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3•1절] 탑골공원서 '대한독립만세' 함성 터지다
[오늘 3•1절] 탑골공원서 '대한독립만세' 함성 터지다
  • 강혜원 기자
  • 승인 2022.03.01 06:04
  • 수정 2022.03.01 06: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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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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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일 오후 2시께.

서울 탑골공원에선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청년이 단상으로 올라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했습니다.

낭독이 거의 끝날 무렵 공원에 운집해있던 서울 중등학교 남녀학생 4천여명은 모자를 하늘로 날리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이어 종로쪽으로 뛰쳐나가 시위행진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당초 독립선언식을 탑골공원에서 열기로 했다가 학생들의 희생을 고려한 민족대표들은 이 즈음 시내 인사동 음식점인 태화관에 모여 있었습니다. 공원에 있던 학생들은 민족대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청년이 자진해 등단했던 것입니다.

이에 일경이 출동해 태화관을 포위하자 민족대표들은 독립을 선언하는 한용운의 간단한 식사를 들은 후 그의 선창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제창한 뒤 의연하게 일경에 연행됐습니다.

3·1운동에 앞서 같은해 2월 1일 중국 지린에서는 만주와 연해주 등 해외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 39명 명의로 '대한독립선언서'가 발표됐습니다. '무오독립선언서'로도 불린 선언서는 우리 민족이 최초로 선포한 독립선언서였습니다

무오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조소앙은 선포 직후 도쿄로 건너가 유학생을 지도해 2·8독립선언을 하도록 했습니다. 2·8 독립선언에 참가한 다수 유학생이 귀국해 3·1운동에 합류했습니다.

세 차례의 독립선언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1차 세계대전 전후처리 원칙의 하나로 당시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1856~1924년)이 1918년 1월 제창한 민족자결주의입니다.

민족자결주의 발표 이래 국내에서도 독립운동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고종 황제가 1919년 1월 21일 갑자기 붕어했는데, 일제가 독살했다는 말이 퍼져 국민들은 망국의 한과 일제에 대한 적대감으로 동요했습니다.

민족대표들은 고종 황제의 인산(因山)이 3월 3일로 결정되자 많은 지방 사람들이 서울에 모일 것으로 보고 이날을 독립선언을 하는 날로 내정했습니다.

그러나 인산일을 택하는 것은 전(前) 황제에 대한 불경이라는 천도교측 의견과 2일은 일요일이므로 안식일이라 피하자는 개신교측 의견으로 결국 거사일은 3월 1일로 결정됐습니다.

3월 1일 서울 종로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전국으로 번져 4월 중하순까지 이어졌습니다. 일제는 총칼로 진압에 나서 한국인 7천500여명이 살해되고 1만6천여명이 부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만세운동 주동자로 지목돼 붙잡히면 잔혹한 고문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3·1운동 발생 뒤 같은해 10월까지 일제에 의해 구속된 사람은 1만8천여 명이었습니다. 그 중 기소수속을 마친 피고수는 보안법 위반 6천472명, 소요죄 2천289명, 내란죄 296명 등 모두 9천289명에 이르렀습니다.

한국민의 만세운동 상황과 일제의 무력탄압은 국제적으로 여론화돼 열강들은 일제의 야만적 행위를 비난, 공격했습니다.

한국 역사상 최대 민족운동으로 발전한 3·1운동의 결과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됐습니다. 3·1운동은 이민족에 대한 끈질기고 강렬한 독립투쟁 정신을 고취했을 뿐만 아니라 일제의 무단통치 방법을 이른바 문화통치로 바꾸게 했습니다.

나아가 민족의식과 민족정신에 새로운 자각과 힘을 줘 민족자립의 기초를 다지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위키리크스한국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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