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비밀문서] 전두환 발인...5.18 광주 유혈진압의 진실, 끝내 미스터리로
[WIKI 비밀문서] 전두환 발인...5.18 광주 유혈진압의 진실, 끝내 미스터리로
  • 특별취재팀
  • 승인 2021.11.27 07:15
  • 수정 2021.11.2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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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전두환 전 대통령, 오늘 화장... 부인 이순자씨 "고통받은 분들께 대신 사죄"
1980년 5월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무력으로 시위대를 탄압하는 모습. /연합뉴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무력으로 시위대를 탄압하는 모습. /연합뉴스

삼천리강산에 하얀 목련꽃이 한창 피는 5월. 그러나 1980년의 5월은 대한민국 현대사에 가장 잔인한 '피의 붉은 달'로 기록되고 있다.

새 학기가 되면서 전국에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가운데, 주한미국대사관은 강경파들이 학생시위에 대한 강력한 탄압을 요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기 시작했다.

청와대와 한국군은 각각 글라이스틴 대사와 위컴 장군에게 한국 정부가 몇 개 부대를 한미연합사의 작전통제권에서 회수할지 모른다고 통보해왔다.

위컴 장군은 5월 13일 전두환 장군과 만났다. 전 장군은 앞서 글라이스틴 대사에게 말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북한이 학생시위를 배후조종하고 있다며 남침을 감행할 결정적인 시기가 임박했을지 모른다고 했다.

이에 대해 위컴 장군은 “미국은 언제나처럼 한국을 방위할 태세를 갖추고 있으나 북한의 침공이 임박했다는 징후를 찾을 수 없다”고 답했다.

위컴 장군은 “정치자유화가 한국의 안정을 가져올 것이며, 안정이야말로 북한의 남침을 억지하는 주요 수단”이라는 미국측 견해를 피력했다.

위컴 장군은 “전씨가 국내정세에 대해 비관적으로 평가하고, 북의 도발 가능성을 강조하는 것이 청와대 주인이 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한 것 같다”고 본국에 보고했다.

5월 13일 국무부 대변인은 글라이스틴 대사와 위컴 장군의 보고와 당시 서울에서 나돌던 루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가 가진 정보에 따르면 북한에서 평소와 다른 부대이동을 볼 수 없으며, 한국에 대한 모종의 공격이 임박했다고 믿을 만한 움직임이 없다. "

5월 14일 글라이스틴 대사는 최광수 청와대 비서실장과 만나 자제를 촉구했다. 당시 위컴 장군이 한국에 없었던 상황이어서 주한미군 부사령관 로잰크란스 중장이 한국 국방장관에게 같은 메시지를 전달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김대중, 김영삼씨를 비롯한 정치인들에게도 충돌을 막기 위해 노력해주도록 호소했다.
야당 지도자들은 자제를 호소함으로써 정부의 목적에 협력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꺼렸지만, 미 대사의 요청에 야권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을 보이려했다.

그렇지만 검열을 받는 언론들은 야당 정치인들이 자제를 호소한다는 사실을 보도하지 못했다.

학생시위가 엄청난 규모로 확대되기는 했으나 경찰은 군부대 없이도 이를 통제할 수 있었다.

미국 관측통들은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시위에 참가했던 사실을 고려할 때, 양측 모두 폭력을 상당히 자제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주한 미국대사관 관리들은 경찰을 지원하기 위해 일부 지역에 군이 배치되었다는 점에 대해 우려했다.

5월 16일 서울에는 시위가 없었다. 학생 지도자들은 국회가 끝날 때까지 시위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시위로 정부가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고, 국회가 계엄 해제와 민주화 일정 공표를 요구할 것이라는 인식이 확대되어 가는 것을 주목했다. 정부는 최규하 대통령이 중동순방을 단축한다고 발표했고, 그는 곧바로 5월 17일 귀국했다.

신군부, 20사단 포병대등 작전통제권 회수... 계엄확대 2시간 전 통보

같은날(5월 16일) 한국군당국은 한미연합사 관계자들에게 20사단 포병대와 60연대를 연합사 작전통제권으로부터 회수하겠다는 의향을 통지했다.

연합사는 위컴 장군이 공무로 미국에 가 있는 동안 계엄사로부터 해당 부대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행사하겠다는 통보를 접수했다.

