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암 선고 70대 男 "영양가 있는 거 먹고파" 그날의 사치는 수갑에 채였다
위암 선고 70대 男 "영양가 있는 거 먹고파" 그날의 사치는 수갑에 채였다
  • 윤여진 기자
  • 승인 2022.02.17 16:26
  • 수정 2022.02.18 0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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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장에 없는 문장] 첫 번째 이야기

퇴원 후 '月 수입 10분 1' 5만원의 만찬 '장어에 소주 1병' 시켜... 아쉬운 맘 "소주 1병 더" 주문은 거부됐다... 초라한 행색 탓일까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허공에 주먹질'로 변한 건 순식간... 제지하는 가게 주인 밀치다 목에 난 상처는 폭행이 됐다... 긴급 출동 경찰 "신분증 보여달라" 요구에 불응하자 현행범체포... 하루간의 유치장 신세지고 뒤늦게 찾은 가게 주인은 "1000만원"을 말했다... 판사는 "합의 없으면 실형"을 예고하는데..

위키리크스한국 법조팀은 '작은 사건'에 주목합니다. '큰 사건'과는 달리 공소장에는 피고인의 생각과 행동이 충분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큰 사건' 공소장은 때때로 변호인으로부터 판사에게 유죄의 예단을 주니 "공소장일본(一本)주의 위반"이라는 지적까지 받을 만큼 세세합니다. 공소장일본주의는 당사자의 주장과 입증은 공판정에서만 하게 돼 있으니 공소장에는 증거물을 첨부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입니다. 하지만 '작은 사건' 피고인들에게는 공개재판에서 싸울만한 대등한 무기가 있지 못한 경우가 더 많습니다. 특히 혐의와 양형을 다투는 피고인은 검사가 공소장에 자신들의 이야기도 적어주기를 희망합니다. 본지 법조팀은 법정에서 마주친 피고인과 피해자를 법정 밖에서도 직접 만나 공소장에 없는 숨겨진 이야기를 문장으로 옮기는 '공소장에 없는 문장' 기획을 시작합니다. 

지난 9일 서울 용산구 후암동 거주지에서 만난 문덕수(가명)씨가 쪽방촌에서 외부로 나오는 통로로 걷고 있다. [사진=윤여진 기자]
지난 9일 서울 용산구 후암동 거주지에서 만난 문덕수(가명)씨가 쪽방촌에서 외부로 나오는 통로로 걷고 있다. [사진=윤여진 기자]

지난 7일 서울시 은평·서대문·마포·용산구에서 발생한 '작은 사건' 재판이 이뤄지는 서부지법 제405호 법정. 형사 8단독 이영훈 판사는 피고인석에 엉거주춤 서 있는 어깨가 굽은 백발의 노인 문덕수(가명·사진)씨를 보며 연거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라고 혼잣말했다. 공판검사가 낭독한 공소요지는 이렇다. 

"피고인은 2021년 11월 5일 밤 9시 20분경 서울 용산구 피해자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음식 값을 미리 결제할 것을 요구받자 자신이 무시받는다고 생각하여 화가 나 피해자의 목 부위를 손으로 잡고 밀쳐 폭행하였다"

이 사건의 핵심은 '무시당했다는 생각'이다. 문씨는 용산구 후암동 보증금 100만원, 월세 25만원 쪽방촌에 거주하는 무직자 70대 남성이다. 그는 지난해 3월 위암 수술을 받고 8개월간 요양을 한 뒤 같은 해 11월 "영양가 있는 거 먹고 싶고 해서" 장엇집을 찾았다. 자신보다 고령인 부인과 함께 이 식당을 찾은 문씨는 민물장어 세트에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가격은 5만원가량. 이들 부부에게는 분명 사치였다.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주어지는 월 생계급여 44만 6430원의 1할이 넘는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오랜만의 방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식당을 계속해서 운영하는 사장 얼굴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문씨가 기억하는 대화다. 

"주인 바뀌었어요?"
"아닌데요"
"장어 얼마예요?"

