20. (기밀) 코노는 아세안 지역 포럼이 잘 기능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6자 회담은 더 강력한 신뢰구축 메커니즘으로 나타나길 바람 한다. 코노는 역내 문제에서 답변을 얻지 못한 몇 가지 질문을 제기하였다: 아시아가 자체적인 가치 공통집합을 갖고 있는가?; “아시아”는 무엇인가? 러시아와 호주와 뉴질랜드도 아시아로 간주하는가? 일본의 미합중국과의 특별한 관계가 있다고 강조하였다. 미·일·호주 전략적 대화가 현존하고 있고, 또한 언젠가는 인도를 포함해서 확장될 수도 있다고 그는 제안하였다. 한미일 관계는 공동 주택의 안전을 강화하는 기둥이 될 수 있다고 코노는 말하였다.

21. (기밀) 크래스너는 “아시아의 가치”“아세안”이란 용어의 정의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하였다. 아시아는 많은 인구의 다양한 국가로 구성되어 있고, 일부 아시아에 집중하는 일부 아세안 체제가 있는 가운데, 미합중국을 포함하는 태평양 체제 또한 필요하다. 현재 대단히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 목록이 있는데, 일부만 대봐도 아세안 지역 포럼, 동남아 국가 연합, 아세안+3, 그리고 동아시아정상회의11) 있지만, 그 기능은 무엇인가? 미국정부는 경제 문제에 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고, 또 최근에는 테러리즘에도 역할도 하는 아시아 태평양 경제 협력체에 대해 강력한 실천의지를 갖추고 있다. 미국정부는 서로 간의 이해에 맞는 한미일 FTA 협상에서 더욱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우리는 또한 아시안 체제가 어는 정도까지 6자 회담에 발목이 잡혀야 하는지도 역시 고려해야만 한다. 아마도 어떤 면에서 북한에 만일 비핵화에 진전에 실패한다면 치러야 할 대가를 북한에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북한을 배제한 5개 당사국 간에 협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22. (기밀) 아시아 기관을 개발하려면, 가치 기반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어려울 거라고 하면서, 크래스너는 그 이유로 중국만 보더라도 모든 국가가 중국과 같은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신뢰 구축 조치들도12) 너무 구분이 뚜렷해서 전반에 걸쳐 적용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해 기반의 접근방식은 작동할 수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이하 나토)는 외연을 확대해 일본과 한국, 그리고 호주를 비회원국으로 두고 있는 이유는 회원국이 예로 평화와 재난구조라는 공통된 목적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유엔을 넘어서는 공여 조직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으며, 나토는 그 분명한 후보이다.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이하 PSI)은 유엔안보리 성명에 기반을 둔 여러 국가가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내용의 또 다른 사례이다. 현존하는 제도를 새로운 방식으로나 이용하거나, 필요한 세부 내용에 생각을 함께하는 모임의 만드는 선택의 여지도 있다. 인도를 포함하는 4자 회담에 대해 살짝 논하길, 만일 인도를 추가하면 그 모임이 중국 반대 모임처럼 보이도록 할 거라서 아마 문제가 될 거라고 크래스너는 말하였다. 물론 미국정부는 미·한 혹은 미·일 양자 협력으로 훨씬 통합된 형태로 한국정부와 일본정부와의 공고한 3자 협력을 환영할 것이다. 우리의 안전한 주택을 건설하기 위해 단단한 기둥을 찾아내는 게 관건이다. 미합중국에 있어 아시아는 미국의 이해관계의 중심이며, 미국은 안정된 역할을 수행하길 원한다.

