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우크라이나 전운 고조... 미국이 공식적으로 선전포고를 선포하고 치른 전쟁들
[월드 프리즘] 우크라이나 전운 고조... 미국이 공식적으로 선전포고를 선포하고 치른 전쟁들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01.29 06:43
  • 수정 2022.01.29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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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당시 미군 사진가들이 찍은 사진 150여장을 주한 미군기지관리사령부(IMCOM-K)가 미 국방부 자료실로부터 입수해 온라인 사진 공유 커뮤니티 사이트 플리커 닷컴을 통해 일반에 공개했다. 사진은 1950년 8월 28일 학동리에서 한 위생병이 사망자의 인식표를 정리하는 가운데 작전 중에 사망한 친구로 슬픔에 잠긴 한 미군 보병이 다른 병사에게 위로를 받고 있는 모습 [주한미군 제공]
6.25 전쟁 중이던 1950년 8월 28일 학동리에서 한 위생병이 사망자의 인식표를 정리하는 가운데 작전 중에 사망한 친구로 슬픔에 잠긴 한 미군 보병이 다른 병사에게 위로를 받고 있는 모습. [주한미군 제공]

우크리아나에서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미국은 러시아와 군사적 충돌은 선택지에 있지 않다고 말은 하고 있지만, 상황의 전개에 따라 의외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다음에서 역사적으로 미국이 치른 전쟁들을 살펴보았다.

미국은 1812년부터 치른 5번의 전쟁에서 총 11번 공식전인 선전포고를 선포하고 전쟁을 일으켰다. 미국 헌법 1조 8항에 따르면 공식적으로 전쟁을 선포할 권한은 의회에게만 주어져 있다. 미국이 마지막으로 선전포고를 하고 참여한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그리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전쟁 확대는 의회의 선전포고 절차 없이 치러졌다.

1. 1812년, 2차 독립전쟁

‘2차 독립전쟁’이라고 알려진 1812년 전쟁은 주권국가 미국에 닥친 최초의 군사적 시험대였다. 영국과 프랑스 간에 벌어진 전쟁에서 미국이 중립적 입장을 취하자 영국은 미국의 전쟁 참여를 강요했고, 미국의 제임스 매디슨 대통령은 이 같은 영국의 강압에 분노하고, 의회에 과거 식민지 군주국 영국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의회의 투표는 만장일치로 가결되지 않았다. 미국 의회 내의 연방주의자들(Federalist)이 새로 선출된 의회 내의 ‘매파(war hawk)’들에 반기를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의회는 결국 하원 79 대 49, 상원 19 대 13으로 당시 전 세계 최대 강국과 전쟁을 치르는 데 손을 들어주었다.

2. 멕시코-미국 전쟁

1846년 벌어진 멕시코와의 전쟁은 영토 문제 때문에 발발했다. 1836년 텍사스 주는 멕시코와 독립전쟁을 벌이고 텍사스 공화국을 선포했다. 그렇지만 멕시코는 영토권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1845년 미합중국이 텍사스를 합병하자 남과 북 국경을 맞댄 이웃끼리 긴장이 높아갔다.

제임스 포크 대통령이 리오그란데 국경 지역으로 군대를 파견하자 멕시코 군이 공격을 감행하면서 포크 대통령이 의회에 선전포고를 요청할 명분을 제공했다.

이때 의회는 멕시코와의 전쟁을 두고 1812년의 ‘2차 독립전쟁’ 때보다 더 의견이 갈라졌다. 북부의 휘그당(독립당, 1834년 결성되어 민주당과 대립함. 공화당의 전신)은 이 전쟁을 남부의 민주당이 노예 소유가 가능한 영토를 미국에 또 추가하려는 부당한 술책으로 보았다.

하지만 1812년 ‘2차 독립전쟁’을 반대하다가 붕괴한 연방주의자들처럼 되기 싫었던 휘그당은 양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상원은 1846년 5월 12일 선전포고를 가결했다. 이 포고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했다.

“멕시코공화국과 미합중국은 전쟁에 돌입한다.”

3. 스페인-미국 전쟁

미국과 스페인 간의 단기간 전쟁은 쿠바 독립전쟁 때문에 발발했다. 쿠바가 1895년부터 1898년까지 스페인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벌이자, 미국 언론은 ‘황색 저널리즘’이라 불릴 정도로 선정적인 기사들을 토해내며 쿠바 독립운동가들의 곤경을 자세히 전하고 나섰다.

그러다가 1898년 2월 15일 미국의 전함 메인호가 하바나 항에서 원인 모르게 침몰하자 미국은 이웃 국가의 전쟁 개입에 서명을 하게 된다.

미 의회는 이 해 4월 쿠바의 독립을 인정하고, 스페인의 철수를 결의한 결의안을 통과시켰지만, 스페인은 이에 따르지 않았다.

결국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은 미 해군을 동원해 쿠바를 봉쇄하고 125,000명의 자원병을 파견했다. 스페인은 즉시 전쟁을 선포했고, 미 의회도 1898년 4월 25일 선전포고로 맞섰다.

