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총선이 실시되는 호주의 국회의원들이 백인 일색인 이유
[월드 프리즘] 총선이 실시되는 호주의 국회의원들이 백인 일색인 이유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05.21 06:39
  • 수정 2022.05.21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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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앤서니 알바니스 노동당 대표 [사진 = 연합뉴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앤서니 알바니스 노동당 대표. [사진 = 연합뉴스]

21일(현지시간) 치러지는 호주 총선은 백인들만의 잔치인가?

BBC는 20일 호주 총선과 관련해 호주 정치권이 세계 최대 다문화 국가에 속하는 인구 구성비와 무관하게 백인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고 문제점을 제기하는 기사를 보도했다. 다음은 이 기사의 전문이다.

호주는 세계 최대의 다문화 국가 중 하나이지만, 정치권만은 백인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 호주 연방 의원의 96%가 백인이다.

21일 치러지는 총선을 앞두고 호주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백인 일색의 원 구성에 변화를 주자는 움직임이 일고는 있지만 아직은 찻잔 속의 태풍일 뿐이다.

투레(30)는 시드니 해변에서 멀리 떨어진 시드니 남서부의 선거구이자 호주에서 가장 가난한 도시 중 하나인 파울러(Fowler)에서 베트남 난민의 자녀로 자랐다.

투레는 이 지역에 새로 유입되는 난민과 이주민들을 위해 일하는 지역사회 변호사이다. 그녀는 작년에, 이 지역에서, 가장 다문화적인 색채가 강한 호주 노동당의 후보로 예비 선발되었었다가 당 지도부의 결정으로 다른 백인 여성 후보에게 자리를 빼앗기게 되었다.

투레의 자리를 꿰차고 들어온 크리스티나 케닐리가 시드니 북부 해안가 자신의 집에서 지역구인 파울러까지 가는 데는 대중교통으로 무려 4시간이나 걸린다.

이렇게 되자 분노한 파울러 시민들은 크리스티나 케닐리가, 노동당의 유력한 정치인이라는 이유 말고, 도대체 파울러 지역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투레는 당의 이 같은 결정을 신문 지면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나는 다음 날 진행될 당 행사 참석을 단칼에 거절당했습니다.”

그녀는 BBC에 이렇게 말했다.

페이스북 등의 SNS를 중심으로 크리스티나 케닐리의 지명을 철회하라는 역풍이 불고 있는데도 노동당은 당의 결정을 밀어붙인 것이다.

“만일 이런 일이 영국이나 미국에서 일어났다면 시민들이 용서하지 않았을 겁니다.”

시드니 정책연구소(Sydney Policy Lab) 소장이자 호주 인종차별 방지 위원회의 전직 국장이었던 팀 사우트모패사인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호주에는 별다른 정치적 후과 없이도 현상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정서가 존재합니다.”

그들만의 잔치

2016년 실시된 인구조사에서는 호주 인구 5명 중 적어도 1명은 유럽인종이 아니며, 집에서는 영어가 아닌 언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었다. 그리고 호주 인구의 약 49%는 호주에서 태어나지 않았거나, 호주에서 태어나지 않은 부모를 두고 있다. 또, 지난 20년 동안 호주의 아시아 이주민들의 숫자가 영국 이주민들을 앞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주 의회만은 ‘백호주의(White Australia)’ 정책이 실시되던 때와 다름없이 백인 일색이다. 호주는 1901년부터 1970년대까지 백인이 아닌 사람들의 이민을 받아들이지 않는 ‘백호주의’를 유지했었다.

“호주는 정치 기구들이 다문화적 인구 구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 하에 있습니다.”

사우트모패사인 박사는 이렇게 평가했다.

다른 다문화적인 서방 민주주의 나라들이 다문화적 요구를 정치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데 비하면 호주는 한참 뒤처져 있다.

20년 전에는 영국이나 호주나 정치적 대표성(유권자들의 인구구성비에 따른 요구를 정치에 반영하는 정도)이 모두 떨어지는 편이었지만, 현재 영국의 정당들은 다양한 구성원들의 노력 덕분으로 당내 인종 구성비율 문제를 적극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다.

“인종 구성비에 따른 대표성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영국 노동당은 호주의 주요 정당들보다 몇 광년 빠릅니다.”

사우트모패사인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흉내 낸 배우가 이번에는 호주 총선 유세 현장에 초대받지 않은 채 나타나서 주목을 끌었다. [사진 =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흉내 낸 배우가 이번에는 호주 총선 유세 현장에 초대받지 않은 채 나타나서 주목을 끌었다. [사진 = 연합뉴스]

그렇다면 왜 호주는 변화하지 않는가?