23. (기밀) 나토와의 관계 개선에 대해 질문을 받자, 박인국은 2006년 11월 리가 정상회담 이후에 나토 리가 선언의 의미가 무엇인지 불확실하다고 말하였다. 한국은 나토와의 대화를 강화하겠지만, 한국정부는 일부 나토 국가(프랑스)는 아마 다른 생각을 하는 걸로 들었고 해서, 나토가 제의하는 게 무엇인지 여전히 들어보길 기다리고 있다. 이와는 딴판으로 코노는 나토와의 동반관계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하였다. 나토와 일본은 파키스탄 재난 구조 제공 면에서나 아프간에서의 협력에서 이미 나란히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아베 수상은 북대서양 조약 기구에서 논의를 하려고 브뤼셀을 곧 방문하게 된다. 일본은 나토와의 협력을 증대하는 데 매우 관심이 많다고 코노는 말하면서, PSI가 향후 아시아에서 이해관계 기반 모임을 형성하는 방식에서 하나의 모델이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24. (비분류) 이번 회의의 참가자는 다음을 포함한다.


미합중국




스티븐 크래스너 국무부 정책기획실장13)
제임스 그린 (국무부 정책기획실장) 특별 보좌관14)
윌리엄 인보덴 국가안전보장회의 선임 전략기획국장15)
엔드류 오우 동아시아태평양국 한국담당장교16)
조셉 윤 주한미국대사관 정치 공사 참사관17)
브라이언 맥피터스 주한미국대사관 국제협력팀장18)
마이클 클레인 주한미국대사관 정치담당관19)
리 맥터것 주한미국대사관 경제담당관20)
엔드류 베넷 주한미국대사관 정치담당관(필기자)21)


남한




박인국 외교통상부 외교정책실장22)
김형길 외교통상부 정책총괄과장23)
한충희 외교통상부 북미1과장24)
유준하 외교통상부 대북정책협력과장25)
김창식 외교통상부 안보정책과장26)
문덕호 외교통상부 북핵1과장27)
황경태 외교통상부 정책기획국 차장(필기자)28)


일본




마사하루 코노 일본 외무성 종합외교정책국 국장29)
후지타 신야 외무성 정책기획 부실장30)
에이보시 주한일본대사관 정치 공사 참사관(서울)31)
스나미 아키히코 주한일본대사관 1등 서기관(서울)32)

25. (비분류) 미국 대표단은 이 전문을 승인하였다.
스탠튼

저작권자ⓒ 위키리크스 한국(공유 허용)-무단복제, 전재 금지


원본 내려받기




07SEOUL220.rtf

C O N F I D E N T I A L SEOUL 000220
 
SIPDIS
 
SIPDIS
 
E.O. 12958: DECL: 01/16/2017
TAGS: PREL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PGOV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PHUM [Human Rights], KS [Korea (South)]
SUBJECT: POLICY PLANNING TRILATERAL, SESSION 1: THE KOREAN
PENINSULA
 
Classified By: A/DCM Joseph Yun. Reasons 1.4 (b/d)
 
SUMMARY
-------
 
¶1. (C) During Session 1 of the January 11 U.S.-ROK-Japan
Policy Planning Talks, ROK Deputy Foreign Minister Park
In-kook, Japanese Deputy Vice Minister Masaharu Kono, and S/P
Director Stephen R. Krasner outlined their respective
countries' foreign policy priorities and strategies toward
North Korea and their views of East Asian institutions and
architecture.
 
ROK: Park emphasized that Seoul's policy toward North Korea
consisted of the tenets: zero tolerance for the DPRK's
nuclear programs; peaceful denuclearization; and an active
ROKG role in the Six Party Talks (6PT). While the ROKG did
not have an official position on the future of the DPRK,
local experts assessed that the DPRK could be transformed by
a mixture of economic engagement and the attitudes of
external actors, particularly the United States and China.
Seoul also expected that this would eventually lead to Korean
unification.
 
Japan: Kono noted that Tokyo could not afford to wait
indefinitely for North Korea to change because it was a
matter of Japanese security and insisted that the DPRK and
PRC needed to do more to make progress at the 6PT.
 
U.S.: S/P Director Krasner emphasized that the USG was
committed to a successful 6PT to achieve North Korean
denuclearization and that the September 2005 Joint Statement
needed to be implemented. It was gratifying that Seoul
continued to suspend its food and fertilizer shipments until
the DPRK demonstrated progress on denuclearization. PRC and
ROK should structure their economic exchanges with the North
to encourage reciprocity and change in North Korea, Krasner
said.
 
