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103) 급변하는 국제정세… 러시아의 ‘친한’ 행보에 김일성, 셰바르드나제 장관 접견을 거절하다
청와대-백악관 X파일(103) 급변하는 국제정세… 러시아의 ‘친한’ 행보에 김일성, 셰바르드나제 장관 접견을 거절하다
  • 특별취재팀
  • 기사승인 2021.09.29 10:35
  • 최종수정 2021.10.05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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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백악관 x파일
<청와대 백악관 X파일>

노태우-고르바초프 회담 이후 수개월에 걸친 실무교섭 결과로, 한국과 소련은 1991년 초부터 외교관계를 수립하기로 잠정 합의에 도달했다.

1990년 9월 28일, 유엔 총회에 한국대표단을 이끌고 온 최호중 장관은 소련의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과의 회담에 앞서 준비 회의를 주재했다.
이 회의에서 한·소 수교를 (잠정 합의보다) 좀 더 앞당기도록 소련에 요청하기로 결정했다. 결과를 자신할 수는 없지만, 한국이 잃을 것도 없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이틀 후 최 장관은 셰바르드나제 장관과의 회담에서 우리가 이 ‘좋은 일’(수교)을 좀 더 일찍 발표할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는 “왜 못하겠소? 내일 유엔은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기 위한 어린이 문제 회의를 시작하는데, 우리 두 나라의 수교도 미래를 내다보는 일 아니겠소. 이 좋은 소식을 1991년 1월이 아니라 당장 내일, 10월 1일에 발표합시다”라고 말했다.

그는 곧바로 펜을 꺼내 (합의문의) 수교 날짜를 수정했다.

그의 반응에 한국 측 참석자 뿐 아니라 러시아 측 참석자들마저 깜짝 놀랐다.

외교는 이념보다 국익이 우선일 수 밖에 없다는 논리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었다.

수교의 대가로 한국으로부터 30억달러의 경협차관을 받기로 한 러시아는 수교 일정을 당기는데 합의하는 등 적극적인 ‘친한’ 행보를 시작했다.

러시아 입장에서 해마다 ‘원조’만 요구해온 북한과 달리 경제력이 커지는 한국은 분명히 미래를 위해 손잡을 대상이었던 것이다.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은 유엔에 오는 길에 평양에 들러, 한국과의 수교 계획을 통보하기 위해 김일성 주석 접견을 요청했다.

하지만 김일성은 셰바르드나제 면담을 거절했다. 북한 외상은 그에게 “북한은 소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무기를 개발할 것이며, 소련과 일본 사이의 영토분쟁과 발트 4국 독립문제에 대해 소련을 지지하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하지만 실익을 위해 한국과 손잡기로 한 소련의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노태우 대통령이 H. W. 부시 대통령과 환담하는 모습. 노 대통령의 북방정책을 적극 지원했던 부시 대통령은 2018년 12월 94세 일기로 타계했다. /연합뉴스
노태우 대통령이 H. W. 부시 대통령과 환담하는 모습. 노 대통령의 북방정책을 적극 지원했던 부시 대통령은 2018년 12월 94세 일기로 타계했다. /연합뉴스

1990년 10월 1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비난하면서 국제사회의 단합된 대응을 강조한 뒤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든 나라의 보편적 유엔 가입이 유엔의 앞날에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미국은 한국의 유엔 가입을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우리는 한반도 통일이라는 궁극적 목표에 대한 선입견 없이, 또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동시가입에 반대하지 않으면서, 한국의 유엔 가입을 지지하는 것입니다.’

유엔총회 회의장의 옆 구석 비좁은 자리에서 이 연설에 귀 기울이고 있던 한국 대표단은, 박수를 치지 못하도록 되어있는 의전 관례에도 불구하고 박수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부시 대통령의 연설 후 리셉션에서 북한의 박길연 대사가 현홍주 대사에게 다가와, 부시의 연설이 아주 좋았다고 말했다. ‘무엇이 그렇게 좋았느냐’고 묻자 그는 “미국 대통령이 공식 연설에서 처음으로 우리를 공식 국호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불러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후 유엔 가입 절차가 본격 가동되기 시작했다. 소련과 중국을 포함한 유엔 각국의 분위기가 유리하게 변하고 있었다.

다만 북한은 한국의 가입이 승인되고 자신들의 가입은 거부될까봐 마지막 순간까지 걱정하고 있었다. 중국 외교라인은 북한에 ‘대한민국과 북한의 가입 신청이 안보리에 하나의 의제로 묶여 제출되기 때문에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된다’고 조언했다.

1991년 9월 18일 새벽 4시 25분(한국 시간) 제46차 유엔총회에서 남북한은 159개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유엔에 가입했다. 이날 총회는 국명표기 알파벳 순서에 따라 북한을 160번째, 남한을 161번째 회원국으로 승인했다.

한국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유엔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53년만에 그 문을 열고 입성하게 됐다.

당시 유엔 가입 성공은 뚜렷한 목표를 향한 집중력, 탄탄한 전략, 주요국 정부와의 효율적인 협력, 미국의 지원, 나라 안팎의 회의론에도 불구하고 시의적절하게 목표를 향해 밀고나간 복합적인 노력의 결실이었다.

[위키리크스한국=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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