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탐구② 천대엽] 김재형과 같으면서 다르게 '사법적극'
[대법관 탐구② 천대엽] 김재형과 같으면서 다르게 '사법적극'
  • 윤여진 기자
  • 승인 2022.01.06 17:35
  • 수정 2022.01.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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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5~ 0년 8월
-사법연수원 21기 수료
-김명수 現 대법원장 제청
-문재인 現 대통령 임명

지난해 12월 23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뉴질랜드 오클랜드 고등법원이 외교 경로로 보내온 소송서류를 대한민국 법원이 피고 남편에게 대신 전달한 '보충송달'이 '적법한 송달'이라고 인정했다. 보충송달은 '송달받을 사람'을 만나지 못해 사무원, 피용자, 동거인에게 소송서류를 내주는 제도다. 그간 대법원은 외국재판의 승인 조건을 정한 민사소송법 제217조 1항의 '적법한 방식의 송달'을 "보충송달이나 우편송달이 아닌 통상의 송달"로 해석했다. 전합 판결은 1992년 대법원 판례를 30년 만에 변경한 것이다.

천대엽 대법관. [출처=연합뉴스]
천대엽 대법관. [출처=연합뉴스]

대법관 전원일치 의견인 이번 전합 판결은 보통 때와는 달리 소수의견이 적혔다. 김재형 대법관은 "다수의견의 결론과 그 이유에는 찬성하지만, 판례 변경의 필요성에 관해서만" 의견을 냈다. 때문에 그의 의견은 다수의견 결론과 다른 '반대의견'도, 결론은 같으나 이유가 다른 '별개의견'도 아니다. '판례 변경의 필요성에 관한 대법관 김재형의 의견'이 판결문에 실린 이유다. 이 사건 주심으로 다수의견을 집필해 만장일치를 이끌어낸 천대엽(59·사진) 대법관에겐 판결문이라는 작품에 스크래치가 생긴 셈이다. 천 대법관으로선 김 대법관 의견에 반대하는 '보충의견'을 적을 수밖에 없었다. 

◇ 애초 판례는 없었다
김 대법관이 판례 변경이 필요 없다고 본 이유는 간단하다. 1992년 대법원 판결은 이번 전합 판결의 '선행 판결'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2021년 대법원 판결의 핵심 쟁점 '보충송달의 적법성'은 1992년 대법원 판결에서 직접적 쟁점이 아니었다. 단지 "재판의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장래의 재판에 대하여 지침이 될 수 있는 '일반·추상적인 법명제'를 제시"한 것에 불과했다. 김 대법관은 "후행 사건을 담당하는 법관이 선행 판결에 있는 '법령의 해석·적용에 관한 의견'을 대전제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선행 판결에서 한 판단의 대상인 쟁점이 후행 사건과 실질적으로 동일하거나 유사해야 한다"며 1992년 대법원 판결과 2021년 대법원 판결이 본질적으로 다른 사건이라고 봤다. 사실상 2021년 대법원 판결은 판례가 없던 사안을 새로이 정한 판례라는 것이다. 

김 대법관은 이같은 결론을 끌어내려 '판례'를 재정의했다. 사실 대법원은 '판례'나 '판례 변경'이라는 표현을 빈번히 쓰면서도 그 개념을 정의한 적 자체가 없다. 김 대법관은 "판례 변경과 관련하여 문제 되는 것은 대법원 판결에 있는 법리 부분을 모두 판례로 볼 것인지, 아니면 해당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필요한 법리 부분에 한정하여 판례로 볼 것인지"라며 쟁점을 좁혔다. 법령의 해석·적용론(論)인 '법리'와 법리의 구체적 해설인 '판례'는 통상 같은 개념으로 묶였는데 둘을 구분한 것이다. 김 대법관은 "선행 판결에서 사안의 쟁점 또는 그 해결과 관계없는 부분에 관하여 일반적·추상적 법명제를 선언하였더라도 이 부분은 판례로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단정했다. 여기서 '일반적·추상적 법명제'는 법리는 될 수 있어도 판례는 될 수 없는 것이다. 김 대법관은 "구체적 사건의 해결과 관계없이 일반적으로 법규범을 만들어내는 것은 사법부의 권한이 아니라 입법부의 권한"이라고 못 박았다. 

