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프리즘] 김기영 '임성근'을 '신영철'로 읽다
[법조 프리즘] 김기영 '임성근'을 '신영철'로 읽다
  • 윤여진 기자
  • 승인 2021.11.01 16:10
  • 수정 2021.11.0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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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근 탄핵심판 '소수의견' 소추 적법 넘어 위헌 확인
피청구인 사직으로 "심판 실익 없음" 다수의견과 대조
소수의견이 내세운 실익은 '공정한 재판에 대한 신뢰'
신뢰는 '법관양심' 아닌 '재판절차'로 증명된다는 관점
단독판사 판결, 수석판사 조언과 같으면 '신뢰는 의심'
소수의견 대변 김기영 "재판외관에 의심 여지 없어야"
형사 1심 "임성근 조언은 판사 판결과 인과관계 단절"
'재판관여' 입증책임 전환 시도, 미완에 그쳐 소수의견

"지난 2008년 (신영철 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의 재판관여 사건과 그 이후의 진행경과를 보면..."

2018년 9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에서 열린 김기영 당시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위원회. [출처=연합뉴스]
2018년 9월 10일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에서 열린 김기영 당시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위원회. [출처=연합뉴스]

지난달 28일 오후 2시 임성근 전 고법 부장판사 탄핵심판 사건 선고가 있던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국회의 탄핵심판 청구가 적법하고 임 전 부장판사의 직무집행에 '중대한 위헌'이 있다는 위헌의견은 재판관 3명에 그쳤다. 김기영 재판관은 소수의견에 머물지 않고 보충의견을 내 13년 전 신영철 전 대법관의 재판관여 사건을 재구성했다. 타인의 기억이 아닌 본인의 기억이었다. 그에게 '피청구인 임성근'은 '피청구인 신영철'이었다. 둘은 함께 일하지는 않았지만 모두 서울중앙지법에서 사법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형사수석과 법원장으로 있었다. 형사수석은 법원장 지시를 따라 형사부 판사의 평정 초안을 작성한다. 국회의 탄핵소추안은 임 전 부장판사를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재판에 부당하게 관여한 법관'으로 그리고 있었다. 

◇ 소수의견 재판관들의 대변인, 김기영
이 사건 쟁점은 '퇴직한 법관을 탄핵할 수 있는지'와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법관이 판결에 간섭한 행위가 탄핵사유인지'였다. 올해 2월 국회를 통과한 탄핵소추안은 임 전 부장판사가 2014년 2월까지 2016년 2월까지 중앙지법 형사수석으로 재직하면서 재판의 절차와 결과 모두에 간여했다고 지적했는데 문제는 그가 소추안 가결 직후인 3월 퇴직했다는 점이다. 임 전 부장판사의 재판관여 방식은 정식재판을 약식재판으로 변경하고, 양형이유를 '무죄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바꾸는 식이었다. 

심판청구가 적법하지 않다는 다수의견은 두 번째 쟁점을 판단하지 않았다. 반면 소수의견은 '적법'에 이은 '위헌' 의견을 냈다. 소수의견 재판관들은 '위헌이유'의 구체적 설명을 김 재판관에게 맡겼다. 과거 현직 법관으로서 재판관여 사실을 폭로한 2009년 경험 때문이다. 김 재판관은 '임성근 재판관여의 위헌성'을 '신영철 재판관여의 위험성'으로 풀어냈다. 

2008년 5월 17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출처=연합뉴스]
2008년 5월 17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출처=연합뉴스]

◇ 민주당의 두 번째 탄핵
2008년 정치권력을 상실한 민주당은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를 정치투쟁의 동력으로 삼았다. 민주당은 야간집회에 참여했다 중앙지법 형사재판에 넘겨진 사건들에 신 전 대법관이 법원장으로서 관여했다며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본회의 표결은 이뤄지지 못했는데 이점을 두고 김 재판관은 '소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에서 "결과적으로 어떠한 공적 확인과 해명은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당사자 역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은 채 대법관 임기를 마무리하였다"고 평가했다. 

김 재판관은 당시 중앙지법 형사부 소속으로 있으면서 이 사건을 언론에 폭로한 당사자였다. 민주당의 탄핵소추안 발의도 김 재판관 덕분에 가능했다. 2018년 9월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 때 "신영철 전 대법관이 이른바 촛불재판 개입 의혹에서 (재판에 관여한 게 맞는다고) 밝힌 것처럼 하겠나"는 한 민주당 의원 물음에 김 재판관은 "똑같은 자세로 계속해서 진실과 정의를 향해서 나아가도록 하겠다"고 답한 바 있다. 김 재판관은 청문회에서 "'재판을 미루지 말고 빨리 선고해라' 하는 취지였다"고 다시 한번 신 전 대법관의 재판관여를 증언했었다. 