이때의 선전포고는 상하 양원 만장일치로 가결되었다. 이 전쟁은 이 해 12월 10일 파리조약(Treaty of Paris)으로 끝을 맺었고, 스페인은 쿠바의 독립을 인정했을 뿐 아니라 괌과 푸에르토리코를 미국에 넘겨주어야 했다. 스페인은 또 필리핀을 2000만 달러를 받고 미국에 양도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연합뉴스 자료사진]
[사진=연합뉴스 자료사진]

4. 1차 세계대전 '독일과의 전쟁'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1차 세계대전 참전을 탐탁치 않게 여겼다. 1915년 영국 여객선 루시타니아 호와 아라빅 호가 독일 잠수함에 격침당해, 131명의 미국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윌슨 대통령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는 전쟁 대신 독일에 연합군 민간 여객선에 대한 공격을 중지하라고 요청했을 뿐이다.

그러나 독일은 1917년이 되면서 미국이 전쟁에 개입해도 좋다는 각오로 북대서양에서 민간 선박들에 대한 공격을 다시 감행했다. 독일은 미국이 참전하기 전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고 자신했던 것이다.

그러자 1917년 4월 2일, 윌슨 대통령은 독일 잠수함들의 공격 행위가 이어지고, 독일이 멕시코를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이려 하자 의회에 독일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해 줄 것을 요청했다. 선전포고는 하원 373 대 50, 상원 82 대 6의 압도적 표차로 가결되었다.

미국은 1차 세계대전 참전에서 116,000명의 사망자를 포함 320,000명 이상의 희생자를 내었다.

5. 1차 세계대전, 오스트리아-헝가리와의 전쟁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난드 황태자 부부가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의 총탄에 암살당하자 세르비아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다. 독일이 곧바로 오스트리아-헝가리 편을 들면서, 몇 일 만에 유럽의 강대국들이 도미노처럼 전쟁에 개입하게 되었다.

그 해 10월 10일, 미국이 독일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선언한지 10개월 만에 미 의회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미국 선박들을 공격한 독일과 공모했다는 이유를 내세워 오스트리아-헝가리를 상대로도 별도로 선전포고를 선언했다.

6. 2차 세계대전 '일본과의 전쟁'

1941년 12월 7일 이른 아침, 일본은 하와이 진주만의 미 해군 시설들에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일본이 공습 폭격을 감행한 지 두 시간도 안 되어서 미 태평양 함대 대부분은 침몰하고, 3,500명의 미군들이 죽거나 다쳤다.

바로 그날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무고한 상대를 향한 비열한 공격’에 맞서 싸울 선전포고를 해달라는 명연설을 의회에 제출했다. 그리고 12월 8일 루스벨트 대통령은 의회와 국민 앞에 1941년 12월 7일은 ‘치욕의 날로 기록될 것’이라는 연설을 했다.

선전포고에 임하는 의회의 대응은 신속했다. 하원에서는 거의 만장일치로 투표가 통과되었고(유일한 반대자는 몬태나 주의 평화주의자 저넷 랭킨 의원이었다.) 상원에서는 만장일치로 가결되었다.

7~8. 2차 세계대전, 독일과 이탈리아와의 전쟁

진주만 피격이 있고 불과 사흘 만에, 미국이 아직 슬픔과 분노를 추스르기도 전에, 독일 나치의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가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면서 또 한 번 경악을 안겨주었다. 여기에다 1940년 체결된 추축국(Axis pact)끼리의 조약에 따라 파시스트 이탈리아도 미국을 향해 전쟁을 선포했다.

1941년 12월 11일, 루스벨트 대통령은 다시 한 번 의회에 선전포고를 해줄 것을 요청했다.

“전 세계를 노예로 만들려는 세력들이 지금 이 반구를 향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는 요청 서한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자유를 원하는 전 세계 모든 인민들의 신속하고 일치된 노력은 야만적 세력들에게 정의의 힘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줄 것입니다.”

이번에는 의회 내에 반기를 든 의원들은 아무도 없었다. 하원에서 저넷 랭킨 의원도 찬성표를 던짐으로써 393대 0의 만장일치로 선전포고는 가결되었다.

9~11. 불가리아, 헝가리, 루마니아와의 전쟁

1942년 6월 3일, 루스벨트 대통령은 그때까지 남아있던 추축국 세 나라를 향해 마지막 3건의 선전포고에 서명했다. 불가리아, 헝가리, 루마니아는 각각 1940년 독일과 동맹을 이루었던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유고슬라비아 및 그리스와 영토분쟁 중이었던 불가리아는 독일의 힘에 의존하고자 했고, 헝가리는 소련에 먹일까봐 두려웠으며, 루마니아는 나치에 가담한 파시스트들과 반유대주의자들이 통치하고 있었다.

루스벨트는 의회에 보낸 서한에서 “나는 이 세 나라가 자신들의 주도나 자국민들의 의지로 미국에 전쟁을 선포한 것이 아니라, 히틀러의 도구로 전락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썼다.

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의 이 세 건이 미국 의회에서 이루어진 마지막 선전포고가 되었다. 그 뒤로 이어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전쟁 등은 모두 ‘의회의 군사력 승인(AUMF)’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는데, 한국전쟁의 경우에는 의회의 공인을 전혀 받지 못했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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