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줌인]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국가 수호를 위해 자유와 보수가 연대하는 새로운 시대의 우크라이나
[우크라 줌인]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국가 수호를 위해 자유와 보수가 연대하는 새로운 시대의 우크라이나
  • 최정미 기자
  • 승인 2022.03.27 06:44
  • 수정 2022.03.27 0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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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이우 외곽 이르핀의 우크라이나군/ 연합뉴스
키이우 외곽 이르핀의 우크라이나군/ 연합뉴스

지난달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전세계 군사전문가들은 불과 1~2주 만에 수도가 함락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1개월 이상 장기전으로 바뀌면서 세계는 우크라이나의 숨겨진 저력에 놀라워하고 있다. 군사전문가들은 현대판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이 전개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30년 이상 자유 공화국으로서 독립국가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독립 이후 태어난 1세대 우크라이나인들의 자녀들이 성장해 학교에 다니고, 7명의 대통령을 거칠 정도로 오랜 시간이다.

30년이란 세월 동안 국가에는 좋게든 나쁘게든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고, 역사적으로 시대라는 것을 가질 수 있다. 지난 달 푸틴이 침공할 때 우크라이나는 유럽 시대로서의 두 번째 시대에 접어들고 있었다.

과거 소련 연합이었던 우크라이나의 독립 국가로서의 첫 번째 시대를 용납할 수 없었던 푸틴은 아직도 이 생각에 갇혀 있는 두 번째 시대의 시작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가디언의 논평은 말하고 있다.

서방 역시 러시아처럼 우크라이나에 대해 많은 부분을 오해하고 있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우크라이나어를 하는 서부와 러시아어를 하는 남부와 동부 사이의 민족주의’라는 진부한 개념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또는 더욱 색깔론적인 표현인 ‘동부의 신공산주의와 서부의 신나치주의’를 쓰며 이 국가를 둘로 나눴다. 

그러나 2014년을 그 시작으로 보는 유럽 시대의 우크라이나는 정치적 근본을 바꿨다. 무자비하게 힘을 휘두르는 이웃 독재국가 러시아에 맞서는 데 우크라이나의 신흥 자유주의 계급은 우크라이나 국가주의자들과 연대했다. 불편한 연대임에도 이것이 하나의 국가를 유지시켰다. 이에 다른 국가들, 즉,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서로 멀어져 있는 자유주의와 국가주의가 우크라이나가 푸틴에 맞서며 스스로를 지키는 것을 잘 지켜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시민들이 군인의 지도에 따라 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의 시민들이 군인의 지도에 따라 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유럽 국가로의 우크라이나는 유럽연합 회원국으로의 희망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적어도 러시아의 공격이 있기 전까지 우크라이나에게 나토 회원국이 되는 것보다 더 의미있는 일이었다. 유럽 국가로의 우크라이나의 희망에는 지원금, 일자리, 무역 등이 있기 때문이다.

‘존엄 혁명’ 또는 ‘마이단(Maidan)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2014년 혁명 이후, 유럽연합과의 무역이 급증했고, 반면 러시아와의 무역은 급락했다. 우크라이나인 수백만 명 이상이 유럽연합으로 가서 일자리를 찾았다.

유럽 시대의 우크라이나에는 이런 물질적인 희망을 넘어 독립국가로의 기대가 더 강력하게 있다. 낡고 허울적인 민족주의의 옛 우크라이나, 또는 푸틴의 신제국주의적 범주 안의 우크라이나, 러시아 국가주의의 꼭두각시 정부로의 우크라이나보다는 자치 국가들의 연합인 유럽연합의 동등한 회원으로서 자유로운 길을 가는 우크라이나를 추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게 유럽연합은 자유주의와 국가주의 모두를 위한 모델이다. 유럽연합의 경제력을 이용해 제국주의 궤도에서 빠져나오고, 다국적 법을 적용한 자기결정권을 갖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우크라이나의 보수적인 국가주의자들에게는 유럽연합보다는 애국적 기조가 강하고, 미디어와 교육 등이 국가의 이상과 사회적 보수성을 따르는 폴란드와 헝가리 모델이 더 끌린다는 의견도 있다. 

우크라이나군 공격을 받은 러시아군 함정이 불에 타고 있다. [유튜브 'The Globe and Mail' 채널 캡처]
우크라이나군 공격을 받은 러시아군 함정이 불에 타고 있다. [유튜브 'The Globe and Mail' 채널 캡처]

우크라이나의 유럽 시대는 2013년 빅토르 누코비치 대통령 정권에서 막이 올랐다. 그는 우크라니아 동부 출신의 부패 정치인으로 러시아 정부와 친소련 우크라이나 구상에 적합한 인물로 보여졌지만, 유럽연합과의 협정을 지지했다. 그러나 푸틴은 이를 배반 행위로 봤다. 우크라이나에 유럽연합 아니면 러시아 양자택일을 하라는 것이다.

정말 유럽연합과의 협정을 원했던 건지, 러시아로부터 더 큰 이익을 얻으려는 낚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야누코비치는 막판에 마음을 바꾸고 러시아로부터 많은 돈을 빌리고는 유럽연합에 등을 돌렸다.