The three delegations also exchanged views on the need for
more interest-based structures to improve Asian institutions
and architecture. END SUMMARY.
 
ROK VIEWS ON NORTH KOREA, 6PT
-----------------------------
 
¶2. (C) ROK Deputy Foreign Minister for Policy Planning and
International Organizations Park In-kook described the two
pillars of Seoul's Peace and Prosperity policy. The ROKG
sought a peaceful resolution of the DPRK nuclear issue and
wanted to address security issues through confidence-building
measures, denuclearization of the Peninsula, and the
transformation of the Armistice Agreement into a permanent
peace regime. Seoul would pursue denuclearization following
three tenets: zero tolerance for the DPRK's nuclear programs;
peaceful denuclearization; and an active ROKG role. A peace
treaty between the Koreas backed by assurances from
neighboring states was also important to Seoul and the
region. Seoul welcomed President Bush's comments in Hanoi in
November that indicated that the USG, if favorable conditions
arose, would be willing to discuss a peace regime with the
DPRK. Greater security cooperation would advance the ROKG's
second goal of increased prosperity, for Korea and the region.
 
¶3. (C) MOFAT North American Affairs Division I Director Hahn
Choong-hee (soon to become Deputy Director General for
Nuclear Affairs) said that at the 6PT talks in December, all
sides expressed frustration at the lack of progress, but
there was hope the Talks would resume soon. On the positive
side, the U.S. delegation offered substantial proposals.
U.S. and DPRK delegates held ten hours of talks on financial
issues related to Banco Delta Asia. DPRK head negotiator Kim
Kye-gwan had told ROKG counterparts that he was impressed by
the U.S. preparations which would serve as the basis for
further progress, Hahn reported. On the negative side, the
DPRK continued to use BDA as a precondition, Hahn continued.
Kim Kye-gwan in his formal presentations distinguished
between the North's nuclear weapons and its nuclear programs.
Kim had claimed the North could discuss freezing its nuclear
programs and allow IAEA inspections, but the North wanted to
keep its weapons until U.S. "hostile" policy was resolved.
Hahn said Kim Gye-kwan had summed up the importance of BDA in
Beijing by offering the formula "BDA or denuclearization"
(using the Korean word "be-haek-hwa"), indicating that
 
Washington would have to allow resolution of BDA in order to
make progress on denuclearization
 
¶4. (C) Foreign Minister Song Min-soon in January with
Secretary Rice agreed that Washington and Seoul needed to
 
SIPDIS
present a unified front toward the DPRK and that if the DPRK
had a constructive response, the 6PT might be resumed sooner
rather than later, Hahn said. In addition to close
U.S.-ROK-Japan coordination on North Korea, it might be worth
expanding consultations to include China, he said. Song
would meet his Chinese counterpart at the ASEAN 3 meeting
in the Philippines and was likely to visit Beijing in late
January. Finally, Hahn said, additional DPRK nuclear tests
would only serve to further isolate Pyongyang.
 
ROK VIEWS ON FUTURE OF NORTH KOREA
----------------------------------
 
¶6. (C) Turning to the future of North Korea, Park said the
biggest variables were the inter-Korean relationship,
internal DPRK developments, and the international
environment, particularly the attitudes of the United States
and China. Park cited a 2004 survey of 100 non-government
experts on North Korea in which a majority of experts
predicted that the North Korean political system would be
transformed by a mixture of engagement and the policies of
other nations, rather than from internal change. Among the
experts, 15 percent expected a peaceful integration (like
Yemen), 30 percent saw a unification by default (like
Germany), 3 percent saw unification by war (like Vietnam),
and 30 percent chose a mix between peaceful integration or
default unification. This indicated, to Park, that the
South's engagement policy could play a significant role in
helping to transform the DPRK regime.
 
