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비틀즈가 갈라선 진짜 이유는... 창작 견해차, 돈 , 오노 요코, 그리고...
[WIKI 프리즘] 비틀즈가 갈라선 진짜 이유는... 창작 견해차, 돈 , 오노 요코, 그리고...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1.12.11 20:24
  • 수정 2021.12.12 0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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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리크스한국, 뒤돌아보는 음악과 역사
전성기 때의 비틀즈 공연 모습 [사진=연합뉴스]
전성기 때의 비틀즈 공연 모습 [사진=연합뉴스]

존 레넌,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그리고 링고 스타, 이렇게 4명으로 구성된 비틀즈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음악의 역사를 영원히 바꿔놓았다. 그들은 1963년 첫 앨범 ‘플리즈 플리즈 미(Please Please Me)’를 발표하며 혜성같이 나타났다가, 1969년 마지막 앨범인 ‘렛 잇 비(Let It Be)’와 ‘애비 로드(Abbey Road)’를 발표하고 뒤안길로 사라졌다.

4명의 멤버들은 10대 시절에 하나로 뭉쳐, 20대 초에 슈퍼스타가 되면서, 그들만의 역사를 만들어내고, 당연한 귀결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남다른 경쟁과 불화를 겪어야 했다.

그렇다면 20세기 최고의 음악 밴드로 평가받는 비틀즈는 어째서 첫 앨범을 내놓은 지 7년을 넘기지 못하고 갈라서게 되었을까? 그 해답은 멤버들의 관계만큼이나 단순하지 않다.

‘You Never Give Me Your Money’ : 돈 문제

많은 사람들은 비틀즈의 해산을 그들의 매니저였던 브라이언 엡스타인(Brian Epstein)의 죽음에서 찾는다. 

엡스타인은 1967년 8월 27일 갑자기 죽었다. 레코드 상점을 운영하던 엡스타인은 음악 밴드 매니저 일에 경험은 없었지만 비틀즈가 세계적 명성을 얻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는 또 비틀즈 음악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음반 회사 ‘노던 송즈(Northern Songs Ltd.)’를 공동으로 설립한 후, 존 레넌과 폴 매가트니에게 각각 15%의 지분을 나눠주었다.

비틀즈 멤버들은 순회공연이 늘어나면서, 팬들의 환호 때문에 자신들의 연주 소리가 파묻혀 음악 활동에 지장을 받자 1966년 라이브 공연을 중단해버렸다. 그러나 엡스타인은 좋은 음악을 만드는 일에 집중하겠다는 멤버들의 이런 결정에 반대했다. 그 이후 몇 년 동안 비틀즈는 앨범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트 클럽 밴드(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내놓고, 팝 음악계를 재정립하면서, 세계적인 반문화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큰돈을 벌지는 못했고, 엡스타인과도 사이가 멀어졌다.

엡스타인이 약물 남용으로 사망하자 비틀즈는 자신들의 돈 문제뿐만 아니라 멤버들의 인간관계까지도 관리해주던 전문가를 잃게 되었다. 이후 레논과 해리슨 그리고 스타는 롤링 스톤즈의 매니저였던 알렌 클라인을 후임 메니저로 받아들이고자 했지만, 매카트니는 약혼자 린다 이스트만의 아버지와 오빠인 리 이스트만과 존 이스트만을 매니저로 고집했다.

“나는 이것이 폴의 엄청난 계산착오였다고 생각합니다.”

에머슨 대학 언론학과의 교수이면서 비틀즈 관련 책들을 펴내기도 했던 팀 릴리 교수는 이렇게 분석했다.

“그 반대 상황을 떠올려보세요. 폴 매카트니는 존 레논이 처갓집 식구들을 사업에 끌어들였다면 결코 묵과하지 않았을 겁니다.”

순회공연에서 생기는 안정적인 수입이 사라지자 비틀즈는 점점 곤궁한 처지에 빠지게 되었다. 영화로도 제작된 ‘매지컬 미스트리 투어(Magical Mystery Tour)’ 앨범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는 했지만 박스오피스 기록을 깨뜨리지는 못했다. 그들은 사이키델릭한 ‘애플 부띠끄(Apple Boutique)’ 소매업에도 뛰어들었지만, 20만 파운드의 손해만 보고 8달 만에 사업을 접기도 했다.