여기서부터 문씨는 '무시당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문씨는 "현찰 5만원 내고 민물장어에 소주 한 병 먹었다. 소주 한 병 더 마시고 싶어 또 시켰는데 안 준다" 그때부터 제대로 시비가 붙었다. 종업원이 소주 한 병을 더 내어주지 않고 선결제를 요구한 것이다. 같이 온 문씨 부인이 현금을 꺼내 결제를 한 뒤 상황이 민망했는지 먼저 자리를 떴다. 가게 사장에 따르면 종업원은 쪽방촌에서 거주하는 일부 사람들이 술에 취하면 '무전취식'하는 일이 종종 있어 선결제를 요구했다고 한다. 문씨는 자신이 이날만큼은 돈도 있었고 나름 깔끔한 차림이었는데 '빈(貧) 한 행색'에 '돈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은 것 같아 분노를 삭히지 못했다. 종업원을 앞에 두고 허공에 주먹질한 이유다. 사장은 급하게 개입했다. 그러자 문씨는 사장의 몸을 밀치다 그의 목 부위에 작은 상처를 냈다. 문씨는 흥분해 "너 가만 보니까 조폭이랑 같이 생활하면서"라고 폭언했다. 왜 그런 말이 튀어나왔을까, 문씨는 지금도 자신이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다만 피해의식이 끌어낸 왜곡된 폭력이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사장에 따르면 목에 난 상처는 다행히 병원 치료를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대신 112 긴급신고 버튼을 눌렀다. 

인근 파출소에서 5분이 못 돼 경찰관 3명이 출동했다. 경찰관들은 먼저 사장 부부 휴대전화로 재촬영한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인한 뒤 문씨를 식사하던 자리에 앉혔다. 문씨가 횡설수설을 한다고 판단한 경찰관들은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다. 문씨는 또다시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씨는 "(피해자를) 때리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폭력적인 행위가 발생한 연유에 경찰관들이 궁금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 경찰관이 3명이나 온 것이 괜히 의심스러웠다. 문씨는 결국 신분증을 보여주지 않았다. 뭔가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 문씨는 일어나 경찰관들을 손으로 툭툭 쳤다. 경찰관들은 추가 신분 확인 요구에도 불응하는 문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이 과정에서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다는 '미란다 원칙' 고지가 있었다고 '현행범인체포의 이유'에는 적혀있는데 문씨는 기억하지 못한다. 문씨는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용산경찰서 유치장 신세를 졌다. 이때 조사에서 담당 형사로부터 "빨리 합의를 보라"는 말을 들었다. 

사건 발생 15일 뒤 문씨 휴대전화에 한 통의 문자메시지가 왔다. "귀하와 관련하여 서울용산경찰서에서 송치한 사건은 2021-11-19 서부지검 2021형제****호로 접수되었으며"라는 서울서부지검에서 온 내용이었다. 피고인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나흘 뒤 "귀하의 사건(서울서부지검 2021형제****호)은 서울서부지방법원에 구공판하였습니다"라는 두 번째 문자메시지가 왔다. 경찰에서 검찰까지 15일, 검찰에서 법원까지 4일. 문씨는 재차 자신이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문씨는 동네에서 자주 왕래하는 다른 가게 사장과 거나하게 술을 마셨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사고 친 식당을 찾아 용서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장엇집을 다시 들렀을 때 문씨가 기억하는 사장의 말이다. 

"1000만원 안 가져오면 (합의) 안 돼. 1원이라도 비면"

문씨는 이번에도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게 그만한 돈이 없음을 가게 사장이 모를 리 없는 까닭이다. 사장이 기자에게 보여준 이날 CCTV 영상 재촬영본을 보면 문씨는 가게 문 앞에서 사장 몸을 한 번 밀치다 당기고, 다시 밀친다. 그러다 허공에 주먹질을 한다. 다만 CCTV에서 음성이 녹화되지 않는 탓에 문씨와 사장이 어떤 말을 나눴는지는 알 수 없다. 피해자인 사장이 기억하는 '1000만원'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정확하게는 '1000만원 갖고 오세요. 제가 (합의) 해 드리나'라고 얘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선처를 해드러나'라고. 아예 (합의) 생각이 없다는 말씀을 드린 건데 그게 (피고인이) '갖고 와'라고 들은 거예요"