¶7. (C) Park explained that the survey indicated that
economics would be the driving factor in DPRK thinking. This
was why, to Park,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KIC) should
showcase market economic principles in North Korea. If the
North were to benefit from China's experience with special
economic zones, then the North needed the KIC to learn.
After apparent North Korean economic reforms in July 2002,
progress had stalled, which indicated to the experts that the
North could not execute reforms by itself. Attempts to
create special economic zones in Rajin-Sonbong and Sinuiju
had failed, but KIC was developing. Despite economic
problems, however, the experts predicted that sudden
instability in the North or a decline in the power of the
ruling party was unlikely, riot or coups were even more
unlikely. The survey found that the experts thought that
unification probably would not happen for 20 years.
 
¶8. (C) Still, the North would face a tougher external
environment, Park continued. China would probably seek to
avoid rocking the boat until after the 2008 Beijing Olympics
and the 2010 Shanghai World Expo, but the survey expected
eventual change in the Chinese relationship with North Korea.
A "fourth generation" of Chinese leaders were coming to see
North Korea more of a burden and might downgrade the
relationship from "blood brothers" to "regular" or "normal"
relations. Finally, the survey found that 90 percent of the
experts believed reform in the North would need more
cooperation from the South and an improved relationship with
the United States.
 
¶9. (C) Park concluded by emphasizing his take on the key
issues. In the short run, the 6PT should focus on an "early
harvest" to quicken progress towards denuclearization.
Ultimately, denuclearization would lead to replacing the
Armistice Agreement with a peace regime and a multilateral
security dialogue that might be modeled after the Helsinki
formula. In the short run, he said, we needed to encourage
an active Chinese role to get North Korea to make progress at
the 6PT, but longer term he hoped that the Chinese-North
Korean relations would weaken. Park said that liberal
elements within North Korea should be encouraged. Park cited
a local media report that compared the composition of the top
50 figures in North Korea between 1994 and 2006, noting a
power shift toward the military and Korean Workers' Party and
away from government officials.
 
JAPANESE VIEWS OF NORTH KOREA
-----------------------------
 
¶10. (C) Japanese Vice Minister Kono said that Tokyo would
like the luxury of being able to consider longer term issues,
like the future of North Korea, but the DPRK's missile
launches in July and nuclear test in October compelled a more
immediate focus because, "goddamit, it is a matter of
national security." The Japanese view of the last round of
the 6PT could be summarized as "frustration, anger, and
disappointment." Tokyo had hoped for discussions of an
"early harvest" and of making some progress, but this was not
the case. Kono agreed that Beijing wanted stability before
the 2008 and 2010 events, but PRC leaders should recognize
that the DPRK's inaction showed that Pyongyang was not
listening to China.
 
¶11. (C) Kono said that if the North wanted greater economic
cooperation, there was a role for South Korea, and if the
North wanted security assurances, there was a role for the
United States, but what would be Japan's role beyond simply
implementing UNSCR 1718, he asked. Japan had relatively
limited leverage, he said. On top of that, Tokyo had other
important issues that it needed to raise but were not
centrally related to the 6PT, such as the abduction issue,
which was only worsening with time as the relatives aged.
The DPRK's nuclear and missile programs undermined peace and
a possible DPRK collapse threatened prosperity in the region,
putting the North directly at odds with the South's Peace and
Prosperity policy.
 
¶12. (C) Kono concluded by saying that Tokyo hoped to
normalize its relations with Pyongyang and play a role in the
peaceful reunification of the Peninsula. A country of 70
million Koreans would have a big role in Asia and the world
economy. Japan also sought to work together with the United
States and South Korea, especially within the 6PT, to improve
coordination and cooperation. Kono also mentioned that the
KIC could play a strategic role in clearing the way for a
"soft landing" in North Korea.
 
U.S. VIEWS OF NORTH KOREA
-------------------------
 
¶13. (C) S/P Director Stephen D. Krasner emphasized that the
USG remained committed to successful Six Party Talks and the
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 The September 2005 Joint
Statement provided the fundamental set of principles to work
on. The USG had numerous bilateral conversations with North
Korean counterparts within the context of the 6PT. An "early
harvest" was important to show some degree of progress. The
BDA matter was a legal issue, but the U.S. was prepared to
handle it flexibly within the limits of U.S. law. The USG
would like to see a peace regime replace the Armistice
Agreement. What was important now was to make progress at
the 6PT.
 