1968년과 1970년 사이 비틀즈 멤버들은 자신들이 세운 음반회사 ‘애플 레코드(Apple Records)’사에서 자주 충돌했다. 금전적 문제는 음악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면 앨범 ‘애비 로드(Abbey Road)’에 삽입된 노래 ‘유 네버 기브 미 유어 머니(You Never Give Me Your Money)’는 남녀 간의 사랑을, 파트너들이 갈라서게 되는 협상 과정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비틀즈의 궁극적 해산은 하나의 약속과 함께 찾아왔다. 레논은 1969년 9월 20일 알렌 클라인과 회의를 하는 과정에서 매카트니와 스타에게 팀을 떠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그러자 클라인은 ‘애플 레코드’에 비틀즈의 전체 저작권을 이양하는 중요한 계약이 성사될 때까지 탈퇴 사실을 비밀에 부쳐줄 것을 부탁했다. 마침내 비틀즈는 레논이 팀을 영원히 떠나기로 한 바로 그날 이 계약에 서명함으로써 재정(財政)에 엄청난 변화가 찾아왔다.

폴 매카트니 첫 내한공연 : 전설적인 밴드 '비틀스'의 멤버 폴 매카트니가 지난 2015년 5월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열린 '아웃 데어' 콘서트에서 공연하고 있다. [사진=현대카드 제공]
폴 매카트니 첫 내한공연 : 전설적인 밴드 '비틀스'의 멤버 폴 매카트니가 지난 2015년 5월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열린 '아웃 데어' 콘서트에서 공연하고 있다. [사진=현대카드 제공]

‘존과 요코의 발라드(The Ballad of John and Yoko)’

1968년 말 ‘렛 잇 비(Let It Be)’가 인기를 구가하는 내내 오노 요코는 레논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레논은 이 개념 예술가(conceptual artist)를 1966년에 만났고, 1969년이 되자 둘 사이의 관계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발전하면서, 오노는 레논의 작곡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심지어는 비틀즈 노래 몇 곡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오노의 등장과 그녀가 레논에 영향을 미친 초현실적 실험 기법 때문에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그녀가 비틀즈 해산에 결정적 책임이 있지나 않나 하는 의심을 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는 비틀즈가 갈라선 진짜 이유가 아니라고 믿는 비평가들이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나는 오노 요코 때문에 비틀즈가 해산됐다는 것은 가장 악의적이고 인종차별적이며, 어리석고 편협한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릴리 교수는 이렇게 평가한다. 그는 존 레논 자신이 멤버들과 거리를 두기 위해 이러한 주장 뒤에 숨어버렸다고 단언한다.

릴리 교수에 따르면, 레논은 여자 친구를 대동함으로써 멤버들에게 그들과 쌓았던 관계를 뛰어넘고 싶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한다. 오노는 멤버들과 레논 사이의 다른 갈등들, 그러니까 금전적 문제라든가 음악 창작에 따른 견해차나 레논의 헤로인 중독과 같은 다른 문제들에서 오는 불협화음을 해소하는 피뢰침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이다.

비틀즈는 대중들에게 ‘렛 잇 비(Let It Be)’가 알려지기 시작할 때에도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렛 잇 비’ 흥행이 끝난 직후인 1969년 4월, 레논은 새로운 앨범 ‘존과 요코의 발라드(The Ballad of John and Yoko)’에 대한 열의를 품고 매카트니의 집을 찾았다. 레논은 ‘존과 요코의 발라드’를 통해, 자신을 예수그리스도에 비교하는 한편으로 요코와 자신이 그토록 갈망했던 여론의 과도한 조명을 한탄했다.

이때 사람들은 매카트니가 콧대를 세우고 레논을 돕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레논이 곡을 마무리할 때까지 도왔다. 그런 다음 두 사람은 그들의 ‘애비 로드 스튜디오’로 달려가서 하루 밤새 모든 녹음 과정을 끝마쳐버렸다.

“레논을 도울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매카트니는 나중에 이렇게 쓴 바가 있다.

“우리 둘이서만 만들었는데도 결과는 비틀즈 노래처럼 들린다는 사실이 항상 저를 놀랍게 하지요.”