김 대법관은 본인 의견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하려 판례를 변경해야 하는 사안으로 보이면서도 대법원이 전합이 아닌 소부에서 선고한 사례를 들었다. 앞서 대법원 판결에는 "선행 판결과 후행 판결에서 판단한 내용이 서로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 사안에서 선행 판결의 의미와 적용 범위를 엄격하게 보거나 그 의미를 축소 해석함으로써 선·후행 판결의 사안에 따라 두 판결의 의미를 서로 모순·저촉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사정의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것이다. 가령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무의 지연손해금 기산일은 '불법행위일'로 본 1975년 대법원 판례와 '통화가치에 상당히 변동이 생긴 경우 예외적으로 사실심 변론종결일'로 달리 해석한 2011년 대법원 판례가 공존한다. 실제 2011년 대법원 판결 당시 주심 차한성 대법관은 판례 변경 절차를 밟지 않았다. 

천대엽 대법관. [출처=연합뉴스]
천대엽 대법관. [출처=연합뉴스]

◇ 판례는 원칙과 예외로 구분된다
천 대법관은 법원조직법을 근거로 김 대법관 의견에 반대했다. 이 법 제7조 1항 3호는 '종전의 대법원에서 판시한 헌법·법률·명령 또는 규칙의 해석 적용에 관한 의견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는 대법원 전합에서 재판해야 한다고 정한다. 판례는 "당해 사건의 사안에 적용될 법령 조항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한 정의적 해석을 한 대법원 판결의 판단"이고 여기엔 김 대법관이 '법리'로 격하한 '일반·추상적인 법명제'가 포함된다는 것이다. 

천 대법관은 김 대법관이 판례 변경의 필요하지 않은 사례로 제시한 '지연손해금 기산일 1975·2011년 대법원 판례'는 "법리상 모순됨에도 단지 구체적 사안이 달라 결과적으로 서로 충돌되지 않는 경우가 아니라 오히려 원칙과 예외의 관계로서 법리상 양립 가능한 관계"라고 해석했다. 불법행위가 발생한 지 40년 넘게 지나 손해배상금이 책정되면 급격한 물가 변동으로 과잉손해배상이 이뤄질 수 있기에 2011년 대법원 판례는 작은 예외를 둔 것에 불과하단 얘기다. 반면 외국판결의 적법한 송달에서 보충송달을 제외한 1992년 대법원 판례는 애초부터 "잘못된 견해이므로 이를 바로잡아 후행 판결에 실질적 영향력을 미치지 않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게 천 대법관 판단이다. 

지난 5월 취임한 천 대법관은 7개월 만에 본인의 사법철학이 사법적극주의에 가까움을 기꺼이 드러낸다. 천 대법관은 "기존 판례의 판시가 법령의 해석·적용에 관한 의견의 형태로 표시되었는데 그것이 그 법령의 의미에 관한 잘못된 이해에 따른 것으로, 이를 그대로 둘 경우 법질서 전체의 조화로운 해석·적용 및 그에 대한 일반의 신뢰에 큰 지장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라면, 명시적인 판례의 변경을 통해 이를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선언했다. 선례구속주의에 과감하게 선을 그은 것이다. 