¶14. (C) Krasner said that it was gratifying that Seoul
continued to suspend its food and fertilizer shipments to
North Korea until the North demonstrated progress on
denuclearization. PRC and ROK measures to structure economic
exchanges with the North so that they encouraged reciprocity
and change in North Korea was fundamental. For example,
labor contracts might be handled differently at the KIC, and
food aid (when resumed) might be revised to allow more
monitoring to target the aid to the needy rather than the
regime. Although it was unclear how much the U.S., ROK and
Japan could influence North Korea, we should seek to
encourage a trajectory that would benefit peace and
prosperity in the long run. Perhaps some combination of
North Korean interactions with the ROK and security
assurances from the USG might be needed, but words alone
might not be enough to convince the DPRK.
 
¶15. (C) Looking ahead, Krasner continued, should the North
refuse to honor its commitment made in 2005 to denuclearize
the immediate security threat remained, but a proliferation
threat would also increase. He stressed that a suspicion of
nuclear proliferation would be seen as a direct threat to
U.S. security and U.S. leaders would have to react.
Proliferation would threaten not only the United States, so
we all needed to take action to denuclearize the DPRK in the
short run.
 
RESPONSES
---------
 
¶16. (C) Park commented on Kono's characterization of
Japanese frustration saying that Tokyo should play a key
role. During the 1992-1994 nuclear crisis, before the 6PT,
some thought Beijing had a limited role; China did not even
join the Korean Peninsula Energy Development Organization.
Now China was engaged and ready to act. Park said he fully
sympathized with the abduction issue, and Japanese delegates
should raise the issue, but perhaps as a legal issue on the
sidelines of the 6PT. If Japan seemed preoccupied with a
single issue, the DPRK might assess that Japan was not
serious about normalization with the North, and this might
hurt the 6PT. Park agreed that we should not give the
impression of divisions among Seoul, Washington, and Tokyo.
Kono interjected that Tokyo hoped to talk about abductions on
the sidelines of 6PT, not in the Plenary session, but the
DPRK was not cooperative.
 
¶17. (C) Krasner commented that, frankly speaking, the three
capitals did not have the same exact preference functions.
Beijing and Seoul seemed more concerned about a possible DPRK
collapse. North-South economic interactions were
understandable in the long run. In the short run, however,
the lack of reciprocity in terms of food monitoring and KIC
transparency limited the potential to encourage DPRK reform
through transparent market economics and targeted assistance
programs.
 
¶18. (C) Asked whether Kim Jong-il's personality cult was an
obstacle to DPRK economic reform, Park countered that Kim
Jong-il's influence meant that he could bring about reforms
if he wanted to. Were Kim Jong-il to change his mind, then
significant progress toward reforms could be made. Park
agreed that reciprocity was important, and the lack of
reciprocity explained, in part, why the South had taken steps
to alter its approach. ROK humanitarian aid stopped in the
wake of the July missile launches. The ROKG also supported
the UNGA resolution on human rights in the DPRK. In Park's
view, the Helsinki process allowed for a nuanced approach,
rather than a strict calculation of reciprocity. The KIC was
just in its initial steps and the South only paid around
$600,000 in wages per month for wages in the KIC. Future
plans, however, called for a project that would be larger
than the island of Manhattan, and compared to the project to
build light water reactors in the DPRK, KIC was more
strategically located and could have a larger impact
supporting reform in North Korea.
 
EAST ASIAN INSTITUTIONS AND ARCHITECTURE
----------------------------------------
 
¶19. (C) Park noted that globalization deepened
inter-dependence and had led to a habit of dialogue. While
security dialogue in Asia had been slow, there was an
increased range of non-traditional security dialogue that
discussed HIV, avian influenza, drugs, environment, and
natural disasters. Asia had a unique security relationship
with the United States because of its bilateral alliances
with Washington. Park added that regional economic
frameworks gained new momentum thanks to FTA talks.
 