존 레논 [사진=ATI]
존 레논 [사진=ATI]

‘어떻게 잠이 올 수가 있나?(How Do You Sleep)’ : 레논과 매카트니의 불화

레논과 매카트니 모두 자신들의 불화에 대한 핑계로 오노를 너무 쉽게 갖다 붙였다. 레논은 1970년 롤링 스톤즈에게 “나에게는 비틀즈와 요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양자택일밖에 없었고, 결국 나는 요코를 선택했다.”고 말한 바가 있다. 그러나 처음 만났을 때 각각 16살과 15살이었던 레논과 매카트니는 매우 복합적인 심리상태에 빠져들었으며, 모두가 이를 알고 있었다. 그들의 경쟁심은 오노의 출현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이다.

초기 비틀즈의 모든 노래들은 레논과 매카트니의 진정한 합작품이었다. 두 사람이 성장하면서 사이가 틀어졌을 때에도 두 사람은 애정을 가지고 서로의 스타일을 흉내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상대방의 도움 없이는 노래를 완성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 사이의 악감정은 싹을 띄우고 있었다. 레논은 매카트니의 노래가 구식이라고 깔봤고(그는 매카트니가 만든 ‘오블라디오블라다<Ob-La-Di Ob-La-Da)’>를 할머니 음악이라고 무시하기도 했다.), 매카트니는 자신이 비틀즈의 리더임을 자처했다. 또, 레논은 매카트니가 만든 ‘헬로 굿바이(Hello, Goodbye)’ 같이 너무 대중 친화적인 노래들이 싱글 앨범의 A면에 배치되는 반면에 ‘I Am the Walrus’ 같이, 자신이 만든, 내면을 성찰하는 노래는 B면으로 밀리는 사실에 불만을 표하는 일이 잦았다.

결국 두 사람 사이의 적개심은 비틀즈의 해산과 궤적을 함께 그리게 되었다. 매카트니가 앨범 ‘사람이 너무 많아(Too Many People)’를 통해 레논이 굴러들어온 복을 둘로 쪼갰다며 레논과 오노를 저격하자 레논은 ‘어떻게 잠이 올 수가 있나?(How Do You Sleep)’를 통해 “네가 한 일은 ‘예스터데이(Yesterday)’뿐이었고, 네가 사라지자 너는 그냥 ‘한 때(Another Day)’에 불과했다.”라며 더욱 악에 받친 노래를 만들어 응수했다.

매카트니가 비틀즈의 해산 소식을 공표한 것은 자신의 솔로 데뷔 앨범이자 레논의 도움 없이 홀로 만든 앨범의 판촉 행사 자리에서였다. 레논이 그 전 해 9월에 팀을 떠났지만 그의 탈퇴는 1970년 4월 10일까지는 비밀에 부쳐졌었다. 그러다가 메카트니가 자신의 앨범 홍보를 위해 인터뷰를 자청한 자리에서 레논과의 관계가 끝났음을 선언하게 된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 레논은 이후 자신은 팀을 떠난 적이 없다며, 매카트니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도 했다.

말년의 존 레논과 오노 요코 [사진=연합뉴스]
말년의 존 레논과 오노 요코 [사진=연합뉴스]

결말 : 이별은 쉽지 않아(It's No Easy Goodbye)

표면 아래 도사리고 있던 긴장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렛 잇 비’와 ‘애비 로드’는 레논과 매카트니, 그리고 다른 비틀즈 멤버들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상태에서 음악 활동을 했음을 보여주는 수많은 사례 중 하나가 되었다.

‘우리 두 사람(Two of Us)’은 매카트니와 린다가 탄 차 안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을지 모르지만, 이 노래를 위해 레논과 매카트니 사이에 사전 교감이 없었다고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보도에 따르면 레논이 ‘애비 로드’의 한 면에 수록되고, 매카트니의 것은 다른 면에 수록되기를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앨범을 아이콘으로 만든 것은 두 사람의 합작품이었다. ‘애비 로드’의 후반부 반을 장식하는 메들리는 레논과 매카트니의 노래가 혼합되어있다. 마지막 트랙인 ‘디 엔드(The End)’는 비틀즈 앨범에 포함된 유일한 링고 스타의 드럼 솔로가 레논, 매카트니 및 해리슨의 3부 기타 솔로로 나눠 이어지면서 일정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음악은 사랑과 격정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복잡하고 까다로운 감정 문제와 중첩됩니다.”

팀 릴리 교수는 비틀즈의 마지막 앨범을 이렇게 평했다.

“음악 밴드 활동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문제를 간단한 설명으로 끝내려는 습성을 버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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