신영철 전 대법관. [출처=연합뉴스]
신영철 전 대법관. [출처=연합뉴스]

◇ 재판을 서둘러 끝내라
2008년 11월 신 전 대법관은 중앙지법 형사단독 법관들에게 "통상적인 방법으로 종국하여"라는 이메일 '친전'을 보냈다. 수신인 13명에는 한 달 전 "일출 전 일몰 후 옥외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처벌하는 집회및시위법 제10·23조가 위헌인지 가려달라"는 피고인의 위헌제청을 인용하고 그를 석방한 중앙지법 형사7단독 박재영 판사도 있었다. 박 판사 사건에서 헌재가 공개변론 시점으로 밝힌 2009년 2월은 공교롭게도 후임 대법관의 임기를 시작하는 때였다. 당시 유력한 후보 중 한 명이었고 실제로 제청된 신 법원장은 중앙지법 1심 사건들을 "2월 재판부 변경 전"(이메일) 모두 끝내놓는다는 계획을 세워둔 터였다. 

하지만 박 판사 사건이 헌재의 위헌심판 개시로 정지되고 쟁점이 같은 다른 형사단독 사건들도 심리를 계속해야 하는지 중앙지법 법관들 사이에서 토론이 벌어지자, 이들의 인사를 담당하는 법원장은 '형사단독 구속사건의 통상 재판 시간'에 맞추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듬해 김 재판관은 법원 내부에서 해결할 수 없다 보고 언론의 힘을 빌렸다. 그가 '재판을 빨리하라'는 지시를 '부당한 재판관여'로 판단한 건 인사청문 때 이만희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과의 질의응답에 나타나 있다. 

"받은 이메일을 언론에 폭로한 당사자가 맞나"(이만희) 
"맞다"(김기영)
"이메일이 어떤 내용이었나"(이만희)
"재판을 미루지 말고 빨리 선고해라 하는 취지였다"(김기영)
"'신속하게 좀 재판을 진행해라' 그걸 재판 개입으로 받아들인 이유는 뭔가"(이만희)
"재판 독립이라고 하는 문제 또는 법관 독립이라고 하는 문제는 재판의 결론을 어떻게 내릴 것인가라는 문제뿐만 아니라 재판 절차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도 포함한다"(김기영)

◇ 주관적 신뢰와 객관적 신뢰, 그리고 외관
헌재는 재판관 5대1대3 의견으로 국회의 탄핵심판 청구를 각하했다. 심판 계속 중인 지난 3월 1일 피청구인 임기가 만료돼 심판은 끝났다는 문형배 재판관의 '심판절차종료' 의견을 포함하면 "심판청구 부적합"을 뜻하는 각하 의견은 6명이었다. 그런데도 유남석·이석태·김기영 재판관은 "심판청구는 적합"을 전제로 위헌 여부를 판단했다. 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 재판관이 "헌법재판소가 탄핵결정을 선고할 때 피청구인이 '해당 공직에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이유로 '중대한 헌법 위반이 있었는지' 본안판단을 하지 않은 것과 대조적이다. 다수의견은 탄핵심판의 실익은 '파면'이라는 결과를 확인하는 데 있지, 그 이유인 '위헌'을 확인하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소수의견은 두 가지 확인은 별개라는 입장이다. 헌법재판소법 제48조 1항은 탄핵소추 요건을 "직무집행에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경우"로 정해둔 만큼 위헌 여부는 독립적인 위상을 갖는다는 것이다. 

본안심리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는데도 위헌의견을 낸 만큼 소수의견의 '위헌확인' 이유는 치밀해야 했다. 소수의견은 재판관여를 '법관을 신뢰할 수 있는가'의 시선으로 이해했다. 소수의견은 "법관이 독립하여 '공정한 재판'을 할 것인가라는 신뢰는 법관 스스로 선입견이나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불편부당하게 재판한다는 법관의 주관적인 인식에 대한 신뢰와 이러한 인식을 가진 법관이 구체적으로 형성하는 재판과정이 독립적이고 공정할 것이라는 신뢰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판시했다. 