◇ 선례구속의 함정
그런데 여기 선례구속주의를 부정한 천 대법관의 사법철학에는 아직은 메워지지 않은 빈틈이 있다. 선행 판결이 원칙이고 후행 판결이 예외라면, 예외는 어디까지나 선례에 구속되기 때문이다. 이같은 모순은 김 대법관이 선례구속주의를 역시 부정하면서 선행 판결의 효력을 좁히고자 사용한 표현 "선행 판결의 의미와 적용 범위를 엄격하게 보거나 그 의미를 축소 해석함"을 천 대법관이 '예외'로 단순히 달리 표현한 데에 있다. 사실 두 표현의 본질은 같다. 김 대법관은 사법적극주의를 부정하는 방법으로 사법적극주의를 긍정했다면, 천 대법관은 사법적극주의를 긍정하는 방법으로 사법적극주의를 부정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김 대법관이 판례 범위를 좁혀 법관의 자유를 좁게 본 것이란 시각은 착시에 가깝다. 선례구속주의를 분명 배척한 쪽은 천 대법관보다는 김 대법관이다. 그는 "선례구속의 원칙이 엄격하게 준수되는 국가에서는 선례가 법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후행 사건의 논점이 선례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선례가 법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며 "선례구속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대법원) 판례에 기속되지 않고 하급심 법원이 판례와 반대되는 자신의 견해를 표명할 수 있다"고 했다. 선행 판결의 효력 범위를 좁히면 역설적으로 대법원 소부는 얼마든 판례를 바꿀 수 있다. 단지 김 대법관 속내는 전체 대법관 다수결이 필요한 전합 절차를 피하고자 판례 변경 절차 또한 회피하는 데 있다. 지난해 12월 16일 김 대법관이 주심인 대법원 3부가 "극복할 가능성이 있는 일시적 어려움"이란 단서를 붙여 통상임금 소송에서 신의성실원칙을 부정한 게 대표적이다. 

◇ 김재형과 천대엽, 하나 되다
판례 논쟁에서 다소 소모적으로 다툰 김 대법관과 천 대법관의 정의관념은 비슷하다. 이 둘은 같은 편에 서서 선례구속주의를 부정했다. 지난해 9월 9일 대법원 전합은 저작재산권자 허락 없이 드라마·영화 동영상을 임의로 게시한 인터넷 웹사이트(A)로 연결하는 '다시보기 링크' 사이트(B) 운영자를 '공중송신권 침해 방조범'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대법관 10대3 의견이었다. 주심은 김 대법관이다. 

앞선 2015년 대법원 판례는 저작자의 공중송신권을 침해하는 정범의 범죄행위를 '저작물 게시 행위'로 한정했다. 이때 범죄 완성을 뜻하는 '기수'가 이뤄졌으니 그 이후 A와 B를 연결하는 링크 행위는 범죄가 끝난 후 벌어진 일에 불과해 방조가 성립할 수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반면 김 대법관이 집필한 2021년 대법원 판례는 "공중송신 중 전송은 그 개념 자체에서 시간적 계속성을 예정하고 있다"며 A 운영자의 저작물 게시로 범죄는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B 운영자의 링크 행위가 방조가 된다고 달리 해석했다. 6년 만에 대법원 판례가 변경된 것이다. 

조재연·김선수·노태악 대법관 반대의견은 이같은 다수의견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로 관련 법 개정이 국회에서 논의 중이라는 사실을 댔다. 반대의견은 "우리 사회에서 이 사건 쟁점에 대해 대법원이 종전 판례의 견해를 채택하였음을 당연한 전제로 하여 국민들의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국회도 입법을 통해 무분별한 링크 행위로 야기되는 문제 등에 대처하고자 법률개정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현시점"이 판례 변경의 시점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판례 변경보다 국회 입법을 우선하는 사법소극주의 내지 사법문언주의에 발을 딛고 있다. 반대의견은 "대법원이 오랜 기간 일관되게 유지해 온 형법상 방조의 개념을 확장하고는, 그로 인한 부작용이 우려되자 특정 사안에만 적용될 수 있는 이른바 핀셋(pincette) 법리를 도입하여 법적 안정성을 후퇴시킨 다수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다만 김선수 대법관은 사법소극주의 지향보다는 표현의 자유 보장 측면에서 반대의견에 함께 한 것 보인다. 

반대의견이 '핀셋 법리'라는 표현을 쓴 건 다수의견이 '공중송신권 침해 방조'를 인정하면서도 영리성·계속성이라는 조건을 달았기 때문이다. 반대의견이 보기에 다수의견은 B를 일단 처벌하고자 방조의 영역을 우선 넓힌 뒤 입법 없이 법률의 의미를 확장했다는 비판을 피하고자 다른 사건에선 적용할 수 없는 단서를 붙인 것에 불과했다.  