¶20. (C) Kono opined that the ASEAN Regional Forum was not
functioning well. The 6PT, hopefully, would lead to a
stronger confidence-building mechanism. Kono raised several
questions that had yet to be answered in the region: does
Asia have its own set of common values; what was "Asia;"
should Russia, Australia, and New Zealand be considered
Asian? Kono emphasized that Japan had a special relationship
with the United States. A U.S-Japan-Australia strategic
dialogue also existed, and he suggested that this might be
expanded one day to include India. The U.S.-Japan-ROK
relationship, Kono said, could be a beam to strengthen our
joint house of security.
 
¶21. (C) Krasner noted that "Asian values" and the term
"Asian" were hard to define. Asia consisted of diverse
countries with large populations, and while there might be
some Asian architecture that focused on Asia, we also needed
Pacific architecture that included the United States. Now
there was an alphabet soup of groupings, ARF, ASEAN, ASEAN
3, and EAS to name a few, but what were their functions?
The USG had a strong commitment to APEC, which played a role
on economic issues and more recently on terrorism as well.
The USG would like to see more success in U.S.-ROK FTA talks,
which would serve both of our interests. We should also
 
consider to what extent did we want the Asian architecture
held hostage to the 6PT. Perhaps cooperation among the five
parties, excluding North Korea, needed to be considered, in
part to show North Korea the costs should it fail to make
progress on denuclearization.
 
¶22. (C) In looking to develop Asian institutions, a
value-based approach might be difficult, Krasner said,
because looking at China, not all countries shared the same
values. CBMs would be too distinctive to apply across the
board. An interest-based approach, however, could work.
NATO was reaching out to partner countries Japan, Korea, and
Australia, because member countries shared a common purpose,
such as peacekeeping and disaster relief. It was
increasingly important for organizations beyond the UN to
contribute, and NATO was an obvious candidate. The
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 (PSI) was another example
of something based on UNSC statements that countries could
volunteer to participate in. The options were to use
existing institutions in new ways or building like-minded
groups for specific needs, like PSI. Touching on Kono's
comment on including India in four-way talks, Krasner said
that it might be problematic if in adding India it made the
grouping appear to be anti-Chinese. Washington, of course,
would welcome stronger trilateral cooperation with Seoul and
Tokyo, something more integrated that U.S-ROK or
U.S.-Japanese bilateral cooperation. The key was to find
solid beams to build our security house. For the United
States, Asia was central for U.S. interests, and Washington
wanted to play a stabilizing role.
 
¶23. (C) Asked about improving relations with NATO, Park said
that after the November 2006 Riga summit, it was not clear to
Seoul what the NATO initiative meant. The ROK would
reinforce dialogue with NATO, but Seoul was still waiting to
hear what NATO was proposing, having heard that some NATO
countries (France) might have different ideas. In contrast,
Kono said that Tokyo was dead serious about a partnership
with NATO. NATO and Japan were already operating in
parallel, in terms of providing disaster relief to Pakistan,
and working together in Afghanistan. Prime Minister Abe
would soon visit Brussels to hold discussions at the North
Atlantic Council. Japan remained very interested in
increasing cooperation with NATO, Kono said, adding that PSI
might be a model for ways to form future interest-based
grouping in Asia.
 
¶24. (U) Participants in the meeting included:
 
United States
-------------
 
Stephen D. Krasner, Director, Policy Planning Staff
James Green, Special Assistant to the Director
William Inboden, Senior Director for Strategic Planning, NSC
Andrew Ou, East Asian and Pacific Affairs Bureau, Korea Desk
Officer
Joseph Yun, Political Minister Counselor, Embassy Seoul
Brian McFeeters, Political External Unit Chief, Embassy Seoul
 
Michael Kleine, Political Officer, Embassy Seoul
Lee MacTaggart, Economic Officer, Embassy Seoul
Andrew Bennett, Political Officer, Embassy Seoul (notetaker)
 
