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108) 노태우 정부의 ‘북 포위정책’ 불구… 핵확산 방지조약 탈퇴 충격
청와대-백악관 X파일(108) 노태우 정부의 ‘북 포위정책’ 불구… 핵확산 방지조약 탈퇴 충격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1.12.05 06:44
  • 수정 2021.12.05 0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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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백악관 x파일
한-미 정치 40년 비사로 쓰는 청와대-백악관 X파일. [Wikileaks Korea DB]

노태우 정부의 대표적 외교전략인 '북방정책'의 방향은 한국이 주도권을 갖고 북한을 상대하는 것이었다.

노 대통령이 “우리는 모스크바와 베이징을 경유해 평양에 갈 것이다”고 한 말은 러시아와 중국을 한국의 편으로 만듦으로써 북한에 개혁과 변화의 압력을 넣겠다는 의미였다. 결국 북한은 별 다른 도리 없이 한국과 충실한 관계를 맺게 된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만 북방정책은 ‘북한 포위정책’이었다.

많은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은 이 같은 한국정부의 정책에 부응하는 북한의 진실성과 정직성에 의심을 품었다. 하지만 ‘한반도 문제 논의에서 남북간 대화가 우선’이라는

한국 정부의 의견을 존중했다. 실무적인 차원은 물론 노태우-부시 대통령의 강한 유대감이 이 같은 신뢰를 가능케 했다.  

백악관은 ‘미국이 한국 정치의 볼모가 되고 있다’는 비판적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직접적인 접촉을 적극 추진하지 않는 등 자제하는 태도를 유지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미국과 북한의 고위 당국자가 한 차례 회담을 개최한다는데 동의했다. 단 회담이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한 협상 과정이 아니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핵사찰을 할 수 있게 북한을 설득하는 목적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1992년 1월 21일, 아놀드 캔터 미 국무부 차관과 김일성 주석의 측근인 김용순 노동당 비서가 뉴욕에서 만났다. 회담 후 미국 측은 “한미가 미리 예상했던 범위 내에서 이뤄졌다”고 현홍주 주미대사에게 알려줬다.

미국-북한의 뉴욕 회담과 관련, 8년 후 미스테리 한 소동이 일었다.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서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을 가졌을 때 김정일 위원장은 놀랍게도 “북한은 주한 미군의 철수를 원하지 않는다”며 “통일 이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러한 북한의 입장은 1992년 1월 뉴욕에서 김용순 비서가 캔터 채관을 만났을 때 이미 미국에 전달되었다”고 덧붙였다.
헌법재판소 자문위원을 맡고 있던 현 전 대사는 이 같은 소식을 접하고 어리둥절했다. 캔터 차관이 회담 내용을 전해줬을 당시 주한 미군에 대해 언급했던 기억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의 메모를 확인해보고 외무부에 기록이 남아있는지 물어보았으나, 그러한 내용은 발견되지 않았다. 현 전대사는 몇 개월 후 사석에서 캔터 전 차관을 만나 이 내용을 확인했으나 그는 “김용순 비서로부터 주한 미군에 관한 어떠한 말도 들은 적이 없었다”고 했다.

1992년을 전후로 북한 핵문제는 한반도를 초긴장 국면으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연합뉴스
1992년을 전후로 북한 핵문제는 한반도를 초긴장 국면으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SBS 캡쳐

‘주한미군 철수를 원하지 않는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은 진심이었을까? 아니면 미국과 한국의 분열을 노린 고도의 트릭이었을까?

김일성-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하면서 이 같은 발언의 진실은 역사에 묻히게 됐지만, 대부분 북한 전문가들은 후자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1992년은 한국과 미국 모두 선거가 있었다. 양국의 대통령이 각자의 국내 정치에 몰입해 있는 동안 북한은 영변 핵시설 사찰문제에 집중하고 있었다.

1992년 5월 IAEA 한스 블릭스 사무총장이 핵사찰을 논의하러 북한을 방문하기로 했을 때만 해도 전문가들은 비핵화 과정이 좋은 출발을 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북한이 철처하게 사찰을 회피하고 핵 프로그램에 대한 진실을 숨기는 등 IAEA사찰단에 뻔뻔한 태도를 보이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노태우 정권 말기로 갈수록 북한의 입장은 더욱 강경해졌다.

사실 북한은 그동안 국제사회에 전술적으로 핵문제에 대해 유연한 듯한 제스처를 취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핵무기를 만들겠다는 전략이었다.
핵사찰을 회피하며 핵무기 개발을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끊임없이 대외적인 핑계를 찾아왔을 뿐이었다.

[특별취재팀= 한시형, 최석진, 최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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