연합사 부사령관인 백인주 대장은 연합사를 대표해 작전통제권 회수 통고를 접수하고, 계엄사 통제로 넘어가는 20사단 예하 부대를 대신할 다른 병력을 제공해줄 것을 요청했다.

5월 17일(토)은 하루종일 시위가 없는 소강상태가 지속되었다. 그러나 한국정부의 강경한 자세를 우려한 글라이스틴 대사는 최광수 청와대 비서실장을 만났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한국 정부에 대해 군부가 강경책을 취하지 못하도록 하라고 촉구했다. 특히 김대중 씨 체포와 같은 정치인들에 대한 탄압은 '반발을 불러일으킨다'고 경고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최광수 비서실장으로부터 ‘비상계엄 전국확대 실시’ 결정이 임박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이날 오후 9시 30분께 미국 관리들은 청와대로부터 5월 18일 00:01시를 기해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 실시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어 언론은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과 다른 여러 명의 정치인들이 체포됐고 보도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워싱턴의 지시에 따라 5월 18일 최규하 대통령을 방문, 5월 17일의 탄압과 비상계엄 확대는 '충격적이고 경악할 일'이라는 미국 측의 강력한 항의를 전달했다.

이에 최 대통령은 “한국정부가 걷잡을 수 없는 학생시위로 전복될까 두려워 부득이 비상계엄 확대를 선포하게 되었다”고 답했다.

글라이스틴 대사 김대중, 김영삼 석방 요구

국무부의 지시에 따라 글라이스틴 대사는 김대중, 김영삼 등 야당 지도자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또한 이희성 계엄사령관에게도 항의했다.

글라이스틴 대사의 지시에 따라 대사의 특별고문이 전두환 장군에게도 미국의 강력한 항의의 뜻을 전했다.

전 장군도 최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통제불가능한 학생들의 시위가 이유”라는 주장으로 대응했다. 전 장군은 시위 주도권을 '극렬분자‘들이 장악했다고 덧붙였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이러한 합리화 이유를 믿을 수 없다”고 워싱턴에 보고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비상계엄 확대실시와 그에 따른 체포, 그리고 국회 폐쇄는 군부가 실질적으로 국가를 장악했음을 뜻한다고 판단했다.

5월 18일(일) 오전, 김용직 한국대사가 리처드 홀부르크 동아시아 태평양 담당 미국무부 차관보를 방문했다. 홀부르크 차관보는 그날 오후 1시에 비상계엄 전국 확대 실시를 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겠다고 전했다.

김용직 대사가 미국의 성명발표에 대해 항의하였으나 홀부르크 차관보는 만약 상황이 '현재와 같이 계속 된다면' 앞으로 성명은 더욱 비판적일 것이라고 말하면서 한미관계가 위태롭게 될 것임을 경고했다.

미 국무부는 5월 18일, 이튿날인 5월 19일 워싱턴에서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는 비상계엄이 대한민국 전역에 확대 실시되고, 대학이 폐쇄되고, 많은 정치 지도자와 학생 지도자들이 체포된 것에 대하여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정치 자유화를 향한 발전에는 법의 준수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 정부가 취한 행동이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문제를 악화시킬 것이라 우려한다.

우리는 한국의 지도자들에게 우리가 매우 우려하고 있는 바를 분명히 밝혔고, 최규하 대통령이 일찍이 밝힌 바와 같이 헌법 개정과 광범위한 지지기반을 갖춘 문민정부 선거가 즉시 계속되어야 한다는 우리의 신념을 강조했다.

우리는 한국 사회 전체가 이 어려운 시기에 신중히 대처할 것을 촉구한다. 1979년 10월 26일 천명한 것과 같이 미국 정부는 대한민국의 현상황을 악용하려는 어떠한 외부의 시도에 대해서도 조약상의 의무에 따라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다.

5월 21일. 국무부 대변인은 기자들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광주에서 대치상황이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다는 사실이 심히 유감스럽다. 미국은 모든 당사자들이 자제하도록 거듭 긴급히 요청한다. 군부대가 시 외곽에 비상경계선을 설치하기 위해 시에서 철수하고 있다는 보도를 보았다."

"화해를 위한 대화를 진전시키기 위한 노력이 행해지고 있다고 들었지만, 과연 이러한 노력이 성공할지는 확실하지 않다."