관측통들은 호주의 정치 시스템이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보다 훨씬 폐쇄적이라는 데에서 이유를 찾는다. 호주 주요 정당들의 대부분 후보들은 기존 정치권 내에서 선발되는 경우가 많다. 정치권 내에서 기존 의원들을 위해 일을 하던 사람들이 후보로 선발되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다.

투레는 자신도 파울러의 기존 지역구 의원이었던, 나이든 백인 남성의 지원이 없었다면 정치권에 입문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호주 노동당은 작년에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시드니의 당선이 확실시되는 지역구 두 곳에 중국계 호주인들을 지명하는 등 일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는 있다.

그러나 노동당원인 오스몬드 치우는 당이 다문화적 요소가 강한 핵심 선거구에 백인 여성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내자 이는 “일 보 전진에 이 보 후퇴”라고 비꼬았다.

그런가 하면 케빈 러드 전 총리의 자문역을 했던 앤드류 찰튼은 시드니 동부의 항구 저택에 살면서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다가 노동당 국회의원 후보로 지명되었다. 그의 지명은 중국계와 인도계 인구 구성 비율이 강한 지역구에서 적어도 3명의 다인종 후보들을 탈락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 노동당 원로들은 크리스티나 케닐리와 앤드류 찰튼이 대중적으로 존경받는 정치인으로서 정치 신인들보다 유권자들의 요구 사항에 더 밝을 것이라고 말한다.

호주 노동당 대표 앤서니 올버니즈도 케닐리가 미국 이민자의 입지전적 인물이라고 추켜세우고 있다.

그러나 노동당원인 오스몬드 치우는 “많은 사람들이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특별한 개인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호주에서 가장 다문화를 대표해야 할 의석 두 개가 허투루 날아가 버렸다는 데 진짜 문제가 있는 겁니다.”

그는 호주 국회의원들의 평균 재임 기간이 10년 정도 되므로 이러한 결과가 미치는 영향은 오래 갈 것이라고 덧붙이며 이렇게 말했다.

한편 실망은 주로 노동당을 중심으로 표출되는데, 중도좌파를 표방하는 호주 노동당이 스스로를 ‘다문화주의 정당’이라고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영향은?

정당의 대표성 결여는 정책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2021년 8월 시드니에 코로나19가 창궐할 때 시드니의 다문화 인구들 대부분이 거주하는 파울러와 패러매타 선거구는 확진자가 더 많이 증가하면서 가혹한 봉쇄조치를 당해야 했다.

투레를 비롯한 운동가들은 이 지역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정치인들이 과도한 통제를 결정하면서 이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고 주장한다. 재택 근무와 같은 정책은 불안정한 직종에 종사하는 많은 주민들에게 바로 적용될 수 없는 정책이었다. 이 지역 주민들이 주로 병가를 거의 낼 수 없는 청소나 음식 배달 같은 파트타임 직종에 종사하기 때문이다.

또, 강제 격리 또한 여러 세대가 한 집에 함께 모여 사는 주민들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조치에 해당했다.

변화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호주 국회의원 중 유일한 인도계인 자유당의 데이브 샤르마 의원은, 자유당뿐만 아니라 모든 정당이 여러 배경의 정치인들을 더 많이 선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노동당 대표 앤서니 올버니즈는 투레에게 ‘미래에는 기회가 찾아올 것이니 참고 기다리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투레를 비롯한 많은 운동가들은 직접 목소리를 내 외치는 쪽을 선택했다.

“가만히 있지 않아야 사람들이 놀랄 겁니다.”

그녀는 BBC에 이렇게 밝혔다.

“사람들은 내가 당의 결정에 순종하지 않으면 정치 생명이 위태로울 것이라고 염려하지만 내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은 아무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공정(fair-go)을 자랑으로 여기는 나라에서 자란 투레와 같은 2세대 이민자들은 부모 세대들은 감히 생각도 못했을 권리 쟁취를 위해 나서고 있다.

“여러 배경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저의 경우를 통해 탄압과 이에 맞서 정치권에 광범위한 참여가 절실함이 드러나기 바랍니다.”

투레와 같은 사람들은 주요 정당들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팽배함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실시된 호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번 총선에서 무소속 후보들의 기록적인 약진이 기대된다.

“이 문제는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호주 사회의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합니다.”

팀 사우트모패사인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민주적 기구가 대표성을 상실한다면 그 합법성 또한 존재 가치가 없습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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