South Korea
-----------
 
Park In-kook, Deputy Minister for Policy Planning and
International Organizations, Ministry of Foreign Affairs and
Trade (MOFAT)
Park Yoon-june, Senior Coordinator for Policy Planning, MOFAT
Kim Hyung-kil, Director, Policy Planning and Coordination
Division, MOFAT
Hahn Choong-hee, Director, North American Affairs Division I,
MOFAT
Yu Joon-ha, Director, Inter-Korean Policy Division, MOFAT
Kim, Chang-sik, Director, Security Policy Division, MOFAT
Moon Duk-ho, North Korean Nuclear Affairs Division I, MOFAT
Hwang Kyung-tae, Deputy Director, Policy Planning Division,
MOFAT
Notetaker
 
Japan
-----
 
 
Kono Masaharu, Deputy Vice Minister for Foreign Policy,
Ministry of Foreign Affairs (MOFA)
Fujita Shinya, Deputy Director Policy Planning Division, MOFA
Aiboshi, Political Minister Counselor, Embassy of Japan
(Seoul)
Sunami Akihiko, First Secretary, Embassy of Japan (Seoul)
 
¶25. (U) The delegation approved this cable.
STANTON




1)
번역 주: SIPDIS, Siprnet Distribution

2)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3)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4)
[Human Rights]

5)
[Korea (South)]

6)
A/DCM Joseph Yun.

7)
번역 주: 당시의 정확한 직책명이다.

8)
번역 주: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9)
번역 주: 통일한국을 말한다.

10)
S/P Director Stephen D. Krasner

11)
RF, ASEAN, ASEAN 3, and EAS

12)
confidence-building measures, CBMs

13)
Stephen D. Krasner, Director, Policy Planning Staff

14)
James Green, Special Assistant to the Director

15)
William Inboden, Senior Director for Strategic Planning, NSC 번역 주: 국내 기사에서는 ‘백악관 선임 전략기획국장’으로 사용되는데, 즉 NSC(국가안전보장회의)는 아시다시피 청와대 직속기관이란 사실을 재확인 해주고 있다.

16)
Andrew Ou, East Asian and Pacific Affairs Bureau, Korea Desk Officer

17)
Joseph Yun, Political Minister Counselor, Embassy Seoul

18)
Brian McFeeters, Political External Unit Chief, Embassy Seoul , 번역 주: ‘Political External’을 미국대사관에서 어떻게 번역하는지는 확인이 안되었다 브라이언 맥피터스는 당시에 1등서기관이였다. ‘Internal Unit chief’는 ‘정무팀장’이라고 한다.

19)
Michael Kleine, Political Officer, Embassy Seoul

20)
Lee MacTaggart, Economic Officer, Embassy Seoul

21)
Andrew Bennett, Political Officer, Embassy Seoul [notetaker]

22)
Park In-kook, Deputy Minister for Policy Planning and International Organizations, Ministry of Foreign Affairs and Trade, MOFAT

23)
Park Yoon-june, Senior Coordinator for Policy Planning, MOFAT Kim Hyung-kil, Director, Policy Planning and Coordination Division, MOFAT

24)
Hahn Choong-hee, Director, North American Affairs Division I, MOFAT

25)
Yu Joon-ha, Director, Inter-Korean Policy Division, MOFAT

26)
Kim, Chang-sik, Director, Security Policy Division, MOFAT

27)
Moon Duk-ho, North Korean Nuclear Affairs Division I, MOFAT

28)
Hwang Kyung-tae, Deputy Director, Policy Planning Division, MOFAT , 번역 주 : Deputy Director가 차장인지 부본부장인지는 확실치 않다. 현재는 남미과장이니까 분명하게 과장 아래 직급인데, 차장이 맞겠죠?

29)
Kono Masaharu, Deputy Vice Minister for Foreign Policy, Ministry of Foreign Affairs, MOFA

30)
Fujita Shinya, Deputy Director Policy Planning Division, MOFA

31)
Aiboshi, Political Minister Counselor, Embassy of Japan (Seoul) 번역 주: 한국말 이름번역은 그 사람이 실제 사용하는 단어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32)
Sunami Akihiko, First Secretary, Embassy of Japan (Seoul)


kbs134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