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X파일(115) 카터 전 대통령, 김일성과 만났지만… 한반도 金 사망으로 격랑 속으로 빠져들다
청와대-백악관X파일(115) 카터 전 대통령, 김일성과 만났지만… 한반도 金 사망으로 격랑 속으로 빠져들다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02.02 06:27
  • 수정 2022.02.02 06: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미 정치 40년 비사를 엮는 청와대-백악관 X파일. [위키리크스한국]
한-미 정치 40년 비사를 엮는 청와대-백악관 X파일. [위키리크스한국]

북핵문제가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던 상황에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방북 의사를 피력했다.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과의 회담을 통해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해보겠다는 것이었다.

북한 지도부는 카터를 좋아했다. 카터가 1976년 대선 유세 때 주한 미군 철수를 약속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그런 카터를 이용할 구상으로 평양에 초청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 구상에 대해 클린턴 대통령은 그다지 열정을 보이지 않았다. 남북문제 해결의 주역 자리를 카터 대통령에게 내주는 꼴이 되기 때문이었다.

클린턴은 그러나 ‘개인 자격’을 전제로, 방북 허가를 내줬고 갈루치가 철두철미하게 브리핑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카터는 현안에 대해 치밀하게 검토하는 등 상당히 열심히 준비를 했다.

모든 준비가 마무리되고 출발할 일만 남았다. 카터는 레이니 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방문단이 6월 13일 서울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미 대사관팀은 DMZ를 건너기 전 카터 전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과 회담을 할 수 있도록 일정을 잡아놓았다. 카터는 북한 방문길에 서울에서 가졌던 리셉션이 훌륭했다고 말했다.

클린턴과 마찬가지로 김영삼 대통령 역시 카터의 김일성 면담이 썩 내키지 않았다.

김 대통령은 자신의 숙적인 김일성 주석이 전 미국 대통령을 초청했다는 사실에 대해 언짢아 했다. 카터의 방북에서 어떤 가치 있는 소득이 있으리라는 기대도 거의 하지 않았다.

다음날, 카터 전 대통령 부부와 방문단은 DMZ를 건넜다. 한국전쟁 이후 판문점을 통과한 첫번째 민간인이었다.

방문 첫날 실무 회담에서는 별 성과가 없었다. 이튿날 카터 전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만나고서야 중대한 문제에 대한 협상이 이뤄졌다.

미국이 모든 대북제재 추진을 중단하고 북한에 전력 생산을 위한 경수로를 제공할 경우 IAEA의 감시하에 북한이 핵 활동을 동결하겠다는 것에 합의했다.

대동강에서 뱃놀이를 즐기는 김일성과 지미 카터. /연합뉴스
대동강에서 뱃놀이를 즐기는 김일성과 지미 카터. /연합뉴스

김 주석은 김영삼 대통령과 남북정상회담을 조속히 갖고 싶다는 뜻 밖의 제의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 내용들이 잉크도 마르기 전에 워싱턴에서는 압력을 계속 더해갔다. 심지어 카터 전 대통령이 평양에서 회담을 여는 동안에도 대북제재를 위한 움직임이 진행됐다. 더욱 불길한 것은 주한 미군 병력을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증원시키겠다고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이 같은 결정에 주한미대사관과 주한미군사령부 수뇌진에는 비상이 걸렸다.

제임스 레이니 대사는 이 시점에 주한 미군 병력을 증원시키면 북한이 공격적 의미로 받아들일 것이고 이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아가 이러한 상황들이 알려질 경우 한국 사회가 공포에 휩싸이게 될 것이 분명하다고 보았다. 특히 이 같은 결정은 한국에 있는 미국 민간인들의 철수를 고려하지 않고 내린 것으로 여겨졌다.

레이니 대사와 럭 사령관은 “현 시점에서 그 같은 조치에 반대한다”는 뜻을 강력하게 표명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의 전문을 공동 명의로 워싱턴에 보냈다. 전문은 기대했던 효과가 있었다. 미 정부가 주한미군 병력 증원을 보류한 것이다.

한편 미국이 북한의 핵 활동을 완전히 중단시키려는 시기에 카터 전 대통령이 김일성 주석과 합의한 내용은 워싱턴에서 내린 결정을 완전히 뒤집어 아예 고려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카터와 김일성의 합의 내용은 미국 정부 관료만이 할 수 있는 약속인데도 불구, 카터가 직접 하는 바람에 권한을 남용한 것과 같은 모양새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 때문에 워싱턴은 뒤숭숭한 분위기로 변했다.

김일성 주석의 사망은 한반도에 대격랑을 몰고 왔다. /연합뉴스
김일성 주석의 사망은 한반도에 대격랑을 몰고 왔다. /연합뉴스

카터 전 대통령은 고어 부통령과 열띤 논쟁을 벌인 끝에 회담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갔지만, 고위 관료들은 대부분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줄곧 회의적인 반응이었던 백악관은 북한이 카터 전 대통령과의 구두 합의 내용을 서면으로 보내 확인해주자 마침내 안심했다. 그리고 1994년 하반기로 예정된 제네바 합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서울의 경우 카터 전 대통령의 역할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던 김영삼 대통령은 김일성 주석이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다는 소식을 듣고 열정적인 지원을 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반도의 새로운 변화 움직임은 김일성의 사망으로 한달만에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1994년 7월 9일 정오 북한은 방송을 통해 김일성이 7월 8일 2시에 심근경색증으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김일성의 사망은 한반도 대격랑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특별취재팀= 최석진, 최정미, 한시형 기자]

 

dtpchoi@wikileaks-kr.org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127, 1001호 (공덕동, 풍림빌딩)
  • 대표전화 : 02-702-2677
  • 팩스 : 02-702-16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소정원
  • 법인명 : 위키리크스한국 주식회사
  • 제호 : 위키리크스한국
  • 등록번호 : 서울 아 04701
  • 등록일 : 2013-07-18
  • 발행일 : 2013-07-18
  • 발행인 : 박정규
  • 편집인 : 박찬흥
  • 위키리크스한국은 자체 기사윤리 심의 전문위원제를 운영합니다.
  • 기사윤리 심의 : 박지훈 변호사
  • 위키리크스한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2 위키리크스한국. All rights reserved.
  • [위키리크스한국 보도원칙] 본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립니다.
    고충처리 : 02-702-2677 | 메일 : laputa813@wikileaks-kr.org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