반대의견을 반박하려 김 대법관은 보충의견을 추가로 썼는데 여기에 유일하게 이름을 적은 대법관이 천 대법관이다. 보충의견은 반대로 2015년 대법원 판례가 유독 방조의 개념을 좁게 적용한 점을 문제 삼았다. 이들은 "종전 판례는 공중송신의 방법으로 저작재산권을 침해하는 범죄에 한하여 유독 방조의 성립 범위를 좁힌 것으로서 방조에 관한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와 정합성이 없다"며 "범행의 결의를 강화하도록 하는 것과 같은 무형적, 정신적 방조행위"를 인정한 2018년 대법원 판례를 인용했다. 대법원 소부 판결인 이 사건 주심은 조희대 당시 대법관인데 김 대법관은 이때 동참했었다. 보충의견은 "(2015년) 종전 판례 법리야말로 반대의견의 어법을 따르면 '핀셋 법리'라고 할 수 있다"고 반대의견의 지적을 되돌려줬다. 

보충의견이 보기에 반대의견이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자신들의 정의관념, 선례구속주의에 있다. 김 대법관과 천 대법관은 "반대의견은, 종전 판례가 국민들의 행위 준칙으로서 실질적인 규범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전제에서 피고인의 링크 행위를 판례 변경을 통해 방조범으로 처벌하는 것을 우려한다"며 "그렇지만 대법원 판례일지라도 그것이 올바르지 않다면 이를 바로잡는 조치는 빠를수록 바람직하다. 더욱이 대법원이 링크 행위가 공중송신권 침해의 방조가 되지 않는다는 견해를 취한 것은 2015. 3. 12. 선고한 종전판례가 유일하고, 일반 국민들에게 규범력을 가질 정도로 장기간 유지된 대법원의 확립된 입장도 아니다"라며 날선 모습을 보였다. 2015년 대법원 판례를 '올바르지 않은 판례'로 보는 관점은 해외판결 보충송달 사건에서 '잘못된 판례'를 언급한 천 대법관의 언어사용과 닮았다. 김 대법관 보충의견을 천 대법관이 수동적으로 따르지 않은 흔적이다. 

이들은 반대의견이 국회의 개선입법 논의를 언급한 대목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김 대법관과 천 대법관은 "저작권법 개정 논의를 링크 행위의 공중송신권 침해에 대한 방조범 성립 가능성을 부정한 (2015년) 종전 판례에서 비롯되었다"며 "국회에서 입법적 해결을 모색하는 이유가 바로 종전 판례의 존재 때문이므로, 종전 판례를 변경하는 것은 국회의 입법 논의를 해결할 수 있는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해결책이다"라고 덧붙였다. 문제를 만든 게 대법원이라면 국회에 미루지 말고 스스로 해결하면 된다는 관점이다. 근거는 헌법이다. 헌법 제101조 1항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 2항은 "법원은 최고법원인 대법원과 각급법원으로 조직된다"고 각각 정했다. 사법권의 핵심은 법령의 해석과 적용이다. 보충의견은 "입법권을 가지는 국회의 저작권법 개정 논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고, 이와 연계하여야만 할 필연적인 이유도 없다"며 반대의견이 대법관에게 주어진 헌법적 권한을 스스로 포기했다고 공격한다. 해외판결 보충송달 사건에서 김 대법관이 '입법부의 권한'을 언급한 게 실은 얼마나 무의미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 법률의 해체와 재구성
국회의 입법권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천 대법관의 사법철학은 지난 9월 9일 대법원 전합 판결에서 잘 드러난다. 전합은 부부 같은 공동거주자 중 한 사람이 법률적인 근거 없이 공동생활 장소 출입을 막았다면 다른 공동거주자가 물리력을 행사해 출입한 경우를 주거침입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최초 판단했다. 주심이던 민유숙 대법관이 반대의견에 서면서 다수의견은 천 대법관이 논의를 주도했다. 애초 이 사건은 대법원 2부에 배당됐는데 민 대법관과 이동원 대법관이 한 편, 천 대법관과 조재연 대법관이 다른 편으로 갈리자 전합에 회부됐다. 