지난 1월 16일 용산경찰서는 문씨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폭행 혐의로 검찰에 기소의견 송치했다. 폭행 사건과 보복폭행 사건의 간격은 15일인데, 사건 송치에는 약 3달 차이가 났다. 문씨는 이같은 경찰의 공무집행을 "엿 먹으라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특가법은 보복범죄를 "자기 또는 타인의 형사사건의 수사 또는 재판과 관련하여 고소·고발 등 수사단서의 제공, 진술, 증언 또는 자료제출에 대한 보복"으로 정의한다. 문씨가 가게 사장을 찾아 합의가 틀어지자 한 행동을 단순폭행이 아닌 보복폭행이라고 경찰은 판단한 것이다. 

폭행 사건 공판에서 국선변호인은 "(피고인이) 사과하러 가서 사과를 받아내지 못하고 또 싸움을 해서 추가 건이 검찰청에 와 있는 것 같다. 넘어오면 병합을 해서 같이 재판받을 수 있게 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요청했다. 이 판사는 재판 말미에 "병합해서 진행하겠다"고 했다. 아직 재판에 넘어오지 않은 보복폭행 혐의를 재판 중인 폭행 혐의와 병합하겠다는 것이다. 두 사건을 병합해야 모두 유죄 시 피고인에게 불리한 양형이 선고되지 않고, 다음 재판기일을 넉넉하게 잡아 피고인에게 '합의할 수 있는 시간'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씨는 다음 공판을 4월 4일 오전 11시로 잡았다. 

문씨는 남은 시간 선처를 받을 수 있을까. 문씨는 현재 집행유예 기간에 있다. 지난해에도 비슷한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졌는데 위암 수술을 이유로 형집행을 유예받았다. 때문에 이번에는 피해자가 합의해 주지 않으면 실형을 살아야 한다. 법정에서 이 판사는 변호인에게 "합의 가능성이 있나"라고 물었다가 '1000만원' 이야기를 듣자 "현재로서는 피해자가 합의해 줄 상황은 아닌가 보다"라고 짐작했다. 이 판사는 "지금 피고인 합의 안 되면 실형 선고할 수밖에 없다"라는 말과 함께 문씨를 호되게 질책했다. 

"내가 보기엔 피고인이 더 큰 문제예요. 피고인이 더 큰 문제라고 지금. 상대방 탓만 하고 있잖아요. 반성문도 보니까 '억울해서 술만 마셨다'고  쓰여있던데 지금 생각이 그러시니까 합의가 되겠어요? 잘못했다고 찾아간 사람이 오히려" 

이 판사는 법정에서는 이례적으로 변호인이 아닌 피고인과 긴 질의응답을 했다. 대화가 끝난 뒤에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집행유예 기간인데. 벌금형에 처할 상황은 아닌데"라고 말을 흐리며 이번 사건을 "난감한 사건"이라 규정했다. 이 판사는 "이걸 어떻게 하면 좋나"라고 공중에 반문하며 "피해자가 '1000만원 달라' 하고, 합의 안 해준다 하면, 피해자에게 피고인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보여줘야 하는데"라고 문씨에게 모범답안을 제시했다. 이때 방청석에서 문씨가 목도리 위에 가지런히 둔 휴대전화 전화벨이 울렸다. 법정에 있는 경위가 방청석으로 이동해 휴대전화를 끄는 동안에도 이 판사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변호인에게 '합의를 위한 노력'을 주문했다.

피고인은 피해자와 합의할 수 있을까. 9일 기자와 만난 가게 사장은 "사과를 받기에는 조금 지났다고 느껴진다. 선처는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반면 그와 함께 장엇집을 운영하는 피해자 부인은 "왜. 선처해 드려"라며 조금은 다른 말을 했다.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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