사법 신뢰는 법관 스스로 자신은 공정하다고 믿는 '주관적 신뢰'와 그 신뢰를 재판 절차로 증명해내 '객관적 신뢰'로 나뉜다. 주관적 신뢰는 증명이 불가한 만큼 '객관적 신뢰'를 통해 '주관적 신뢰'를 추정해야만 한다. 소수의견은 "법관의 주관적인 인식이나 판단의 공정성은 외부에서 확인하거나 검증하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재판의 독립과 공정성에 대한 신뢰는 법관이 구체적으로 형성한 재판과정, 즉 재판의 외관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객관적 신뢰를 증명해내는 재판 절차가 '재판의 외관(겉모습)'이다. 

지난 2월 4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과 별관에서 임성근 당시 고등법원 부장판사의 탄핵소추 의결서 정본을 제출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오른쪽)과 이탄희 의원. [출처=연합뉴스]
지난 2월 4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과 별관에서 임성근 당시 고등법원 부장판사의 탄핵소추 의결서 정본을 제출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오른쪽)과 이탄희 의원. [출처=연합뉴스]

임 전 부장판사 탄핵소추 사유에는 '재판 결과 관여'도 있지만 '재판 절차 관여'도 있다. 임 전 부장판사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됐지만 무죄를 선고받은 형사재판에서 '재판 결과는 변함이 없었다'는 주장을 폈다. 직권남용은 미수가 아닌 기수를 처벌하는데, 재판 절차에 일부 변경을 가져왔을 뿐 해당 재판부가 독립적으로 판결했다면 임 전 부장판사는 미수범이 된다. 때문에 검찰은 '재판 과정이 달라졌다면 재판 결과도 달라진 것'이란 전략을 짰다. 

탄핵심판에서도 소수의견은 변화를 증명해야 했다. 소수의견은 "피청구인(임성근)이 담당 재판장이나 담당 판사에게 요구한 사항은 실제 재판결과와 모두 일치한다"며 "이는 피청구인이 요구한 사항이 실제 재판에 그대로 실현된 것과 같은 결과를 보여줌으로써 피청구인이 다른 법관의 재판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개입하여 재판의 독립과 공정성을 훼손하였다는 의심을 강화시킨다"이라고 했다. 임 전 부장판사의 '조언'이 재판 '결과'에 영향을 줬는지 인과관계는 알 수 없지만 '조언'과 '결과'가 같은 답안지라면 '객관적 신뢰'는 의심받는다는 것이다. 소수의견이 말하는 '객관적 신뢰'가 '외관' 두 글자로 이해되는 이유다. 임 전 부장판사 형사재판 1심은 "피고인의 재판관여 행위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피해자인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명예훼손 사건 1심) 부장판사의 (기사 내용은 허위라는) 중간판결적 판단 사이에 인과관계가 단절되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던 것과 결이 다르다. 

김 재판관은 나아가 탄핵심판의 입증책임을 전환시켰다. 형사재판에서 '조언이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를 증명해야 하는 건 검사다. 이와 달리 헌법재판에선 '조언이 결과와 같다면, 이유는 이렇다'고 말해야 하는 쪽은 임 전 부장판사다. 스스로 의심을 없애야 하는 셈이다. 김 재판관은 보충의견에서 이같은 법리를 "사법의 독립과 공정성은 재판의 구조와 외관에서도 의심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는 한 문장으로 풀어냈다. 이렇게 되면 소수의견이 '파면' 주문 없이도 '위헌'을 확인하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임 전 부장판사가 구분을 어렵게 한 사법행정 담당자의 조언과 사법을 담당하는 법관의 재판 결과를 경계짓는 일이다. 임 전 부장판사는 형사재판에서 자신의 조언을 재판관여와 다르다며 "후배 법관들이 재야법조나, 언론, 정치권 등으로부터 부당한 비판 내지 비난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참고하라는 취지에서 한 것"(1심 판결문)이라 말한 바 있다. 

보충의견은 "피청구인은 수석부장판사의 지위에서 소속 법원 판사들의 재판에 개입한 것을 선배 법관의 조언이라고 합리화하고 있는데, 이는 사법권의 독립에 관한 본질적 영역의 보호와 이를 침해하는 행위 사이의 규범적 경계가 설정되어 있지 않음을 반증한다"고 지적했다. 김 재판관은 독립과 침해의 규범적 경계의 모호함의 시작을 '신영철' 석자에서 찾는다. 

"만약 당시 사법부 내의 법관 독립 침해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반성적 고려가 있었다면 그로부터 불과 몇 년이 지난 후 같은 법원의 수석부장판사로 부임한 피청구인이 감히 법관들의 구체적인 재판에 개입하거나 관여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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