천 대법관은 김선수 대법관과 함께 보충의견을 썼는데 주목할 점은 '주거침입죄는 가정폭력범죄'라는 반대의견 프레임을 벗겨냈다는 점이다. 반대의견은 주거침입이 가정폭력범죄 하나로 사회적 약자에 해당하는 남편이나 아내 한쪽이 저지를 수 있는 범죄로 봤다. 민 대법관은 "과거에는 '가정 내 분쟁에 형법은 개입하지 않는다'는 관념 하에 가정 내 분쟁은 가정 내에서 자율적으로 해결하고, 국가형벌권은 보충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인식하였던 때가 있었다"며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가정폭력에 대한 보호의 거부로 이루어져 가정 내 범죄를 야기하는 원인이 되었고, 이에 대한 반성으로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가정폭력처벌법이 제정되어 국가가 적극적으로 가정폭력에 개입할 수 있게 되었다"며 쉬이 부정하기 어려운 전제를 깔았다.

천 대법관의 보충의견은 먼저 "다수의견은 2020. 10. 20. 개정된 가정폭력처벌법이 주거침임죄를 가정폭력범죄에 포함시킨 개정취지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면서 민 대법관의 시각이 오해임을 알렸다. 그다음 "주거침입죄가 가정폭력범죄에 포함되었다 하더라도 이는 가정구성원 사이의 신체적, 정신적 또는 재산상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가 주거침입죄의 방법으로 이루어진 경우를 대상으로 하는 것일 뿐"이라고 해 가정폭력범죄와 주거침입을 분리했다. 이어 "주거침입죄에 해당하지 않는 주거의 출입행위가 그 과정에서 가정구성원의 신체적, 정신적 또는 재산상 피해를 야기하였다 하여 그 출입행위를 주거침입죄로 의율, 처벌한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정폭력이 먼저 발생하고 이후 주거침입이 그 수단으로 사용된 경우 주거침입이 가정폭력범죄이지, 주거 출입 과정에서 가정폭력이 발생했다고 가정폭력범죄로 볼 수는 없다는 얘기다. 이같은 접근은 국회의 입법이 다소 거칠 때 법관이 법률을 뜯어서 재구성해야 한다는 사법적극주의에서 연유한 것이다. 

천대엽 대법관. [출처=연합뉴스]
천대엽 대법관. [출처=연합뉴스]

◇ 법률 너머, 그리고 모순 
천 대법관의 이같은 법률 재구성은 다소 모순으로 비칠 수 있다. 지난해 6월 24일 천 대법관이 주심인 대법원 2부는 실수령액을 세전금액으로 병원과 약정한 의사의 퇴직금 소송에서 병원이 대납한 근로소득세 등을 평균임금으로 인정했다. 2011년 대법원 판례는 "근로자에게 계속적·정기적으로 지급되고 그 지급에 관하여 사용자에게 지급의무가 지워져 있으면 그 명칭 여하를 불문하고 (평균임금 산정의 기초가 되는 임금총액에) 모두 포함된다"고 정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실수령액을 세후금액으로, 병원이 공제한 근로소득세 등을 합친 금액을 임금총액으로 봐 달라는 의사의 상고이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수령액에 근로소득세 등을 더한 금액을 임금총액으로 봐달라는 상고이유를 수긍한 것과 조화롭지 못하다. 실수령액이 세전금액이라면 병원이 대납한 세금은 내지 말아야 할 세금을 낸 것이 된다. 때문에 원심은 실수령액을 세전금액으로 보면서 근로소득세 등을 더한 금액을 임금총액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천 대법관 해석은 병원 입장과 의사 입장 하나씩 골라준 것이어서 위태롭다. 

위태로움은 개운하지 못한 뒷맛을 남긴다. 같은 날 대법원 2부는 지역주택조합 추진위원회와 지역주택조합의 동일성을 인정하지 않아 당사자능력을 부정한 원심을 파기했다. 이 사건 주심 천 대법관은 "당사자 표시를 정정해야 하는지가 문제 될 경우 원고 조합과의 동일성 유무가 그 표시정정 여부의 판단기준이 될 수는 있으나, 이와 반대로 원고 주장 추진위원회와 동일성 여부 때문에 이 사건 당사자 확정 여부가 달라져서는 아니 된다"고 했다. 