미국은 한국 정부가 비상계엄 확대 선포 2시간 전에 미국에 이를 통보받았고 한미연합사 사령관이나 미국대사는 비상계엄 선포에 뒤이어 대학 및 국회 폐쇄, 정치 지도자와 언론인 구속, 언론을 포함한 많은 민간분야에 대한 군의 간섭이 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 확대에 동원된 한국군 부대

비상계엄 확대에 동원된 한국군 부대는 2가지 범주로 나뉜다.

1980년 5월 정상 경계 상태에서 원래 연합사 작전통제권에 속하지 않았던 부대와 연합사 작전통제권에서 해제된 부대로 나눌 수 있다.

특전사에서 동원한 여단과 광주에 기지를 둔 한국군 2군 휘하 31사단은 연합사 작전통제권 하에 있었던 적이 없다. 20-보병사단 예하 부대는 연합사 작전통제권으로부터 해제된 바 있다.

미국 측은 광주에 배치된 어느 군부대도 당시 미군 당국의 통제권 아래에 있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관리들은 5월 18일(일) 오전, 비상계엄 확대에 항의하고 그 범위와 의미, 특히 김대중 등 정치 지도자들의 체포 사실을 확인하는 등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광주에서는 18일 신군부의 5⋅17 군사 쿠데타에 항거해 비상계엄 해제와 신군부 세력 퇴진, 김대중 석방, 민주주의 실현 등을 요구하는 대규모 학생과 시민의 시위가 발생했다. 하지만 신군부는 공수 부대를 동원하여 이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주한 미국대사관 관리들은 광주의 상황이 서울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몰랐으나, 5월 19일(월) 오전 데이비드 밀러 광주 미국문화원장이 대사관에 전화를 해왔을 때에 비로소 미국은 광주에서 일어난 폭력사태에 대해 처음으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밀러 원장은 광주시민들로부터 “시내에서 심각한 폭동이 일어나고 있으며 특전사 부대가 몇 명의 사망자를 비롯한 많은 부상자 발생에 책임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보고했다. 서울에 있던 한 미군 관리도 5월 19일 광주에 있는 친지로부터 그와 비슷한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광주의 상황은 당시 폭력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던 서울의 상황과는 크게 대조적이었기 때문에 미국대사관은 처음에는 사태의 심각성을 쉽게 파악할 수 없었다는게 미국측의 주장이다.

미 대사관은 이제까지 있었던 시위와 마찬가지로 광주에서 어떤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인명손실 없이 통제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계엄 아래에서 엄격한 검열을 받던 한국 언론들은 5월 18일(일)과 19일(월)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아무런 보도도 하지 않았다.

5월 19일과 20일 사이의 광주의 사태 전개에 관한 미국대사관의 단편적인 지식은 데이비드 밀러 광주 미국문화원장으로부터 얻은 약간의 정보와 광주시에서 12마일 정도 떨어져 있는 미 공군기지의 관리가 보낸 제한적인 관찰보고, 그리고 차츰 외국 언론의 보도에 의존한 것이었다.

미국대사관으로부터 안전상의 이유로 외부로 나오지 말라는 명령을 받은 밀러 원장의 정보는 빈약할 수 밖에 없었다. 공식적인 한국의 소식통들은 광주에 특별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거나 아니면 사태의 심각성을 축소했다.

5월 19일 위컴 장군이 미국에서 돌아왔다. 위컴 장군은 광주의 심각한 상황이 한국을 외부의 침공으로부터 방위하는 임무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해 계속 정확한 정보가 필요할 것이라고 인식했다.

위컴 장군은 가능한 한 모든 채널을 이용해 정보를 수집했다. 주요 채널은 유병현 장군과 한국 합참의장이었다. 위컴 장군은 글라이스틴 대사와 계속 연락을 취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비롯한 관리들에게 자제하도록 노력하고, 광주 시민들, 종교 지도자과 연락을 취하며, 과도한 군사력 이용에 대한 사과나 유감 표시를 신중히 고려하도록 촉구했다.

광주항쟁 진압... 특전사와 제20사단의 이동과 미국

광주항쟁 진압의 핵심은 특전사와 20사단의 이동문제였다.