그리고 그 해 11월, 수도 키이우에서 유럽연합과의 협상을 엎은 것에 대한 시위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야누코비치의 사임을 촉구했고, 평화로운 시위대를 경찰이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당시 친야누코비치 의원들이 장악한 우크라이나 의회는 표현과 집회의 자유를 탄압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2013년에서 2014년으로 접어들면서 시위는 더욱 거세졌다. 야누코비치에의 반대와 유럽과의 동맹 촉구가 부패한 올리가르히 중심의 정부와 경제 조직에 대한 공격으로 확산됐다.

젊은 지식 계층이 급진적인 국가주의 단체인 소규모 자영업자, 공장 노동자 들과 연합했고, 야당 의원들도 이들과 함께 했다. 시위는 키이우의 중앙 광장인 마이단을 중심으로 점점 격해졌다. 바리케이트가 세워졌고, 몽둥이와 돌에서부터 화염병, 섬광 수류탄, 고무탄, 실탄으로 무기들도 점점 치명적이 됐고, 경찰과 시위대 양측 모두에서 피해자가 속출했다. 사망한 시위자는 100명을 넘었다.

2014년 2월 셋 째주, 체제가 결국 무너졌다. 유럽 외교부 장관들이 야누코비치와의 평화 협정에 다리를 놓았지만, 마이단의 군중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야누코비치는 우크라이나를 빠져나갔다. 의회는 과도 정부를 선출했고, 새 선거를 준비했다.

혁명적인 승리도 잠시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거의 피를 묻히지 않고 기습적으로 합병해버렸다. 러시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고 야누코비치의 출신지인 돈바스의 주민들은 정당하게 당선된 대통령의 처사에 대해 분노하고, 정부 건물들을 장악했다. 이들은 바로 축출됐지만, 그 해 4월, 러시아의 도움으로 새로운 저항이 일어났다. 전투는 전쟁으로 확대됐고, 결국 러시아 정규군의 공격에 이르렀으며,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LA 인근에서 시위대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항의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시위대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5년 돈바스의 일부가 러시아와 저항군의 연합 하에 들어가게 됐고, 이후 최전방은 안정이 됐으며, 전투는 점차 느슨해졌다. 우크라이나의 나머지 지역들은 평화를 되찾았다. 그리고 2017년, 유럽연합과의 협정이 발효됐다.

사실 돈바스에서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우크라이나의 장기적인 상황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현재 상황은 2014년 3월 우크라이나의 한 신문에서 보도한 전 푸틴의 고문 안드레이 일라리오노프의 인터뷰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는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그는 당시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목적과 계획이 수 년 전에 세워졌다”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크림반도와 남동부 점령, 우크라이나 정부 교체가 있었고, 러시아가 쓴 우크라이나의 새 헌법, 우크라이나의 군비 축소, 마이단 혁명 청산 등을 러시아는 과제로 두고 있었다.

현재의 러시아 정부가 주장하는 ‘비나치화’는 ‘마이단 청산’의 다른 이름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매일 화염에 휩싸이고 수백 명이 죽어가고 있고, 우크라이나가 얼마나 많은 러시아 탱크와 전투기, 병사 들을 날려버려야 푸틴이 멈추는가 하는 이 시점에 국가주의니 자유주의니 하는 추상적인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은 하찮은 것일 수 있지만, 이러한 동맹적인 힘이 없이 지난 7년을 우크라이나가 평화롭게 버틸 수 있었을까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018년 우크라이나의 마이단 혁명 이후 부패를 척결하고 제도를 완성하는 데에 실패한 것에 대한 환멸이 깊게 자리하고 있을 당시, 우크라이나 철학자 이브헨 비스트리츠키는 “나에게 ‘국가적’이라는 것은 자주적인 독립 국가로서의 우크라이나를 지키도록 해주는 것이다. 나는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수호하는 자유주의자이다. 우크라이나 사회의 일부는 안보와 관련해 보수적인 가치를 지지하고 있다. 우리가 그저 보편적이고, 고전적인 자유의 가치를 설파한다면, 이는 나라에 불화를 키우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비스트리츠키가 자칫 중도주의자, 나쁜 말로는 비민주적 타협주의자로 비춰질 수 있겠지만, 러시아의 살상무기에 맞서 싸우고 있는 현재의 우크라이나 상황에서 연대로의 타협은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최근 우크라이나의 작가 아르템 체크가 2015년 돈바스에서 군인으로 있었을 때의 회고록을 출간했다. 회고록 속의 그는 자유주의에 지적인 사람이 국수적인 노동자와 농부 들의 편에 서는 것의 생소함과 마주하고 있었다. 침략자로부터 키이우를 수호하기 위해 또 다시 총을 든 그는 그의 동지들을 음악 제작자, 점포 주인, 교사, 예술가, 은행원, 의사 등으로 소개하며, 이전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연기를 하고,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는 능력들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중요한 건 군 경험이라고 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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