이 사건에서 1·2심은 소장에 원고가 '의정부 녹양역세권 주상복합 지역주택조합'으로 적혔지만 실제로 이들은 조합 결성 전 단계인 추진위원회 인사들이라는 점에서 직권으로 원고를 '지역주택조합 추진위원회'로 바꿨다. 그런데 추진위 인사들은 개인의 주택을 마련하기 위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1·2심은 "지역주택조합 추진위원회의 구성원은 지역주택조합원의 자격을 필요로 한다고 판단된다"며 추진위가 적법하지 않은 단체여서 당사자능력이 없다며 최종 각하 판결했다. 

하급심의 이같은 논리 전개에 천 대법관은 이 부분 아무런 설명 없이 "원심판결에 당사자로 기재된 원고 조합과 당사자능력의 판단대상인 당사자(원고 주장 추진위원회)가 서로 달라 판결에 모순이 발생하게 되었다"며 원심을 파기했다. 소장에 적힌 원고는 지역주택조합이니 추진위에 결격사유가 있는지는 별개로 지역주택조합이 적법하기만 하면 문제없다는 뜻이다. 해당 사건에서 지역주택조합은 추진위 단계 토지 약정을 그대로 승계했다. 이같은 천 대법관의 결론은 지역주택조합이 조합원을 끌어모으려 추진위 단계에서 구속력이 담보되지 않는 토지 약정을 무더기로 하는 현실을 눈 감은 것이다. 한편으론 전국의 수많은 지역주택조합을 불법 단체로 규정할 수 없다는 '법 밖의 사법적극주의'가 실현된 결과다.  

◇ 실체적 진실과 만난 사법적극
천 대법관의 사법적극주의는 진화하고 있다. 적극적으로 법을 창조하는 게 궁극의 목적이다. 지난 9월 30일 대법원 2부는 삼성중공업 산업재해 사건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안전보건규칙'이 예정한 '안전사고'에는 "다수 크레인의 중첩작업에 따른 크레인 충돌 사고도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원심의 무죄 판결을 파기했다. 임직원과 하청업체 대표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삼성중공업은 안전보건규칙상 사업주가 부담하는 '안전조치 의무'에 구체적인 수치나 방법이 나열되지 않았다며 산재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었다. 지난 2017년 5월 1일 공교롭게도 노동절인 이날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7안벽에서 800톤(t) 급 골리앗 크레인과 32t 급 지브 크레인이 충돌해 하청업체 노동자 6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당했다.

천 대법관은 "(안전보건규칙상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는) 개별 사업장의 규모,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작업 내용, 작업에 사용되는 물체의 제원 등을 고려하여 작업장별로 구체적·개별적으로 정해지는 것"이라며 "위 규정에서 출입금지구역의 설치 반경이나 범위를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하거나 위험 방지 조치를 개별적으로 열거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사업주에게 해당 (안전조치) 의무가 부과되지 아니하였다고 단정할 것은 아니다"라고 판결문에 적었다. 삼성중공업이 안건보건규칙상 '위험을 방지하는 신호방법'에 따라 작성한 작업계획서에는 개별 크레인의 '개별 신호수' 규칙은 있었어도 크레인끼리의 '통합 신호수' 규칙은 없었다. 천 대법관은 "크레인 중첩 작업의 위험을 방지한기 위한 신호조정 방법을 별도로 정하지 아니하였다"며 "실질적인 안전조치에 이르지 못할 경우에는 안전보건규칙을 준수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썼다. 

천 대법관은 나아가 사업주가 '실질적인 안전조치'를 이행했는지 판단 조건으로 "해당 사업장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의 성격 및 이에 내재되어 있거나 합리적으로 예상되는 안전·보건상의 위험의 내용, 산업재해의 발생 빈도, 안전·보건조치에 필요한 기술 수준"을 제시했다. 안전보건규칙에는 모두 없는 것들이다. 과거 동일한 사업장에 산재가 발생했다면 법령으로 산재를 예방하는 안전조치를 정하지 않아도 그 의무가 발생한다는 해석이다. 천 대법관은 안전조치 중 신호방법으로 "통합 신호수를 통하여 각 신호수들이 신호대로 이행하였음을 확인한 후 작업하도록 하거나 신호수가 신호한 후에 상대방 크레인의 안전조치 이행을 확인하고 나서 다음 작업 단계로 이동하도록 하는 신호방법을 명시하는 등의 조치가 포함될 수 있다"며 적극 대안을 말했다. 국회와 행정부를 대법관이 대신한 입법창조로 사법적극주의의 궁극 목적이다. 