미국은 특전사 부대에 대해 아무런 권한도 없었고, 부대가 광주로 이동한 것에 대해서도 사전에 알지 못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특전사 부대는 한미연합사 작전통제권 하에 있지 않았다. 마침내 미국이 광주에서 일어난 상황의 전모를 파악했을 때, 글라이스틴 대사는 특전사 부대의 과잉진압이 비극의 직접 원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5월 20일. 미국관리들은 한국군 당국이 광주에 20사단 부대를 투입할 것을 고려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사단은 정규부대로서는 드물게 폭동진압 훈련을 받은 부대였다 한국 당국은 광주시민들이 광주에 투입된 특전사 부대에 비해 20사단이 공격적이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의 미국 관리들은 사태의 평화적인 해결을 위한 협상이 실패할 경우, 특별히 훈련된 20사단 병력을 투입하는 것이 특전사 부대를 계속 동원하는 것보다 낫다는데에 동의했다.

그래서 위컴 장군과 글라이스틴 대사는 한국 당국의 문의에 대해 워싱턴 상부와 협의한 후, 특전사 부대를 20사단 부대로 대체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마지못해 수용한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위컴 장군은 북한의 계속적인 위협을 고려하여 20사단의 중포대가 언제나 동원될 수 있게 서울 근처에 남아 있도록 요청하였고, 그 요청은 수락되었다.)

20사단은 이미 연합사 작전통제권 하에 있지 않았으므로 계엄사가 20사단 예하 부대를 광주로 이동시키는데 대해 연합사에 통고할 의무는 없었으나 5월 20일에는 이를 통고해 왔다.

이는 12월 12일 연합사 작전통제권하에 있던 한국군 부대를 사전통보 없이 이동시킨대 대하여 위컴 장군이 여러차례 강경 항의했기 때문이라고 미국 측은 생각했다. 사실, 20사단이 서울 근처에 있는 본래의 작전지역으로부터 이동하게 되면 군 비상시에 이용하기 어려워질 것이었다.

그 후에 나온 출판물과 인터뷰에서 글라이스틴 대사는 미국이 20사단의 이동을 '승인'했다고 말했으며, 1980년 5월 23일 미 국방부 대변인은 미국이 광주에 파견된 부대를 연합사 작전통제권에서 해제시키는데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어떤 용어가 사용되었던 간에 일단 작전통제권을 갖게 된 이상 한국 정부는 주권국가로서 미국 정부의 견해와는 관계없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대로 20사단을 배치할 권한을 가지게 됐고, 미국측은 한국군이 어떻게 활용할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5월 말까지만 해도 광주에서 발생한 5.18 유혈 진압의 규모와 잔인했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 사태가 대한민국 정치사를 뒤흔들 핵폭탄급 태풍으로 발전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2021년 11월. 신군부의 사령탑이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망으로 5.18 광주 유혈진압의 진실들은 영원한 역사의 미스터리로 남게 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발인식이 진행된 2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운구차량이 나오고 있다.  [공동취재]
전두환 전 대통령의 발인식이 진행된 2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운구차량이 나오고 있다. [공동취재]

한편, 전두환 씨의 부인 이순자 씨는 27일 "장례식을 마치면서 가족을 대신해 남편의 재임 중 고통을 받고 상처를 받으신분께 남편을 대신해 사죄를 드리고 싶다"고 했다.

이씨가 전씨 측의 과오에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전씨가 장본인으로 꼽히는 5·18 비극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씨는 이날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전씨의 영결식에서 "남편이 공직에서 물러난 후 참으로 많은 일을 겪었다"라며 "그럴 때마다 모든 것이 자신의 불찰이고 부덕의 소치라고 말씀하셨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전 씨의 운구차량은 오전 9시50분쯤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이어 화장 절차가 진행됐고, 숱한 논란을 뒤로 한 채 전 씨는 한 줌의 재로 돌아갔다.

[특별취재팀= 한시형, 최석진, 최정미 기자]


<위키리크스, 참조 문서>
https://wikileaks.org/gifiles/docs/15/1556806_korea-assassination-history-.html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EOUL19088_e.html

http://timshorrock.com/documents/korea-the-cherokee-files-part-one/

https://www.38north.org/2017/10/tshorrock100317/

http://www.eroseffect.com/powerpoints/NeoliberalismGwangju.pdf

https://kr.usembassy.gov/wp-content/uploads/sites/75/2017/05/The-Kwangju-Incident.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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