◇ 적법절차와 만난 사법적극
천 대법관의 사법적극주의는 자체의 내부 충돌 가능성을 예정한다. 삼성중공업 사건에서 보여준 '입법창조에 따른 실체적 진실' 추구와 '입법창조에 따른 적법절차' 마련이 충돌하면 정의관념과 사법철학은 분명해지지 않는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천 대법관이 '문재인 사람들' 재판에서 이같은 내면의 갈등을 보여준다면 사법적극주의는 이념의 수단에 불과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천대엽(왼쪽) 대법관과 문재인 대통령. [출처=연합뉴스]
천대엽(왼쪽) 대법관과 문재인 대통령. [출처=연합뉴스]

천 대법관은 조국 전 법무장관 부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자녀 입시비리 사건 상고심 주심 대법관이다. 정 전 교수의 구속기간 만료일은 오는 2월 22일이다. 미결수의 신체의 자유 보장을 위해 구속기간 내에 1·2·3심을 끝내는 게 최근의 대법원 사법처리 방향이다. 문제는 그 다음 달 9일이 제20대 대통령 선거일이라는 점이다. 청와대 민정수석 때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2.0을 기획한 조 전 장관은 '문재인 사람들'이자 이들의 "마음의 빚"(2020년 1월 14일 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이다. 천 대법관이 아닌 여느 대법관이더라도 결론의 방향을 정하는데 부담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대선을 4개월 앞둔 시점 정 전 교수 사건과 직결되는 대법원 판례 변경은 '문재인 사람들'에 대한 대법원의 부담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되기 다분하다. 지난해 11월 18일 대법원 전합은 대법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피의자가 아닌 사람이 피의자가 소유·관리하는 정보저장매체를 수사기관에 임의제출한 경우 "실질적 피압수자"의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았다면 증거능력이 부정된다고 판결했다. 형사소송법은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절차'를 '법원의 압수수색 절차'를 준용하라고 정하면서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절차'에 '수사기관의 임의제출 절차'가 포함되는지 정하지 않았다. 때문에 전합 판결은 제3자에 의해 '범죄혐의사실 전자증거'가 제출된 경우 형해화 된 방어권을 꿰맸다는 격찬을 받으면서도 형소법을 국회가 아닌 대법원이 개정했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전합 판결의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24일 '정경심·조국'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21-1부(마성영·김상연·장용범)는 동양대 표창장 위조 핵심 물증인 '총장님 직인' 이미지 파일이 발견된 동양대 강사휴게실의 증거능력을 부정했다. 이 PC는 동양대 강사휴게실을 관리하는 조교가 임의제출했는데 정 전 교수 단독 사건 1·2심 재판부가 증거능력을 인정했던 것이다. 이들 재판부는 "보관자 또는 소지자로부터 임의로 제출된 전자정보를 수사기관이 압수하는 절차에 관하여 형사소송법 및 기타 법령에서 특별한 절차적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고 했다. 법률이 정한 대로 재판했다는 취지다. 송경호 차장검사가 이끄는 '조국 일가 수사공판팀'은 재판부 결정 직후 "수사 초기 포렌식 단계에서 피고인들의 참여 기회를 보장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증거 자체를 배제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절차를 요구하는 결정"이라고 반발했다. 

수사공판팀 입장문은 명시적으로 재판부 결정을 가리키지만 실질적으로는 전합 판결을 지목한다. 입장문에는 "대법원 판결의 '실질적 피압수자'라는 개념을 법의 한계를 일탈해 확장"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인 '실체적 진실 발견'이라는 형사법의 이념을 부정"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정 전 교수 1·2심 재판부가 "강사휴게실 PC에 저장된 전자정보의 증거능력을 전면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적법절차의 원칙과 실체적 진실 규명의 조화를 통하여 형사 사법 정의를 실현하는 데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한 것과 같다. 입법창조를 수단이자 목적으로 삼는 사법적극주의가 실체적 진실과 적법절차 중 하나만 택해야 할 때 내부 분열은 시작된다. 정 전 교수 사건의 전합 회부 여부에 따라 사법적극주의의 분열 여부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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